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가 국운의 사활을 걸고 싸운 곳이 황산벌이다. 국도 1호선을 타고 논산의 연산을 지나가면 계백장군의 묘지를 안내하는 밤색 무늬 바탕에 흰색의 글씨가 새겨진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일전에 논산에서 하루를 유숙한 적이 있다. 이튿날 업무를 마치고 장군의 묘지를 한번 갔다 왔다는 사무소 직원의 말을 듣고 홀로 묘지를 찾아갔다. 장군의 묘지를 찾아가는데 황량한 겨울바람이 황산벌에서 불어왔다. 그 바람은 마치 신라와 싸움에서 지면 나라의 운명도 끝이라는 백제 군사들의 함성이 뒤섞여 매서웠다.
황산벌을 지나 부적면에 이르자 백제 군사들이 목숨을 잃은 슬픔보다 나라를 잃은 슬픔의 눈물로 가득한 탑정저수지가 물결을 일렁이며 맞이한다. 탑정저수지에 다다르자 장군의 묘지를 안내하는 간판이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마치 숨기기라고 하듯이 길가에 조붓하게 서 있다. 장군의 묘지를 찾아가는 길은 대로가 아닌 오솔길이다.
탑정저수지를 지나 장군의 묘지로 가는 길로 들어서자 오천 결사대로 열 배나 많은 신라군과 사투를 벌인 절규와 메아리가 바람에 휘감기며 사람의 접근을 막아선다. 전쟁의 패자라는 치욕에 장군은 외진 산속으로 사람을 피해 숨어 들어간 듯하다.
장군의 묘지에 도착하자 주변의 소나무가 산소를 오가는 사람에게 세상 소식을 물어본다. 장군의 묘지 앞에 서자 가족을 베기 위해 칼을 높이 치켜든 장군의 비장한 얼굴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장군의 묘지는 전쟁에서 승리한 김유신 장군 것보다 열 배 이상은 작아 보인다. 묘지 주변에는 백제인의 숨결을 느낄만한 돌조각 하나 없다. 최근에 세운 작은 화강석 비석만이 덩그러니 서서 찾아오는 사람을 반긴다. 패장에게는 세상살이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소의 잔디만이 장군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듯이 햇빛을 받으며 쓸쓸하게 자란다.
장군의 묘지에는 전쟁의 패자라는 치욕과 나라를 빼앗겼다는 회한이 얼룩져 있다. 그나마 장군의 한을 늦게나마 달래주려는 듯 1,40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장군의 충의와 기개를 기리기 위해 묘지 옆에 사당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사당 밑에는 백제군사박물관이 건축미를 뽐내며 막바지 공사를 서두른다. 외관이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백제군사박물관을 바라보며 오늘에 이르러서야 후손들이 잊었던 장군의 꿈을 되찾아준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백제의 기상을 대변하는 장군의 충의를 가슴속 깊이 새기고 장군에게 예를 갖추어 절을 올렸다. 예를 올리며 뒤늦게 묘지를 찾아온 것은 지난날 수학여행지가 승자 위주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여행이었음을 사죄드렸다. 또한 역사를 바로 인식하지 못한 부덕함과 백제의 숨결과 장군의 충의를 되새길 수 있도록 후손에게 잘 가르치겠다고 다짐했다. 장군의 묘지 주변에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의 산소가 여기저기 자리해서 장군을 외롭지 않게 돌봐주어 다행이다.
장군은 중과부적의 숫자로 신라군을 몇 번이나 물리쳤다. 하지만 숫자 부족이란 치명적인 결점 앞에 신라인에 의해 목숨이 다하자 백제라는 국가의 운명도 끝이 났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황산벌에서 장군이 신라군을 물리치고 백제를 위기에서 구했다면 장군을 지금처럼 대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 시대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처럼 영웅 대접을 받으며 국민에게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조국의 쓰러져가는 방패가 되기 위해 구차한 목숨의 연명보다는 죽기를 각오한 장군의 결연하고도 비장한 의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충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한다.
장군의 묘지는 황산벌에서 최후를 맞았기 때문에 황산벌 한가운데에 조성해야 한다. 황산벌에서 이십 여리나 떨어진 이름 없는 산속에 묘지를 만들어 놓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 패장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고 나라를 위한 충의를 올바로 기리기 위해서라면 외진 곳보다는 황산벌로 묘지를 이장해서 장군의 충의 정신을 기려야 한다.
장군과의 만남을 뒤로하려니 발이 잘 떨어지지를 않는다. 신라군을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비감함에 장군이 눈물을 흘리며 내 옷자락을 붙드는 것 같다. 나는 장군이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충정과 마음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사당을 짓고 있노라. 그리고 앞으로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찾아와서 장군의 나라를 위한 뜻과 마음을 배울 것이란 말을 전해주며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첫댓글 어느 역사학자가 그랬지요.
계백은 가족을 죽인 패륜범이라고~
그만큼 나라 사랑이 컸던 것이겠지요.
전쟁 일어나면 저는 가족을 도피시키고 저 혼자 전쟁에 나가겠어요~ㅎ
외세를 끌어들인 최초의 국가 신라.
신라가 승리한 바람에 지금의 우리나라 영토가 한반도에서 멈추고 만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