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계곡 속 하얀 눈 덮인 숙박마을을 걷다후쿠시마의 오우치쥬쿠는 일본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번성한 숙박 마을로, 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문경새재’ 쯤이라고나 할까요. 일본의 무사들이 숙박하던 전통 마을로, 지은지 300년 이상 된 초가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인지라 국가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오우치쥬쿠 마을로 들어가는 길
오우치쥬쿠의 첫 인상은 '우리나라의 낙안읍성 같다.' 였습니다. 뽀얗게 눈 내린 둥근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이 닮았기 때문일까요? 순천의 '낙안읍성'은 저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손꼽다보니, 닮은 듯 다른 오우치쥬쿠의 분위기가 금세 마음에 들더군요.
▲ 순천 낙안읍성의 모습
▲ 일본 후쿠시마 오우치쥬쿠 전경
둘을 비교하자면 순천 낙안읍성이 규모 면에서는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200 평방미터에 300 여 채의 민가가 들어서 있으니 말이에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천의 낙안읍성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형태를 띠고 있는 것에 비해, 후쿠시마의 오우치쥬쿠는 450m로 쭉 이어진 직선 도로 양 옆으로 집이 들어서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은 고요한 마을이지만, 이 길 한 가운데로 말을 탄 무사들이 지나가면 집 밖으로 나와 맞이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요.
▲ 일본 오우치쥬쿠 –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개구리상에는 기원의 의미를 담은 동전이 가득!
오오치쥬쿠의 겨울은 함박눈이 지붕 위로 포근히 내려앉은 모습이 계곡의 설경과 어우러져 참 아름다웠습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마을'같은 느낌도 들더군요.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자국을 옮기며 마을로 들어서 봅니다.
풍수지리학 에서 운이 길한 지형으로 꼽는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아닐까 하는데요. 등 뒤에 산을 지고, 앞에는 물을 두른 지형을 일컫지요. 산은 추운 바람을 막아줄 뿐 아니라 땔감과 목재를 얻을 수 있고, 물은 농사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텐데요, 오오치쥬쿠 역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뒤의 산에 오르면 마을 전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초가 지붕 아래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있습니다. 겨울이 아니면 보기 힘든 광경이지요. 거기에 곶감을 널어놓은 모습이 한국과 닮았네요. 오오치쥬쿠의 초가 지붕은 한국처럼 풀에 풀을 엮어 단단히 묶어놓은 모습입니다.
▲ 생생한 색깔이 일품인 후쿠시마의 특산물 '칠기'
기념품 가게에서는 각 종 전통물건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는데, 털실로 엮어놓은 짚신과 후쿠시마 특산물이라는 칠기, 따끈따끈한 주전부리인 '당고' 등이 눈에 띄었어요. 길 양 옆의 수로에서는 눈 녹은 물이 졸졸졸 맑게 흐르고 있어 마을의 서정적 정취를 더욱 높이고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차로 2시간. 현대적인 모습으로 가득한 도쿄를 벗어나면 이토록 조용한 별세계가 펼쳐집니다. 일본의 전통가옥과 더불어, 계곡에 둘러싸여 상쾌한 공기까지! 한적한 시골 마을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한 손에는 카메라를, 또 한 손에는 달달한 당고를 들고 천천히 걸어다녀 봅니다. 스쳐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바쁜 일상에 가빠진 숨을 가다듬었습니다.
* Information *
전통 숙박마을 오우치쥬쿠
위치 : 후쿠시마현 시모고마치
교통 : 도쿄역 ~ 유노카미 온천역 (3시간 30분)
유노카미 온천역 ~ 오우지쥬쿠 (택시로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