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정리 김광한
제130회 나오키상 수상에 빛나는 ‘항설백물어’ 시리즈의 백미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교고쿠표 문학’ 특유의 괴담과 활극이 펼쳐진다!
일본 에도시대 괴담집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설화를 모티프로 인간의 슬프고도 추한 본성을 다채롭게 해석해낸 걸작 시리즈 ‘항설백물어’. 《후 항설백물어》는 《항설백물어》《속 항설백물어》에 이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제13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교고쿠 나쓰히코의 대표작이다. 비채에서는 독자 의견을 십분 반영해 한 권으로는 다소 무거운, 원고지 3000여 매 분량의 《후 항설백물어》를 상하권 두 권에 나누어 소개한다. 상권의 <붉은 가오리> <하늘불> <상처입은 뱀>에 이어 하권에도 세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높은 산에 사는 산의 신이자 정령이자 요괴인 산사내 이야기를 담은 <산사내>, ‘푸른 백로라는 빛이 나는 새가 과연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가’ 하는 수수께끼로 시작하는 <오품의 빛>, 백 가지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바람신>이 실려 있다. 독서 편의를 위해 책의 무게는 덜었지만 이야기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오키상 심사위원이자 선배 작가인 이노우에 히사시는 “공연히 무슨 말을 더 얹겠는가. 언어만으로 이토록 신비한 세계와 명쾌한 세계관을 창조하다니! 그저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라고 《후 항설백물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출판사서평
고전 요괴 설화에 미스터리와 호러를 접목시킨 독특한 작품으로 독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문학적 공로까지 인정받은 일본 대표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 그가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기묘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놓는 특유의 입담은 여전하며, 전개는 한층 과감해지고, 독자들의 간담을 빼놓는 결말의 반전은 더욱 강렬해졌다. 나오키상 수상작 시리즈이기도 한 《항설백물어》는 일본 에도시대 괴담집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설화를 모티브로 인간의 슬프고도 추한 본성을 다채롭게 해석해낸 걸작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비상식적이고 오싹한 요괴 이야기를 논리적인 추리로 해결하는 신감각 미스터리!
한밤중에 소나기를 만난 승려는 비를 그으러 들어간 허름한 오두막에서 몇몇의 남녀와 마주치게 된다. 흰 승복을 두른 어행사에, 여자 인형사, 상인, 젊은 남자 등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비 내리는 밤에 어울릴 법한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천일야화》나 《데카메론》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려는 사람들의 괴담 열전이나, ‘언니를 사랑한 산고양이’, ‘팥 이는 귀신’ 등의 독특하고도 오싹한 소재가 흥미를 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모든 이야기가 승려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다른 이야기를 이룬다. 헛간 밖에서는 ‘쏴락 쏴락’ 하며 팥을 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승려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그를 진정으로 무섭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항설백물어》는 에도시대의 화가, 다케하라 슈운센竹原春泉이 실체가 없는 요괴에 실체를 덧입힌 괴담집, 《회본백물어》에 등장하는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마이쿠비>, <시바에몬 너구리>, <시오노 초지>, <야나기온나>, <가타비라가쓰지> 등 일곱 가지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팥을 이는 귀신, 스님으로 둔갑해 살아온 여우, 머리가 잘린 채로 계속되는 싸움, 개에게 물려 죽은 너구리 이야기, 오래된 버드나무의 저주, 대낮 한길에 나타나는 썩어가는 시신……. 요괴의 짓으로밖에 볼 수 없는 끔찍하고 괴이한 일들은 사실, 마타이치를 비롯한 인형사 오긴, 신탁자 지헤이 등의 소악당들이 쳐놓은 이중 삼중의 교묘한 함정이다. 작은 움직임이나 정체불명의 소리, 불가사의한 현상을 요괴의 짓으로 듣고 보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요괴보다 무서운 사악함 또한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사실, 소설의 테마가 된 《회본백물어》는 인간의 추악한 마음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등장인물들이 악한을 제거하고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권선징악적 전개의 이면에는 통쾌함과 함께 한없이 약하고 악한 인간을 향한 연민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
등단에서부터 문학상 설립까지…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작가,
그...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는 그 문학성과 대중적인 인기 외에도 독특한 데뷔 이력을 자랑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오랜 기간의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첫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 방대한 분량과 기괴한 스타일로 인해 투고할 만한 신인상을 찾지 못한다. 결국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에 원고를 보냈고, 그의 데뷔작은 별다른 절차 없이 단숨에 출간되는 영예를 거머쥐는데, 이 작품이 바로 《우부메의 여름》이다. 절차를 중시하는 일본 문단에 충격을 선사한 무명작가의 데뷔를 계기로, 고단샤는 ‘원고 매수의 제한을 두지 않고 수시로 접수받는 문학상’ 메피스토상을 일본 최초로 제정하기도 했다.
고전 설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소재와 장르 문학을 꺼려했던 여성 독자까지도 유혹하는 아름다운 묘사, 치밀하게 교차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집대성해 노도처럼 몰아치는 충격적 결말. 지금까지의 어떤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작풍을 일본 독자들은 ‘교고쿠 나쓰히코표 문학’이라고 부르고 그의 세계관을 ‘교고쿠 월드’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한 작가의 집념과 열정이 만들어낸, 일본 문학사에 길이 남을 값진 성취였다.
무서운 요괴의 모습, 밝혀지는 의외의 진실과 인물들, 저마다의 사연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진실들로 이야기가 갖는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 《항설백물어》. 작가는 기존의 소설에서 선보였던 긴 배경 설명을 과감히 줄이고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의미의 제목답게 이야기 전개에 보다 공을 들였으며, 각 에피소드의 수수께끼가 해결되는 결말에서는 치밀하게 계산된 논리성으로 독자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항설백물어》를 ‘교고쿠 나쓰히코표’ 문학의 정점이라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속 항설백물어》와 《후 항설백물어》 등을 집필해 독자들의 사랑에 화답했으며, 이들 작품 역시 도서출판 비채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가
1963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일본을 대표하는 괴담문학 및 환상문학 전문가로, 독자들에게 천재 작가로 추앙 받고 있다. 쿠와사와디자인연구소를 거쳐 광고대리점 등에서 일한 후, 제작 프로덕션을 설립한 디자이너이기도 gk다. 지금도 디자인과 장정을 손수 하고 있다. 1994년 《우부메의 여름》으로 데뷔, 1997년 《웃는 이에몬》으로 이즈미교카문학상, 2003년 《엿보는 고헤이지》로 야마모토슈고로상, 2004년 《후 항설백물어》로 나오키문학상, 2011년 《서 항설백물어》로 시바타렌자부로상을 수상했다. 그림책으로는 《있어 없어?》, 《우부메》 등 여러 작품이 있다. 요괴 연구가로도 이름이 높아 관련 저서도 다수 있으며, 세계요괴협의 평의원, 괴담지괴 발기인, 고전유희연구소 카미마이(종이유령)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드보일드 작가 오사와 아리마사(大澤在昌),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와 함께 세 사람의 성을 딴 사무실 ‘다이교쿠구(大極宮)’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