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548] 韓偓[한악]-草書屛風[초서병풍]
草書屛風[초서병풍]
韓偓[한악] (약 842∼923) 偓 =거리낄 악,신선이름악.
何處一屛風[하처일병풍] : 어느 곳의 하나의 병풍인가
分明懷素蹤[분명회소종] : 회소의 자취가 분명하구나.
雖多塵色染[수다진색염] : 비록 먼지에 물이 들었지만
猶見墨痕濃[유견묵흔농] : 오히려 묵 흔적 짙게 보이네.
怪石奔秋澗[괴석분추간] : 괴석이 가을 산골물 달리 듯
寒藤掛古松[한등괘고송] : 찬 덩굴 늙은 솔에 걸려있네.
若敎臨水畔[약교림수반] : 만약 물가 강물에 내려 놓으면
字字恐成龍[자자공성룡] : 글자마다 용이 될까 두렵구나.
懷素[회소,723/737-785?] : 속성은 錢氏[전씨],
자는 藏眞[장진]으로 零陵[영릉,지금의 永州]사람.
일곱살에 절에 들어가 형편이 좋지 않아 종이를
구할 수 없었기에 바위나 목판위에 물로
글씨 연습을 하다가 절 뒤에 芭蕉[파초]를 심어
파초의 넓은 잎에다 글씨 연습을 했다 함.
成龍[성룡] : 筆走龍蛇[필주룡사], 힘이 있고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필체를 말함.
怪石奔秋澗[괴석분추간] 寒藤掛古松[한등괘고송] :
회소가 쓴 草書[초서]의 특징을 드러낸 구절.
이 구절의 유래는 晉代[진대]의 서법가 衛夫人[위부인]이
‘點要如高峰墜石[점요여고봉추석] :
점은 높은 봉우리에서 돌이 떨어지듯 하고
磕磕然實如崩也[개개연실여붕야] :
서로 부딪쳐 소리 내며 무너지는 것 같아야 한다’
라고 했다한다.
곧 앞 구절은 회소의 點劃[점획]을 말한 것이고,
두 번째 구절은 초서의 竪[수]와 弧鉤[호구] 필획을 가리킴.
이에 대해 歐陽詢[구양순]이
‘竪要如萬歲之枯藤[수요여만세지고등]:
'竪劃[수획]은 만 년이나 된 마른 등나무 같아야 하고
弧鉤要如勁松倒折落挂石崖[호구요여경송도절락괘석애] :
호구는 큰 소나무가 쓰러져 떨어지다
낭떠러지에 걸린 것 같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상=돌지둥宋錫周님글 인용 일부수정.
이하=동아일보
어디서 난 병풍인지, 회소(懷素) 스님의 필적이 분명하구나.
먼지 잔뜩 쌓이고 얼룩이 묻었어도,
먹의 흔적은 외려 더 선명하네.
괴석이 가을 개울을 향해 내달리는 듯,
마른 등덩굴이 노송에 걸린 듯한 글씨들.
이걸 만약 물가에 내다 놓으면,
글자 하나하나가 용으로 변할까 걱정이겠네.
(何處一屛風, 分明懷素蹤. 雖多塵色染, 猶見墨痕濃.
怪石奔秋澗, 寒藤掛古松. 若敎臨水畔, 字字恐成龍.)
―‘초서 병풍(草書屛風)’ 한악(韓偓·약 842∼923)
승려 서예가 회소, 호쾌한 성품에 술을 좋아하여 도처를 유람하며
많은 문인 사대부와 교유했고, 술에 취해 거침없이 휘갈기는 초서
즉 ‘광초(狂草·미친 듯이 흘려 쓴 초서)’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청년 시절 그가 평소 흠모해 오던 이백을 찾자 아버지뻘 되는
이백 역시 그 기질과 글씨를 아껴 둘은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었고,
이백은 ‘회소의 초서가 천하 독보’라고 칭송한 장편시를 쓰기도 했다.
그 진귀하다는 회소의 초서 병풍을 우연히 접하게 된 시인은 흥분과
경이를 가누지 못한다. ‘먼지 잔뜩 쌓이고 얼룩이 묻었어도’
대번에 회소의 필적임을 확신한 시인 역시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셈.
글씨의 기세와 붓놀림을 ‘괴석의 낙하’ 혹은 ‘마른 등덩굴의 형상’으로
비유한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
앞 시대 유명 서예가들이 글씨의 속도와 힘, 기세, 생명력 등을
강조하면서 쓴 비유를 시인은 회소의 글씨에 적용했다.
물가에 내놓으면 ‘글자 하나하나가 용으로 변할까 걱정’이라는
시인의 흐뭇한 상상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