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레이코프는 미국의 유명한 인지언어학자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표지에는 검은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데, 제목을 본 뒤 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래도!”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이미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코프는 이게 언어의 ‘프레임’이라고 설명하는데, 말이 인식의 틀(프레임)을 정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언어의 프레임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레이코프는 ‘지구 온난화’라는 말이 그 부정적인 뉘앙스를 싫어하는 기업들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기후 변화’라는 중립적인 말로 대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이젠 ‘민주화’, ‘적폐청산’, ‘내로남불’ 등이 언어 프레임이 된 것 같은데 여기에 ‘저출산’이 추가되고 있나 봅니다.
‘저출산’이라는 시사용어는 어느덧 한국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을 수 있는 일상용어가 됐지만, 저출산이라는 말이 너무 만연해서 오히려 인구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출산 뉴스가 넘치다 보니 오히려 과거보다 저출산 소식에 무덤덤해진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얼마 전 방영된 한 저출산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교수가 한국 합계출산율 수치를 듣고 머리를 감싸 쥐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놀라는 장면이 화제가 됐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은 발표 당시 그 정도로 충격 받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년부터 출산율 감소가 예고되기도 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데 익숙해진 탓이 컸을 것입니다.
<지난 7월 국내 출생아 수는 1만 9102명으로, 4월부터 4개월 연속 2만 명 선을 밑돌았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연말까지 0.6명대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는 0.78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자녀수를 의미한다.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아이 1명도 갖지 않으면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7월 한국 인구는 9137명이나 감소했다. 인구 1만 명 규모의 지방자치단체가 매달 하나씩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인구 위기는 당장 체감되지 않는다. 솜에 물이 스며들듯 체감도는 서서히 증가한다. 언론 보도로 접하는 수치는 매우 충격적이지만,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언급할 만한 얘기는 아니다. 인구 문제에 대한 위기 경보를 10년간 듣다 보니 내성까지 생겼다. 지금 청년들에게 인구 문제는 경기 침체와 취업, 스포츠 경기, 심지어 오늘 저녁 예고된 드라마보다 중요성이 낮다.
그래서 인구 대책은 정부나 정치권이 책임져야 한다. 국민들이 드라마를 보거나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을 때도 인구 대책 컨트롤타워는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소소한 자화자찬도 이제 낯부끄러운 지경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참다못해 그 ‘하나’를 짚어 주는 보고서까지 냈다.
인구 수치는 계속 악화되고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한 티를 내려면 ‘예산’을 들이밀 수밖에 없다. 최근엔 예산을 ‘방패막이’로 쓰는 듯하다. ‘이런 막대한 예산을 썼는데도 하락 추세를 도저히 돌릴 길이 없다’고 읍소하면 그만이다.
지난해 정부 예산 중 학교 단열성능 개선 등 학교 설비 설치와 스마트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조성 사업’엔 1조 8293억원이 투입됐다. 정부 분류대로라면 이것은 저출산 대응 예산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1조 3098억원), 내일배움카드(3248억원), 창업성장기술 개발사업(2157억원), 군인 및 군무원 인건비(987억원), 민관협력창업자 육성사업(526억원), 소상공인 재기 지원사업(317억원), 지역 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69억원) 등 청년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예산은 모조리 저출산 예산으로 묶어 놨다.
정부가 성과지표 맨 앞에 내세우는 ‘육아휴직률’은 어떤가. 4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의 여성 육아휴직률은 2012년 28.8%에서 2021년 26.2%로 뒷걸음질쳤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위한 제도’라는 원성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 대상자는 지자체별로 중구난방이다.
광역지자체 사업으로 이관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더니 올해 7월 기준으로 소득기준을 폐지한 곳이 9곳, 폐지하지 않는 곳이 8곳이다. 난임 사업 대상자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 요소를 만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모든 지자체와 정부 부처를 정책 대상으로 묶어 대책을 아래에서 위로 만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각 부처는 원하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 청년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정책이면 모두 ‘저출산’이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이런 방식이면 인구 대책의 최종 컨트롤타워는 예산을 자르고 붙이는 ‘기획재정부’가 된다. 마치 두뇌는 없고 심장만 있는 동물처럼 매우 기형적인 형태다.
일본은 지난 4월 인구 대책을 총괄하는 ‘어린이가정청’을 신설했다. 인구 1억명을 유지하기 위해 ‘1억 총활약상’이라는 특임장관까지 뒀다가 2021년 폐지한 뒤 올해 다시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국민들에게 특별한 시그널을 준다.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인구 대책과 직접 관련 있는 예산만 모아 ‘특별회계’를 꾸리고 이름뿐인 컨트롤타워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구 정책은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못난이 정책’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힘을 더 실어 줘야 한다.>서울신문. 정현용 플랫폼전략부장
출처 : 서울신문. 오피니언 데스크의 시각, 인구 대책, 컨트롤타워는 존재하는가
지금 정부에 ‘대통령직속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과연 그 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지만 대통령이 이 위원회를 주관할 수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해서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게 해야지 말로만인 위원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위 기사 내용대로 해마다 몇 조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실제로 저출산에 직접 쓰이는 돈은 그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저 무슨 일의 앞에 ‘저출산’이라는 말만 붙여서 엉뚱한 곳에 돈을 낭비하니 어느 세월에 저출산이 바뀔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제발 엉뚱한 곳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저출산 대책으로 실효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