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의 순환
염혜순
잎들은 나무가 전부다
나무가 잎이 돋으므로 다시 살듯이
잎은 나무에 달려있을 때까지가 한 생이다
나무에서 생겨 나무에서 지는
나무에 매달린 시한부 목숨
그러므로 나무는 이파리들의 이승이다
푸르던 날 햇살아래 그늘은 짙고
가지 끝의 하루는 무성했지만
서늘한 바람에 입술 마르면
이파리의 숨결은 저물어 노을 진다
단풍든다
노을빛으로 물드는 이파리들이 가늘게 떨리고
나뭇가지 잡은 손에 사르르 힘이 풀리면
여린 바람 하나에도 잎은 제 몸을 싣는다
나무의 삶을 놓는다
나무를 떠난 후
다시 돌아온 잎은 없다
잎은 돌아오지 않는데
잎 진 자리엔 새 잎눈이 맺힌다
다시 봄이 오면 빈 나무 가득 움돋을 잎의 씨앗이다
껍질처럼
낙엽 떨어진 그곳에 가을이 쌓이고
나무 끝엔 딴딴한 이파리의 새 목숨이
보일 듯 말 듯 알갱이처럼 돋고
잎과 나무는 만나고 헤어지며
숨결을 나누는 사이
잎은 나무를 안고 계절을 돌고
무심한 듯 바람은 허공을 돌고
나무는 허공에 동그란 나이테 하나 두른다
카페 게시글
신작시
이파리의 순환 /염혜순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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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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