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17일, '워터게이트'호텔(오른쪽 사진)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침입자 5명이 발각되었다. 그 중 한명은 전직 CIA요원이자 공화당 닉슨 대통령 재선캠프 소속인 '제임스 매코드'였다. 민주당은 백악관이 관련있다고 주장했지만 '매코드'는 사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꼬리자르기였다.
또한 FBI는 수사과정에서 닉슨 재선캠프의 자금이 침입자들에게 흘러들어간 사실과, 그들이 재선캠프와 연락한 사실을 숨겼다. 최근 우리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서 검찰이 수사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닉슨은 CIA를 동원해 FBI의 수사를 방해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 와중에 결국 닉슨은 재선에 성공한다. 하지만 법무장관이 불법도청을 진두지휘 했다는 말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미국사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이 '민간인 불법 사찰'관련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고, 따라서 현재의 검찰 수사가 가능하겠냐는 시선이 많다.
그러다 5명의 침입자들이 형량 축소를 전제로 백악관이 허위진술을 회유했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일었다. 장진수 주무관의 '청와대의 증거 삭제 지시' 폭로와 맥락이 닿는 부분이다. 최근 이영호 전 비서관이 스스로 몸통이라 기자회견을 연 것도 어쩌면 청와대의 회유일지도 모른다.
결국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 일종의 청문회가 열리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베터필드 대통령 부보좌관은 엄청난 폭로를 한다. 대통령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자동녹음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건 전후의 테이프를 살펴보면, 닉슨 대통령 대통령이 해당 도청사건에 대해 지시를 했다던지 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KBS새노조'의 총리실 민간인 사찰기록 폭로와 비슷한 부분이다. 'BH(Blue House, 청와대)지시사항'이라는 등의 내용이 있어 그 증거가 현재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상황이다. 또한 그것보다 훨씬 많은 증거들이 또 있다고 한다.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는 테이프를 요청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 특권으로 그를 거부한다. 또 닉슨 대통령은 새로운 법무장관 '리처드슨'에게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콕스 특별검사'에게 테이프 소환장을 취소하게 할 것을 요구하지만 콕스는 취소를 거부한다. 닉슨 대통령은 '리처드슨'에게 '콕스 특별검사'를 해고할 것을 요구하지만 오히려 리처드슨 법무장관이 그를 거부하고 사직한다. 임시 후임 법무차관도 그를 거부하고 사직한다. 결국 법무차관보가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게 된다.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이어 테이프가 결국 공개되는데 중간 18분이 짤린 것이 확인된다. 백악관은 여러 이유로 변명을 했지만 변명이 틀렸음이 언론에 의해 확인된다. 결국 이러한 증거물 훼손은 범죄행위가 되어, 법원이 나서서 테이프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닉슨 대통령의 특권을 무효화 시킨다. 그리고 결국 테이프는 제출된다.
테이프의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도청사건 수사를 방해하려는 닉슨의 대화내용이 녹음되어 있었다.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닉슨 대통령이 지시하고 말고를 떠나, 수사를 방해하고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그 자체로 탄핵당한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은 탄핵이 결의되기 전, 사태가 처음 발발하고 2년 2개월뒤인 1974년 8월 9일에 스스로 사임한다.
대한민국이 미국 반만 따라갔다면 이미 색누리당 전신은 30년전에 사라졌어야 정상임
김무성이 부산 유세에서 읽은 NLL 관련 내용이 이번 국정원의 발췌 편집 자료와 같다는걸 보니
국정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인터넷 댓글 관련 선거 운동 뿐만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박근혜와 함께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보이네요.
외국이었다면 워터게이트 급 파장의 사건이 되었을 겁니다.
지난 대선과 국정원의 역할 제대로 파헤쳐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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