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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경고 하셨습니다
출 11: 4-8
요즈음 과학이 대단히 발달했습니다.
기상예보도 몇 년 후까지를 한답니다.
그래서 태풍이 분다, 스나미가 온다고 합니다.
전자제품도 고장이 나면 신호등이나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이처럼 민방위 훈련도 그렇습니다. 비상 사이렌을 울립니다.
피하라. 몸조심하라는 것들입니다.
우리도 구름이 끼면 비올 것 같다는 것 등을 잘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 가지 징조들로 경고하십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위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출 11:4-7)하셨습니다. 이 경고는 인류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고였습니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 같으면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똥배짱은 애굽의 대 비극을 가져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박용우 교수가 “잊지 말자! 살 빼기 위한 여덟 가지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밥상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젠 패스트 푸드(Fast Food)가 우리를 뚱보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가히 살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살 빼는 비방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해 봅니다.
그런데 다음 8가지를 실천해 보십시오.
1. 아무리 바빠도 하루 세끼를 꼭 챙겨먹는다.
2. 채소(나물반찬, 샐러드), 해조류, 버섯은 눈에 띄는 대로 많이 먹는다.
3. 고단백식품(두부, 계란흰자, 생선, 해산물)을 하루 2끼 이상 먹는다.
4. 점심식사 이후에 설탕이 많이 들어간 밥, 빵, 면을 일체 먹지 않는다.
5. 물을 하루에 2ℓ(1되) 이상 많이 마신다.
6. 불포화지방산(생선, 견과류, 올리브유)을 매일 섭취한다.
7. 일상생활을 운동하듯 한다. 가급적 걷기를 즐기고 심장에 약간 부담을 느낄 정도로 빨리 걷는다. 전화하지 말고 찾아가서 이야기 하라.
8. 매주 한 번은 다이어트 휴일로 정한다. 이때는 먹고 싶었던 것을 실컷 먹는다.
이것은 의사가 말하는 건강비결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에게 주는 위험 경고 표지판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임금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세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임금님을 비롯해서 모든 가정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먼저 난 것은 다 죽습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정신 차리세요.
Ⅰ. 하나님이 경고 하셨습니다.
아마 군부대 곁을 지나 보신 적 있으시지요. 철조망에 “접근금지, 발포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이 경고문입니다. 삶에는 두 종류의 비극이 있습니다. 첫째가 사랑을 잃는 비극이랍니다. 둘째가 사랑을 얻는 비극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료함으로 시작해서 싫증 때문에 끝나 버립니다. 목적을 이룬 기쁨은 아주 잠깐입니다. 우리는 중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어떻게 하면 삶이라는 선물을 한껏 누릴까? 어떻게 하면 덜 후회하며 살 수 있을까?” 이 시간에도 우리의 삶의 길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고 한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흥분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평생 우리는 늘 긴장합니다. 어깨나 팔다리만 아파도 죽을병이 아닌지 걱정합니다. 한 사람의 결정에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기 이야기를 지어내서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도 경고 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절대로 따 먹지 마라,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한창 배고팠던 해방 전후에 복어 알을 먹고 죽는 것 보았습니다. 산에서 따 온 버섯을 먹고 죽는 것도 본 적 있습니다. 선악과에 독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그 열매는 보기에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먹으면 지혜로워질 것 같았습니다.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을 어긴 것입니다. 대학 수학 능력 고사 때 휴대폰, mp3(엠피쓰리), 전자시계 등을 반입하면 시험 무효다, 내년까지 시험치를 자격 안 준다고 신문, 방송에 많이도 말 했습니다.
전국에 27명이 적발 되었습니다. 본인은 물론, 학부모, 시민단체에서 이건 너무하다,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합니다. 미리 경고했습니다. 이걸 보면 사람들의 주의가 산만합니다. 모든 약에 설명서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제약회사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죄는 달콤할 수 있습니다. 마약과 같습니다. 순간적인 만족과 쾌감을 줍니다. 이는 습관이 들면 폐인이 됩니다. 술, 담배, 나쁘다고 말합니다. 담배 하나만 끊으면 많은 암을 예방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가 수입이 는다고 해서 담배를 만들면 안 되지요. 병 주고 약 주는 꼴입니다. 그리고는 담배 끊으라, 담배 끊으라고 보건 복지부에서 말합니다. 이 성경이 경고문입니다. 또 축복 선언문입니다.
북한 헌법 서문을 보았습니다. “김일성 수령”이라는 말이 무려 17번 나옵니다.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라고 시작합니다.
1974년 4월 김정일에 의해 만들어진 “10월 대책”은 수령 독재체제와 개인숭배사상을 유지, 강화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재판을 거치지 않고 중형에 처하고 있어 사실상 “수령 독재 10계명”입니다.
그 10대원칙 한번 보실래요.
1.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 하여야 한다.
2. 김일성 동지를 충성으로 높여 우러러 모셔야 한다.
3.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해야 한다.
4.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 해야 한다.
5. 교시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6.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 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7. 김일성 동지를 따라 배워 공산주의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을 소유해야 한다.
8. 수령님의 크나 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해야 한다.
9.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렬도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 규률을 배워야 한다.
10.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고 혁명위업을 대를 이러 끝까지 계승 완성하여야 한다.
세상에 이런 헌법이 어디 있습니까? 김일성 우상의 나라인 것입니다. 저는 금강산에 가서 김일성의 말을 돌에 새겨놓고 아침저녁 쓸고 닦습니다. 누가 그 돌이나 비석을 보고 비웃거나 손가락질하면 당장 잡혀갑니다. 미리 경고를 합니다.
Ⅱ. 맏이는 다 죽는다.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이것이냐 저것이냐 either ~ or”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왕은 9번의 재앙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이제 보내주마, 이를 거두어 달라고 너희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해주면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젠 하나님의 최후통첩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도 재앙으로 진절머리가 났을 것입니다.
사람도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합니다. 급하면 무슨 소리 못합니까? 우리도 급하면 하나님께 제일 좋은 약속을 합니다. 큰 불 끄고 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모세는 “만일 이번에 우리를 보내주지 않으면 왕은 물론 모든 사람과 동물의 처음 난 것은 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왕은 “설마 그럴라고." 했을 것입니다. “설마가 사람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르트르라는 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택하는 데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선택한 데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사탄의 달콤한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온 것입니다. 지금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약속입니다. 대단한 축복입니다. 사랑의 선언입니다. 구원의 약속입니다. 이를 지켜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요 1:12))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Who were born not of blood, not of the will of the flesh, not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요 1:13) 이것이 약속입니다. 축복의 선언입니다. 구원의 대현장입니다. 인간은 정말 미련합니다. 어리석습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했겠습니까?
성경은 “천기는 분변할 줄 알면서...”라고 했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내가 너희를 품으려고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메나 솔개가 하늘을 휘 날면 모이를 줍던 어미 닭이 얼른 병아리를 자기 날개 아래 모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즈음 비전이라는 말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큰 비전을 가진 사람은 위대합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초라합니다. 그런 사람은 열등의식을 갖습니다.
진센돌프 백작은 “나에게 단 하나의 열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분, 오직 그분 뿐이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인 92명당 1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했다고 합니다. 바로 왕에게 선택할 때가 왔습니다. 이 기회 놓치면 엄청난 재앙을 맞습니다.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됩니다. 우리도 늘 기회가 있습니다. 그 기회를 잃으면 반드시 후회합니다. 사람은 정말 간사합니다. 사람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십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름다운교회(김종표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신학을 졸업해도 마땅한 교회가 없습니다. 100개 교회를 개척하면 자립하는 교회는 10%미만이라고 합니다. 200명 이하의 작은 교회가 전국에 60%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인 200명만 되면 새 교회를 개척한다고 뜻을 정했답니다. 그는 교인 200명만 되면 부목사를 보내 개척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온통 야단입니다. 세상이 용광로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모세를 보냈습니다. 최후 통보였습니다. 우리말을 들으시오. 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지 않으면 오늘 밤 사람과 짐승의 모든 첫째는 다 죽습니다. 무서운 경고였습니다. 그는 거절합니다. 바보지요. 이전에 아홉 가지 재앙에 혼쭐이 났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미련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늘 이 때가 마지막 때인 줄 압시다. 주일을 성수합시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립시다. 성경을 읽고 생활화 합시다. 늘 긍정적으로 살아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다른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출 11: 4-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하게 된 사연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열한 번째인 요셉을 유달리 사랑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요셉은 형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17세 된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 떼를 치는 형들에게 갔습니다. 그때, 그를 미워하던 형들이 요셉을 붙들어 애굽에 내려가는 대상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요셉은 낯선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으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이 30세에 애굽 왕의 신임을 받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지 7년 후에 애굽뿐 아니라 가나안 지역까지 큰 기근이 닥쳤습니다. 이때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과 그 일족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고센 땅에 정착하게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야곱의 자손은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 요셉을 아는 임금이 애굽을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 자손은 평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임금이 집권하게 된 후부터 이스라엘 자손은 미움과 학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무고히 매를 맞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을 자유케 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은 이스라엘 자손을 놓아주지 아니하고 더욱 혹독하게 학대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애굽을 징벌하는 재앙을 아홉 번이나 내리셨지만 바로 왕은 굴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날 밤에 애굽 전역에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맷돌 가는 여종의 장자까지, 또한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 재앙을 면하도록 구별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비로소 애굽 왕은 밤중에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나도록 재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하였습니다.
오늘은 처음 유월절을 통하여 계시된 귀중한 진리를 상고하겠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죽음의 재앙을 면하게 된 사연을 알아보십시다.
어찌하여 애굽 사람의 집에만 재앙이 임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집은 무사하였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들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애굽의 고센 땅에 저녁이 다가왔습니다. 집집마다 양을 잡고 우슬초에 양의 피를 적셔 부지런히 문인방과 좌우설주에 발랐습니다. 피를 바른 집안에는 가족들이 모두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둘러앉아 어린 양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온 애굽 천지를 진동하는 호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의 왕궁으로부터 맷돌 가는 종의 집에 이르기까지 애굽의 집집마다 장자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설주와 문인방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죽음의 재앙이 엄습한 집과 넘어간 집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차이를 가져온 것은 오직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죽음의 재앙을 면하는 방도는 어린 양의 피를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고 그 집안에 거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둘째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우리 모든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를 알아보십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들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노예 생활을 면할 수 없듯이 인간은 죄의 종이 된 데서, 또한 마귀의 지배 아래서 어떤 방도로도 자유케 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애굽과 바로에게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문설주와 문인방에 피를 바르기 위해 잡은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흘리신 피는 지극히 보배로운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린 피이며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피이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과 가깝게 하는 피이며 화목케 하는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피이며 우리에게 이김을 주는 피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예표하는 것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이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이처럼 많은 의미가 있는 피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와 진리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유효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충분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사람일지라도 자기 집의 문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 대신 빨간 물감을 칠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어린 양의 피에다 다른 무엇을 더 보태었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더라도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하면 그 지식이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열심히 문인방과 문설주에 피를 칠해 놓고 자신이 집 밖에 나와 있는다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어린 양의 피를 양푼에 담아 놓고도 집의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지 아니하면 그 피로 인한 은총과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과 능력은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육신과 범사에도 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과 능력을 지금 이 자리에, 그리고 범사에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이는 현재 체험할 수 있는 유효한 은총이며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현실의 모든 생활 속에 나타나도록 구하고 의지하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 양을 도대체 몇 마리나 잡아야 했을까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한 마리의 유월절 양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의 최소한의 숫자는 열 명이고, 최대한의 숫자는 이십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의 숫자를 대략 이백 오십만 명으로 추산한다면 십육만 마리 이상의 양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월절 양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림자와 예표로서의 시대는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유월절 양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1,12)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의 흘리신 보혈의 은총과 능력은 영원히 효력을 미치게 됩니다. 얼마나 신비한 은혜이며 놀라운 진리인지 다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유월절 밤에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었던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애굽 사람에게는 죽음의 재앙이 닥치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덮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이러한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습니까? 그것은 오직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다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음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철학자는 고상한 삶의 지혜를 말해 줍니다. 종교가는 까다로운 교리나 장엄한 의식을 가르쳐 줍니다. 정치가는 더 풍요로운 삶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 죄를 속하고 의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우리를 정결케 하고 의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줍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고백하며 찬양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계 1:5,6). 이러한 고백과 찬송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
출 11: 4-8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내용 요약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섭리를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기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애굽의 장자를 심판하신 것은 오직 세상에 소망과 마음을 두고 자신의 업적과 선행을 쌓아가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혼에 대해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하나님앞에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린양을 잡아 집 대문에 피를 뿌려 두어 죽음의 심판을 넘긴 사건은 곧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지옥의 심판을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우리는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설교 내용
지난 한 주간동안 많은 분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을 배우는 가운데 이번에도 새로 오신 분들이 많이 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강당 3층과 5층이 꽉 차서 이번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열심히 말씀을 배우셨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의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구원받은 일은 하나님이 아시고 구원받은 사람 자신도 압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구원을 받으려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지금도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속에 역사가 남아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좀더 행복을 누려보라고 역사를 남겨두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아직 은혜시대를 연장시키고 오래 참으시는 기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구원받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만일 구원을 받지 못했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선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기뻐하고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고 히브리서 2장 3절에 보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구원이 얼마나 크길래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큰 희생을 베푸셨을까요 아무 가치 없는 것을 위해서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내려주신 것은 인간의 영혼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혼이 구원받아서 천국가는 일이 너무나 크고 귀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큰 대가를 지불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 아마 자기도 잘 모를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성경을 배우는 가운데 점점 더 구원이 얼마나 크고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받아서 좋기는 좋은데 이 선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귀하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깨닫는 만큼 선물의 귀중함을 알고 기쁨이 더 큰 것처럼 이 구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을 깨달아 아는 만큼 하나님 앞에 감사와 기쁨이 더 넘칩니다. 날로 새롭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구원이 귀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구원받는 것도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가족들 부모와 형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친척들 가까운 친구들 구원을 염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나 혼자만 구원받고 천국가고 자기 가족들과 친척들 가까운 친구들이 지옥가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다면 잘못된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자기는 평생 교회다니면서 자기 가족들에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 없이 막연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보면 물론 구원이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같으면 아무리 반대해도 믿는다고 미워하고 핍박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가족과 친척들 친구들을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구원받도록 도와주고 애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이나 아니면 자기와 육신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볼 때에 그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너무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함께 기뻐합니다. 그래서 자기 영혼을 귀중히 여기는 만큼 다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는 일도 귀중히 여기고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매일같이 기도하고 또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고 다른 영혼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이번에 집회 동안에 저를 만나는 분들이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이번 일주일 동안 수고 많이 했습니다 말씀 전하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저만 고생했습니까 같이 고생했지요. 안내하시느라 일주일 동안 계속 모시고 다니고 위해서 기도하고 수고하시고 여러 가지 희생해 주신 분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음식을 준비해 주고 오시는 분들 대접하기 위해서 수고하신 어머니들 또 주차안내 하느라 수고한 분들 뒤에서 여러 가지로 궂은 일들을 위해서 수고하신 분들 일주일 동안 바쁜데 계속 참석해서 찬양을 부른 대원들 그 외 모든 분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또 전도인들은 상담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고 그 모든 분들의 기도와 합심과 수고와 희생을 통해서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또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합심하고 수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이 없다면 또 다른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함께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어떤 희생이 지불될지라도 온 몸과 재산드려 이 복음 전하세 이런 노래처럼 온 몸과 재산뿐 아니라 목숨까지 바쳐서 바울사도는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주님의 제자들 일꾼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목잘려 죽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화형을 당하고 돌에 맞아죽고 많은 사람들이 죽기까지 순교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당한 대가로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됩니다 우리의 목숨까지 필요하다면 복음을 전하는데 바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까지 희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공산치하에서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전도하다가 잡히면 감옥에 들어갑니다 우리 형제들 중에도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희생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복음을 전해서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는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을 지불할지라도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희생이 하나님이 보실 때 결코 헛되지 않고 귀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도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구원받고 함께 은혜에 참여하신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함께 얻은 모든 분들 주님 앞에 함께 감사드리면서 기쁨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한 형제 자매들 육신의 혈통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보다도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하나되고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진 그 하나님의 자녀들 영적으로 형제 자매가 된 것이 훨씬 더 귀중합니다. 육신의 형제 자매는 길어도 몇십 년 이 세상 사는 동안에 끝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혈육 찾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형제 자매는 천국 가서도 영원히 같이 삽니다 천국 가서도 영원히 같이 살 사람은 이 땅에서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전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구원받아서 감사합니다. 천국가서 만납시다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돕고 다른 영혼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수고해준 동시에 구원받은 사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붙들어주어야 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갓난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갓난아이는 젖을 먹고 자라기 위해서는 온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자랄 수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때도 먼저 구원받은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구원받은 이후에 신앙이 성장하고 올바로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받은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구원받은 사람을 통해서 다른 영혼이 구원받게 하는 동시에 먼저 구원받은 사람을 통해서 나중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돕도록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다른 영혼들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잘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될 가장 귀중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중에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영혼이 잃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교제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실족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만일 천국가서 아무개 형제 자매 안 왔느냐고 아이고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못 왔구만 구원 아니었던 모양이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한 사람도 그런 낙오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확실히 구원을 받고 말씀대로 받았으면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구원은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고 실제입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소망이 그 마음 속에 이루어졌다면 마음과 생활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고 실족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 붙잡아주고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 이상 귀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 친척들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한번 더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아서 구원에 대해서는 계속 말씀을 드려야 됩니다 성경에 구원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고 같은 말씀을 또 듣고 또 듣고 평생 들어도 기쁘고 감사하고 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자세히 배우고 구원받은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은 막연히 교회당 왔다갔다 하는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이제는 생명을 받았으면 생명의 활동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계획과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읽을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 중에 한 중요한 사건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도 배운 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최초의 사람 아담 하와를 두셨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받은 이후에 에덴동산 밖에서 사람이 많이 번성하고 또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의 후손들이 또 타락해서 이번에는 바로 에덴동산 그 자리에 살고 있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 없이 이 땅에 도시를 만들고 바벨탑을 쌓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계획했던 모습이 창세기 1장에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인간이 하나님이 없이 오로지 자기들의 힘으로 그리고 땅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을 위대한 세상으로 만들어보려고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그 바벨탑을 하나님이 헐어버린 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이 인간의 세력이 하나님을 도전하는 모든 세력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8장 2절에 보면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마지막 인간이 쌓아놓은 모든 세력들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역사가 또 시작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 아담 안에서 실패한 것을 아브라함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로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을 말씀합니다.
그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 우리가 아는 대로 특별한 한 민족으로 있습니다 세계 중앙에 거하는 민족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역사를 가진 민족 그러나 2천 년 만에 독립해서 그 땅에 돌아가서 강대한 민족이 된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무엇을 가리키느냐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 2천년 이스라엘 역사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천국에 들어갈 백성들 신령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역사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최초의 하나님의 목적을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재차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역사를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보이시는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하나님이 영적인 사실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는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사건들을 눈에 보이는 역사적인 사실을 꾸며서 그 역사를 통해서 신령한 사실을 설명해 주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 안에서 택함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목적은 가나안에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 이스라엘 민족은 이 땅에서 육신적으로 택한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민족에게 약속하신 땅은 팔레스타인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가리키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천국 그러니까 가나안땅은 영원한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요단강 건너가서 낮불보다 더 밝은 천국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이 세상 건너편 천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약속 그 가나안의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애굽에 내려가서 400년 동안 종노릇했습니다. 흉년을 피해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애굽사람들의 종이 400년간 되었습니다. 바로 왕 세력 밑에서 종노릇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목적을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에 육신적인 것 때문에 타락해서 아담 때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것은 세상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될 사람들이 바로왕을 섬기듯이 이제 하나님을 섬길 사람이 마귀를 섬기는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을 가리키고 애굽의 왕 바로는 이 세상 임금 마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왕 되심을 원치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허락하지 않고 반대로 사탄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바로왕의 권세 밑에서 종노릇 한 것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전에 먼저 죄 가운데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 조상들이 흉년을 피해서 애굽에 내려갔고 거기서 사는 동안에 그 자신들은 나면서부터 애굽에서 바로왕의 세력 밑에서 종노릇하는 그 안에서 태어나서 종노릇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아담 안에서 타락된 속에서 저주받은 땅에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잃어진 상태에서 그 운명 속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나면서부터 죄 가운데서 사탄의 권세 아래서 죄악에 종노릇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없고 평안도 없고 안식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오로지 눈만 뜨면 애굽사람의 무서운 채찍 밑에서 왕들의 무덤을 쌓고 애굽왕을 위해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쌓고 비참한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거기는 하나님을 섬길 기회도 없고 거기는 안식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나면서부터 죄 가운데 태어나서 마귀의 권세 아래서 죄의 종노릇한 것입니다. 거기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없고 진정한 안식도 소망도 없습니다 오로지 육체의 종노릇 보이지 않는 사탄의 권세 아래서 죄의 종노릇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보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애굽에서 끌어내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 모형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보면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런 말씀이 있는데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양자로 자랐습니다 그는 잘 하면 애굽 왕이 될 수도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의 아들이라 칭하는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도리어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떠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자처한 모형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입니다 모세는 건졌다는 뜻이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니라 우리가 예수님 하면 구원님 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죽음의 권세에서 멸망받을 운명에서 건져내서 하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내려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애굽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백성이니까 이 민족을 놓아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니까 여호와는 모른다 못 보낸다 그랬습니다 그런 여호와 하나님 맛 좀 보라고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을 내릴 때까지 바로 왕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더 마음이 강팍해졌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장자 죽는 재앙입니다 왕의 아들부터 시작해서 애굽에서 처음 난 것은 심지어 짐승의 새끼까지 다 죽여버렸습니다. 애굽에서 전무후무한 호곡소리가 있을 것이다 왜? 집집마다 장자가 죽었기 때문에 통곡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장자나 짐승의 새끼까지 하나도 죽지 않고 하나님이 보호하셨다 그래서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이 구별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강아지 한 마리도 죽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이란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는 다 죽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바로 왕은 결국 항복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3500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제가 이집트 카이로에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들은 모세라는 사람을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에서 해방된 것을 아느냐고 그러니까 사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끌어내서 하나님이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되기 전날 밤 애굽의 장자가 죽는 그 재앙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왜 하나님이 장자를 다 죽였느냐 장자라는 말은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켜서 이스라엘 백성은 나의 장자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4장 22∼23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은 내 아들 장자다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라 해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장자를 죽이리라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스라엘 민족을 통틀어서 하나님의 장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난 아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하나님의 장자라는 뜻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민족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장자는 아버지 기업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잖아요 이스라엘이 내 장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택한 민족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이스라엘 민족만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자입니까 아닙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닮은 자식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은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그런데 장자의 축복을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담은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나님이 계획하셨는데 영생하는 생명과는 버리고 먹으면 죽는 선악과를 택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포기한 것입니다 생명 대신에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형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에 자기 선생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이 영혼구원 받는 축복 대신에 예수님이 오시면 국가적인 문제 민족적인 문제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고대한 나머지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육신적인 것도 다 빼앗기고 전 세계에 흩어져서 그토록 비참하게 저주를 받고 영혼까지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육신적인 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신령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 영원한 생명 천국에 들어가는 소망 영원한 구원과 축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애굽의 장자라는 것은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사는 사람 세상에다 자기 소망을 걸어놓고 이 세상에서 자기 기업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려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신 땅에서 인간이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겠어요 이 땅은 저주받은 땅이고 이 땅에는 진정한 소망도 행복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저주하신 땅을 고쳐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소망을 억지로 걸어놓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장자라는 것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모든 사람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땅에서 자기 기업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 시편 17편 14절에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축복을 너무 많이 받아서 죽어도 한이 없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것도 사장이 그런 말을 합니다. 무슨 축복을 받았는데요 하니까 사업이 잘 되어 돈도 많이 벌었고 싸구려 땅을 사 두었는데 지금은 금싸라기 땅이 되어서 서로 팔라고 했는데도 안 팔았는데 더 올랐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나이가 많아서 늙어서 오래 못 사실 것 같은데 그래서 물어봤지요 사장님 구원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다 무슨 축복을 그렇게 많이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오늘 밤이라도 죽으면 지옥갈 양반이 축복 좋아하시네 정신 차리시오 그저께 신문 보셨지요 미국에 엄청난 부자 딸 양육비가 한달에 4억이 들어간답니다. 조그만 몇 살짜리 딸을 키우는데 우리 돈으로 4억이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은 돈을 돈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4억을 어떻게 씁니까 돈을 어디다 쓸 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무슨 복입니까 그 사장님이 깜짝 놀라서 내 영혼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 안 해 보았는데 이 사람은 교회당 문 앞에 가면 천당가는 줄 아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 안 해본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서 참 다행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 그것도 애귭의 장자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도덕적으로는 살고 세상 일에 성실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훌륭할지라도 그 사람이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않고 이 땅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당에 소망을 두고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보실 때 애굽의 장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의 장자를 다 죽였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세상에 소망을 걸어놓고 사는 사람들을 다 심판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착하든 악하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벌써 이 육신 땅에 소망을 두고 거기서 자기 기회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근본적으로 심판받을 조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8∼39절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저보고 성경 기록하라고 하면 이렇게 기록 안 할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속여먹고 뺏어먹고 잡아먹고 죽이고 도둑질하고 온갖 나쁜 짓 하다가 물로 멸망했다 그래야지 정확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죄는 이야기 안 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심고 집짓고 사고 팔고 그게 뭐가 죄입니까 누가 그것 안 합니까? 다 살아가는 과정 중에 다 하는 것인데 먹고 마시고 집짓고 살기 때문에 멸망시켰다는 말입니까?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그것만을 위해서 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을 찾지 않은 사람들 도덕적인 모든 죄도 악한 것도 죄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세상에 소망을 걸어놓고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짐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짐승은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끝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이 세상에서 상대편을 잡아먹더라도 우선 살고 봐야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났습니다. 하나님처럼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천해져서 짐승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육신만을 위해서 살면 그만이라고 하면 짐승과 다를 것이 뭐가 있습니까 스스로 천해진 것입니다.
임금 아들이 왕궁을 떠나서 스스로 깡통차고 거지행세 한다면 세상에 그런 잘못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장에 보면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이 땅에다 농토를 만들어두고 빈틈이 없도록 집 짓고 오래오래 거하려는 자들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오로지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어보려고 거기에 소망을 걸어놓고 사는 사람들 화 있을진저 가옥이 크고 화려할지라도 거기에 거할 자가 없을 것이다 박살을 내버릴 것이다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육신은 잘 먹고 잘 살지만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전연 생각이 없는 사람들 그것이 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죄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큰죄 안 지었어요 도덕적으로는 큰죄 안 지었어도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혼이 있고 영원한 천국에 영광스러운 기업을 주시려고 하는데 땅엣것만 구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배척하고 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애굽의 장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는 반드시 심판합니다.
이 땅에 소망을 걸어놓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보면 압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에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는 동안에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배척하는 사람들 이땅에 썩어지고 없어질 것만 구하는 사람들 거기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애굽의 장자를 죽였다고 하는 것은 이땅에 소망을 걸어놓고 사는 모든 사람들 심판할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55장에 1∼3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진정한 행복과 소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서 수고하느냐 그것이 뭐냐 하면 아무리 세상의 온갖 것을 채워도 육체의 배는 채울지 모르지만 영혼의 배는 채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은 만족치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나와 들으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내가 양식을 너희에게 주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영생하는 양식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애굽의 장자 이 땅에 소망을 걸어놓고 사는 사람들 썩어지고 없어질 것을 구하고 이 세상에 헛된 것을 추구하다가 자기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다 애굽의 장자입니다. 애굽의 장자는 선하냐 악하냐 관계없이 다 죽여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의 장자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기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를 다 죽이는 그날밤에 이스라엘 장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10절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면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그날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어린양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어린양 한 마리가 너무 많으면 이웃과 함께 계산하라 나누어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린양은 흠없고 1년 된 수컷으로 하되 해질 때 양을 잡습니다 피를 가지고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집안에서는 양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 쓴 나물도 먹으라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 이스라엘 집에서는 전부 먼저 양이 먼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날짜 계산은 해질 때부터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하루가 시작되기 하루 전에 그밤에 애굽의 장자가 죽는데 장자가 죽기 전에 어린양이나 염소가 먼저 죽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피를 바른 집에서 아무도 나가지 말라 집밖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피를 바른 집안에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12장 12∼13절에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집집마다 장자가 죽는 재앙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피가 너희 거하는 곳에서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이 집에서도 장자가 죽고 옆집에서도 죽었는데 이 집에는 피가 발렸습니다 장자를 죽인 재앙을 가진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이 집에는 장자 대신에 먼저 양이 죽었고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이것을 가리켜서 pass over라고 하는데 그날을 유월절이라고 해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지금은 피를 대문에다 바르지 않지만 지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해방기념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저주와 멸망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이 온 세상 죄 대신에 속죄제물로 한 마리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 그리고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다 이스라엘 장자를 위해서 어린양이 대신 죽듯이 지옥갈 죄인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대신 죽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완전한 의인으로 불의한 죄인을 대신해 죽으셨다 왜? 지옥갈 죄인을 구원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은 양새끼 한 마리를 잡아서 하나님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심판과 멸망을 받아야 될 죄인들입니다 이 죄사함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사함 받는 방법이 뭐냐 양이 대신 죽었습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렸습니다 그 피를 보시고 하나님이 아벨을 받아 주었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죄사함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이 대신 죽어서 그 피가 흘려지는 것입니다 그 피가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는 예수님이 한 마리 어린양처럼 죽으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밖에 죄를 사할 길이 없습니다 그 피를 보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집은 징그럽게 피 바르지 말고 꽃으로 꾸밉시다 하고 대문을 온갖 꽃으로 단장했다고 합시다 어떤 집은 보석으로 주렁주렁달자 값진 보석으로 장식했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그 집을 넘어갔겠어요? 내가 꽃을 볼 때 넘어가리라 보석을 볼 때 넘어가리라 했습니까 피를 볼 때 넘어가리라 내 착한 마음을 보시고 내 의로운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께 열심히 한 공로를 보시고 하나님이 넘어가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피밖에 없습니다 그 피는 하나님이 보시려고 바른 것입니다.
그 집안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대문에 발린 피를 보고 오직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보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나무꾼이 저녁 늦게 나무를 해가지고 오는데 마적단들이 떼를 지어서 마을을 습격하는데 닥치는 대로 죽이고 약탈하거든요 숨어서 가만 보니까 죽이고 뺏어가고 하는데 약탈한 집은 소를 죽여서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이 집은 약탈 끝났음 하고 피를 바르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무꾼이 저쪽 너머에 자기 동네가 있는데 죽을 힘을 다 하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 송아지를 잡아서 피를 가지고 동네마다 다 칠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마적단들이 동네 가서 보고 여기는 다 털어갔네 언제 털어갔나 하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우리 동네는 어떻게 지나갔나 이상한 것은 대문에 집집마다 피가 발려 있거든요 그때 나무꾼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지난밤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아 그런 일이 있었냐고 자기들이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 기발한 생각 그 사람의 민활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 동네 사람이 다 죽을 뻔 했는데 그 나무꾼 한 사람의 일로 인해서 동네 사람이 다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었고 피가 발렸고 하나님도 피를 보시고 넘어갔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앞에는 심판의 잔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임금이 사약을 내립니다 먹고 죽으라고 그러면 죄인은 임금을 향해서 절을 하고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하고 죽잖아요 사약을 놓고 임금을 향해 절하고 마시려고 하는데 그 아들이 쫓아와서 먹고 죽어버렸습니다. 한 방울도 없이 마셔버렸습니다 임금이 그 말을 들었습니다 임금님 그 죄인을 대신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마시고 죽었답니다 임금이 땅을 치면서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느냐 그 죄인을 용서해라 이제는 끝났다 예수님 앞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담긴 잔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마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한 수치와 고통과 죽음을 당해야 됩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진 분입니다 채찍에 맞아야 되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되고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이 잔을 마시지 않고 지나가면 누가 마셔야 됩니까 우리가 마시고 지옥으로 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이 대신 마시고 우리가 받아야 될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예수님이 죽음으로 우리에게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시면 우리에게서 지나갑니다. 예수님이 그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정확하게 1월 14일 유월절에 정확히 죽으셨습니다. 해질 때 양을 잡으라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하늘이 캄캄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부터 역사의 마지막이 시작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성경에 보면 말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는 기간이 2천년. 그날밤부터 이튿날 날이 샐 때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부터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기간이 장자를 죽이는 죄악의 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명의 보호를 받는 구원의 밤이었습니다 날이 샐 때까지 한 사람도 집밖에 나가지 말라 집밖에는 죽음이 있고 피를 발린 집안에는 하나님의 생명과 보호가 있습니다. 문에 발랐다는 것은 나는 양의 문이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피가 발린 문이기 때문에 그문을 들어가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님의 피 피가 발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에다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면 하나님은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예수님의 피를 보십니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내가 믿는 예수님의 피를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가는 것 이미 넘어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해서 양이 죽었고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하나님은 그 피를 보시고 넘어갔습니다 피는 그 집에 내리는 재앙을 막아주었고 재앙에서부터 그들을 완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피를 볼 때 넘어가리라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집안 사람들에게 확신과 평안을 주었습니다. 피는 집안에서는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려고 바른 것입니다 하나님도 피를 보셨습니다 피를 볼 때 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었고 그 보배로운 피를 흘렸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단에 피를 뿌려 너희 죄를 속해야 했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 피를 보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는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죄를 사했다는 약속을 믿습니다. 그 피가 우리를 영원히 사했다는 약속을 믿습니다. 다시는 죄를 기억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옆집에 장자 죽는 재앙이 내리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죽음의 통곡소리가 애굽 온 땅에 진동을 합니다 그러나 피를 발린 집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양고기를 불에 구워먹고 즐거워합니다 아니 오늘 밤 장자 죽는 재앙이 내리는 밤인데 무섭지 않습니까 밖에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들리지요 그러면 무섭지 않습니까 무섭지 않습니다 혹시 죽을 줄 압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대문에 피가 발렸거든요 그 피가 발렸어도 혹 죽을 줄 압니까 하나님이 피를 볼 때에 넘어간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 장자도 안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피와 말씀을 믿습니다.
그 피가 맘 속에 큰 증거 됩니다
그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흘렸는데도 우리 죄가 안 없어지느냐 말입니다 그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했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습니다. 죄를 기억치 않는다는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심판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한 후에 노아와 그 가족들 생명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무지개를 주셨는데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너희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리라 물로는 다시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9장 짧은 몇 절 안에 언약이라는 말씀이 7번 나옵니다.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이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7 색깔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우신 언약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언약을 세웠습니까 우리가 무지개가 나타나면 그 옛날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한 것을 기억하고 물로는 다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불로 심판한다는 말씀을 또 하나 기억해야 됩니다.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뭐냐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노아 홍수때는 세상 사람 다 죽였지만 예수님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은 율법을 범한 그 죄 하나님의 공의로서는 다시 심판하지 않겠다 그런데 왜 불로 심판하느냐 베드로후서 3장에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불로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척하기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하기 때문에 불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9∼10절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노아의 홍수에 비견할만한 사건이 뭐가 있습니까 물로 세상을 다 심판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한 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을 심판했습니다 그것이 홍수와 비교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무지개로 약속한 것과 같이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운 언약입니다 언약을 예수님의 피로 보증했습니다. 언약의 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며 마시라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의 피로서 하나님이 약속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다 예수님의 피로 도장을 쳤습니다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사이에 화평케 하는 언약을 세웠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22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님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원수되었던 것은 십자가로 소멸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리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그 화평케 하는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산들은 떠나고 작은 산들을 옮길지라도 세상이 박살날지라도 그말입니다. 큰 산은 떠나고 작은 산은 옮기되 내 주의 언약은 영원히 옮기지 않는다 내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실 때 산들이 떠난다고 했습니다 어떤 환란과 세상의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운 이 화평케 한 언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언약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노아홍수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무지개는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갔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대신 내주신 것은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피를 볼 때 넘어가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넘어갔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오직 그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영원히 사했고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가 혹 잘못해도 구원받은 후에 잘못하면 구원은 안 없어집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잘 안됩니다 그것까지 씻어주시는 것도 예수님의 피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지으면 즉시 자백하고 돌이켜야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피롤 깨끗케 하심을 믿어야 됩니다. 마귀는 뭐라 하는지 아십니까 혹 잘못하면 야 봐라 또 죄 짓잖냐 너 같은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아 마귀가 우리 구원은 못 뺏어가지만 하나님 앞에 아주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듭니다 혹 실수하고 잘못하면 너 같은 것 몹쓸 인간이야 그래서 스스로 자포자기해서 주저앉도록 그래 나는 몹쓸 인간이야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거야 스스로 자기 자책에 빠져서 자기 죄 큰 줄만 알고 예수님의 공로가 큰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진리를 깨끗케 하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 죄까지 주님께서 피로서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지으면 그대로 실망하고 낙망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면 주님의 피가 깨끗케 합니다. 죄 짓기 전 상태로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주님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를 의지하면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이켜서 새롭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 피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 43장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 보시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죄를 사해 주십니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신다고 했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 죄를 도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둘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다 지옥가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심어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데려가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마귀의 올무에 걸려서 전부 지옥으로 떨어져버리면 하나님은 천국에서 거룩하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보좌가 너무 큰데 하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아 있는데 백성이 몇 사람 앉아 있다면 수치입니다. 백성이 적은 것은 왕의 수치요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니라 우리가 많이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다 지옥가면 사탄에게 하나님이 완전히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 보시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얼마나 완전한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물건을 위해서 삽니까 제가 이 시계를 10여 년 전에 시카고 수퍼마켓에서 샀습니다 세이코인데 살 때 시계야 내가 반 낼게 네가 반 내라 그럽니까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돈은 내가 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사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완전히 지급해 주는 것입니다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塗抹은 싹 지워서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塗抹은 영어로 painting 예수님의 피로써 싹 지워버렸습니다 보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사야 44장 22절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빽빽한 구름처럼 죄가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라진 것처럼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안개가 끼었다가 사라진 것 보셨지요 네 죄를 도말하였으니 싹 지워서 없애버렸다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했다 다 도말했으니 죄를 사해 놓았으니 돌아오라 믿는 것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 사해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당까지는 가도 하나님께 안 돌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를 사해 주십시오 기도하면서 죄를 사해 주신 것은 안 믿습니다 자기 죄 큰 줄만 알고 예수님 공로 큰 줄을 모릅니다. 그게 완전히 불신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 돈 5천만원을 훔쳐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3년이 지나도 안 오면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들이 지은 죄는 봄눈 녹듯이 다 없어졌습니다. 병이 들지 않았는지 밥은 먹었는지 걱정합니다 아버지가 네 죄를 다 용서했으니 돌아오라 신문에 광고난 것과 같이. 돌아가면 아버지가 받아주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성경에 비록 네 부모는 너를 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한 영혼도 지옥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 용서해 놓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에 두 아들이 있는데 작은 아들이 재산을 미리 달라고 조릅니다 신문에 보니까 재산 때문에 아버지 죽였다고 나오거든요 아들 눈빛을 보니까 심상치 않습니다. 가져가라고 돈 보따리 주었습니다. 노름하고 나쁜 친구 만나고 돈 다 까먹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탕자가 먹을 것이 없으니까 어느 돼지 치는 집에 가서 구정물 속에 손을 넣어서 건더기를 건져먹고 얼굴에 돼지똥이 묻고 돼지처럼 되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집은 부자이고 머슴도 잘 사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는구나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아버지께로 가야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버지는 아들이 집 나간 이후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이 돌아오기만 하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들 돌아오기만 하고 기다립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동구 밖에 보니까 비쩍 마른 거지가 오는데 걸음걸이가 자기하고 비슷한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21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24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힌다고 하는 것은 의의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는 것은 너는 틀림없이 내 아들이다 발에 신을 신기는 것은 다시는 떠나지 말라는 말입니다 돌아온 아들이 다시 아버지를 떠났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전보다 더 열심히 아버지를 섬겼을 것입니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 잡으라는 말은 죄많은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기뻐하기 위해서는 죄없는 송아지가 대신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같이 기뻐하기 위해서는 죄없는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탕자가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사야일보에다 광고를 냈습니다 요한신문 베드로일보 이 성경이 전부 하나님의 신문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온 세상 말로 번역해서 네 죄를 다 도말했으니 돌아오라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이 그대로 안아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자마자 하나님은 제일 좋은 옷 의의 옷을 입혀줍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 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그것이 구원입니다. 이 탕자는 별로 기뻐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죄송하고 황송했을 것입니다 기뻐하신 것은 아버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사했느니라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왜 안 기쁜가 그럽니다. 믿고 기뻐하면 구원하리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점점 더 기쁨이 날로 새로웠겠지요 우리가 구원받을 때는 내가 기쁘냐 안 기쁘냐를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기억지 않는다는 그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내 아들이 죽었어도 네 죄를 안 사해준다 하면 안 사해지는 것입니다 사했다고 하면 사해진 것입니다. 영원히 기억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아들이 신문을 보다가 네 죄를 아버지가 다 용서했으니 안심하고 돌아오라 그것을 보고는 나를 때려 죽이려고 돌아오라고 하지 갈까봐 안 가 그리고 돌아가도 성공해서 자가용 좋은 것 타고 아버지 선물사고 내가 거지로 들어갈 줄 알고 안 가 그리고 거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 안 가 그리고 안 가면 이미 지은 죄가 큽니까 안 돌아가는 죄가 큽니까 안 돌아가는 죄가 더 큽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하는 죄 배신하는 죄 영영 버린 자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만 사했습니까 밖에 안 믿는 사람 죄도 사했습니까 다 사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온 세상 죄를 다 사했습니다 밖에 개망나니 저질인간들 죄도 다 사했습니다 저 사람들도 자기 죄 때문에 지옥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 천당가겠네요 그런데 못 갑니다 자기들이 지은 죄말고 지옥가는 죄가 새로 생겼습니다. 안 믿는 죄 안 돌아가는 죄 그 죄는 용서 못 받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를 사했는데 그 피를 안 믿는 죄를 무엇으로 사하겠습니까? 그 피를 믿지 않는 죄는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안 돌아가는 죄 그것은 영영 멸망받을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우리는 심판 안 받아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심판 받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은 주님이 다 받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사해주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사형집행을 안 되었지만 사형선고 받은 것처럼 벌써 지옥가기로 전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믿지 않는 죄 때문에 지옥가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돼요 믿지 않는 죄만 회개하면 됩니다 어떻게? 믿으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간첩도 자수하면 내 형제 내 동포 북한에서는 교육받기를 남한에 가서 간첩활동하다가 자수하면 너 죽는다 자수하면 내 형제 내 동포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자수하면 수지맞습니다. 그 사람 신변도 보호해 주고 생활보장도 해 주고 수지맞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하나님께 자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 지옥갈 멸망받을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신다고 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도와주시고 수지맞습니다 안 믿고 끝까지 있으면 그냥 지옥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지옥가는 열차에서 천국가는 열차로 바꿔 탔느니라 사망 집안에서 태어나서 생명집안으로 시집 갔느니라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멸망 받지 않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그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땅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시려고 그 나라에 데려가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가 언제 죽어도 하나님 앞에 갑니다. 주님 오실 때 그 나라에 데려가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 드리고 다음 주일에는 구원받은 이후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구별하시는 줄 알리라
출 11: 4-8
서론
바로왕은 아홉 가지 재앙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습니
다. 그러자 본문에서 모세는 이제 열 번째 재앙을 경고한 후에 심히 노하여 바로왕 앞
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성질한번 내지 못하더니 열 번째 재앙을 선포할때쯤 되니
까 모세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왕 앞에 노하며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
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밤중에 애굽에 들어가셔서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해서 여종
의 장자 뿐 아니라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모두 죽일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왕
위 보좌에 앉아 있든지 맷돌 옆에서 곡식을 가는 여종이든지 신분의 고하, 성별의 차
이를 불문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애굽의 장자와 첫 소생을 죽일 것이라” 이것이 열 번
째 재앙입니다. 이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 전역에는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을 것이
라고 했습니다.
본문 7절에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
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
라” 개가 혀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개가 혀를 움직이면 무슨 소리가
나겠습니까? 틀림없이 개소리가 날 것입니다. 개가 그 혀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은 집에서 곡소리가 나고 짐승 죽어서 쓰러져 나가
면 개들이 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지역에는 개들도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고 편안히 누워 자는 고요와 평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
건을 통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시는 줄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시는 하나
님이신 것입니다. 애굽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비교해 보면 처음에는 애굽 사람이 압
도적으로 강했습니다. 애굽 사람의 손에는 채찍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사
람의 등을 때렸습니다. 애굽 사람의 뒤에는 강한 군대의 무력이 뒷받침을 해주고 있었
습니다.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하는 명령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등에 채
찍을 맞으며 명령에 순종해서 지푸라기를 주워서 만든 벽돌을 가지고 집을 만들면 애
굽 사람이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애굽은 강하고 이스라엘은 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그 둘 사이에 개입을 하시니 전세가 역전이 된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에게는
큰 곡성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평안과 고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은 애굽을 저주하셔도 이스라엘 백성은 축복하신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피부색으로 보면 백인종도 있고 황인종도 있고, 국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일본,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만, 성경을 볼 때에 인류는 정확하게 영적
으로 두 부류로 나뉩니다. 영적으로 보면 인류는 애굽 사람이냐 이스라엘 사람이냐의
두 가지로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모
형입니다. 그러나 애굽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백성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은 양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애굽백성은 염소의 모형인 것입니다.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요,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요, 양 아니면 염소요, 알곡 아니면 가라지인 것입니
다. 성경을 볼 때 인류는 두부류로 나누어지지 그 중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 속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택함에는 관심 없
는 사람에 속하십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두 부류로 구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
림하시고 심판하실 때에는 양과 염소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섞여
서 살고 같이 밥 먹고 살고 때론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만, 최
후 심판의 날에는 양과 염소는 정확하게 갈라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최후의 심
판날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 두 부류의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며 어떤 때에 그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인가? 또 왜 그런 차이가 중요한가? 하는 문제
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두 부류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날마다 잔치하며
잘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거지였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고 버
리는 음식을 주워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이었습니다.
그 둘이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부자는 음부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지옥에서 얼마나 뜨겁고 목마른지 손가락
에 물을 축여서 자신의 혀에 대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뭐라고 대답합
니까? 누가복음 16장 26절에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서 여기서 너
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가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도 건너올 수 없게 하셨느니
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구렁을 두셔서 음부와 그리고 천국 사이에
왕래할 수 없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천국백성과 지옥백성 사이에는 큰 구렁 같은 차이
가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이 차이는 영원 전부터의 차이입니다. 영원한 때부터 차이가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영원한 때,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택함을 받은 백
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택한 백성들을 미리 사랑하시고 미리 예정하
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지 못한 백성들은 뱀의 후손으로서, 가라지로서, 염소로
서 미리 사랑하심과 미리 예정하심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부
류는 시작점은 똑같다가 점차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영원 전부터 차이가 있
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군가 저에게 “아니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체험했
소?”라고 물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요
한 것은 영원은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원전의 일을 알 수가 있습니까? 내가 이것을 알고 증거하
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세계를 문서계시인 성경에 영감을 받은 계시로 우리에
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부류 사이에는 은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자이든 불택자이든 공통
으로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도 주시고 비도 주시고 물도 주시
고 밥도 주시고 옷도 주십니다. 여러분 악인이라고 밥을 안 먹습니까? 악인이라고 햇
볕 쬐는데 구름이 갑자기 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인과 악인에게 하나님은 공통적
인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보통은혜 혹은 일반은혜(Common grace)
라고 합니다. 고로 하나님의 택함 받지 못한 백성들도 하나님의 보통은혜를 받는 것입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보통은혜를 넘어선 특별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
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애통하게 하시고 용서받
고 싶은 마음을 주시고 지옥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
게 하시고 거듭나게 되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택자에게 주시는 특별은
혜요 이 은혜를 가리켜 구원받는 은혜(Saving grace)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택자들
은 보통 은혜만 받습니다. 그러나 택자들은 보통은혜와 더불어 구원받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택자들은 심령의 본질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
나님을 대적하고 싫어하던 본성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사랑하는 본성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차이는 인간 본질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두 부류는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심판할 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법적
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것
은 죄를 반드시 처벌하는 하나님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죄는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처
벌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가 있으십니까? 그 죄는 다 처벌받습니다. 하나도 남김없
이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르는 죄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
다. 하나님이 모르는 죄가 어디 있습니까? 죄인은 반드시 벌 받게 되어있습니다. 지
옥 가는데 필요한 죄는 호리같은 죄만 있어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백성으로
상징되는 이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때에 자신들이 지은 죄 값으로
말미암아 영영히 불타는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누가 변호해 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으로 상징되는 택자들은 하나님께서 공의
의 심판석에서 “너는 지옥으로 떨어질 찌어다”라고 할 때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변호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능한 변호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전에 그
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족제비가 빵을 훔쳐 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원숭이가 변호사가 되고 사자가 판사
가 되었습니다. 원숭이가 변호를 하는데 할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증인이 다섯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원숭이가 변호를 시작합니다. “재판관이시여 저 족제
비가 빵 훔쳐 먹은 것을 본 증인은 다섯 명이나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 족제비가
빵을 훔쳐 먹은 것을 못 본 증인은 수천 수만 명이 됩니다. 고로 어떤 판결을 내리시
겠습니까?” 그러자 멍청한 사자가 무죄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변호사는 말을
잘해야 합니다. 변호사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이 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예수를 믿은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는 그들 앞에 유능한 변
호사가 나타납니다. 그 이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 아
버지께 못 박힌 손의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
나님이시여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요, 불택자보다 더 많은 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저 사람의 죄 값을
내가 대신 갚았나이다. 고로 저 사람은 지옥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공
의로우신 하나님이 한번 죄를 가지고 두 번 처벌할 수 있습니까? 한번 사람이 죄를 지
으면 그 죄로 인해서 두 번 벌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가리켜서 대한
민국 형법에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형법에도 일사부재리가
있는데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한 번 죄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벌을 주시고 또 우
리에게 벌을 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택자들은 죄가 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한번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벌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옥불을 면제받
고 천상천국에 들어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
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벌 받으셨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고로 불택자
와 택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유능한 변호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변호사를 모시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천선 변호사 하늘
에서 뽑아주시는 변호사,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멸망하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로 이 두 부류 사이에는 섭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결국
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 살다보면 어떻게 슬픈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환란이 늘 없겠습니까? 고생은 없
겠습니까? 때로는 축복도 있고 기쁨이 있을 수 있고, 때론 기쁨 뒤에 슬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합력해서 다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는 다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 선을 이루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
다.
그러나 애굽백성으로 상징되는 불택자들의 생애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악
을 이루게 됩니다. 불택자들은 돈 좀 벌었다 하면 그 돈 때문에 타락하고 부패하고 악
인이 됩니다. 출세 좀 했다고 해서 교만하고 거들먹거리다가 망하게 되고 사람취급도
못 받게 됩니다. 좀 일이 잘 풀린다 해서 기분 좋다고 술을 너무 많이 먹다 보면 그것
이 나중에 병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불택자들에게는 슬픈 일이 생기면 그 슬픔은 점
점 심해지고 절망이 되고 좌절이 됩니다. 슬픔을 이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불택
자들은 지금 당장은 형통한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보면 그것은 악이 됩니다.
현세에는 그 악이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더라도 내세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서 “네가
평생에 한 것이 다 모여서 이런 악이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것입니다. 양
과 염소의 차이는 영원한 차이요, 은혜의 차이요, 본질의 차이요, 심판의 차이요, 섭
리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큰 구렁은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
분 말씀을 듣다가 ‘아! 나는 양인가 염소인가? 나는 택자인가 불택자인가?’ 하는 의
문이 생기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 두 부류의 인간이 차이를 드러내는 다섯 가지 경우
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2. 이 차이는 언제 드러나는가?
첫째는 말씀을 들을 때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
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진리이다. 내가 이 말씀에 다 순종은 못
하지만 순종하며 살아야겠다.’ 하면 택자의 마음이고 ‘이게 무슨 말이냐 나는 이 말
씀을 믿지 않고 듣지도 않겠다.’ 하면 불택자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죄를 지었을 때 차이가 납니다. 택자들은 죄를 지으면 죄를 슬퍼합니다.
“아이고 나는 어째 이모양인가? 내가 왜 이렇게 자꾸 죄에 빠지는가!”하며 죄짓는
자신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벗
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떻게 재미난
죄 없을까? 그들은 죄짓는 기회를 찾아다니고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오히
려 죄를 품고 즐거워하고 그 기회를 노립니다. 불택자들은 회개할 대상도 없거니와 회
개할 필요도 느끼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택자와 불택자는 차
이가 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강한 유혹이 올 때에도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봅시다. ‘마약을 한번만 밀수하면 내가 부자의 반열에 오를 것인
데.......’ 여러분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택자들은 ‘내가 신앙
의 양심을 포기하고 수입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양심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신앙의 양심을 택합니다. “부정직하게 부자가 되느니 차
라리 의로운 가난한 사람이 되겠다. 내가 내세에 멸망을 하느니 차라리 현세에 가난하
고 양심적인 쪽을 택하겠다. 라면을 먹어도 발 뻗고 먹겠다.” 하고 결정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그런 갈등이 없습니다. ‘이게 왠 떡이냐 내가 그 동안에
바라고 노리던 노마크 찬스가 오게 되었구나.’ 하며 양심보다는 이익을 우선 삼습니
다. 정의보다는 돈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밀수를 해가지고
돈 버는 것은 백억이고 이것을 걸려서 감옥을 가면 몇년이라 내가 몇년에 백억을 벌
수 있냐? 그러면 걸려서 감옥에 가더라도 하자!’ 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택자
들입니다. 강한 유혹이 올 때에 택자와 불택자는 선택이 다릅니다.
네 번째로는 인생이 실패했을 때에도 차이가 드러납니다. 누구 언제나 성공하는 사람
있습니까? 욥과 같은 위대한 사람도 얼마나 큰 실패를 봤습니까? 자식 열명이 죽고 재
산도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몸도 병들어 기왓장으로 긁어야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
니다. 그래도 욥은 어떻게 반응을 보였습니까?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
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로다” 하고 입술로 죄를 범치 아니했다
고 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에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여러분 모태에서 나오실 때 기저귀 차고 나오신 분 있으십니까? 다
적신으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돌아갈 때 어떤 분은 가슴에 은행통장을 품고 간다
는데 그거 가지고 가서 어디서 쓰시려고 가지고 가십니까? 올 때에도 적신이요 갈 때
도 적신인 것입니다. 그저 먹을 것 입을 것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의인들은 인생을 살다가 실패를 해도 하나님 원망치 않습니다. 도리어 은혜의 보좌 앞
에 나와서 “하나님 내가 살다가 이렇게 어렵게 되었으니 날 좀 도와주세요.”라고 기
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두 배로 축복하셔서 자식 열
을 더 주시고 재산은 두 배로 더 주십니다. 욥은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이었던 것입
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믿지도 않는 하나님부터 원망합니
다. 언제 믿었다고 원망합니까? 국가도 원망하고 대통령도 원망하고 아내도 원망합니
다. 또 자식들도 원망하고 친척도 원망하고 다 원망하다가 반항하다가 실패와 좌절을
겪고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여섯 번 넘어져도 일곱 번 넘어지려니와 악인
은 넘어져도 붙들어줄 자가 없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인생 실패시에 하나님의 택자
와 불택자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큰 차이는 죽을 때 납니다. 목사들은 임종의 현장을 많이 봅니다. 예수
를 믿고 돌아가시는 분과 믿지 않고 돌아가시는 분은 죽는 순간이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 믿고 돌아가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그 영혼을 받들어서 천
국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고통받을지라도 죽는 순간만큼은 대
단한 평화가 있고 그 얼굴에 심지어는 미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검은 사자가 와서 지옥으로 끌고가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고 버
팁니다. “안가!” “안가!” 라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 뜨거!”
“아! 뜨거” 이런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죽을 때 모습이 굉장히 다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여섯 살 된 에드워드라는 아이가 뇌종양으로 죽었습니다.
그 아이를 매일 안고 기도해줬는데 죽었습니다. 그 아이는 죽을 때 혼수상태로 한 열
흘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기 한 5분전에 깨어났습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보고
말합니다. "Daddy, I love you, Don't cry Daddy, Don't cry mommy, Jesus is
calling me, Granddaddy calling me!" 그 여섯 살짜리 아이가 “아빠 엄마 울지마, 예
수님이 날 불러, 할아버지도 날 부르고 있어 아빠 엄마 사랑해” 하고 죽은 것입니
다. 그 이후 그 부모가 교회에 아주 열심히 나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비
록 여섯 살에 죽었지만 죽는 순간이 평온하도록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를 축복하셔서
천사들이 그 영혼을 받들어 천국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자와 불신자, 택자와 불택자는 삶의 다양한 순간에 넘을 수 없는 차이가 큰 구
렁처럼 존재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차이를 이야
기해야 되고 이런 차이를 우리가 마음에 두고 살아야 되는 것인가? 그 실질적인 이유
가 무엇인가?
3. 왜 이런 차이를 드러내야 하는가? 두 부류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교회와 세상은 다른 것입니다. 달라도 많이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똑
같고, 교회는 세상보다 더 악하고, 교회가 세상인지 세상이 교회인지 알 수가 없고,
교회가 세상의 방법을 쓰게 되면 소망 없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저의 전공은 교회
역사입니다. 교회역사를 보게 되면 교회가 세상과 분리되고 교회와 세상이 구별될 때
에는 교회는 부흥되었습니다. 우리가 대 부흥을 목표로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가 대 부
흥을 이루려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다르다고 할지라
도 더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일세기 초대교회 때부터 313년 밀라노 칙령이
발표될 때까지는 세상과 달랐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로마의 열 황제가
그리스도인을 핍박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카타콤으로 들어가고, 사자에 물려죽는 핍
박을 당하고, 권리를 빼앗기는 등의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
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크리스천이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 이렇
게 불렀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하고 분리 되었던 때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큰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런
데 300년대에 콘스탄틴이라는 황제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기독교를 인정해
준 위대한 황제라고 추앙하지만 역사가의 눈으로 볼 때에는 콘스탄틴만큼 가짜신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십자가를 방패에 그리고 칼에 그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
권다툼을 할 때에 십자가를 이용했습니다. 십자가를 가지고 전쟁에 승리하리라는 목적
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그려 넣은 칼을 가지고 사람을 찔러 죽였습니다.
십자가를 그려 넣은 방패로 막았습니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 성공을 하고 로마황제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313년에 소위 ‘밀라노칙령’이라는 것을 발표해서 기독교
를 로마에서 인정받는 공인된 종교로 인정을 해 준 것입니다. 후에 381년에 테오도시
우스 2세라고 하는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을 해줍니다. 그래서 기독교
가 세상과 다른 종교에서 점점 세상과 합해진 국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국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나 다 교회소속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지 세상인
지 알 수 없는 잡탕밥, 비빔밥, 돌솥밥이 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로 말미
암아 교회는 중세 천년의 암흑기로 들어가게 되고, 참된 부흥은 사라지고, 교회의 진
리는 죽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너무나 세상적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교회가 너
무나 세상과 구별과 차이가 없어지지 않았는가? 우리가 지금 세상 사람과 뭐 다른 점
이 있겠느냐?’ 하는 문제에서 오늘날 우리의 혼란과 위기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
다. 교회는 세상과 영원전부터 차이가 나고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과의 차이를 더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과는 더 달라져야 합니
다. 지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더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지는 만큼 하나님은 교
회에 부흥의 영을 내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우리 하나님의 교회, 강남중앙침례교회는 세상과는 좀더 달라져야 되겠
다. 세상 방법으로 우리가 교회를 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세상방법 쓰지 말고 세상
의 복수, 원수 이런 것 쓰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을 써야겠다. 세상과는 다른 것을 보
여줘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불택자를 택자로 바꿀 능력은 없습니다. 택자를 불택자로 바꿀 수 있
는 그런 권리도 없습니다. 단지 제가 권할 수 있는 것은 마가복음 16장 16절의 말씀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
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영히 고통을 받
을 것이요 믿는 사람은 죄사함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 저
는 여러분이 불택자이면 택자로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권할 수 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침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번 부활절에 꼭 침례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침례교는 장로교나 감리교나 성공회와 비교할 때 다른 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국가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교단은 국가교회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침례교는 아닙니다. 우리의 이상은 자유교회(free church in a free state)입니다. 침
례교회는 국가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교회를 반대합니다. 왜
국가와 교회가 섞여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세상과 국가가 섞여서 하나가 되어야 하
는 것입니까? 침례교회는 국교를 멀리하고 부정하고, 국교는 가짜교회라 하고 하나님
의 백성 택한 백성들이 참되게 모여서 분리된 교회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것이 바로 분리주의(separatism)입니다. 세상으로 분리되고 국교로부터 분리되어야 한
다는 것이 침례교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가장 순수한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
다. 침례교회가 물 많다고 자랑하기 위해서 침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성경
의 원리이고,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행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복음이고, 그것이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것이고 우리는 세상과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
고린도후서 6장 17절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대 부흥을 체험하려면 달라져야 되
겠습니다. 우리교회가 더욱 세상과 분리되는 교회가 되고 성도 개개인이 세상과는 다
른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별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보다 좀더 세상과는 달라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