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의 관계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며, 두 사람의 개인적·정치적 관계는 일본 '전국 시대'와 '에도 시대'의 여러 사건과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원래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동맹국이었던 이세(三河) 지역의 영주였는데 1560년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서 초기 경력을 시작했으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오른팔로서 많은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합작하여 전투를 펼쳤다.
오다 노부나가 1582년 죽은 후, 히데요시는 신속하게 권력을 잡고 일본 통일에 나서면서 도쿠가와에도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줬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다하면서도 지방 영주로서 자신의 지역에서 여전히 힘을 쌓아가며 유력한 신하 중 한 명으로서, 그가 시행한 정책에 협력하며 사무라이 계층 내에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 秀次)는 힘이 약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한 기회를 잡게 되는데 특히, 히데요시의 유언을 무시하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여러 영주들 간의 권력 투쟁이 심해지면서 이에야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1600년에 발생한 세키가하라 전투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지지 세력과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결집하여 히데쓰구의 군대와 맞대결할 준비를 한다.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는 연합군을 결성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일본의 세력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고, 1603년에 에도 막부를 세우게 되는데 이는 도요토미 정권의 종료를 의미했다.
도쿠가와는 히데요시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도요토미 가문의 세력을 완전히 억압하여 에도 시대의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수립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계는 처음에는 동맹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쟁과 갈등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도쿠가와는 그의 후계자로서 잠재력을 키웠고, 히데요시 사후 권력 투쟁에서 결국 그는 승리하여 에도 막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일본 역사에서 권력 전이의 중요한 예시로 남아 있으며, 일본의 정치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