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반영억 신부
복음; 루카 21,1-4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 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 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부분은 전체보다 많을 수 없다」 오래전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고 말하면서도 비교하였습니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현 임지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은 안 하고 전 임지와 견주었습니다. 추수 감사미사를 봉헌하면서 본당 규모가 큰 것에 비하면, 감사예물과 곡물이 적게 봉헌되었다고 생각하며 서운해한 적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고,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빈곤한 과부를 칭찬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활비 전체를 예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부자들은 풍족한 데서 일부만을 바쳤습니다. 부자가 바친 예물은 가난한 이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금액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인생 자체가 담긴 것이라면 가장 많은 돈이 됩니다. 가장 적은 것이라도 보아주시고 그 가치를 알아주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먼 훗날 잘 되면 크게 돕겠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의 마음이 더 중합니다. 우리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때는, 건축 기금을 모으면서 나름대로 모금 액수를 정하고 아무개는 얼마, 아무개는 이 정도는 해 주겠지! 하며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힘이 들었습니다. 각자에게는 남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정성을 보고 마음을 보아야 하는데 봉헌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도 별수 없이 물질에 휘둘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더 큰 믿음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물질의 봉헌 이야기를 줄이자! 고 다짐을 했습니다. 억지로 한다면, 아무리 많은 액수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를 선전하고 과시하며 위신과 체면을 생각하는 헌금을 하느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크면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주님의 것이기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이 솟아날 것입니다. 속마음을 헤아리시는 주님을 만나시길 희망합니다. 물질보다 주님을 선택하는 지혜로 모든 것을 차지하시길 기도합니다. 양적으로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데 익숙한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무엇을 중심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부분은 부분입니다. 전체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모두는 부분보다 큽니다. 먼저 하느님께 바칠 것을 떼어놓고 그다음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우면 어떨지요? 물질뿐 아니라 시간이나 공간, 재능, 여행, 모두를 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큰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인색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청주교구 내덕동 주교좌성당 : 반영억 raphael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