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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역과 자유시장 그리고 민주주의
인류 역사적으로 보면, 무역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20 세기 전반까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식량이나 에너지를 거의 자급하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국제무역에 깊이 얽혀들게 된 것은 겨우 1,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세계 어디선가 일어난 사건이, 그 즉시 일상생활의 식품이나 일용품의 가격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른 바 ‘세계화’ 라는 현상은 최근 20 여년 이래의 현상이다.
따라서 무역은 원래 필수불가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역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철학적이고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무역은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 또한 아니다. 리카르도의 비교생산비설은 무역의 현실을 논한 것이지 무역이 옳다는 것을 고찰한 것은 아니다.
고대의 스파르타나 현대의 부탄과 같이 국제무역을 거부하고 자급을 원칙으로 하는 나라도 있다.
무역은 필수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다.
과거의 무역은 지역 간의 무역과 원격지 무역으로 나누어진다.
지역 간 무역이란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물자를 근린지역 간에 대량으로 정기적으로 교역하는 일이며,
원격지 무역이란, 훨씬 먼 곳의 이국적이고 진기한 물품을 왕후 귀족 등 특권층을 위해서 교역하는 것으로서 위험이 큰 만큼 성공하면 상인에게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무역이었다. 실크로드가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계경제의 특징은, 지역 간의 무역과 원격지 무역이라는 전통적인 구분이 완전히 무시되어, 예전에는 예외적이며 모험적인 사업이었던 원격지 무역의 논리가 우리들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대전환은 인류사회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유럽인들의 주도로 추진되어 온 현상인 것이다.
콜럼버스가 우연히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인도의 향신료와 일본의 황금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유럽인들에 의한 신세계 아메리카의 약탈과 식민지화였다.
아즈택과 잉카의 막대한 금은의 약탈은 유럽의 통화유통량을 비약적으로 증가 시켰다.
맑스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른 것의 실체가 바로 이 약탈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담배나 설탕 등 아메리카 산물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기는 한편,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은 종래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물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무한히 시장이 확대되었다.
시장의 거대한 수요를 생산하기 위해 카리브해 지역의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노예노동이 필요로 했다.
풍부한 자본, 무한히 확대된 시장, 싼 노동력이라는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한 조건이 이렇게 갖춰졌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무역의 약탈을 통해서 생겨났고, 그 뒤에 유럽의 강력한 국가들이 존재했었고, 유럽의 국가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무한한 자원과 싼 노동력을 약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역은 전통적 생활양식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런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가 오늘날 세계무역의 원리가 되었다.
이는 세계무역이 상호간의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무한한 확대에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는 자본의 유통과정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생산과정(플랜테이션 경영)까지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의 세계무역은 식민주의 폭력의 모태로 태어났고, 이에 종사하는 자의 막대한 이익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화나 흑인노예의 결과이다.
이는 곧 지역 간의 대등한 교역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대등한 교환을 위장한 항시적 약탈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가 곧 유럽의 자유 평등을 기반으로 한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와 같은 때였다.
따라서 유럽 근대 국가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자원수탈과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무역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중심이 되었고, 그것이 상대국의 생산까지 지배하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무역을 통한 식민지화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또 전통적인 무역에서의 서민들은 변함없이 지역적인 자급에 기초하여 생활 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근대국가가 이런 이유로 탄생이 되고, 신세계로 이주한 이주자들 역시 토지와 생산 수단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었다.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의 사회계약은 바로 새로운 이주자들이 약탈한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대가로 국가의 창설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세계의 약탈 무역을 기반으로 해서 유럽과 신대륙에 근대국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영국은 세계무역을 통하여 대상업제국을 만들었지만, 영국이 경험한 시행착오를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오늘날 세계무역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설계하고, 그것을 세계에 강제한 것이다.
미국이 1, 2 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 미국 중심의 세계적인 무역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였으며, 이는 제2차 대전 이후 IMF, 세계은행, GATT에 의해 보완되는 브레튼우즈체제로 실현되었다.
IMF나 세계은행의 역할은 외환시장의 안정과 후진국 원조가 아니라 미국식 경제성장의 논리에 세계를 편입시켜서 성장조건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런 결과로, 오로지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각 나라의 균형잡힌 국토개발과 경제 방식이 왜곡되어 버렸다.
그 결과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공업용 자원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능가하는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거의 자급자족하던 식량과 원유에 대해 세계적인 수입국이 되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식량과 원유의 가격 상승은,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미국에 의한 왜곡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들의 번영에 종말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신흥 독립국이다. 미국은 자국에서만 통용되는 경제성장 논리를 그들 나라에 강제해 왔다.
근대화를 위한 자본이나 기술이 없는 나라들은 IMF 융자나 세계은행의 원조에 의지하여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구미형 경제성장을 위한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나라들에서 그런 융자나 원조가 결실을 거두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극히 이례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한국이고, 일본의 경우는 식민지가 아니고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 올 징후가 뚜렷하다.)
그리하여 남쪽의 신흥 독립국의 세계는 부채에 늘 시달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식량위기는 미국 주도의 세계무역체제의 궁극적인 결과이다.
예를 들어 독립 당시에는 식량을 수출했던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은 지금은 전체적으로 식량의 30 프로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부채에 고통 받는 나라들에 대한 IMF와 세계은행의 은행관리이다. 80 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색채를 강화한 이 두 조직은 세계에 선진국형 공업을 모델로 한 농업을 강제하여 대규모 농지에 수출용 환금작물의 재배를 장려했다.
게다가 GATT 체제하의 농산물 무역자유화 때문에 정부의 원조를 받은 값싼 구미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 지역에서 가족농업에 종사하는 자작농민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IMF 와 세계은행의 경제전문가들은 농업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가족농업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식량위기는 그저 식량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엘리트들의 세계무역의 논리와 민중의 지역적 자급의 논리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1995 년 창설된 WTO(세계무역기구)의 도하라운드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대립으로 완전히 교착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WTO의 목표는 관세의 전세계적인 일괄인하였는데, 제네바에서 열린 153 개국 가맹국의 교섭은 완전히 결렬되어 재개될 전망조차 불투명하다.
결렬의 최대 원인은 정부원조를 받은 선진국의 과잉 농산물이 대량으로 유입되면 자국의 영세농민들에게 타격을 입힌다는 이유로 인도가 긴급수입제한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브라질도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역에서 북측의 선진국이 남측의 개발도상국에 제멋대로 규칙을 강요하는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났다.
IMF와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는 자유무역은 약육강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 주었고, 그것이 WTO를 좌절 시킨 원인이 되었다.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것이 1992 년 온두라스에 본부를 두고 창설된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이다.
비아캄페시나는 세계 각지의 자작농, 선주민, 농촌여성, 어민들로 된 백 개 이상의 조직이 연합한, 회원 수가 1억 5천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민간조직이며, 창설된 지 얼마 안되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종래의 식량안보 대신에 비아캄페시나가 주장하는 식량주권원칙을 헌법조항으로 삼는 나라도 생겼다.
식량주권이란 국제시장에 좌우되지 않고 인민이 자신의 먹을거리나 농업방식을 스스로 정의하는 권리다.
농산물을 단지 상품으로 유통시키는 무역자유화나 현지 자작농의 존속을 곤란하게 만드는 식량원조 등은 주권 침해에 해당된다.
나아가서 그것은 식량과 관련하여 국토나 식문화의 존재방식에까지 걸친, 자신의 독자적인 생활양식을 선택하고 지킬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활 양식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세계무역에 대한 근원적인 반대인 것이다.
비아캄페시나의 요구는 자급에 국한되지 않고 농민 이외의 지역주민들도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과 물자를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요체는 선거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활양식에 관련한 지역주민의 자치에 있다.
따라서 무역과 자급을 둘러싼 논의는 최종적으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2.권력의 실체와 민주주의
권력관계는 다른 형태의 관계들(경제적, 지적, 정치적 관계 등)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들 속에 내재되어 있다.
권력관계는 그러한 여러 관계들에서 생겨나는 분배, 불평등, 불균형의 직접적인 효과이며, 동시에 이 관계들의 내적인 조건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그것을 갖고 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와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느 한쪽에서 권력을 빼앗아 오거나, 또는 권력 행사의 수단인 국가기구를 장악하거나(선거) 파괴함으로써(혁명) 권력을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권력은 쉽게 제거되거나 회피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선거를 통한 중앙집권적 대의민주주의나 혁명을 통한 좌파 정부의 등장이 긍극적 민주주의가 아님을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절차적 또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는 것을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권력이 잘게 나누어짐으로써만 가능할 뿐이다. 형식적인 국가제도나 기구만으로 민주주의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또 다른 보수적인 생각일 뿐이다.
권력의 세분화 또는 자치화만이 근본적인 민주주의로 찾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제도는 긍적적인 것에는 틀림없으나 문제는 지역 자립경제의 미완성이 그것을 가로 막고 있다.
3.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같이 시작이 되었다. 유럽,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16세기 종획운동부터 영국 자본주의 시작으로 본다면, 영국은 500 년에 이르는 동안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볼 수도 있다.
18세기 산업혁명과 19세기 시민혁명 후 유럽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민주주의는 자유시장의 폭력에 의해, 19 세기 이후 유럽의 혼란과 사회주의와 전체주의 국가의 출현과
두 차례의 세계 전쟁으로 증명이 되었다. 두 번의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살상을 겪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경제 혼란의 와중에서도 자유시장을 신뢰할 수 있는가. 자유시장은, 토지 인간 화폐 까지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그에 대한 증거는 쉽게 예를 들어도, 토지는 부동산 투기로, 인간은 노동 문제로, 화폐는 금융위기 등으로 쉽게 증명이 된다.
한국의 자본주의 50 년은 그나마 미국에 의해 심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 역사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박정희 정권 산업화 시기 1970 년대, 젊은 여성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커피 한잔 값도 되지 않았다.
당시 미싱사 월급이 1만원, 시다는 5천원에서 9천원 사이였다. 쌀 한 가마가 1만6천원, 블라우스 한 장 3천원, 스커트는 4천원 정도였다. 그럼에도 해마다 한해 평균 50만명이 넘는 농민들이 농촌에서 잡초 뽑히듯이 뽑혀 도시로, 도시로 내팽개쳐졌다.
그들의 노동력으로 오늘 날 한국의 자본주의는 성장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어 놓은 자본주의에 의해 현재 쌍용차 노동자들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자유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곧 자유시장의 폭력성이 이 땅에 난무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 아니었다.
4. 대안 그리고 사회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할 대안 사회는 무엇인가.
아나키즘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공동체이고, 폴라니가 이야기 하는 것은 사회이다.
아나키즘의 공동체와 폴라니의 사회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 사회로서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자본주의 역사와 민주주의 역사가 겹치는 나라다.
아마,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절차적 자본주의의 해악에 대한 무감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만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폴라니가 이야기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교해 보자.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단위가 개인이다. 개인을 단위로 삼아 모든 설명이 이뤄진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단위가 계급이다.
그런데 이 두 사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개별 단위의 움직임을 경제적 동기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개인의 경제적 동기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요소는 비합리적 선택으로 취급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인간집단, 즉 계급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경제적 동기를 가장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다.
폴라니의 사상이 돋보이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폴라니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회다“
라고 말한다. 개인도, 계급도 아니다. 사회다.
예컨대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노동력 상품화 조치에 맞서서 각종 사회 입법을 추진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등 조치다. 흔히 이런 조치는 사회주의자들만의 힘으로 이룬 성과라고 여긴다.
마르크스도 그랬다. 법정 노동시간을 못 박은 조치에 대해
"사회주의 운동의 위대한 승리“
라고 예찬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노동시간 단축 등 사회입법 조치 가운데 상당수는 부르주아에 대해 반발하는 봉건 귀족 세력의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도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있다.
계급이 사회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계급을 결정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폴라니의 이러한 주장과 아나키스트들이 얘기하는 공동체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서는 두 주장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공동체의 자발적 질서야 말로 근원적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는 아나키즘과, 긍극적으로 공동체의 철저한 파괴로 결말이 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저항으로, 사회의 자기 보호 본능을 주장하는 폴라니의 주장과는, 많은 부분 일치 시킬 수 있는 지점이 있다.
5. 지역 자립경제를 기반으로 한 지방자치제가 대안이다
민주주의를 훼손시켰던 것은, 자유시장을 확대시키기 위한 자유무역과 중앙집권적 형식적 이고 절차적 민주주의였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진 이후 국내 또는 국가 간 갈등과 전쟁의 원인은 자유시장의 확대에 있다.(국제 민주주의의 실패) 그리고 그것이 근본적인 원인이 된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국내 민주주의의 실패)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과제는, 권력의 분권화와 자유시장 체제에서 벗어난 자립경제에 있다.
한국 중앙 정부는 바야흐로 전 세계 무역 시장의 중심에 서고 있다. 정부 제도와 기구 뿐 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조차도 그곳에 정체되어 있다.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진보적인 정체성을 요구하거나 계몽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먼 길을 지나쳐 있다.
한국의 중앙 정부 권력을 선거로 집권하기에도 요원하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민주주의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권력의 분권화와 자립경제 확립을 위해서는, 진보당은 서울에서 물러나야 한다.
당의 모든 힘을 엄선한 소수의 지역에 집중하여, 그곳에서 자립경제와 진보정치의 모범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모델로 다른 지역도 공략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중앙 정치의 경쟁력을 만든다.
그에 대한 작은 예는 일본 공산당에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지방의원 당선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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