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zul.im/0NmQhi
때는 92년경...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미래의 진로에 대해
너무나 많은 고민을 했던 시절의 일이였습니다
지금은 다 연락이 끊겨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자기 아버지 밑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친구가 있었습니다
소규모 업체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던 친구였는데
당시 이 친구와 저는
서로 관심사가 비슷해서
빠른 시간에 친해질 수 있었고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 덕분에
저의 미래에 대해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는 우울하고 불안할때마다
이 친구와 술을 한잔씩하며
인생 얘기로 위로를 삼곤 했는데
바로 그날 또한
이런 이유로 바다가 보이는
부산 송정에서 한 잔 걸치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날 이 친구는
출근을 해야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후덥덥한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초가을이였던
10월의 그날 야외에서 술을 마시다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에
아쉽지만 우린 다음을 약속하고
그만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당시 이 친구의 집은 부산 영도,
저희 집은 남부민동이였기에
항상 중앙동에서 헤어졌었는데
이날도 당연한듯 그렇게 헤어지기로 하고
일단 우리 둘은 택시한 대에 몸을 실었습니다
....
....
어디까지 왔을까요
대략 해운대역을 조금 지나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차가 서고 문이 열리더니
어느 할머니 한 분이
덥석 보조석으로 몸을 던지는 겁니다
동시에 절에서 맡을 수 있는 듯한 향내음이
내 코를 자극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이 분이 무속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복장 또한 검은색 한복을 입고 있는 터라
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구요
조금 화가 났습니다
우리한테 동의를 얻지도 않고
합승을 시킨 그 기사에게
한마디할까 생각도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 그냥 넘겼습니다
차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
...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차가 다시 서는 겁니다
택시가 선 그곳은
지금은 부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된
바로 벡스코가 있는 그 곳이였지만...
당시엔 부산 수영 공군기지 철수와 더불어
벡스코 부지만 있었던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였던 곳이였습니다
듬성 듬성 설치된
가로등 몇개만 불이 들어와있었지만
그 넓은 공간을 비추기엔
턱없이 부족했을테죠...
어두웠습니다
"할머니가 이곳에서 내리시려나?
설마 이런곳에..."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꿈쩍도 않고 있었습니다
"또 누굴 태우려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제 못참겠다 싶어 기사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밖에 사람의 기척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기사의 얼굴을 보았는데
기사의 시선을 향한 그 곳으로
저와 제 친구는 같이 시선을 돌렸습니다
.....
.....
그 넓은 인적 하나 없는 벌판 저 쪽에서
우리가 타고있는 택시로 걸어오는
흰색 옷을 입은 여자가 보였습니다
그때 친구도 짜증이 났는지
기사에게 한마디하길
"아저씨!참 눈도 좋습니다!"
하며 비꼬자
그제서야 우리를 보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더군요
그리고 사납금을 맞춰야해서 그런다며...
지금은 이해가 잘 안가시겠지만
장소도 외진데다
당시 분위기는
아직도 합승을 용인하던 시절이였으니까요
어쨌던 우리는 다시 시선을
그 여인에게로 향합니다
....
....
그런데...뭔가 이상합니다
저만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 여자의 걸음걸이가 좀..
가벼웠다고 해야하는 게 옳은 건지...
아님 두둥실 날고있다고 해야 옳은 건지...
그렇게 택시 부근까지 왔을때
차림새를 보니
흰색 원피스에 검은색 무늬와
허리에 가는 검은색 띠가 걸쳐진,
제가 볼땐 예뻐 보이는 옷이였고
얼굴은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머리가 비 때문에 젖어있다는 거 말곤
웬지 미인일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고있는
그 순간이였습니다
고막이 찢어질듯한 굉음에
저와 제 친구는 너무나 놀라 앞을보니
바로 직전에 합승했던
앞자리에 앉아계신
그 할머니의 고함소리였던 겁니다
기사도 많이 놀란 듯 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냥 시선을 앞으로만 고정한 채
계속 그 할머니의 고함소리는 이어집니다
"이년! 여기가 어디라고...이런 쌍스러운 년!"
"누굴 잡아먹으려고?! 이 망할년!"
"어서 꺼지지 못해??"
(솔직히 욕설은 이것보다 더 심했습니다만...
이 정도로만 표현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저는 어안이 벙벙했고
기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재수없게..."
라는 작은 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차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젊은 양반들!
오늘 나 때문에 목숨 건진 줄 알어!"
라고 하면서 얼굴을 우리 쪽으로 돌리는데
그 특유의 진한 화장에서
순간 내 머리에 스친건 바로
전설의 고향의 저승사자였고
더불어 그때 느꼈던 소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남천동에서 내리셨으며,
기사는 혼잣말로 욕을 하며
일진이 나쁘다는둥, 어쩌는둥
온갖 불만을 토로하고 있고
저는 웃으며 "이게 뭐야?" 라며
친구의 답을 들으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
친구는 뭣 때문인지
사시나무 떨 듯 떨고있는 겁니다
솔직히 저도 좀 무서웠지만
애써 잊으려 그 친구한테
장난으로
"내 새끼 무서웠쪄~~?"
라고 했더니
친구 : 너 못봤어? 그 여자?...
나 : 봤지! 근데 왜 그려?
그 뒤의 친구가 설명하는 상황에
전 몸이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고함소리에 넋이 나가있을 때
제 친구는 계속 그 여자를 보았답니다
그 여자가 우리가 타고있는 뒷자석 문 밖에 서더니
서서히 90도로 인사하듯이 허리를 숙이고는
1/3 정도 열려있는 창사이로
우리를 쳐다보는데...
젖어있는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그 여자의 눈빛이...
눈동자가 없는 눈...
그러니까 흰 눈알만 있는 눈이였고
군데군데 핏줄이 서 있었던 그 눈은
창문이 조금 열려있는 그 사이로
우리를 응시하며 웃고 있더랍니다
입은 입술 없이 그냥 맨 얼굴에
칼로 그어놓은듯한 입으로...
그 입으로 웃고있더랍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 턱에는
멍인지 아님 피가 굳어붙은건지
모를 흔적이 있었다고 하구요
그러다 갑자기 다시 허리를 펴고
빠른속도로 차의 뒷편으로 지나더니
제 친구가 앉아있던 반대편 창가로
다시와서 천천히 허리를 굽힐 때...
차가 다시 출발을 했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가 떨면서 해준 이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차가 갑자기 또 멈추었습니다
갑자기 기사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짧게 욕설을 내뱉더니
우리보고 알아서 집에 가라며,
오늘 자기는 더 이상 운전 못하겠다며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가버리는 겁니다
차 시동도 안 끄고서 말이죠
퍼온 이 사족 : 그 택시 몰고 튀면 어쩌려고
당시엔 또 한번 발생한 황당한 상황이였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면
충분이 이해갈만한 상황이네요...
그날 떨고있는 그 친구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우리가 차에서 내린
부산진역 부근의 포장마차에서
말없이 소주한병 마시고
영도까지 바래다주고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 친구보다 용감해서
집까지 바래다주고갔던것이 아니라,
그래도 전 그 여자 얼굴을 직접보진 못했기에,
그나마 그 친구보다 상황이 더 좋았기에...
집에가는 내내 떨고있는 그 친구와 함께
떨어야했던 그때의 기억...
정말 우린 그 할머니덕에 목숨을 건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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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2011년)에서
대략 3~4년전의 이야기 입니다
그 후 한참 지나 취업도 하고
사진이란 고상한(?) 취미도 갖게 되었는데
아는 지인과 출사를 위해
벡스코에서하는 모터쇼에 가게되었습니다
거기서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고나니
대략 7시정도가 되더군요
그분과 헤어지기전 커피나 한잔하자며
다 빠져나가고 인적이 별로 없던
벡스코 광장에 앉아 사진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벡스코 건물 입구 분수대 부근에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분수대물이 담긴 난간 위를 따라
계속 걷고있는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지인에게 저 여자 좀 보라면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공포와 전율에
마시던 커피를 던져버리고
그 지인분의 손목을 잡고 그 곳에서
도망치다시피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그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론
한 번도 벡스코 근처에 간 적이 없습니다.
첫댓글 우리동네 나오네 근데 위치가 다 진짜 잘 설명되있어서 섬뜩해
송정에서 술마시고 중앙동까지 택시타고 간다고..? 택시비 엄청 나올듯 돈이 더 무서워...
나도ㅋㅋ동부산에서 서부산까지ㅋㅋㅋ
퍼온 이 사족이 젤 웃김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벡스코는 괜찮을거여 거기 오타쿠 집합 많이해서 양기 가득함
개무섭네 기사님이 제일 겁먹었다ㅋㅋ그나저나 글쓴이 살려준 할머니는 저승사자라 하고, 귀신은 미인일 것 같다고 하고ㅠ맞는게 하나도 없네
06~07년에는 암것도 없긴했음ㅋㅋ 벡스코근처 ㅋㅋ 진ㅉㅏ 허허벌판에 센텀중학교랑 벡스코 덜렁 있었는데.. 92년이면ㅋㅋ와우.. 근데 송정에서 중앙동 택시비ㅜ 무서워죽것네ㅋㅋㅋ 그당시엔 다리도 없었을텐디
07년도에도 택시 합승이 가능했어? 아이고...
택시 합승은 옛날이 저 글 쓴 3,4년 전인 07년도는
벡스코 생기고나서인듯!
ㅅㅂ... 나 그동네산다구....
아저씨도 존나 무서웠나봐 택시 버리고 간거보면
거기진짜 아~무것도없고 허허벌판에 벡스코생기고 홈플생기고 하기전에는 걍 공사장그자체였는디.. 근데거기 터가 쎄다고 하더라
어쩐지 거기 갈때마자 좀 기분 묘했어
시부레 무섭네요 ㄷ ㄷ ㄷ ㄷ
아니 남자가~ 남포동서 마실 일이지
송정까지 가서 택시타며 마시니까 혼쭐이 나지!
윗댓말대로 요새벡스코는 몇개월에 한번씩 오타쿠들 만화축제같은거해서 양기가 가득할거같음. 온갖 코스프레한 사람들을 보면 고스트도 눈에 안 띌 듯.
오타쿠: 와 쩐다 같이 사진찍어도 돼요?
고스트: ???? (찰칵찰칵
할 듯(무서워서 쓰는 댓입니다.
멀리서 술마셨네... 무섭다....
그때 송정에 머 없엇을건데 왜케 멀리까지 와서 술을 마셧댜!!
무셔..ㅠㅠㅠㅠ
무사와 사족은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