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이게 왜 이렇게 안그려져?"
가희는 지금 한창 오른쪽 눈썹과 씨름하고 있었다.
화장대 앞에 앉아 펜슬을 집고 거울을 보며 정성스레
눈썹을 그리고 있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꾸만 삐뚤어지는 선.그래서 가희는 절로 이마가 구겨지고 말았다.
생각 같아서는 편한 복장에 화장이 아닌 모자를 쓰고 나가고
싶었지만 윤정의 협박에 순한 양이 되어버린것이 못내 못마땅 했다.
퇴근 할때까지 옆에서 어찌나 쫑알 되던지..정말로 귀에 딱지가
생긴것만 같았다.다시 한번 한숨을 나지막하게 쉰 가희는 볼록 나온
배를 집어 넣고 눈썹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이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가희다.곧이어 명절때나 입던 정장을 옷장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입어 보았다.그런데 이것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아 진짜...오늘따라 모든게 도와주지를 않네."
살이 쪄서 그런지 전에는 헐렁하던 정장이 지금은 쪼이고 있었다.
그런대로 입을만 하지만 숨을 고르게 쉴수가 없을것만 같았다.
억지로 배를 집어 넣어야 하는 상황.또한 숨을 쉴때마다 터질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른 옷을 있을까 싶어 옷장 안을 살펴 보았지만 건질게 하나도 없었다.
"휴우...미치겠다,진짜..."
거울 앞에서 이리 저리 살펴 보아도 영 마음에 들지 않던 가희는
이내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다.시계를 쳐다보니 약속 시간이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냥 가지 말까?그럼 언니한테 뭐라고 말하지?
아씨..변명거리도 없잖아?!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냐?"
애써 파마 머리를 차분하게 정리 했지만 그새 그것을 까먹었던지
가희는 손으로 마구 헝크려 댔다.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던지 머리를 긁던 손을 멈추었다.
"내가 그렇지 뭐..소개팅은 무슨.."
한참만에야 일어난 가희는 핸드백을 들고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잘 신지도 않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자마자 욕부터 나온 그녀는
쩔뚝 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가희는 입술을 깨물며 손목 시계를 보았다.
약속 장속까지 가기엔 빠듯한 시간이였다.빨리 엘리베이터가 와서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던 가희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가희를 힐끔 쳐다보며 대뜸 반갑게 말한다.
"어랏?!그때 그분 맞죠?"
"네?"
"아~맞네!뭘~"
"누구세요?"
가희는 당연히 남자를 몰랐다.더욱이나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자와 안면이 있는것도 아니였다.그러나 이 남자는 싱긋 웃으며
가희를 아는체 하고 있었다.
얼마뒤 엘리베이터 문이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그 안으로
가희와 남자가 재빨리 타게 되었다.남자의 한쪽 손엔 쓰레기를 담아 든 종량제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저 정말 모르시겠어요?"
"모르는데요?저 어떻게 알아요?"
"난 그쪽 정말 아는데.."
"그니깐 누구냐구요?"
이 남자 무슨 재미가 들렸는지 빙빙 돌리며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가희는 남자를 향해 실눈으로 노려 보았다.
그 모습이 웃겼던지 남자는 박장대소 하며 웃어 버린다.
가희의 성격상 자신을 놀려대는 인간을 절대로 가만둘수 없기에
막 입을 뗄려고 했다.그러자 엘리베이터가 어느새 1층에 도착 했고 남자가
먼저 내리고 말았다.가희는 속으로 중얼 거리며 남자의 뒷통수를 보면서 슬쩍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이런 사소한것에 오히려 기뻐하는 그녀다.
가희는 남자를 무시하고 막 걸음을 뗄려 했지만 뒤에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사실은 전에 내 친구랑 복도에서 한바탕 했었잖아요.그쪽이랑~"
천천히 몸을 돌리는 가희완 다르게 남자는 또 한번 웃어 보이고
있었다.잊고 싶었던 그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함과 동시에
얼굴 근육들은 굳어지고 말았다.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물어보는 그녀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뭐라구요?"
"젊은 사람이 기억이 그렇게 없어요?그때 그쪽이랑 제 친구 은혁이랑
막 싸웠잖아요~그쪽이 은혁이 멱살까지 잡고,기억 안나요?"
"그..그래서요!"
"아~기억 나시나봐~!그쵸?"
"그래서 어쩌라구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갑자기 막 반가운거 있죠!저 쓰레기 버리러
가다가 그쪽이랑 마주쳐서 정말 좋았다구요.그쪽은 안그래요?"
'저..저 덜 떨어진 자식!내가 미쳤다고 널 반기냐?!
뭐 저런 개발싸개 같은 놈이 다 있어?지가 날 왜 반기냐고!'
당연히 가희의 속 마음을 알길이 없는 남자였다.
가희에게로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대뜸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 손을 빤히 쳐다본 그녀를 향해 남자가 무안 했던지 머쓱해 하며
입을 열었다.
"내 손이 참 민망한데...."
어이가 없는 사람이었다.가희는 아침부터 별 재수없는 인간과 마주하고
있자 속이 쓰리는것만 같았다.하는수없이 남자와 악수를 한 가희는
그만 헤어지고 싶었지만 이 사람은 또 할말이 남아 있었나 보다.
"전 이용주라고 하거든요.근데 친구들이 날 막 용팔이라고 그래요.
그쪽도 그렇게 불러도 상관 없어요.우린 이웃 사촌이잖아요~"
"네,네.전 아무개라고 하거든요?그럼 제가 바빠서 이만 가야할듯 한데?"
"아무개요?그런 이름도 있어요?난 여태까지 잘 몰랐는데...."
자꾸만 꾸물대는 남자가 짜증 났다.
안그래도 약속 장소까지 가기엔 시간이 촉박한데 이 재수없는
남자는 시간을 갉아 먹고 있었다.그냥 대충 넘어 가면 될것을
왜 사람을 붙잡고 있냔 말이다.
가희는 더이상 지체 할수가 없었기에 고민하고 있는 남자에게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저 지금 엄청 바쁘답니다!담에 진짜로 지구가 하루에 5섯바퀴
돌때 그때 만납시다.그럼!"
어찌 지구가 하루에 5섯 바퀴를 돌겠는가?
다 저 찐드기를 떼어낼려는 수작이란것을 아마 모를것이다.아니 바보가
아닌이상 그 말뜻을 알것이다.그런데 저 멍청이는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나 보다.
걸음을 재촉하며 걷는 가희를 향해 남자가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게
보였다.또한 꼭 다시 보잔 말과 함께.그러다 또 다시 들려오는
말에 그녀는 오늘 하루가 재수가 없음을 굳게 믿어야만 했다.
"아,저기!우리 은혁이가요~그쪽이랑 절대 상종하지 말래요!"
.......
....
....
가희의 얼굴색이 점점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식은땀이 절로 흘러 내렸고 티슈로 닦아내야 할정도 였다.
아랫배가 슬슬 쪼여오는 느낌에 가희는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하지만 눈 앞의 남자는 윤정이가 말한대로
정말 젠틀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이 남자를 놓치면 안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것만 같았다.
아랫배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가희는 꿋꿋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남자가
말하는것을 두 귀로 똑똑히 듣고 있었다.
"저...가희씨?"
"네..?"
"어디 아프세요?얼굴 빛이 안좋아 보이네요."
"아..아뇨!괜찮아요."
"정말입니까?어디 불편 하면 말하세요."
"....네.."
남자의 호의에 고맙게 생각한 가희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러나 웃기는 웃었지만 속마음은 울고 싶었다.
아침에 먹었던 우유가 잘못 된것인지 속이 너무 불편했다.
부글 부글 끓어 되는데 도무지 참고 있기가 힘들었다.그런 상태에서
옷이 쪼이면서 아랫배를 자극하고 있으니 가희는 죽을맛이였다.
'휴우...미치겠다..이젠 못참겠는데...'
가식적으로 남자에게 웃어 보이며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마시는것도 힘들었다.역시나 오늘 아침 용팔인가 뭔가하는 그놈을
만나서 재수가 드럽게 없는날인것만 같았다.
그토록 우유를 먹어도 속이 불편한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가 말이다.
그때 갑자기 잠잠하던 배가 또 다시 끓더니 엉덩이 사이로 삐집고 나올려 했다.
'안돼~!!'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이번에는 가희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가희의 변화를 눈치를 챈것인지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남자에게 아무일도 아니라고 말하려던 순간 가희는 오른쪽
발을 들어올려 바닥을 내려 쳤다.구두굽은 마룻바닥과 부딪혀 짧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갑작스런 가희의 발길질 소리에 남자는 물론이고 까페안에 있던
사람들이 곁눈질로 쳐다 보았다.
노랗던 얼굴빛이 이제는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방귀라고 불리는 악귀때문에 어쩔수없이 발을 차야 했던 그 기분을 아는가?
가희는 쪽팔리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기분을 알리없는 남자는 사뭇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습니까?"
"아..네.저기 그러니까...바퀴 벌레가 지나가서...."
"바퀴 벌레요?"
남자는 가희의 엉뚱한 말에 진짜냐란 눈빛으로 쳐다보며
바닥을 훑어 보았다.아무리 둘러봐도 바퀴 벌레는 없었다.
그 모습 또한 어찌나 귀여웠던지 가희는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이렇게 사람 말을 잘 믿어주는 남자,가희는 정말로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어떻게 해서든 오늘 이 만남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했다.
"어머나..벌써 도망을 가버렸나봐요?"
"그러게나 말입니다.어떻게 이런 곳에 바퀴 벌레가 있을수 있습니까?
청결이 있어야 되는곳에서 말이죠.이건 그냥 무심코 넘길 일이 아닌것 같아요."
"네?"
이게 왠일인가?
남자는 사장을 불러내 따질려 들고 있었다.
그냥 변명거리를 찾다가 한말이 한 가게의 청결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셈이였다.당황해진 가희는 대뜸 남자의 손을 잡아 버렸다.
그러자 남자는 약간 두눈이 커진채로 가희를 쳐다 보았다.
급한김에 무작정 손을 잡긴 잡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놀라고 만
가희는 어떻게든 이 계기를 넘겨야 했다.
"소..손이 참 따뜻하네요."
"무슨...."
"손이 따뜻한 사람은 마음도 따뜻하다고 하던데..명호씨도 그런가봐요."
"그런가요?"
남자는 머쓱해 하며 웃어 보였다.
역시 칭찬 한마디에 싫은 사람은 없는법이였다.
가희는 이왕 칭찬한거 몇번이라도 더 해서 좋은 점수를
따는게 좋겠단 생각에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또 속이 불편해진 가희는 배를 문지르며 안간힘을 썼고
그럴수록 속에서 울려대는 방귀라는 정체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어서 빨리 화장실에 가자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로 쌀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가희는 두눈을 꼭 감아 버렸다.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 앞에서 그것도 벌건 대낮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는
이곳에서 창피를 당할수는 없었다.
'이....이..잇...!!'
무슨 결심을 했는지 감았던 두눈을 뜬 가희는 핸드백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유도 없이 자리에 일어난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는 남자.가희는 아쉬움에 차마 발길을 뗄수가 없을것만
같았다.그러나 냉정하게 지금 이 현실을 파악해야 했다.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그럼!"
남자의 말을 듣지 않고 무작정 까페에서 나온 가희였다.
그냥 화장실에 잠깐 간다고 하면서 자리를 비웠으면 되겠지만
꾸질한 마음으로 더이상 함께 있을수 없다고 판단 했다.
왠지 자꾸만 실수 해서 창피를 당할것만 같았다.
부리나케 뛰어가는 동안 가희는 눈으로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하철 역이 보였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도를 내려 갔다.
아우성을 치는 배를 감싸 쥐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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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 장편 ]
늑대와 여우의 차이점[3]
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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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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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희 심히 걱정됩니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봐... 글고 가희 오늘 재수 대게 없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글고 응원 해줘서 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