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zul.im/0NmeSt
매년 이맘때쯤
코끝이 시린 추위가 느껴지는 시기가 되면
늘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년전
제가 야간알바를 하던 여대생 때의 일입니다.
그 편의점은 늘 손님이 많았다.
건물 지하나 바로 옆건물이
나이트나 단란주점이라
새벽 4-5시전까진 정신없이 바빴다.
그날 역시 5시 넘어서야 조금 한가해져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아주머니 두명이 들어왔다.
지금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강렬한 의상.
핑크색 비닐 점퍼에
쫙 달라붙는 얼룩무늬 쫄바지.
다른 한 분도 비슷한 의상이라
난 한눈에 알아봤다.
'아줌마 두 명이 카바레 가려고 벼르셨군.'
하지만 지친 표정에 두 사람은
헌팅이 잘 안되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던힐 두 갑을 주문했다.
지폐를 주는 손에선
짙은 화장품 냄새와 술 냄새,
담배냄새가 뒤엉켜 있었다.
"4천원입니다."
잔돈을 받아든 아주머니 두명은
한 갑씩 나누더니 어두운 길거리로 나섰고
마치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서있던 흰색 소나타 택시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원래 저 위치엔 택시가 잘 안서는데
일행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그렇게 몇주가 흘렀을까.
출근해서 앞치마 입고 인수받고 있는데
못보던 전단지가 매대앞에 있었다.
경찰서에서 보낸 공문 같았다.
"이게 뭐야?"
"아, 언니.
아까 경찰분들이
신원미상 시신인데
목격자 찾는다고 붙혀달래요.
근데 좀 징그러워서.."
"음?"
전단지엔 화성에서 발견된 사체 한구인데
지갑과 신분증이 없어
택시 강도 피해자로 추정되나
신원을 알 수 없다는 간략한 문구와 함께
시신의 얼굴, 옆모습
그리고 입 고있던 옷 사진이 나란히 있었다.
"헉..."
얼굴은 누구에게 맞은 듯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부어서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옷 만큼은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흙이 잔뜩 묻어있는 분홍 점퍼와
얼룩말무늬 쫄바지...
그 아줌마였다.
순간 머리가 뭐에 맞은듯 어지러워지면서
속이 미식거려서
그 자리에 덜썩 주저앉아버렸다.
전단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택시 강도가 의심스럽다면
내가 봤던 그 흰색 소나타가
그 범인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몸이 너무 떨려왔다.
결국 며칠 후 경찰에 신고했고
그 날 일을 다 털어놨지만
시간이 지나 너무 지나 이미 그 날
편의점 cctv 영상은 삭제된지 오래였고
(주인이 구두쇠라
테잎 3개를 돌아가면서 녹화를 했었다)
내가 택시 번호를 기억 못하는 이상
더 이상의 단서는 찾기 힘들거 같다는
내용만 들었다.
결국 미제로 끝났단 얘기를 듣고
난 알바를 그만뒀다.
학업 문제로 둘러댔지만 사실은
만약 그날 택시 번호라도 봤다면
억울한 아줌마의 한을 풀 수 있을지도
몰랐을텐데
라는 죄책감과
어쩌면 범인이 내가 이 곳에 일하면서
자신을 봤다고 착각,
해코지할 수도 있겠다라는
무서움 때문에 더 이상
그 곳에서 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1년이 흘러
이젠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가끔 난 꿈을 꾸곤 한다.
그 날, 담배를 사고 나가는 두 아줌마에게
밖에 택시가 이상하니
다른 거 타고 가시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날 ...
첫댓글 아 뭔가 짠하다... 진짜 왜 죄없는 사람을....
알바분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업ㄹ는데 죄책감에 시달리는거같아섳안쓰럽고 돌아가신 분들은 말할것도 없고ㅠㅠㅠ한남잘못 ㅠ
가슴아프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