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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상식 [세계사] 서양식 사관의 병폐(ex. 탈라스 전투)
비키니를입은너의모습을보았을때.. 추천 0 조회 213 07.09.27 10:01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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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작년에 쓴것인데 문뜩 생각이 나서....

  • 07.09.27 10:29

    다시 싸우고 뭐고.. 당시 당나라의 상황이 다시 재도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탈라스전투에서 패한 원인이 친당쪽이던 실크로드 주변 소국들이 당나라에게 등을 돌리고 죄다 이슬람쪽에 붙어버린게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상황에서 당이 서역으로 보낼수 있던 병력이 죄다 녹아버렸고, 당 내부의 상황도 현종이 히까닥하면서 안록산이 한바탕 당나라를 휘젓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시 서역으로 병력을 추가 투입하고 자시고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다고 탈라스에서 살아돌아온 병력으로 다시 공세를 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당군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동맹국들도 이반한 상황이라서 고선지가 아니라 이정이 와도 불가능한

  • 07.09.27 10:33

    시점이었습니다. 이런거 가지고 서양식 사관이다... 왜 거기서 졌다고 포기하냐...할말 없게 만드시는군요. 전에도 말했던거 같지만 결과만 보지 마시고 배경이 되는 상황을 좀 주시하셨으면 합니다. 괜히 탈라스전투가 세계역사를 바꾼 전투라고 불리는게 아닙니다.

  • 약간 자극적인 댓글을...이 사건을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중앙아시아에 불교(즉, 당나라 세력) 가 아닌 이슬람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라 한 분기점이라고도 볼수 있고, 당대(唐代)나 중국이란 지역에만 한정한다고 해도 이 사건이후로 더이상 서역으로의 진출은 아마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점에서 vonmusel의 댓글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전 이것을 일종의 원인과 결과 뭐 이렇게 보거든요...연결되어 있는..반격을하는... 이것은 전에 올린 1617세기에 서구 열강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약간 실패한 경우 혹 기독교인이 살해당한 경우에 왜 군사를 보내지 않느냐. 혹 아편전쟁시에 영국이 중국으로 극동으로, 세계

  • 방방곡곡으로 군사를 보내 복수등을 한것을 당나라 측도 그럴수 있지 않을까 해서 좀 비약적이지만 한번 해본것 입니다. (또, 당나라도 신라나 거란등에 복수전을 많이 했으모로) 다음은 탈라스 전투의 중요성인데..제가 느끼기엔 적어도 이 사건은 종이의 전래(서방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요해지겠죠)등이나 하나로 통합된 이슬람 국가와의 마지막으로 싸운 전투(국가간의 운명을 걸고 한 전투 갔지만 사실은 끝트머리에서 싸운 국지전)라서 뒤에가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당대에는 별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특히 중국등에서 이 전투는 그 이후로 그냥 묻힌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전 이게 그건지 모르겠지만 제글은 오리엔탈리즘을 타파하자에 도움을 받는 것 입니다. 어 이글 반대? 그럼 당신은 오리엔탈리스트, 서구빠~~ 이런식.물론 이런식으로 하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쓴 글에서 유럽에서의 푸아티아 전투를 언급했는데 여기선 이슬람이 당나라이고, 유럽이 이슬람으로 대체됩니다. 물론 당나라의 당시 전후사정을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대게 남아있는 기록이 적어서 인진 몰라도 전통시대에는 이런 전투 기사과 당대 사정등이 잘 연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전투기사만 몇몇 있기만 할뿐..어떤 당대 상황등을 살피기 힘들죠..앞서 말한듯이 이슬람은 왜 유럽을 다시 공격하지 않았을까요? 앞으로도

  • 오육백년간은 모든 면에서 이슬람 제국들보다 뒤떨어졌는데..복수 의식이 없어서 일까요? 아님 기독교인들에겐 유럽을 구한 하나님의 승리일지 모르겠지만 이슬람 제국에겐 오랑캐 지역, 약간 긁힌 정도로 별 의미를 안두어서 일까요? 아니면..앞서 말한듯..당나라 처럼 당시 이슬람도 권력 투쟁, 분열등 내부 사정때문일까요?

  • 제글을 보고 제가 중세 유럽등을 보는 것에 좀 오락가락 하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대체 유럽이 문화, 사회수준이 아랍이나 세계적으로 높다는 거야. 아니면 낮다는 거야.. 전 한번은 되게 낮은 것처럼, 다음에는 매우 높은 것처럼 썼습니다. 저도 이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더 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높냐 낮냐가 어떤 무엇 하나로 그냥 팍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또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종교나 여러 소소한 가치들등 당시 사회상면에서 결코 폄하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체적으로 짧게 이것에 대해 말씀드리면 대체적으로 18세기 초까지도 오스만제국등이 유럽에서 최고로 앞선 나라였던 프랑스등보다 앞선면이 여

  • 전히 많다고 여겨집니다. 전 영국등의 도로관련에 대한 서술을 보면서 로마시대와 아주 퍽 다른것을 보며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저렇게 관리를 안할수가 있지..우아하고 품위있는유럽적 가치가 곳곳에 발견되면서도 틈틈히 이런 의외의 사실도 알게됩니다. 좀 뜬끔없는 얘기이지만 추석날에 미수다에서 목욕탕 얘기가 나왔고 무척 야하게도 한국인은 목욕탕에서 올누드로 있는다가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우리나라는 옛부터 목욕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세요?

  • 아니..많이 했다기보다(고려와 달리 성리학이 자리잡은 조선시대를 생각해보시기를) 미수다에서 나왔던 그 대중목욕탕 여러 사람이 빨게벗고 있는 그것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보세요..전 어렸을때에도 이런 대중목욕탕은 성적으로 좀더 개방화된 미국등에서 전해지지 않았을까 요원하게 생각해본적이 있었습니다..어떻게 유교적인 나라에서 이런...수영장 문화도 그렇고...해답은 얼마전에 알게 됐습니다. 책에서 읽었는데 한국에서 최초의 대중목욕탕은 1920년대에 생겼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문화중에 특히 술문화나 서열문화등이

  • 그냥 우리민족의 오랜 전통이라고 여기는것중에는 사실 수입된것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것도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해 그냥 별 상관없는 댓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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