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체 논쟁이 종결된 1995년 [창작과 비평]의 특집에는 연세대 사회학과에 한분의 교수 이름을 대학가 좌파들은 주목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다시 생각하건 백만번 생각하건, [창작과 비평]사의 기본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백비어천가'(?)로 대학가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인식이 달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1995년 당시에 백낙청 교수의 문학평론을 잘 읽으며 강연회를 따라다니는, 무조건 편견없이 여기저기 잘 배워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학생이었다. 그때에도 기억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물론, 특정한 사회의 시대적 인식소에 대하여 '인식론적 단절'을 인식하거나 인식했어야만 할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줄곧 토로하는 점에서,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크게 반대는 아니다. 그런데, 참 보수 신문에 이름을 올리며 보수주의 가치 집안의 젊은이들의 사고관을 정략적으로 떼놓는 저의가 느껴져 씁쓸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박대통령 시대의 한계성은 박대통령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의 한계성으로 생각한다. 오늘 스타워즈를 보는 개봉관에서 읽은 대학생의 글에서, 좌우간 딱딱하고 굳어진 것을 군사정부의 한계성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서 극중 화자의 이야기는 2세대 보수주의의 배경을 말해준다. 여기저기 부양해야만 할 대상이 줄줄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강한 리더십으로 통솔력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겠는가? 2세대 보수주의자의 시대착오성에 계속 비판하지만, 한편으로 2세대 보수주의자의 세대적 한계성에도 깊이 있게 공감한다.
박대통령은 '가난학교 동문'이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그 시대 가난 때문에 배워야 할 것들을 겪는 일반 국민과 동문회를 이루는 차원에서, 동문회장의 가치 쯤은 분명하다. 이념으로 다르게 생각하나 인간적으로는 존경하는 백낙청교수에 옹호적인 글을 쓰는 것도 좋게 생각하나, 가능하면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같은 배곯는 운동권들이 주된 독자층인 곳에 글을 썼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철부지들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열린 사고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바람넣길 즐기는 좌파들이, 보수 신문에 들어와 보수주의자 가정의 세대를 갈라놀려는 속내가 너무 느껴져서 그러하다.
워낙, 사회구성체 논쟁의 끝장으로서 분단체제론 특집의 대담에서 '백비어천가'로서의 인상을 워낙 강하게 심어주었고, 창작과 비평사를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큰 활약을 못 보았던 교수였기에, 글에서 진리 가치보다는 백낙청교수의 세계관을 대세로 만들려는 백비어천가를 불렀던 사람의 다음 수순을 보게 된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조선일보의 소개대로 김호기교수의 글이 창작과비평사임을 모르는 전제로서, 보수주의 가정의 세대 가르기란 정략 어법을 넘어서는 중립적 사회과학의 일반론 차원에서 반론을 하는 다음 글도 기대해 봄직 하다. [창작과 비평사] 소속 교수에 가깝다는 대학가 좌파 서적 읽은 사람이면 다 아는 내용을 가리는 것보다, 진실되게 중요한 게 창작과 비평사의 서울대 인맥과 동등한 대접(더 나으면 더 좋고!)으로, 우파의 반박을 조선일보가 대접할 수 있느냐이다.
[시론] 다시 박정희 시대를 생각한다
정치 과잉의 역사 해석은 진정한 성찰 가로막아 열린 토론 필요하지만 21세기엔 맞지 않는 모델
입력 : 2005.05.26 18:40 37'
▲ 김호기·교수 | |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단연 박정희일 것이다. 그가 돌연한 죽음을 맞은 지 벌써 26년이 흘렀건만 그의 시대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최근 진보 성향의 한 계간지에서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를 다룸으로써 다시 한 번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초기 산업화에 권위주의 정치가 불가피한 것인지의 문제다. 그것은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에 효율적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개발독재를 선택해야 할 것인지,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이 인권과 정치적 자유보다 중요한 것인지의 문제다.
1960년대 당시의 시선에서 보면 박정희식 발전모델은 상당한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사회안정에 대한 희망을, 보릿고개의 암울한 현실은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을 낳았으며, 이런 희망과 열망은 위로부터의 국가적 동원을 통한 산업화에 유리한 토양을 제공했다. 어제는 라디오가, 오늘은 텔레비전이 집 안에 들어오는 변화가 준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성공했다고 해서 박정희식 모델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식 모델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데 과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있다. 3선개헌에서 10월유신에 이르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특히 1970년대 유신체제의 암울한 독재는 이 시대가 얼마나 비민주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물리적 폭력에 기반한 침묵의 사회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다.
요컨대 박정희 시대는 명암이 뚜렷한 시대다. 한국을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변화시키는 고도성장을 가져온 시대였던 동시에, 정경유착·인권탄압·생태계파괴 등 유례 없는 대가를 요구한 시대였다. 무엇보다 박정희 시대에 뿌리내린 성장주의와 군사문화로 대표되는 권위주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심층의식을 이루고 있다.
박정희 시대가 명암을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향수는 왜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양극화가 강화되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사회의 주변으로 내몰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주소라면, 이런 삶의 불안정성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그곳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상징화된 박정희가 존재한다. 박정희식 모델이 옳아서가 아니라 현재의 곤궁(困窮)이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주목할 것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정치적 독법(讀法)이다. 박정희 시대는 26년 전에 마감했지만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현 정치세력들의 정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과도한 이분법이 강조되는 것도, 이 시대에 대한 과거사 규명이 크게 논란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과잉정치적 역사해석은 현재를 과거에 묶어 둠으로써 역사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는다.
역사의 해석에서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는 눈은 복수(複數)일 수 있으며, 열린 토론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이끌어내는 게 바람직하다. 이 점에서 박정희식 리더십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박정희 시대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해석이 아닐 것이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그 상처를 다스리기에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이제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21세기에 박정희식 발전모델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흘러간 것은 흘러간 것이다. 지나간 것에 대해 향수에 젖는다고 해서 과거의 방법이 현재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박정희식 성장주의나 권위주의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박정희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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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대가 인물을 낳고 그시대가 지나면 옷이 헌 옷이듯이 그인물의 주의는 낡은 것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사람의 조국에 대핸 애정과 정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인물을 평할때다 그 시대의 상황애 걸 맞게 평해야 한다. 그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좋다면 그분은 좋은 분 이다.
정경유착이라는 말은 여기서 어울리지 않읍니다. 산업발전 초기에는 어쩔수 없이 능력이 있는 분들이 경제를 이끌어 나아가는 것이 정설입니다. 돈 빌려가지고 밥이나 몇끼 사먹으면 그돈은 밥값이지만 .그돈으로 사과 몇 알이라도 사서 장사하면 믿천이 되는 것입니다.그러자면 장사를 잘 할 사람에게 돈을 몰아 줘야 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