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목표는 군사 분야로 한정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상대방의 전쟁 수행능력을 약화시키거나 타격을 주기 위해 사회 기반시설 등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황은 통신케이블과 가스파이프 등이 깔린 해저도 마찬가지다. 중요 기반시설들이 위치한 해저를 무대로 하는 해저전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해저전이란 무엇이 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취약한 해저기반 시설
바다는 인류가 배를 만들어 항해에 나서면서 전쟁의 장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바다 위에서 싸우는 수상전이 벌어졌고, 20세기에 들어서 바닷 속에서 싸우는 수중전이 벌어졌다. 수중에서의 전쟁은 잠수함이 사용되는 잠수함전과 잠수함을 상대로 하는 대잠수함전, 적 해역에 기뢰를 부설하는 기뢰전과 적이 부설한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전 등으로 분류된다.
최근 들어 해저(Seabed)에 매설된 해저 케이블과 가스파이프 같은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이나 방어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이를 해저전(Seabed Warfare)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저전은 말 그대로 해저면에서 이루어지는 작전이다. 해저전을 수행하는 주체는 수상 함, 잠수함, 무인잠수정 등이 될 수 있다.
해저에 있는 기반시설은 대륙 간 또는 국가 간 통신을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해상 풍력발전기와 육상 또는 본토와 섬 사이를 연결하는 전력 케이블,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전달하는 파이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기반시설들은 매우 취약하다.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어업활동으로 인해 손상되거나, 해저 화산이나 지진 등에 의해 손상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손상된 시설은 복구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해저의 기반시설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7월, 영국 해군의 X-크래프트(Craft) 잠수정인 XE-4가 베트남 인근에서 사이공과 홍콩, 사이공과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을 끊어 일본군 잠수함 통신을 방해했다.
냉전이 시작된 후에는 상대의 기밀정보를 들여다 보기위한 첩보작전이 이루어졌는데, 해저의 통신케이블도 그 대상이었다. 1970년대 미국은 중앙정보국(CIA), 국가보안국(NSA), 그리고 미 해군이 함께 오호츠크해로 침투한 잠수함에서 소련군이 통신에 사용하는 해저케이블에 도청기를 심은 후 이를 정기적으로 회수하는 ‘아이비 벨(Ivy Bells)’ 작전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 북극해에 위치한 바렌츠해에서도 미 해군 잠수함이 소련군 해저케이블에 도청기를 설치했고 20년 이상 발각되지 않고 작동했다.
해저 인프라를 대상으로 하는 해저전은 군사적인 충돌과 그 이하의 충돌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전의 수단이 되고 있다. 해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 졌을 경우 군사적 목적의 공격인지, 단순한 민간에 의한 실수인지 알기 어렵다.
군사적 목적의 공격이었더라도 탐지가 어려운 수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행위자를 명확히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수행한 쪽은 쉽게 부인할 수 있다. 게다가 직접적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당하는 쪽에서 쉽게 대응할 수 없게 만든다.
민간시설을 목표로 하는 해저전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사례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해저 기반시설을 목표로 한 경우다. 영국 국방성이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99%가 해저 케이블을 통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정도로 해저 기반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진 최근에는 이들을 목표로 한 의도적인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2023년 2월 초 발생한 대만 본섬과 푸젠성 연안에 위치하면서 대만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마쭈 열도 사이를 잇는 해저 케이블 2개가 잇달아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중국어선과 화물선에 의해 벌어졌지만, 대만의 인터넷을 완전히 절단하기 위한 중국의 연습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INDSR)의 차이야오친(蔡堯欽) 육군 대령은 2023년 6월 13일 ‘국방안전 격주간지’에서 지난 2월 ‘마쭈 해저케이블 절단사건으로 인한 대만의 국방 안전에 대한 영향’이라는 분석에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이 계속해서 대만의 해저케이블을 파손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차이야오친(蔡堯欽) 대령은 해저케이블 절단은 대만군의 통신에도 영향을 미쳤고, 전비태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는 대만군이 마이크로파를 통한 위성통신과 무선 네트워크 통신 등을 통한 지휘통신으로 적의 상황 등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중국이 각종 방식을 통한 해저케이블을 파손한다면 대만이 단기간 내 국제사회와의 연락 및 중요소식의 전달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가 공격적으로 해저전에 나서고 있다고 보고있다. 영국은 2017년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크림반도와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해저전을 벌였고, 스칸디나비아와 대서양 해저 케이블 근처에서 공격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는 해저에 매설된 가스 파이프가 손상되는 일이 발생했다. 2022년 9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드 스트림 2가 손상되어 막대한 양의 가스가 유출되었다. 2023년 10월 초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 아를 잇는 해저 가스 파이프가 손상되는 사고가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사고이유나 누가 그랬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고 당사자들은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사고가 이어지면서 해저 중요 인프라에 대한 감시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지 만, 영국은 몇 년 전부터 해저 기반시설 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2017년 12월 초, 영국 싱크탱크인 ‘폴리시 익스체인지’는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통신의 97%와 매일 10조 달러 이상의 금융거래가 위성보다 해양 깊은 곳에 부설된 545,000마일 이상의 케이블로 전송되고 있지만, 적대국이나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비하여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나온 지 2주 뒤 영국군 참모총장은 현대화된 러시아 해군이 전 세계 대부분의 통신을 수행하는 수중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해저전 준비
자유 진영 국가들이 의존하고 있는 해저 기반시설에 대한 위협의 주체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역량을 갖춘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핵 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 일부를 배면에 심해용 특수 잠수정을 탑재하는 모선으로 개조했다. 이런 개조를 거친 것으로 델타급 잠수함 두 척과 오스카-II급 잠수함 기반의 벨고라드(Belgorad)가 있다. 개조된 잠수함에 수용되는 심해용 특수 잠수정으로는 길이 70m의 AS-31 로스하릭(Losharik)과 팔투스(Paltus)급으로 불리는 길이 55m의 AS-21과 AS-35가 있다. 이 외에도 소형 유인 및 무인잠수정 그리고 훈련된 돌고래 등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초 대만에서 발생한 해저 케이블 절단사고의 배후로 여겨지는 중국도 해저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해저전 대비는 남중국해 일대에서 준비하고 있는 ‘해저 만리장성’이 대표적이다. 해저 만리장성은 미 해군 잠수함을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수중 센서 네트워크다.
해저 만리장성을 지원할 무인 잠수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군사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HSU001 무인잠수정이 대표적이다. 길이 약 5m, 직경 약 1m로 추정되는 HSU001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수중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짧겠지만, 비교적 수심이 얕은 서태평양 일대에서 수중 기반시설을 상대로 하는 해저전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정저우에 있는 국영 조선업체 중국조선중공업(CSIC) 연구소에서 발행한 ‘함선용 무기(舰载武器)’ 2019년 마지막호는 HSU001을 다룬 ‘해저로부터의 공격(从海底出击)’ 이라는 제목의 글을 싣기도 했다.
미국 등 서방의 준비
러시아와 중국에 대비하여 유럽과 미국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앞선 국가 로는 영국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몇 년 전부터 해저 기반시 설의 취약성에 대해 경고했다. 영국 해군은 ‘중요 수중 인프라전(CUIW : Critical Underwater Infrastructure Warfare)’ 개념을 만들었고, 해저전을 위한 전용함선을 도입하고 있다. 12
2023년 10월 초, 영국 해군은 해저 케이블이나 가스 파이프 같은 해저 자산 보호용 함선인 RFA 프로테우스함이 새로 도입했다. 민간에서 석유시추선 지원을 위해 사용 되었던 ‘토파즈 탕가로아’라는 배를 사들여 군용함선으로 개조한 것으로 첨단센서와 자율주행 잠수정 등을 운용할 예정이다. 영국 해군은 유사한 함선을 1척 더 도입할 계획이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프랑스도 해저전에 대비하고 있다. 프랑스는 기존의 기뢰전과 수중 해양학 능력을 확장하여 보다 포괄적인 위협 스펙트럼에 대처하는 것을 포함하는 해저 제어작전 개념으로 군사전략에 통합했다. 프랑스는 2022년 2월 14일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새로운 해저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은 수심 6,000m까지 프랑스 해군의 예측과 행동능력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 해군은 2010년대 중반부터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의 미 해군 수상전 센터에서 해저전을 해저를 오가는 작전으로 정의하는 등 해저전에 대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해군은 2005년 취역한 씨울프급 잠수함 3번함 USS 지미카터를 네이비실과 원격조종 무인잠수정(ROV)을 위한 30m 길이의 섹션을 추가하여 운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2024 회계연도부터 2028 회계연도까지 조달할 버지니아급 블록 IV 잠수함 한척을 해저전을 위해 개조할 예정이다. 개조된 잠수함은 Mod VA SSW (Modified Virginia, Subsea and Seabed Warfare)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어떤 개조를 받게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해저전을 위한 대형무인잠수정(LUUV) 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외에도 스웨덴 해군은 해저전을 중요한 임무로 지정하고, 건조중인 A26 블레 킹에급 잠수함에 해저전 지원을 위한 설계를 반영했다. 블레킹에급은 함수의 어뢰 발사관 사이에 무인잠수정이나 잠수요원이 이용할 것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호주 해군은 해저전을 위해 최대 6,000m까지 잠항이 가능한 무인잠수정 고스트 샤크(Ghost Shark)를 3척 도입할 예정이다.
이상으로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해저전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나라도 해저 케이블이나 해양에 위치한 풍력 발전기 등 잠재적인 목표를 대상으로 하는 북한 또는 중국의 해저전에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