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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10살 무렵
인천에서 강원도 모 도시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러 동업자들과 사업장을 차리고 싶어하시던
아버지 뜻이었죠.
부모님은 사업 준비로 늘 정신이 없으셨고
저는 지방 아이들의 몰인정한 왕따에 시달리느라
늘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활달하던 제가 의기소침해진 것이
교우 관계 때문인 걸 아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듬해 동네 아주머니의 권유로
여러 일을 물어볼 겸
인천에 용하다 소문난 무당을
찾아가기로 하셨었습니다.
이 무당은 이제 갓 스물 넘은 앳된 처자로
내림굿 받은 지 얼마 안돼서
이른바 신빨이 가장 쎈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들었댔습니다.
더 소문 나기 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용한 신기 한번 덕 보자고 하는 꼬드김에
어머니께서는 줄곧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내려와야만 했던
아버지의 사업운을 물어볼 겸
방문하셨습니다.
경기도 어디 등지에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였는데
골목 안에 간신히 알아볼만큼
작은 깃발을 걸고
간판도 허름하게 단 집이였답니다.
미리 예약을 했다는 이웃 아주머니 말에
대문을 밀고 들어가
머리가 빠글빠글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전하니
바지춤에 대충 손에 흐르는 물을 닦고는
방 안에 들어가 말을 전해주더랍니다.
어머니께서는 이때까지도
영 무당집 같지 않다며
심각한 기색없이 두리번거리셨습니다.
말 그대로 마당이라기에도 옹색한
시멘트 바닥을 끼고 있는
작은 주택이였으니까요.
그리고 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새로 도배를 했는지 하얀 벽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신들의
좌상과 탱화에 둘러 싸인 가운데에
무당이라기엔 너무 어리고 연약하게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더군요.
이유는 모르지만 머리도 쪽지지 않았고
한복 같은 것도 제대로 걸치지 않아
순간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답니다.
의아해할 찰나 동행한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그 앞에 앉았는데
상 위를 더듬어 쌀알을 뿌리고
만지는 손길이 익숙해 보이지 않았고
조심히 눈을 들어 얼굴을 보니
여기저기 삐져나온 잔머리 사이에
그윽히 떠있는 눈은 시린 퍼런 색이더랍니다.
'아....장님이구나..'
딸 둘 둔 어미 마음에 어머니께선
마음이 괜히 짠해져 있으셨는데
옆구리를 누가 쿡 찌르길래 퍼뜩 정신이 들었고
조심스레 맹인 아가씨에게
남편이 올해 사업을 하는데 잘 될런지..와
자식들이 전학을 와서
적응을 잘 못하는 거 같은데
이것이 잘 해결될런지를 물어보셨답니다.
2-30초 침묵 이후,
그 맹인 아가씨는 남편의 사업은
생각보다 안 풀릴 건데
아주머니께서 대비를 잘해두면
말년엔 필 것이다.
라고 말을 했다는 군요.
영 찝찝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폭삭 망한다는 말은 아니었으니 반만 믿자..
라 생각하시며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식은 셋인데..막내는 아들인가요??"
"..세 명 아닌데요??"
"..으흠..첫째 둘째는 딸이 맞는데..
막내가 아직 없어요??"
"(..딸 둘인건 어찌 알았지??..
있지도 않은 아들 얘기하는 거 보면
돌팔이 같은데..)
네에.... 없어요.."
머쓱하게 보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맹인 아가씨는
"...(쌀을 두어번 뿌리고
거두는 행위를 반복하더니..)..
큰 따님이... 으흠..안 좋네.."
그러고는 한참을
쌀그릇의 쌀을 만지작거리더니
큰 결심한 듯 말해주었답니다.
"올 7월에 물귀신이 노리고 있고
11월에 길바닥에 사는 지박령이
데려가려고 할 겁니다.
7월까지는 물에 못 들어가게 하시고
11월 한 달은 혼자 길가에 못 나가게 하세요."
너무 뜻밖의 말에
정신이 황망해지신 어머니를
공허한 눈으로 빤히 보던 맹인 아가씨는
작게 고개를 흔들더니
"11월까지 무사하면 따님 걱정은
앞으로 안해도 될 정도로 잘 풀리겠지만,
만일 화를 입는다면
내년부턴 악삼재가 낄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셔요."
어머니는 던지다시피 돈을 두고는
인사도 안 하고 돌아오셨답니다.
같이 가자고, 용하다고 꼬드겼던 아주머니는
그 후 며칠을 재미로 본 거라고
신경쓰지 말라고 본인 말을 번복하셔야 했죠.
그 해 여름 7월 중순,
저는 단체로 간 스카우트 야영에서
냇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사람 바글거리는 사이에서
익사를 할 뻔 했습니다.
순간 돌에 미끄러지는가 하더니
오른쪽 다리가 한도 끝도 없이
하류를 향해 끌려 가더군요.
그해 스카우트 야영은 저희 학교에서도
처음으로 타지로 간 야영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친구집도 못 가게 하고 철저하게 단속하시던
어머니의 노고가 무색하게
저는 저를 왕따시키던 아이의 협박이 무서워
그 일당들 중 한 명의
피아노 발표회에 가게 되었고
11월 29일
학교 후문에서 150미터 떨어진
좁은 2차선 도로에서
택시와 주차된 차에 두 번 부딪힙니다.
사고 지점은
막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곳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머리와 다리가 다쳤고
단순 골절임에도 부러진 부위가 좋지 못해서
그 후 3년 동안 총 8번의 수술을 하게 됩니다.
머리에 고인 피는 3번에 걸쳐
피스톤으로 빼내었는데
다행히 뇌진탕은 안 되었지만
그 후에도 원인 모를 두통과 기절로
오랜 기간 고생을 했습니다.
후에 삼재를 겪을 때 너무 고생스러워서
다시 그 무당을 찾아가
방책을 듣고자 하셨지만
이미 이사를 갔는지
그 곳에 없다는 말을 전해 들으셨고
전화번호도 사라져서 속수무책으로
악재를 감당하셔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길게 고생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고 나서
어머니께 들은 이 이야기는
저를 늘 오싹하게 만듭니다.
절 다니시지만 무당이니 하는 것은
별로 믿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는
그 후에는 그런 것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하십니다.
아..
무엇보다
스쳐 지나갔던 그 셋째가
2년 후에 태어났으니까
그 무당이 한 말은 모두 들어맞았던 거죠.
카페 게시글
홍콩할매의 속삭임
사람
처녀무당의 예언
호러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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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23:01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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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지말라고 알려준 거 다 했네.. ㅜ 속터져
하지말하는거 다 할거면 왜 간거야
속터짐
어휴ㅅㅂ 하지말란거 다 해 놓고
ㅠㅠㅠㅠ 아이고…
안믿어도 조심은 좀 해야할거 아냐... ㅠ
ㅠㅠ알려 줬으면 조심하제
헐 ㅠ 세상에 안타까워라
진짜 뭐하러갔어 말도안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