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3 -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상징 방돔광장을 보고 마들렌 교회에 가다!

6월 16일 렌 에서 파리 에 도착해 호텔을 정하고 팔레루아얄 Palais Royal을 거쳐 오페라
광장 (Place de l'Opéra) 에서 프랑스의 자존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오페라극장 을 뒤로 하고 강변쪽으로 걸어 3분만에 방돔 광장 Vendome Place 에
도착했는데 루이 14세의 기마상 을 세우기 위해 1,702년에 망사르의 설계로 조성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때 기마상은 파괴 되고 토지 주인의 이름 을 따서“방돔 광장”이라 불렸는데
광장 중앙에는 나폴레옹 의 1805년 "오스테를리츠 전투" 승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탑 은 오스트리아군으로 부터 빼앗은 1,250개 대포 를 녹여서 만들었다는데 탑 꼭대기
에는 역사의 한 페이지 를 장식한 권력의 상징을 나타내는 조각상 이 차례로 자리했습니다.


오스테를리츠 전투 는 1805년 벌어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의 전쟁으로 나폴레옹
3대 승전중에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나폴레옹 전략 전술의 빛 을 보여준 전투이니....
1804년 황제가 된 나폴레옹 에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는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 대항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승전 으로 신성로마제국은 해체 되었으며 황제 프란츠 2세 는
전후에 나폴레옹의 강요 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서 퇴위 를 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의 경우에는 배상금 지불과 영토 일부가 프랑스에 할양 되고
러시아군 의 경우는 특별히 나폴레옹의 배려 로 귀환 이 허용되었습니다.


기존의 신성로마제국 을 구성했던 수많은 독일 소국가 들은 나폴레옹의 주선
으로 "라인 연방" 을 구성해서는... 나폴레옹의 동맹국 이 되어 버립니다.

라인연방 결성으로 위기 를 느낀 프로이센 은 중립을 버리고 1806년에 프랑스에 선전포고
를 하지만 예나 전투에서 크게 패하니..... 이후 1,813년 까지 프랑스의 속국 이 됩니다.
그러니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지 지고서 "침략국이니 위안부" 니 하는건 딱한 모습이라?

다시 보노라니 기념탑 은 로마의 트라야누스 기념탑 를 본따 세운 것인데 기둥에는 나선형
으로 무늬가 나 있으니..... 조각가 베르제레 가 전투 장면 을 양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기념탑 을 만들 때에는 꼭대기에 나폴레옹 동상 을 세웠으나 실각한 후 앙리 4세
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다시 나폴레옹이 집권 하자 앙리 4세의 동상이 철거 되었습니다.

후에 루이 필립왕 에 의해서 다시 나폴레옹의 동상 이 세워졌는데, 1871년 파리코뮌
시기에 화가 쿠르베 의 주도로 기념탑은 파괴 되었지만 1874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오스터를리츠 전투 승전 기념탑 을 보노라니 문득 이 전투의 승전을 기념
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세운게 파리에 하나 더 있다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바로 상젤리제 거리 샤를 드골광장 에 세워진 개선문 Triumphal Arch 이니 광장의 12개
도로는 별 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에투알 (Etoilé, 별) 광장이라 불립니다.

높이 50m, 폭이 45m에 달하는 웅장한 크기의 백색문 은 오스터를리츠 전투 승전을 기념
하기 위해 황제 나폴레옹 의 명령으로 1806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836년에 완공됩니다.

나폴레옹 은 1821년에 세인트 헬레나섬 에서 죽었기로 준공식을 보지는 못했지만
유해 는 1840년에 개선문 아래를 지나 파리로 귀환해 앵발리드에 매장 되었습니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개선문 아래에 매장 되기도
했는데..... 개선문 은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을 본떠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개선문 을 세운건 로마인 들이었는데 전쟁에 이겨 새로운 땅을 정복한 황제와
장군 및 병사들이 개선문 아래로 행진 을 하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런 일 이었습니다.

개선문에는 부조 10개가 있으니 나폴레옹 승리를 모티프로 제작되었는데 프랑스 혁명에서
나폴레옹 시대에 걸친 "128번의 전쟁" 과 참전한 장군 558명 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프랑스혁명 이후 이 짧은 시기에 프랑스는 무려 128번의 전쟁을 치뤘다니.... 놀랍습니다!

4면에 새겨진 부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샹젤리제 거리와 마주해서 새겨진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이니, 1792년 4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 를 했을 때 의용군의 출정 을 나타낸 부조로 뤼드의 작품 입니다.

건설을 명한 나폴레옹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장례행렬 이 이 문을 지나갔고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유체 도 이 문 밑에서 하룻밤을 지샜다는데 개선문 위에
올라가면 파리 시가지 가 한눈에 들어오며 라 데팡스 (La Defense) 까지 볼수 있습니다.

예전에 여행시 우리 부부는 개선문 전망대 에 오른적이 있었는데.... 에펠탑,
사크레 쾨르 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 신개선문
그랑드 아르슈 가 보이고 나폴레옹과 위고의 장례식 사진 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 눈을 끄는 것은 개선문을 당당히 행진하는 동양병사들 이라!!! 일본군 병사
들이 왜??? 1차 세계대전 에서 일본은 영국, 프랑스, 미국과 같은 연합국 이었으며
그 전인 1900년에는 의화단의난을 진압한다며 청나라 수도 북경 을 공격한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8개국중에 하나인 일본은 대병력이라?

일본군은 전체병력 10만명 중에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으며 1905년 러일전쟁 은 일본은 영국,
미국과 동맹 을 맺어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고, 1918년 볼세비키혁명 을 이룬 러시아에
대해서 서쪽 유럽에서 러시아로 침략은 물론이고, 동쪽 시베리아 에서도 미국, 프랑스
영국 및 일본은 군대를 보내는데 3개국 1만 6천에 비해 일본은 7만 3천 대군을 파병 합니다.

저 일본군이 철수하다가 만주에서 우리 독립군과 전투를 벌인게 "청산리전투" 인데, 서전에
매복으로 승리 하지만 대군이 몰려오니 독립군은 쫃겨서 머너먼 러시아땅까지 도망쳤던
것이지요?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발표에 고무되어 3.1 독립만세운동 을 벌이지만...
일본은 승전국 이라? 전쟁에 이겼으면 영토가 늘어나야지, 뱉어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는데 여기 방돔광장 에는 음악가 쇼팽이 생을 마감했던 리츠파리
호텔 (Hotel Ritz Paris) 을 비롯 고급 호텔들과 명품상가에 유명한 보석상들이
커튼을 두르듯 광장을 에워싸고 있으니..... 파리에서도 대표적인 명품 거리 라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명품가를 기웃거리며 오른쪽인 서쪽으로 걸어 마들렌 교회 로 찾아가다가
분홍빛을 비롯한 "마카롱" 이 색색별로 진열된 가게 포숑 을 보는데... "색은
전부다. 색이 옳을때 형식도 옳다. 색은 모든 것 이며, 색은 음악과 같은 떨림 이다.

모든 것은 떨림 이다" 라고 색의 마술사 샤갈 은 말했듯이 과자 마카롱의 색은 독특한데
정동현 셰프 의 칼럼에 보면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 가
만든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 귀족들은 이 마카롱 을 입에 달고 사는걸로 나옵니다.

예전에 시칠리아 트라파니 인근 에리체 에서 먹어본 마카롱 은 분홍색으로 아몬드 가루와
아이싱슈거에 초콜릿으로 페이스트 를 만든후 머랭을 섞어 짠다음 오븐에 굽는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마들렌 교회 Église de la Madeleine 를 찾아가는데 저만치
우뚝 선 흰색 건물 은 그리스 신전 파르테논 을 연상 시킵니다!

여기 마들렌 교회 는 수많은 가톨릭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고대 그리스풍 의 외관을
지녔으니... 석조 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 이라 해도 좋을만큼 아름답습니다.

파리 한복판에 자리한 마들렌 교회 의 독특한 외관 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말하는데,
루이 15세 때인 1764년에 공사를 시작했으나.... 대혁명 시대에 중단 되었습니다.

1806년 그리스, 로마 세계에 심취해 있던 나폴레옹 은 프랑스군의 영광을 기리는 성당 을
세우기로 하고 기존의 건물을 모두 부수었으나 공사는 지지부진한채 나폴레옹도 실각합니다.


1814년 루이 18세 는 내부를 고쳐 가톨릭 교회로 할 것을 결정하지만
1837년에는 "파리 최초의 철도 역사" 가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기구한 운명에 종지부 를 찍고 낙성식 을 가진 것은 오를레앙공 루이 필립 이 통치하던
1842년의 일인데 교회 건물은 높이 20m 의 코린트 양식 원기둥 52개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정면 기둥을 받치는 거대한 벽 형태의 조각은 르메르 의 작품인
“최후의 심판”이고 외벽에는 성인의 조각상 이 늘어서 있습니다.


28개의 계단을 올라 입구에서 바라보는 경치 는 콩코르드 광장 을 사이에 두고 정면에는
부르봉 궁전이 대칭을 이루며 서있고 다른 방향으로 앵발리드 돔 까지 바라볼수 있습니다.


교회 내부 는 벽에 창이 없고 빛은 둥근 천장 3개를 통해서만 들어오기 때문에 상당히
어두운 편인데 제단 중앙에는 성 마들렌의 승천상 이 신비로운 분위기 를 자아냅니다.

또한 뤼드 의 작품 “그리스도 세례상”이 볼만하며 경건한 분위기 마저 느끼게하는데
해가 지고 나면 은은한 조명을 밝힌 야경이 운치를 더한다네요? 그러고는
마들렌 교회를 나와 걸어서 저만치 세느강변 에 보이는 콩코르드 광장 을 찾아 갑니다!

첫댓글 파리를 세번갔었지만 한번더 가보고싶습니다 파리는 볼곳이 많은곳이고 1주일을 가도 다보기힘들죠
그렇지요? 파리...... 지금은 갈수 없지만
언젠가는 좋은 시절이 다시 와서
예전 처럼 여행을 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즐감해요
몇번을 다시 가도......
질리지 않는 도시 파리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