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7. 왕인 벚꽃축제
2019. 4. 금계
4월 6일, 오늘은 모처럼 마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영암 구림리 왕인 박사 유적지 벚꽃축제를 구경 간다. 길가에 벚꽃들도 활짝 피었다.
뒤쪽에 울뚝불뚝한 월출산이 멋진 배경으로 서 있다.
영암 구림리, 인파가 몰려 행사장 부근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아예 행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다 주차하고 소풍 겸해서 걷기로 한다. 냇가에 핀 장다리꽃에 눈길을 준다. 벌 나비 찾아드는 장다리꽃은 봄의 대표선수다.
기와지붕을 인 정자가 참 운치 있어 보인다. 저 정자에 가까운 술벗들이 모여 권커니 자커니 꽃놀이라도 즐겼으면 참 좋겄다.
구림리에는 참 멋들어진 기와집도 많다. 마당으로 건너가는 돌다리도 정겹다.
이 경치를 보니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토록 장중하고 아늑하고 정갈한 기와집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끝나는구나.
왕인 박사 유적지로 들어가는 행사장 입구. 차량들이 미어터진다.
멀리 월출산의 뾰족 바위들이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민속놀이마당에 흩어진 현대판 제기들. 나 어렸을 적에는 저런 비닐 말고 엽전 구멍 에다가 미농지나 인찰지 따위의 얇은 종이를 밀어 넣어서 좍좍 찢어가지고 어렵사리 제기를 만들었다. 오십 번이고 백 번이고 허벅지가 뻐근할 때까지, 제기가 엉뚱한 곳으로 도망갈 때까지 집요하게 제기를 찼다. 내가 칠십 넘을 때까지 체력을 유지한 비결은 상당 부분 제기 덕분이라 할 수 있겠지.
요즘 아그들아! 핸드폰 자판만 두들기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제기를 차거라. 제발!
어렸을 적에는 왜 애드벌룬만 보면 가슴이 설렜을까. 아니 지금도 애드벌룬을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철없기로는 일곱 살 때나 일흔 살 때나 똑같다.
만약 나한테 앞으로 눈 먼 돈이 생긴다면 이렇게 회랑이 길게 늘어진 대저택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술벗들을 초대하여 잔디밭에 앉아 잔치판을 벌이고 싶다.
용솟음치는 분수는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공중으로 내뿜게 해준다.
인생의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지 말라. 이렇게 자식 손주 새끼들 손잡고 벚꽃 활짝 핀 잔치마당에 나와 눈부신 햇살, 볼을 어루만지는 산들바람 속을 거닐다가 둘레둘레 둘러앉아 하찮은 음식나부랭이라도 함께 쪼작거리는 시간이 소소한 행복 아니고 뭐겠는가.
검정색 승용차는 많이 봤어도 검정색 버스는 처음인 듯하다. 허 거 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색깔도 저렇게 산뜻하고 멋져 보일 수 있는갑구나.
붉은색 바탕에다가 용도 같고 해마도 닮은 그림들이 즐비하다. 거 참, 화려 무쌍하고 현란하고 용감하기도 하고 망측하기도 하여라.
다른 바비큐들은 거무스름하고 먹음직스럽기도 하더니 이 바비큐는 엉덩이 쪽이 좀 볼썽사납다.
잔치판에 먹거리가 빠질 수는 없다. 그러나 불로초를 찾은 진시황보다 더 오래 살면서 진시황 때는 구경할 수도 없었던 온갖 기기묘묘한 산해진미를 다 먹어본 우리 부부는 식당에 들를 생각도 없어 겨우 집에서 가져온 떡쪼가리로 요기를 하다 말았다.
거창한 이층누각 영월관 앞에 영암 특산품 선전 현수막.
- 영암 무화과, 영암 배, 영암 달마지쌀골드.
포장마차마다 빼곡히 들이찬 식객들.
파라솔 밑에서도 바글바글.
벚꽃 아래 개나리꽃.
놀이기구 모형자동차.
영화 ‘서편제’로 일약 스타덤에 도른 오정해가 축제 마당에서 창을 하고 있다. 나는 그미가 목포 정명여고 출신이라 더 정이 가기도 하지만 특히 요즘 흔해빠진 쌍까풀이 아니라 외까풀이라서 더 동양적으로 느껴지는 미모를 사랑한다.
이번 왕인 벚꽃축제에서 전형적인 한국 미녀 오정해의 자태를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오정해의 열창에 빠져들었다.
무대 아래서는 영암 ‘들노래’ 공연단이 오정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왕인 박사는 백제 14대 근구수왕(375-384년) 때 영암군 동구림리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8세 때 문산재 입문.
18세 때 오경박사에 등용.
32세 때 일본국 초청으로 도일.
일본 비조(飛鳥-아스카) 문화의 원조.
일본 태자 (토도치랑자)의 사부.
정치 고문으로 논어, 천자문 등 전수. 글과 문장 학문의 스승.
기술, 공예, 가요의 창시 등 일본 문화 원조로 추앙.
묘역 : 일본 대판부 매방시 소재. 사적 13호.
좀 더 들어가면 정자 망우정(忘憂亭)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들 둘과 손잡고 거닐고 있다. 참 부러워 보인다. 저 때가 모자간에 일생 중 가장 좋을 땐디.......
여기가 사진 찍기의 가장 명소다.
그래도 멋진 곳 왔으니까 사진 한 장은 남겨야제.
이렇게 사람 많이 구경한 것이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인산인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 어림짐작으로는 5만에서 10만 명은 될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보다 사람인형이 더 생색이 나고 잔치 분위기를 띄워준다.
너는 참 좋겄다. 니기 아부지 머리 움켜쥐고 목말도 타보고.......
우리 아부지는 나 목말 태워주셨을까. 아마 틀림없이 태워주셨을 거야.
나는 우리 아이들 목말 몇 번이나 태워줬을까. 거 참 아리송하네.
벚꽃 로드 낭만 열차투어. 이 오색찬란한 꼬마열차는 벚꽃 행사장뿐 아니라 구림리 일대를 뱅뱅 갈고 돌아다닌다. 동화의 나라에 온 듯 내 마음까지 즐겁기 한량없다.
영암 군립 하정웅미술관 마당의 춤추는 조각상.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신명이 난다.
어 참, 오늘 구경 한 번 잘 했다. 하느님, 오늘 또 하루 저희 부부한테 기꺼운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