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배기 딸, 두살배기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스카 시대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일본편 2번째 이야기는
아스카와 나라 지역이란다.
일본 지도에서 한번 찾아봤어.
지난 1권에서 이야기한 규슈 지방에서 동경까지 가는 길의
딱 중간 정도 위치한 지역이구나.
아스카, 나라..
이것은 일단 무척 익숙한 말인듯해.
특히 아스카는 고대 아스카 문화라는 말로 들었지.
우리나라의 문화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말과 함께....
그래.. 아스카는 도래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어.
도래인이란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백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아스카 지방이래.
아스카에 가면 우리나라의 부여와 아주 비슷한 풍경을 가졌다고 하는구나.
일본 고대사 중에 아스카 시대란 것이 있어..
552년부터 대략 710년까지를 이야기한다고 하는구나.
당시 스이코 여왕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쇼토쿠 태자가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백제계 도래인 소가씨 일족이 같이 권력을 잡고 있었대.
소가씨는 4대에 걸쳐 100여년 동안 권력을 잡았다는구나.
그러다가 710년경 정권을 잡은 야마토 정권이 나라로 천도하면서
아스카 시대는 막을 내렸대.
아스카 시대를 열었던 쇼토쿠 태자.
그는 왜 끝까지 태자로 부르냐면 44살의 적은 나이에 죽었는데,
권력은 잡았지만, 죽을 때까지 태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태자로 부른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쇼토쿠 태자와 함께 권력을 잡았던 백제계 도래인.
당시에 아스카 지방에는 도래인들이 많았대.
백제, 가야에서 온 난민들과
아직기, 왕인 박사처럼 문명의 전도사들도 있었다는구나.
도래인들은 고도의 선진 문명과 기술을 갖고 있어서
일본 본토 사람들도 그를 받아주었다고 하는구나.
그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에도 철기문화가 정착하게 되었고, 도기를 만들게 되었데.
백제와 친하던 왜는 백제에게 학자들을 요청했고,
근초고왕은 아직기와 왕인을 보냈대.
그들은 말과 한자를 일본에 전했고, 왕인은 태자의 스승이 되기도 했어.
1. 아스카 문화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와 유적지를 살펴보았어.
고분으로는 전방후원분이라는 일본 특유의 고분양식이 있었어.
일단 크기가 엄청나더구나.
이것도 예전에 최인호의 소설에서 본 내용인 듯 하구나.
이 고분양식이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일부 우리나라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지은이 유홍준은 그것은 분명 일본 고유의 고분 양식이라고 하는구나.
그런 전방후원분 양식의 무덤 중 닌토쿠릉이라는 절이 있는데,
크기로 세계 3대 능묘에 뽑힌다고 하는구나.
...
백제 외에 가야인들이 그들의 철기문화를 가지고 일본에 오기도 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가야의 역사를 되살펴보는 가야문화전이 열기도 했다는구나.
정작 우리나라에는 안열리는 말이다. 창피할 일이구나.
...
다카마쓰 고분 벽화가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풍과 당나라풍이 섞여 있대.
...
일본이 역사 왜곡이나 과거사에 대한 부족한 사과로 인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일본의 문화 유산 보전 태도는 우리나라가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일본은 주차장을 최대한 멀리하여 유적을 원형 그대로 보관하려고 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접근성을 중점을 두어 유적지 바로 옆에 주차장인 경우가 많다는구나.
그리고 일본의 안내판은 아주 간결하게 적어서
유적에 시설물이나 기구물을 최소화한다고 하는구나.
....
아스카 문화를 이끌었던 도래인의 고향 히노쿠마에서 여러 유적들을 설명해주었고,
석무대라는 묘지에 대해 이야기했어.
석무대는 돌 하나가 75톤이나 되는 돌 2개로 이루어진 무덤이야.
소가노 우마코라는 도래인이자 아스카 시대의 권력의 실세가 있었는데,
석무대는 그 사람의 묘지라는구나.
소구나 우마코란 사람을 이야기하자면,
아스카 시대에 도래인과 쇼토쿠 태자가 권력을 잡게된 경유를 이야기해야겠구나.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도 이때 아스카 시대였어.
불교가 전래되면서 일본 내에서도 불교를 숭상하자고 하는 숭불파와 불교를 배척하려는 배불파로 나뉘어
갈등이 심했다고 하는구나.
숭불파는 도래인계 소가노 우마코와 쇼토쿠 태자가 있었고,
배불파에는 야마토 최고집정관인 모노노베씨와 토착세력이 있었어.
이들의 싸움은 숭불파의 승리로 끝났고,
그로 인해 숭불파를 이끌었던 소가노 우마코가 권력의 실세가 되었대.
그리고 쇼토쿠 태자와 함께 사천왕사라는 절을 지었대.
그 소가노 우마코는 당시 왕이었던 스슌왕을 암살이고,
스이코 여왕을 옹립했대..
그리고 스이코 여왕은 쇼토쿠 태자에게 섭정을 시켰대. 당시 쇼토쿠 태자의 나이는 20세였대.
스이코 여왕의 엄마도 소가씨이고, 쇼토쿠 태자의 엄마는 소가씨였어.
자연히 소가씨가 권력을 잡게 되었지...
그리고 그 소가씨는 바로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이었던거야.
그런데, 아직 일본에서는 이 소가씨를 도래인이라고 하지 않고 있대.
고대시대 한시대를 풍미했던 권력가가 우리나라에거 건너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지.
...
소가씨와 함께 정권을 잡은 쇼토쿠 태자.
그는 야마토 정권 섭정 이후 고대국가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고구려 스님 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교를 보급하는데 힘썼고,
처음으로 일본이라는 말을 사용했대.
최근까지 고액 화폐의 모델이었다고 하는구나.
2. 아스카 시대의 종말
불교가 전래되면서 절들이 많이 세워졌대.
유명한 절들을 답사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에 법흥사라고도 부르는 아스카사는 백제 기술자에 의해 만든 절이래.
아까 이야기한 소가노 우마코가 발원한 씨사(氏寺)라고 하는구나.
사방이 200미터나 된대.
당시 불교 전파의 핵심이 된 절이래.
그런데 1탑 3금당식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식 가람 배치라는구나.
백제 기술자가 만든 절인데 고구려 양식이라니..
좀 이상하지?
그것은 고구려 혜자스님이 나중에 바꾼 것으로 추정하더구나.
이 절에서 쇼토쿠 태자는 신분에 구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법회 참여를 기회를 주었대.
이 절에는 도리 불사가 제작한 아스카 대불이 있대.
....
그리고 쇼토쿠 태자자가 이 법흥사에 필적할 만한 절을 짓고
흥할 것을 기원하며 법륭사라는 절을 지었어.
지금의 법륭사가 재건된 절인지 재건되지 않은 절인지 논쟁이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일단 710년경에 재건한 절로 판단된대.
법륭사에도 많은 유적들이 있는데,
미학자답게 지은이는 전문적인 평가와 설명을 해 줬어.
이런 절에는 불상이 있는데,
일본 불상은 두가지 양식이 있다고 하는구나.
도래양식과 도리양식이야.
도래 양식은 한반도에서 가져왔거나 우리나라 양식에 충실히 따라서 제작한 것이고,
도리 양식은 불상의 명장이었던 도리가
우리나라 불상의 모방을 넘어 독창적인 일본표 불상을 만든 것이야.
....
그런데 소가씨의 권력도 오래가지 못했다는구나.
우마코가 죽고 난 이후 후손들이 전횡이 심했대...
그래서 결국 반대파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고 그랬대.
그렇게 소가씨의 권력이 무너진 뒤 아스카 시대는 막을 내렸대.
3. 나라
나라의 유적지도 많이 설명해 주었는데,
아빠가 메모를 적게 해서...
메모를 해 둔 것만 이야기해 줄께.
더 알고 싶다면 이담에 커서 책을 직접 보길...
....
아스카 시대가 끝나고,
야마토 정권이 옮긴 수도가 바로 나라야.
일본의 절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 시내한복판의 평지 사찰이 대부분인데,
실생사라는 산사가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평지 사찰인 정유거사, 암선자 등 사찰 탐방이 이어졌어.
절 안의 정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을 비교 설명해 주었고....
핵심은 그거야. 일본은 인공적인 맛이 있고, 한국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중시한다고.
나라가 수도로 있었을 때 사용한 궁궐은 헤이조궁이었데.
...
나라에 덴리도서관이란 것이 있는데...
이 도서관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화가 안견의 아주 유명한 그림 <몽유도원도>를 보장하고 있대.
몽유도원도.
안견이 그리고
안평대군은 발문을 쓰고,
박팽년 등 21명의 명사들이 찬시를 지은, 그야말로 명작이야.
이런 우리 문화 유산이 일본에 있는 것이 아쉽기도 하더구나.
....
그리고 나라 지역에 있는 야마토 문학관에서
1978년 <고려불화 특별전>을 개최했대.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열린 우리나라 옛 나라인 고려의 불화에 대한 전시회를 했다니...
암튼, 이 전시회 이후 고려불화는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장르가 되었대..
..
일본에서 불교가 계속 번창한 것은 아니야.
불교를 억압하던 시절이 있었어.
그것은 바로 19세기 메이지 유신때란다.
메이지 유신의 신정부는 불교와 일본 민족종교인 신도를 분리하는 신불분리정책을 펴면서
불교를 철저히 배척했어.
이때 불상, 불경, 불구등을 파괴했어.
절에 불을 지르기도 했대.
실제로 이때 불에 탄 절들이 많았대.
스님들은 숫자가 줄고, 빈 사찰도 늘어만 갔다고 하는구나.
그때 피해를 입은 뒤 나중에 재건한 흥복사와 동대사를 답사하고
그곳에 있는 유적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단다.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1,2권을 연이어 읽었지만,
1권을 읽고 쓴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속된 말로 땡기지는 않는구나.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경우는
아빠가 다녀온 곳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아빠가 가지 못한 곳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
일본편은 그런 것은 없더구나.
다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이고,
직접 보지 않고 사진으로만 보기 때문인지 큰 감흥도 없고...
암튼, 그랬어...
책제목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 나라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페이지 : 323 page
펴낸날 : 2013년 07월 25일
책정가 : 16,500원
읽은날 : 2013.09.26~2013.09.30
글쓴날 : 2013.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