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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비유 (눅 18:1-8) 26. 8. 9
|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과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아멘. |
[서 론]
할렐루야! 오늘 복된 자리에 잘 오셨습니다. 옆 사람과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또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은 <과부의 비유>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과부의 비유’ 1절에 보면 ‘비유’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 18;1) 예수님은 어떤 비유를 말씀하셨습니까? 억울한 <과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3절을 읽어볼까요?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눅 18:3)
이 비유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 도시에 불의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 과부가 그 재판장을 찾아가 자기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의한 재판장은 빽없는 그 과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자주 찾아가서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불의한 재판장은 마침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지만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5절) 비록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그 과부의 끈질긴 간청 때문에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교훈을 주고자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자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1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 18:1) 또 7-8절을 읽어볼까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7-8절)]
그래서 이 시간에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론]
1. 기도와 신앙
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기도는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도교' 이며, 교회는 '기도집' 이고, 성도는 '기도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들은 기도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성전(교회)을 가리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막 11:17)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신자들은 교회 마당만 밟고 가는 '발 신자' 나, 의자에 앉았다가 가는 '엉덩이 신자' 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무릎 신자' 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삼상 12:23) 왜 기도하지 않은 것이 죄가 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내 힘과 내 방법과 내 뜻대로 살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요? 기도가 없는 신앙은 무기력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뜨겁지 못하고, 미지근합니다. 신앙의 활기도 없습니다. 억지로 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잘 빠집니다. 또한 사소한 일에도 오해하고, 분노하고, 실망합니다.
성경은 기도를 ‘향’이라고 부릅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면 천사가 우리의 기도의 향연을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갑니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4)
기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기도의 능력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방해를 합니다. 마귀는 ‘기도없는 성경공부, 기도없는 봉사, 기도없는 예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오직 기도하는 자를 두려워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그의 귀를 기울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귀를 기울인다는 말은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갖기 원한다면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을 생각지 마라. 하나님은 당신을 기도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그러기에 기도가 없는 신앙은 무기력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공격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기에 참된 성도는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 기도할 이유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사실 사람은 하루 후의 일, 아니 한 시간 후의 일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 나의 건강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내일 나의 사업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내일 나의 직장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내일 나의 자녀가 어찌 될지 모릅니다. 내일 나의 재물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와 사건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그들에게 닥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이야기를 보십시오, .
[한 마을에 큰 부자 농부가 있었습니다. 몇 년째 계속 풍년이 들자 그 부자는 창고를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그 창고에 쌓아두고 이제부터는 편안히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
그러자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 영혼(생명)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하나님이 그날 밤에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면 그가 쌓은 모든 물건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부자는 자기 생명이 그날 밤에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 수 있습니까? 내일도 오늘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내일 나에게,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재물에, 내 건강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힘과 지혜만 믿고 가다가는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모릅니다.
②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차라니 내 주먹을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자기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됩니까? 내 사업이, 내 직장이, 내 건강이, 내 자녀가 내 뜻대로 됩니까? 돈으로 다 해결됩니까?
이 세상에는 내 힘과 지혜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홍해 바다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 그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또 암몬과 모압 연합군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 그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또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문제들이 기도할 때 놀랍게 해결되었습니다. 곧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홍해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기도하였더니 적 연합군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였더니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어져 베드로가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이유는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러니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는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불평 할 때가 많습니다.
③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성도는 자기(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중의 하나는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 곧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할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을지라도 우리는 가만히 있지 말고 그렇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
또한 세상의 마지막(종말)이 가까울수록 우리가 힘써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마지막 때가 될수록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런저런 이유와 변명으로 기도하기를 힘쓰지 않으면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오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기도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기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이나의 마음속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기도라는 것을 알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도록 하십시다.
3. 기도 방법
① 항상(=습관) 기도해야 합니다.
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1절) 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항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24시간 동안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처럼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같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음식을 먹어야 하지만 24시간 동안 계속 먹지는 않습니다. 매일 2-3번 정도 음식을 습관처럼 먹습니다. 빼먹지 않습니다. 매일 음식을 먹는 것이 습관입니다.
그처럼 기도도 항상, 곧 습관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루 24시간 내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눅 22:39-41) 곧 예수님은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매일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본이 되는 신앙인은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3번씩 기도하였고, <다윗>도 매일 기도하였고, <고넬로>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고, <바울>도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습관처럼 항상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생각나면 기도하고,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합니까? 기도는 매일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매일 기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②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한다고 했습니까? ‘밤낮 부르짖어’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밤낮 부르짖는다’라는 무슨 뜻입니까?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함이 없다면 어찌 밤낮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밤낮 부르짖게 됩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불교처럼 명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 5:7)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통곡과 눈물’로써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묵상기도 정도로 하고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내가 구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③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적은 ‘낙심’이라고 합니다. 낙심은 기대, 곧 소망을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낙심은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낙심하면 더 이상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고, 기도를 포기하게 됩니다.
[어느날 사단이 자기 부하 악령들과 함께 신자들을 공격하는 무기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무기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어떤 한 무기 앞에는 제일 비싼 가격표가 붙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악령들이 대장 마귀에게 물었습니다. ‘이 무기는 다른 것에 비해 크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까?’ 그러자 마귀가 대답했습니다. ‘이 무기는 백발백중 넘어지게 하는 아주 중요한 무기지.’ 그 무기는 바로 ‘낙심’이라는 무기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11)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하는 모습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으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을 심고 금방 열매가 맺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고 인내로서 오래 기다립니다. 그리하면 때가 되면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됩니다. 그처럼 기도도 조급함을 버리고 낙심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매일 습관처럼 기도하면 그 기도의 열매를 풍성히 거둘 때가 옵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다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여 기도를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끈기와 인내를 갖고 기도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면 응답받을 때가 옵니다.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결 론]
성도 여러분, 기도와 신앙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경에는 기도에 대한 말과 기도에 대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도생활을 항상 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토록 기도하리라.”(시 116:2) ‘평생토록 기도하리라.’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신앙의 고백입니까? 이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평생토록 기도하는 용사가 되십시다.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수없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기도한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습관처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는 조급하여 낙심하지 말고 끈기를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향’이라고 했습니다. 곧 우리가 기도할 때 천사가 나의 기도의 향연을 갖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천사의 손을 통해 날마다 하늘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습관처럼 매일, 또 끈기를 갖고 기도하셔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