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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小國) 일본(日本), 왜(倭)를 병합(倂合)하다 [제2편]
2023년 01월 01일
○ 오늘의 ‘일본(日本)’을 보면 : 오키나와[Okinawa] 및 북해도(北海島) 원주민(原住民)들을 제외(除外)한 일반(一般) 국민(國民)들을 대상(對象)으로 한 유전자(遺傳子) 검사(檢査) 결과(結果)를 보면 : 그 결과(結果)에 대해,
“일본인(日本人)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유전자(遺傳子)를 가지고 있는 쪽이 “한국인(韓國人)”들이기 때문이다. 〈즉(卽) 한국인(韓國人)과 똑같은 유전자(遺傳子)를 가진 일본(日本) 국민(國民)들이 많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
일본인(日本人) 중에서 “남방(南方)계는 그 면모(面貌)가 확연(確然)하게 구별(區別)이 되는데, 가장 많은 국민(國民)들이 이쪽에 속한다. 또한 한국인(韓國人)과 거의 똑같은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또렷하고 훤칠한 면모(面貌)를 가진 국민(國民)들 또한 금방 찾을 수 있으며,
거기다가 오키나와[Okinawa] 및 북해도(北海島) 원주민(原住民)이나 그들과의 혼혈인(混血人) 또한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며, 구별(區別)이 된다.
○ “한국(韓國)과 일본(日本)이 앙숙(怏宿)이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는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와 불가결(不可缺)한 관계(關係)에 있었다는 것을 미뤄 짐작(斟酌)이 되는데, 이는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이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번국(蕃國)으로 노역(奴役)을 담당(擔當)했다”』는 것과 깊은 관계(關係)가 있다고 본다.
➤ 반도(半島) 땅에 존재(存在)하고 있는 “토착(土着) 왜노(倭奴)”와 “친일(親日)을 빙자(憑藉)한 매국(賣國)친일파(親日派)”들에게는 악몽(惡夢) 같은 이야기다.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의 천황기(天皇紀)는 본래(本來)부터 없었다.』는 확실(確實)한 증거(證據)들이다. “무슨 얼어 죽을 천황기(天皇紀)인가. 남만(南蠻) 오랑캐가 말이다.”
원전(原典)의 기록(記錄)을 따라가 보면 : 『“왜노(倭奴)”와 “일본(日本)”』 의 진면목(眞面目)을 찾을 수 있다. ≪문제(問題)는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다수(大多數) 국민(國民)들은,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은 오늘날의 열도(列島)에 있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부정(否定)한다거나 의심(疑心)을 갖는 행위(行爲)는, 곧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 또는 민족주의자(民族主義者)’로 여기며, 매도(罵倒)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위(行爲)를 한다.』는 사실(事實)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위(行爲)는 “오늘의 정권(政權)” 역시(亦是) 똑같은 짓을 생각도 없이 하고 있다. 오늘의 정권(政權)은 사고(思考)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무능력(無能力), 무지(無智), 무책임(無責任)이 판을 치는 정치(政治) 아닌 사치(私治)를 하고 있는 중이시다.
● “진정(眞正)한 영웅(英雄)”은, 『전쟁(戰爭)의 참상(慘狀)을 막는 자(者)다. 즉 국가(國家)간의 전쟁(戰爭)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狀況)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자(者)를 “영웅(英雄)”』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쟁(戰爭)을 일으키는 자(者), 또는 그것을 막지 못하는 자(者), 모두는 무능력(無能力)하고, 무책임(無責任)한 놈이고, 무식(無識), 무지(無智), 무지(無知)한 자(者)다. 그저 용감(勇敢)한 것으로 착각(錯覺)하는 ‘머저리’ 지도자(指導者)도 있다.
그래서 옛 부터 “무식(無識)하면 용감(勇敢)하다”는 말이 회자(膾炙)된 것이다. 왜(倭)는?
(16) 宋史 日本國 :
《日本國者,本倭奴國也。自以其國近日所出,故以日本爲名;或云惡其舊名改之也。: 일본국(日本國)은 본시(本是) 왜노국(倭奴國)이다. 그 나라 가까이에서 해가 나오는 바, 고로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혹은 전하기를 구명(舊名)이 나빠 고친 것이다. 其地東西南北各數千里,西南至海,東北隅隔以大山,山外即毛人國。畜有水牛、驢、羊,多犀、象。: 그 땅은 동서남북(東西南北) 각 수천리(數千里)로, 서(西)쪽과 남(南)쪽은 바다에 이르고, 동(東)쪽과 북(北)쪽 모퉁이는 큰 산에 막혔는데, 산(山) 밖으로는 곧 모인국(毛人國)이다. 물산(物産)으로 물소(水牛), 나귀(驢), 양(羊)과 많은 무소(犀 : 코뿔소)와 코끼리(象)가 있다.》
➊ 『“일본(日本)은 본래(本來) 왜노국(倭奴國)이었다. 그 땅은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 수천리(數千里)로, 서(西)쪽과 남(南)쪽은 바다에 이르고, 동(東)쪽과 북(北)쪽 모퉁이는 큰 산에 막혔다』고 하였으니, 〈오늘날의 열도 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➋ ‘물산(物産)’ 편을 보면 : 『물소(水牛), 나귀(驢), 양(羊)과 많은 무소(犀 : 코뿔소)와 코끼리(象)가 있다.』고 하였는데, 아래의 (五)에 “물소(水牛). 무소(犀 : 코뿔소). 코끼리(象)”에 대한 설명(說明)이 있다.
○ 위의 글 “제1편에서 2편”까지【(1)∼(16)】의 사서(史書) 기록(記錄)에서 말하는 ‘왜(倭) 또는 일본(日本)’에 대한 그 지리적(地理的) 특징(特徵)·위치(位置), 지세(地勢), 기후(氣候), 특이(特異) 물산(物産)을 보면 :
㈠ 《한(韓) 즉 한국(韓國)의 동남대해 중(東南大海 中) … 낙랑(樂浪)의 해중(海中) …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해중(海中) 1만 2천리(千里) … 고려(高驪) 동남(東南) 대해(大海) 중(中) …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 수륙(水陸) 3천리의 대해(大海) 중(中) … 신라(新羅) 동남(東南) 대해(大海) 중(中) 1만 4천리》등등이다.
‘왜(倭)’는, “한국(韓國) 또는 고려[高驪 : 高駒驪], 백제(百濟), 신라(新羅)의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다. ➨ 여기서 ‘한(韓)’이 ‘한국(韓國)’이든 ‘삼한(三韓)’이든 이들 ‘한(韓)’은 ‘구이(九夷)’로써, 성탕(成湯 : 夏) 이전(以前)에도 “대륙(大陸)의 토착민(土着民)”이었다는 사실(史實)이므로, 반도(半島)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낙랑(樂浪)의 해중(海中)”이란 어디를 뜻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한(韓)의 바다(海)’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㈡ 《낙랑군(樂浪郡)·대방군(帶方郡)으로부터 1만 2천리 … 서남(西南) 대해(大海) 중(中) … 경(京)에서 1만3천5백리 … 경(京)에서 1만4천리 … 요동(遼東) 1만2천리,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등등
낙랑군(樂浪郡)이든, 대방군(帶方郡)이든, 또는 서울(京)이든 간에, “1만 2천리, 1만3천5백리, 1만4천리”라는 거리는, 반도(半島) 땅과 열도(列島) 땅과는 관계(關係)없는 이야기다.
특히 ‘괄지지(括地志)’에서, “서남(西南) 대해(大海) 중(中)” 또는 “서울(京)의 남쪽으로 1만 3천 5백리”란 말은, 곧 “남(南) 아세아(亞細亞)의 극지방(極地方)”을 말하는 것으로, “낙랑군(樂浪郡) 변방(邊方)에서 1만 2천리를 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설명(說明)은, 『왜(倭) 사신(使臣) 스스로 말하기를 : 극남(極南) 지경(地境)에 있습니다[極 南 界 也]』 라고 한 말이 이를 증명(證明)한다.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을, “극남(極南) 지경(地境)에 있습니다[極 南 界 也]” 라고 한다면, 누구(?)와 같이 비웃음당할 일만 남아있는 ‘무능력(無能力), 무책임(無責任)한 머저리, 멍청이’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괄지지(括地志)”에서 말하는 바, 서남대해(西南大海)와 서울(京)에서 1만3천5백리를 간다는 말에 주목(注目)하자. 여기에 ‘왜노국(倭奴國)’이 있었던 곳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때의 ‘낙랑군(樂浪郡)이니, 대방군(帶方郡)’이니 하면서 기준(基準)하고 있는 땅은, 바로 ‘경사(京師)=경조(京兆)’를 대표(代表)하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거리(距離)를 기준(基準)하는 중심(中心)은, “서울(京)=황성(皇城)=황도(皇都)”였기 때문이다.
특히 요동(遼東)에서 ‘1만 2천리’인데, 백제(百濟)와 신라(新羅)의 동남(東南)쪽에 있다는 말은, “요동(遼東)은 곧 서북(西北)쪽에 땅에 있었다.”는 뜻이고 그로부터 1만 2천리이고,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는 요동(遼東)의 동남(東南)쪽에 있었다는 뜻이다.
㈢ 《회계(會稽)·민천(閩川)의 동(東), 또한 주애(朱崖), 담이(儋耳)와 가깝다.》
『전한서(前漢書) 무제기(武帝紀) 중의 주석(註釋)』편을 보면 : 《응소(應召)가 이르기를, 담이(儋耳)와 주애(朱崖) 2군(郡)은, 애안(崖岸)의 가장자리로, 진주(珍珠)가 나오는데, 주애(朱崖), 담이(儋耳)라고 일렀다. 장안(張晏)이 이르기를, 이물지(利物志)에서 2군(郡)은 바다 가운데 있는데, 동서(東西)가 천리(千里), 남북(南北)이 5백리다. 신(臣) 찬(瓚)이 이르기를 : 무릉서(武陵書)에, 주애군(珠崖郡)은 심도[瞫都 : 경주(瓊州)]에서 다스리는데, 장안(長安)까지 7,314리이다. 담이(儋耳)는 장안(長安)에서 7,368리이며, 현(縣)이 5개이다. 漢書卷六.武帝紀第六〔五〕應劭曰:二郡在大海中崖岸之邊.出真珠,故曰珠崖.張晏曰:異物志二郡在海中,東西千里,南北五百里.臣瓚曰:茂陵書珠崖郡治瞫都,去長安七千三百一十四里.儋耳去長安七千三百六十八里,領縣五.》
➨➨➨ “7000 리”라는 말은 곧 ‘2,500∼2,800km’ 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날의 해남도(海南島) 경주(瓊州)는, 경(京 :長安)으로부터 겨우 1,600 km 떨어져 있을 뿐이다. 겨우 절반(折半)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7,300 리 또는 7,400 리’를 가려면 오늘날의 베트남[Vietnam] 최(最) 남단(南端) 서(西)쪽 끝 지방이다.【메콩강(Mekong, 江) 삼각주(三角洲) 남단(南端)】
이러한 거리(距離) 개념(槪念)으로 보면 : ‘주애(朱崖)와 담이(儋耳)’는, 해남도(海南島)와는 전혀 관계없는 오늘날의 “베트남[Vietnam] 최(最) 남단(南端) 서(西)쪽 끝 지방”이다.【메콩강(Mekong, 江) 삼각주(三角洲) 남단(南端)】
➤➤➤ 위의 글 (15)【제1편】 통전(通典) 설명(說明) 중에서 : ➋ ‘요동(遼東)’【⒜ 오늘날의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 중심(中心)으로 보면】에서 1만 2천리(千里)는, “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이건 장안(長安)에서 7,000 여리(餘里)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땅을 가리킨다.
➌ ‘요동(遼東)’【⒝ 카자흐스탄의 재상박(宰桑泊)=기태호(基台湖)=자이산호(湖) 동변(東邊)】에서 동남(東南) 1만 2천리는, “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이건 장안(長安)에서 7,000 여리(餘里)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땅을 가리킨다.
위의 글 “➋+➌”에서, 『요동(遼東)【⒜ 요동(遼東) ⒝ 요동(遼東)】에서 ‘1만 2천리(千里)’가 가리키는 곳은 똑같은 곳을 나타낸다. 또 무릉서(武陵書)에서 말하는 장안(長安)에서 7,314리, 7,368리【茂陵書珠崖郡治瞫都,去長安七千三百一十四里.儋耳去長安七千三百六十八里,領縣五】를 가리는 곳 역시 똑같은 곳이다.【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이게 정말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 수 있을까?
㈣ 《땅은 온난(溫暖)하여 겨울에도 생채(生菜)를 먹을 수 있다. 그 나라는 동서남북(東西南北) 수천(數千)리이다. 물산(物産) : 담이(儋耳)와 주애(朱崖)와 같다.》
위와 같은 거리(距離) 개념(槪念)으로 보면 : “주애(朱崖)와 담이(儋耳)”는, 해남도(海南島)와는 전혀 관계없는 ➀ 첫 번째는 : 오늘날의 “베트남[Vietnam] 최(最) 남단(南端) 서(西)쪽 끝 지방”이다.【메콩강(Mekong, 江) 삼각주(三角洲) 남단(南端)】 ➁ 두 번째는 : 오늘날의 필리핀[Philippines]의 루손섬[(타갈로그어: Luzon)]과 민다나오[Mindanao]섬이 해당(該當)된다.
물론(勿論) 이곳 땅은 ‘아열대성(亞熱帶性) 기후대(氣候帶)’다.
㈤ 《물산(物産) : 물소(水牛), 나귀(驢), 양(羊)과 무소(犀: 코뿔소), 코끼리(象)가 많다.》고 하였는데, 이는 송사(宋史)에서 말하고 있는 바다. 즉(卽),
송사(宋史) : 宋[960年-1279年]의 역사서(歷史書)로, 원(元) 승상(丞相) 탈탈(脫脫)에 의해 요사(遼史)·금사(金史)와 함께 “1345년 10월” 496권이 완성(完城)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원(元) 조정(朝廷)은 당시(當時)의 왜(倭) 또는 일본(日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처지(處地)에 있었던 자(者)들이다. 토산물(土産物)은,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이 될 수 없다.
➤ 임진왜란(壬辰倭亂)【선조(宣祖) 25년(1592) … 31년(1598)】이 일어나기 “240 여년(餘年) 전(前)”에 송사(宋史)가 완성(完城)되었다는 것이다. 이때의 왜(倭)와 조선(朝鮮)은 어디에 있었는가는 아래의 물산(物産)과도 깊은 관계(關係)에 있을 것이다.
➊ 물소(水牛)[지식백과] : 원산지(原産地)는 ‘인도, 아프리카’ 미얀마·타이·필리핀·중국·대만 등지에 분포
※ 물소(水牛)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➋ 코뿔소(무소 :犀) / [지식백과] : 『아프리카 동부·남부, 아시아의 열대지역에 서식한다. 대부분의 코뿔소들은 광활한 초원, 사바나, 관목 숲 또는 늪에서 단독으로 생활하는데, 수마트라코뿔소는 현재 숲 속 깊은 곳에서만 발견된다.』 [네이버 두산백과] / 『수마트라섬, 자바섬, 보르네오섬, 인도 및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사바나 지방』
※ 코뿔소(犀 : 무소)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➌ 코끼리(象) [지식백과] : 『아시아, 아프리카의 산림, 사바나[열대 또는 아열대 초원 지역]에 서식한다. 아시아코끼리는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아프리카코끼리는 사하라 사막 아래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 두산백과] / 『아시아코끼리(Elephas maximus) ; 인도·스리랑카·미얀마·수마트라섬에 분포하며, 옛날에는 중국이나 잠무카슈미르 등지에도 살고 있었다. 보통 스리랑카코끼리, 인도코끼리, 수마트라코끼리, 보르네오코끼리 4아종(亞種)으로 분류한다.』
※ 인도코끼리 출처 : 다음-위키메디아 이미지복사
➨ 이런 동물(動物)들이 자생(自生)할 수 있는 땅(地)과 기후대(氣候帶)는 어딜까? 의심(疑心)할 여지없이 “남 아세아(南 亞細亞)” 땅이다. 즉(卽) 『인도(印度), 스리랑카[Sri Lanka], 말레이반도[Malay, 半島], 인도네시아[Indonesia]. 인도지나반도[印度支那半島], 보르네오[Borneo], 술라웨시섬【Sulawesi : 셀레베스섬Celebes】, 말루쿠제도[Maluku,諸島)], 필리핀[Philippines] 등지(登地)다.』 이 땅을 제외(除外)한다면 지구(地球)라는 행성(行星) 내에서는 불가능(不可能)한 땅이다. 즉(卽) “빼박이다”라는 뜻이다.
이런 땅을 벗어나면 “아프리카[Africa] 동부(東部) 일부(一部) 및 사하라(Sahara) 사막(沙漠) 이남(以南)”에 또한 존재(存在)하는데, 이곳은 해양지대(海洋地帶)가 아니다.
㈥ 《왜노국(倭奴國)의 별종(別種)인 일본(日本)이 있어, 왜노국(倭奴國)을 병합(倂合)하고, 해가 뜨는 가까운 곳에 있어 일본(日本)이라고 했다.》 이게 핵심(核心) 주제(主題)다.
○ 우리나라는 일본(日本) 즉 일제(日帝)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로부터 국모(國母)가 시해(弑害)당하고, 국권(國權)을 피탈(被奪)당 하며, 결국(結局) 식민지(植民地)로 전락(轉落)했고, 36년(年)이란 오랜 세월(歲月)을 지배(支配)당하는 어처구니없는, 무능력(無能力)·무책임(無責任)으로 대표(代表)되는 ‘군주(君主)와 관료(官僚)’들을 보았다.
이런 역사(歷史)가 되풀이(反復)되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안녕(安寧)하신가? 안타깝게도 안녕(安寧)하지 못하다!
➤ 모든 분야(分野)에 미래(未來)로 나아가기는커녕 황소가 뒷걸음질 치는 “무능력(無能力)하고, 무책임(無責任)한 멍청한 정치(政治)가 계속(繼續)되고 있을 뿐이다.” 정치(政治)는 실종(失踪)되고, 초보(初步) 대통령(大統領)에 의한 “무능력(無能力)하고, 무책임(無責任)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法治主義)를 훼손(毁損)하는 거짓말과 아집(我執)만이 난무(亂舞)할 뿐이다.”
정의(正義)【진리(眞理)에 맞는 올바른 도리(道理)】가 무엇이냐?
공정(公正)【공평(公平)하고 올바름】이 무엇이냐?
평등(平等)【권리, 의무, 자격등이 차별없이 고르게 한결같음】이 무엇이냐?
법치주의(法治主義)【국민(國民)의 의사(意思)를 대표(代表)하는 국회(國會)에서 만든 법률(法律)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나라가 국민(國民)의 자유(自由)나 권리(權利)를 제한(制限)하거나 의무(義務)를 지울 수 없다는 원리(原理)】가 무엇이냐?
“립서비스(lip service)”는, 국민(國民)들을 ‘기만(欺瞞)=기망(欺罔)’하는 행위(行爲)다. 지금 대한민국(大韓民國) 정권(政權)의 통치행위(統治行爲)가 꼭 ‘이와 같다’.
「무엇이 정의(正義)고, 무엇이 공정(公正)이며, 무엇이 평등(平等)이며, 무엇이 법치주의(法治主義)라는 말일까? 무책임(無責任)한 정권(政權), 무능력(無能力)한 정권(政權)은, 자랑이 될 수 없으며, 그에 따르면 업보(業報)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 양파(onion)는, 그 껍질을 까면 또 껍질이요, 또 껍질이다. 핵(核)이 없다. “서(西) 아세아(亞細亞) 또는 지중해(地中海) 연안(沿岸)이 원산지(原産地)”로 알려져 있는 식물(植物)인데, 오늘날 음식물(飮食物)을 만드는데 필요(必要) 불가결(不可缺)한 식물(植物)로 대접받는다.
“왜(倭)와 일본(日本)”을 보면 : 꼭 “양파” 껍질을 까는 것 같다. 알 것 같으면서도 세부적(細部的)으로 들어가면 가물가물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말이다. 일단 옛 사서(史書)를 중심(中心)으로 주관(主觀)이 개입(介入)되는 일이 없도록 객관적(客觀的)인 입장에 서서 원전(原典)의 기록(記錄) 중심(中心)으로 설명(說明)해보고자 한다. [제3편으로 계속(繼續)]
2023년 01월 01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사서에서 말하고 있는 지리적 위치, 지형지세, 거리, 물산등으로 "왜(倭)"를 찾아보면 그들이 과거에 있었던 곳은 "남아세아"의 섬들이다. 즉 '왜'의 사신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가장 남쪽 땅이다."
사서에서는 정확하게 '왜와 일본의 땅'을 기록해 놓고 있다.
문제는 이걸 아무리 설명해도 국민들 대다수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극수주의자 또는 민족주의자로 매도해 버린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우리 사회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바로 "대한민국 역대 정권에서 의무교육이라는 명목하에 가르치고 세뇌시키고 암기 하도록 강제한 탓이다"
일제제국주의자들이 마지막 노릿수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반도는 조선 땅이요, 열도는 일본 땅이다" 라는 문구가 뇌세포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런 탓에 전혀 다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버렸다는 것이다. '사학'분야 만큼은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해방이후 70여년, 그러나 역사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치계나 경제계는 세계를 놀라케 하고 있으나 '사학계'만큼은 아직도 1945년 헤방 이전 때의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2022년 11월 기준 "대한민국의 총인구 수는 51,450,829명"이라고 한다.
물론 이건 주민등록 통계 '인구수'일 것이다.
어쨌튼, 대한민국 국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조상은 '대한제국이요, 옛 조선왕조'라고 한다면 :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도 달라져야겠지만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사람은 "윤석열"이다. 언제까지 '남 타령'으로 날을 지새울건가? 벌써 두해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남 타령할텐가? 모든 것이 내탓이지, 어찌 남의 탓이 될 수 있을까?
옛 '왜=일본'은 근세기에 열도의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일본이 된 것이다. 이건 달라질 수 없는 역사다.
한반도에 삼한의 78개국이 없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 국민들 스스로 [열도는 왜, 반도는 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 [충청이남 강원이남의 전라도와 경상도는 왜의 땅이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그곳에 살고 있었던 옛 초착민들은 왜(倭)=왜노(倭奴)"였다. 이건 三韓(삼한)과 관계되는 대부분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야기다. "삼한의 남쪽은 왜와 땅이 서로 접했다"고
만약, 오늘날의 "전라도와 경상도"는 '왜=왜노'의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경상도와 전라도 남쪽의 남해바다는 육지였다는 뜻이 된다. 이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허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옛 선대의 학자, 관리등은 무엇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해 수년, 혹은 수십년에 걸쳐 역사서, 지리서, 기행문등을 만들고, 기록을 하고, 후세에 이를 남기려고 했을까? 이 모두는 당시의 모든 것들을 후인들에게 알려주려 함이다. 그렇치 않다면 왜 이런 일을 했겠는가?
우린 좀 더 많은 '사고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더불어 쉼없는 개혁과 변화의 물결을 타야 한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썪는다. 이건 천고의 진리다.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민족이라거나, 소멸되었다는 민족이나 국가"등은 개혁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이건 동물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통령이니 국무총리니 하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몇 년 임기를 마치면 그만이다" 국가와 민족도 임기가 있을까? 절대로 그렇치 않다. "국가와 민족은 끊임없이 연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식민백성이 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늘 정권을 감시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옛 왜(倭), 왜노(倭奴), 일본(日本)은 가장 남쪽 땅에 있었다"는 것을 옛 학자들의 기록을 찾아서, 정확하게 어디를 말하고 있는지를 찾아낼 것이다. 물론 역사서나 기행문들의 기록 당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다면 그 후 이들의 이동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문무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문무 선생님과 같이 먼저 연구하시고 분석하고 알려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저 만의 기준이기는 하나 시원은 천산.알타이산맥 중앙아시아 이고 삼국의 초기 기반은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산맥 남부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은 지금 현중국 발해만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점 서쪽으로 계속 달려 가네요 ㅎㅎ
항상 건강하세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사가 우리의 역사서 이면서 세계사 역사 기록물이라 생각드네요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우리 선조들의 역사라고 자꾸만 다가가게 만드네요.....
안녕하세요! "대진"님!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세계사에서 조선를 빼면 역사가 전개될 수 없을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서양사란 것이 근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발해"가 어디에 있던 발해를 말하는가에 따라 영토가 달라지기 때문이며, "요동"이 어디냐에 따라 그 영토가 달리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조선사"에 대해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조선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조선사를 숨기기 위해, 조선의 영토를 한반도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열도의 일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역사란 것이 저 멀리 "남아세아"의 섬에서 섬으로 서세들에 밀려 북동진한 세력들입니다. 이들이 '천황기(天皇紀)'를 갖고 있다면 지나가는 개(犬)도 웃을 일입니다만, 대한민국 대부분 국민들은 이걸 믿고 있고, 믿으려 합니다. 참 아이러니한 국민성이라고 봅니다.
항상 성원해 주시고 관심을 주신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댁내 평안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