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선교소식]
알고 보면 인도의 브라만 계급에 속한 사람들만큼 철저하게 복음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별로 없다. 서방의 선교사들이 인도 등 남부 아시아에서 활동한 지도 이미 여러 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인도의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카스트 제도상 하층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다. 반면 브라만 출신으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는 사람들은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인도의 브라만들은 우리의 특별한 기도 제목이 될 수밖에 없다. 브라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넘기가 쉽지 않은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브라만들은 기독교인들을 가급적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경향은 이슬람 신자들보다 더 심하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브라만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브라만이란 힌두교 사회의 성직자나 철학자, 사상가, 교사 등으로 카스트 제도의 계급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힌두교의 비서(秘書)이며 경전 격인 푸라나는 브라만은 힌두교 최고 신인 브라흐마(브라마, Brahma) 신이 입으로 토해내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즉 창조의 기원부터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군인과 용사의 계급인 크샤트리아는 브라흐마의 팔에서, 상인 그룹인 바이쉬나는 브라흐마의 다리에서 평민과 종 등 하층 그룹인 슈드라는 브라흐마의 발에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브라만교는 인도의 문화적 유산의 정수이기도 하다. 현대 인도인의 조상이 된 아리안인들이 수천 년 전에 인도로 이주해 왔을 때 이미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문명인들이었다. 고대 문명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도 아리안들처럼 일찍이 언어의 체계를 발전시켰던 종족들이 없었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인도는 고대 천문학이 가장 발달한 곳이었고, 수학에서 숫자 '0'의 개념과 10진법도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의 조상들이 사냥과 농경 이외의 어느 것도 관심이 없던 시절에 브라만 지도자들은 해부와 외과 수술, 의학을 논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 정도가 인도의 논리학과 비교가 될 만한 수준에 올라 있었을 뿐이다.
고대의 브라만들은 아타르바 베다의 사제로 일했다. 아타르바 베다란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단의 북쪽 편에 위치한 시설이다. 여기서 브라만들은 매일의 제례 의식과 산스카라라고 부르는 정화 의식, 희생 제사를 행하고 베다를 가르쳤다. 이들이 행하는 의식의 규정과 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되며 항상 점잖고 친절해야 하며,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만큼 그들은 존경 받았으며, 많은 특권을 누렸다. 일반인들은 그들을 신이나 왕과 진배없이 존경하고 대우했다. 그들의 특권 가운데는 신체를 보호 받을 특권도 포함되어 있어 브라만을 죽이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했다.
브라만이 되려면 우선 혈통적으로 브라만이어야 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베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브라만이 되고, 브라만으로 대우 받기 위한 학습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제일 먼저 거치는 학습 과정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법을 암송하고 익히고 해석하는 것이다. 인도 사회에서 카스트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세습되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브라만은 우선 혈통적으로 브라만이어야 한다. 이같은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브라만들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며, 이는 힌두교 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빛나는 전통인 동시에 현대 인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요소이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신의 영광이 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학습하는 산크리스트 문헌과 산크리스트에 바탕을 둔 과학, 의학, 법률, 종교 등의 내용을 일체 다른 카스트들에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보는 책과 내용은 하나의 밀서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반면 다른 카스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산크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고 믿는다. 결과적으로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지성인이라고 존경하는 이들의 지성을 배울 기회를 박탈 당하여 계급간의 지성의 단절을 가져오고, 이는 인도 사회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브라만의 모습은 고대의 전통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올해 30세의 아쇼크 죠쉬는 브라만 계급에 속한 힌두교 사제이다. 그러나 그는 흔히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리는 힌두교 성직자들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야마하 RX100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성직자의 모습은 흔히 사람들 머리 속에 있는 힌두 사제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사람들은 손질하지 않은 성성한 백발이나 반대로 완전하게 머리카락을 밀어 버린 헤어 스타일에 전통 가사를 걸치고 어깨를 다 드러내고 지팡이를 집고 다니는 무소유의 성직자의 모습을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전통적인 모습의 성직자들도 아직 많다. 그러나 브라만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도 종교 의식을 행하는데 전념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소수이고, 어떤 이들은 엔지니어, 사업 등 세속적인 영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성직에 있든 세속적인 영역에 있든 그들이 종사하는 일들은 상당한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 직종에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도 인구의 6% 정도가 브라만에 속한다.
나라얀 바만 틸라크 열렬한 민족주의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브라만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며 가장 존경 받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기독교로 개종했다. 마하라쉬트라 출신으로 성자의 반열에 올라 있던 그는 지금 그가 새로이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만 해도 틸락은 와만라오라는 여신을 숭배하며 매주 금요일마다 여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는 그 시간에 여신이 임재한다고 믿으며 온 가족들이 임재하는 여신에게 예를 표하고, 경의를 표하며 제사들 드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에 출석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여신에게 아뢰고 틸락은 여신의 뜻을 대언한다며 유창하게 답변을 해 주곤 했었다.
틸락은 또 사회적인 지도자로서 적지 않은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그는 19살에 락쉬미바이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당시 아내는 11살이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1890년 경, 그가 33세가 되던 때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여전히 힌두교 브라만으로 남아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개종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이들 부부는 별거에 들어갔다. 카스트 제도 특유의 계층에 대한 배타성은 락쉬미바이로 하여금 남편을 따를 수 없게 만들었고, 그녀는 굳은 심지로 개인적인 종교적 순수성을 지키며 기독교라는 이질적인 종교로부터 자신의 영혼이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그냥 내 버려두지 않으셨다. 몇 차례의 고비와 고비 때마다 기적같은 체험을 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그 와중에 그녀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그녀 나름대로의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카스트 제도는 무엇일까? 정말 신이 사람을 창조하면서 처음부터 사람을 차별하여 창조하신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계층간의 경계를 그어 놓은 것일까? 정말 신이 사람을 높고 귀한 사람과 낮고 천한 사람으로 나누어 창조하셨다면, 왜 동물을 창조할 때는 이같은 계층을 나누지 않았을까? 락쉬미바이는 이같은 의문을 계기로 한때 손끝도 대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던 천한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차에서 구걸하고 있던 두 명의 천민 아이들에게 깊고 특별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입양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남편과 같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고, 남편과의 별거도 청산했다. 이 때가 1900년이다.
신앙으로 인해 환난과 시련을 당하고 송사까지 당할 때, 인도 사회의 특유의 대가족 시스템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원인이 된다. H. L. 리처드는 힌두교 사회에서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가족 제도는 당사자의 판단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락쉬미바이가 무려 5년이나 남편과 별거하면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힌두교 특유의 끈끈한 대가족 제도 덕분이다. 그녀는 남편의 집을 나와서 친척집을 전전했지만, 모든 친척들이 하나같이 직계 가족 못지 않게 따뜻하게 그녀를 대해 주었던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힌두교 시스템을 지탱해 주는 강력한 힘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이다. 서구 사회의 경우 남자와 여자가 한 가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간단하게 부부가 남남이 될 수 있다. 인도인들은 서구 사회를 기독교 사회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눈으로 볼 때, 기독교는 가족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하는 비윤리적인 종교인 것이다. 힌두교에서 남편과 아내는 거의 예외 없이 평생을 함께 한다. 비록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나 가족에 대한 생명적 애착과 절대성에 대해서는 힌두교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인도는 또한 역사로부터 기독교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 국가라는 영국으로부터 압제를 받았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가족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다른 나라를 압제하는 종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독교의 진수를 보여 줄 때이다. 증오를 사랑으로, 분노를 평화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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