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5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 일본을 통일하고 막부정권을 수립한기 이 전해 미마사카 요시노의 미야모토 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이름은 신멘 무사시 노가미 후지와라 노겐신.. 그의 아버지는 신멘 무니사이로 당시 사무라이이자 검객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얼마후, 무니사이는 무사시의 어머니 오마사와 파혼하고 그녀를 그녀의 가족들이 살고있는 하리마 지방으로 어린아들과 함께 보낸다. 어린 무사시는 어머니의 손에 길러지고, 그는 이따끔식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곤 했다. 이 때 무니사이는 직접 무사시에게 검술을 엄격히 가르쳤다. 그리고 , 그는 곧 무사시가 검술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2. 최초의 결투
오늘날의 시각에서 13살의 무사시가 첫 검술시합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를 죽였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물론, 지금 얘기하려는 것은 16세기의 일본이기는 하나, 13세의 나이에 누군가를 죽였다는 점에서 이 시합은 아주 특별하다. 무사시의 상대는 아리마 기베이라는 자로서 이미 그 근방에서는 신토류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어느날 무사시는 다음과 같은 방문을 읽게된다.
"누군든지 나에게 도전하려는 자는 여기에다 글을 남겨라! -아리마 기베이-"
무사시는 여기에다가 다음과 같이 적고 자신의 이름과 장소를 적는다.
"내가 내일 너에게 도전하겠다."
그날 저녁 도전을 응락한 기베이로 부터 시합장소가 통보되어 오고 다음날 아침 무사시는 한손에 검을 들고 시합장조로 향한다. 시합은 기대된것과는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무사시는 그를 아주 짧은 시간에 쓰러뜨린다. 그리고 그 후에 무사시는 그의 검술을 더욱더 갈고 닦는다. 3년뒤에 무사시는 타지마 지방에서 온 상대(아귀야마라)와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물론 아주 쉽게 상대를 쓰러뜨린다.
3. 세키가하라 전투(1600)
서기 1600년 당시 동부의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부 다이묘 제휴세력들을 물리침으로서 천하의 패권을 차지한다. 무사시는 바로 이 전쟁에 17세의 나이로 서군의 편에 가담해 군졸로 싸우지만 결국 패잔병 신세가 되어 쫓기는 몸이 된다. 하지만, 당시의 유명한 선승 다쿠앙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한다. 만화(배가본드)에서는 다케조가 다쿠앙의 도움을 받아 21세때 쿄토에 나타나기 까지의 이 3년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데, 소설의 내용을 빌리자면 히메지성 이케다 데루마사 성주의 배려로 다케조는 3년간 세상과는 단절된 수행을 하게된다.
4. 요시오카 검술도장과의 충돌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다케조는 당시 교토에 있는 요시오카 도장에 시합을 청하고, 여러명의 제자들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그는 다시 교토를 떠나고 1년뒤 요시오카 세이쥬로 와 시합할 것을 약속한다. 배가본드 3권에서 나온 덴시치로와의 대결은 이 1년뒤 세이쥬로와 무사시의 대결 후에 이루어진다. 1년뒤 세이쥬로는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한 쪽 팔을 잃고, 도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의 동생 덴시치로가 다시 무사시와 결투를 하지만, 그 역시 무사시에게 목숨을 잃는다. 이에 분개한 요시오카 도장의 사람들과 여러 동문들은 힘을 합해 무사시를 없애려 하나, 70명이나 되는 사무라이들과의 결투에서 무사시는 승리하고, 본능적으로 이도류의 이치를 깨우친다.
5. 나라의 호조인 승병
세이쥬로와의 대결이전 1년동안 무사시는 다시 무사수업을 떠나는데 이 때 맨 먼저 간곳이 창술로 유명한 보장원이었다. 여기서 무사시는 인??의 수제자 아곤을 쓰러뜨리지만, 인??과의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6. 무소 곤노스케(인??) vs 미야모토 무사시
곤노스케는 원래 시골의 한적한 곳에서 지내던 농군에 지나지 않았으나 후에 무소류라는 장술의 시조가 되는 사람이다. 아직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때 곤노스케는 무사시와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이 시합에서 곤노스케는 무사시에게 패배한다. 그의 저서중에는 '도모의 일수'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여기서 곤노스케는 당시 무사시와의 시합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는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패배한 일이야 말로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기억이라고 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무사시를 스승으로 모신다.
싸우기로한 날 숲속..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된다..
무사시 : '곤노스케 미안, 멀르고 깜빡 잠이 들었다..' 사실 그는 전에 곤노스케에게 된통 당해서 무서웠던 것이다.
곤노스케는 무사시의 허술함을 보고 순간 공격을 하고 빈틈을 포착한 무사시는 목도로 곤노스케의 머리에 찍는다. 그는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
무사시 : '곤노스케, 그대는 진검승부였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다..'
7. 시시도 바이겐 vs 미야모토 무사시
시시도 바이겐은 사슬 낫이라는 무기를 잘 쓰는 사람이었는데, 시시도 바이겐이라는 이름은 개명한 것이고, 원래 이름은 츠지카제 고헤이, 무사시가 17세때 죽인 텐마의 동생이다. 그는 텐마의 복수를 위해 무사시를 습격하지만, 결국 무사시의 손에 죽고 만다.
미야모토 : '너는?? 예전 고헤이? 예전엔 칼을 ?㎢쨉?.. 사슬낫을 쓰다니.. 어케 된거냐?'
바이켄 : 비죽~ 미야모토.. 말이 많아졌구나.. 승부로써 말하자..
챙챙한 접전.. 그때 어릴적 아버지가 (신멘 무니사이) 떠오르면서 무사시는 검한자루을 더 끄낸다.. 양손에 칼을 쥔다. 이것이 바로 무사시의 최강 이도류다.
바이켄 : 두근 두근.. '크다.. 아니다! 빈틈투성이다, 간닷~'
무사시는 바이켄의 사슬을 칼로 막아내고 다른손에 쥐어있던 칼로 바이켄을 찍는다. 바이켄은 막으려하다 손가락이 절단된다..
8. 사사키 고지로 vs 미야모토 무사시
사사키 고지로는 주조류의 가네마키 지사이에게 검수을 배워 인가목록을 받지만, 스스로 검술연구를 거듭하여 간류라는 새로운 검법을 창시한다. 무사시가 쌍검을 쓴다면 고지로는 모노호시자오(바지랑대) 라고 불리는 석자길이의 장검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이 둘은 결국 일생일대의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대결에서 무사시가 승리한다.
간류도에서 무사시와 코지로는 싸우기로 한 날이 되었다.
무사시는 그 전날 자기의 취미인 나무인형을 깍으며 정신수양을 하고 있었다.
간류도에 먼저온 사람은 코지로였다. 꽤 지났을까.. 무사시가 나타났다.
코지로 : '두려운가? 늣게 오다니. '칼집을 땅바닥에 팽게친다.
무사시 : '하하, 그대는 졌다, 칼집은 무사의 생명. 그대는 생명을 던진게야..'
코지로 : '뭣이!' (울컥)
단발에 무사시는 코지로의 목을 동강낸다..
그 후 무사시는 산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 이후는 각지를 전전하고, 검을 추구하며 仕官[시칸 : 낭인 중인 무사가 다이묘오를 모시는 것]자리를 찾아 다녔다고 전해진다. 검술가로서 무사시의 명성은 높았지만, 시칸으로 요구한 知行[치교오 : 봉급을 일컷는 말]가 1000석이상으로 상당히 높았다.(당시의 검술사범은 많아도 500석 정도로 200석 정도가 평균이었다고 한다.)
또한, 고집 센 성격으로 어느 곳에서도 등용을 꺼려 했다고 한다. 1640년, 우여곡절 끝에 肥後熊本[히고 쿠마모토]에 藩[한 : 에도시대 다이묘오의 지배기구]을 둔 細川忠利[호소카와 타다요시]의 객으로서 안주 할 땅을 얻은 무사시는, 그 곳에서 남은 생애를 그림과 병법서를 남기며 보냈다. 그 중에서 하나가 현재 비즈니스맨에게도 필독도서로서 일본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평가가 높은 오륜서이다.
?셈曇坪? 자신을 연마하는 구도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서슴지 않는 강한 면모도 있다. 승리에 집착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무사시의 강함을 받치는 최대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