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죽도(巽竹島)는 여수 시내에서 약 74km 떨어져 있다.
소거문도, 평도, 광도와 함께 손죽열도를 이루고 있다.
거문도와 백도의 명성에 가려져 있다가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정원을 가꾸어 사시사철 꽃내음이 가득한 섬이다.
여수 남쪽에 있는 ‘손죽도’는 면적이 채 3km²도 되지 않는 비교적 자그마한 섬이다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깃대봉(237m)을 중심으로 능선이 섬을 두르고 있다.
왼쪽 끝에는 우뚝 솟은 삼각산이, 오른쪽으로는 낮은 산허리가 선착장 부근까지 이어진다.
바다는 깊게 만입되어 U자 형태를 이루니 더할 수 없이 오붓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여수에서 아침 7시 50분에 출항하는 웨스트그린호에 몸을 실었다.
쾌속선은 약 1시간 30분 항해한 끝에 손죽도에 도착하였다.
선착장에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이대원 장군상이었다.
손죽도는 녹도만호 이대원 장군이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순국의 섬이다.
큰 인물을 잃어 크게 손해를 보았다 해서 ‘손대도(損大島)’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손죽도(損竹島)’로 개명되었다.
식당과 쉼터를 겸한 '손죽정원마을'에 짐을 풀었다.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 같은데 서로간의 갈등으로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마을의 담벼락에는 다양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손죽도 가가호호정원'이라는 타이틀이 섬을 멋지게 변모시켰다.
오른쪽으로 빼어난 외양을 뽐내듯 쌍둥이 봉우리가 여행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손죽마을에서 보면 삼각산은 두 개의 암반과 작은 바위들로 연결돼 있다.
삼각산으로 오르는 탐방로는 경사가 심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손죽도는 서쪽 해안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이다.
해안은 암석 해안이 많지만 섬의 북쪽 일대는 사빈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마을 앞에는 해변 길이 1km의 손죽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에는 꽤 붐빈다.
삼각산으로 가는 길옆에 '빨간집민박'이 눈길을 끈다
손죽도 청년회장 박성휘·김혜경 부부가 운영하는민박집이다.
시설이 깔끔하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과 싱싱한 제철 음식이 일품이다.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가 있다.
1923년 설립된 학교는 일반적인 콘크리트 방식이 아닌 돌을 잘라 이어붙여 지어진 학교다.
‘손죽분교장’이라는 이름으로 전남교육 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무구장터(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이대원 장군과 부하들의 가묘 터)에 이대원 장군 동상이 있다
전사한 수많은 수군들을 묻을 곳이 마땅치 않아 한꺼번에 가매장한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장군의 목 없는 시신과 부하들의 시신이 널려 있던 것을 주민들이 수습하고 '무구장터'라 불렀다 한다.
날씨가 후텁지근하여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숲그늘을 위안 삼아 삼각산을 오른다.
절해고도에서 쌍둥이처럼 솟은 삼각산의 두 봉우리는 길손을 유혹한다.
영화 속에서 나옴직한 잃어버린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은 느낌을 준다.
정상에는 전망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소나무를 표지석 삼아서 인증샷~
삼각산에 내려와 최고봉 깃대봉 방향으로 들어선다
섬 이름에 대죽(竹)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시누대숲이 무성하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깃대봉을 향해 오르막길을 간다.
손죽도 최고봉답게 가파른 오르막 산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여성 몇 분이 마을로 내려가려 했으나 분위기에 휩싸여 함께 오른다.
남도의 섬에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이 보인다.
일엽초( 一葉草)는 바위 겉이나 늙은 나무껍질에 붙어서 자란다.
버들잎을 닮은 잎이 하나씩 돋아나기 때문에 일엽초라 부른다.
손죽도는 온대 해양성 기후로 아열대 희귀식물의 서식처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이국적인 식생 경관을 나타낸다.
잎 모양이 콩을 반으로 쪼개어 놓은 모양과 비슷해서 콩짜개덩굴이라 부른다.
해안지대와 섬의 바위 또는 노목의 줄기 등에 서식한다.
방목하는 흑염소들이 가끔씩 눈에 띄었다.
자연에서 자란 흑염소들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 구미를 댕겼다.ㅎㅎ
BAC 인증 지점인 깃대봉(237m)은 해양경찰의 무인 레이더탑이 있다.
최고봉이지만 산행의 재미는 삼각산이나 마제봉에 비해 밋밋하다.
1896년 일본이 지도 제작을 하기 위해 측량 기점으로 삼아 기를 꽂았다 하여 깃대봉으로 명명되었다.
내려가는 길에는 약초로 알려진 예덕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나무껍질은 타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한방에서 건위제로 사용한다.
바닷바람에 잘 견디고, 잎이 넓고 커서 시원한 느낌을 주어 해안가 조경에 이용된다.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지짐이재다.
매년 봄이면 주민들이 꽃으로 전을 부쳐 먹는다는 화전(花煎)놀이 마당이다.
끼니도 굶고서 물애질하여,
못된 낭군 술값으로 다 들어간다.
나로도 판장에는 전깃불이 반짝,
우리 오빠 팔뚝에 금시계가 반짝
이 아래 갱번에 꿀까는 처녀야,
언제나 다 깨고 내 사랑이 될래.
저기 가는 저 큰 애기 엎으러나지거라,
일으켜 준채 하고 보듬어나 보자.
남남이 만나서 부부 차리고,
수십 년 뱃삯 없이 내 배를 탔네...........................................................................<손죽도 화전놀이 노래> 부분
지지미재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둘레길로 가는 길이 나뉘어진다.
우리는 500m가량 더 가는 둘레길 방향으로 들어섰다.
길 옆에서 거대한 규모의 고인돌을 발견하였다.
손죽도에서는 선사문화유적지 패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4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손죽도 비렁길은 여수 금오도 비렁길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비렁길은 소거문도와 나린히 걸어간다.
손죽도 동쪽 1.4km에 있는 소거문도는 섬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상산(328m)이 있다.
이 산은 꼭대기가 절벽으로 둘러싸여 산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하도 험해서 등산하기가 어렵다.
지친 다리로 봉화산에 올라섰다.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어깨를 맞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은 천길 낭떨어지라서 발바닥이 찌릿찌릿하다 .
마제봉(173m)은 포기하고 봉화산에서 마을로 내려섰다.
마을 모정에서 주민 몇분이 쉬고 계셨다.
마을에는 당산나무가 2곳 있는데 이곳을 웃당산나무로 부른다.
당산나무 앞에는 열녀비가 있었는데 글자가 망가져서 알아볼 수 없었다.
손죽도는 정원이 예쁜 집이 많다.
아무리 허름한 집일망정 나무나 꽃을 가꾼다.
여수에서 은퇴한 분들이 많이 들어와 사는데 그분들의 영향 같다.
마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집은 손죽도교회다.
교회의 규모로 보아서 신자 수가 꽤 많은 것 같다.
손대점빵(010-9747-8845)은 손죽도의 유일한 상점이다.
생필품과 식료품 등 웬만한 것은 갖추고 있다.
무인 상점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대문의 장식이 참 재미있다.
손대점빵의 손바닥만한 담벼락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얼음과자를 먹는 그림과 '점빵'이란 글자를 보니 유년시절이 생각났다.
처음 짐을 풀었던 식당 겸 쉼터로 돌아왔다.
많은 인원의 점심식사를 못해준다 해서 여수에서 도시락을 사왔다.
금방 낚시로 잡아온 생선회와 쏘맥을 한 잔 들이키니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 고샅길 투어에 나섰다.
이대원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忠烈祠)에 들렸다.
사당이 처음 세워진 것은 1637년(인조 15년)이라고 한다.
초가 건물로 된 사당에서 손죽도 주민들은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퇴락과 수리를 거듭해 오다가 1983년 마을 주민들의 성금으로 현재 건물을 중창하였다.
그러나 문짝이 떨어진채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은 충절의 섬답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대원 장군 사당 옆의 돌담에 이끌려 고샅길을 돌아간다.
화사한 그림으로 가득찬 담벼락이 쓸쓸한 섬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손죽도는 할머니가 빚은 수제 막걸리가 유명하다.
물어물어서 89세 이난애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백발의 할머니는 사진을 찍지 않으시겠다며 안으로 들어가신다.
1.8리터 한 병에 10,000원인데, 막걸리가 아니라 보약 같았다.
막걸리병을 들고 동네 모정으로 와서 일행들과 나누어 마셨다.
마을에 큰 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 것으로 보아 섬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도 이미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400여 년 전, 제주에서 고씨, 부씨, 양씨가 최초로 섬에 들어왔다고 한다
마을 큰길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아름다운 돌담길이 있다.
섬에 처음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작은 돌들을 정성스럽게 쌓았다.
울타리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 돌담 사이로 골목길이 이어진다.
오랜 세월 동안 바닷바람과 싸우며 이끼를 얹었고, 담쟁이넝쿨이 돌담을 보듬고 있다.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기다리며 사진찍기 놀이를 하였다.
바다와 여인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아담이 하와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것이 최고로 잘한 일이다 ㅋㅋ
손죽도에서 오후 3시 30분에 출항하는 여객선에 올랐다.
새벽부터 움직인 탓으로 비몽사몽인 시간이 흘러갔다.
전주로 돌아와서 통닭과 피자 안주로 생맥주를 마시며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