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감기에 걸렸다 한다.
어젯밤엔 따뜻한 옷을 보내 달라고 했다 .
예전 같으면 쌩 하니 달려 갔겠는데 협회 월례회 참가에 바느질 거리도 좀 있었다.

늙으면 낡은 옷가지로 크고 작은 소품을 만들어
이 커다란 집을 이야기거리로 만들고 말리라 작심을 했었다.
요즘 새옷을 살 일이 거의 없다.
너무 많아서 걱정이니까...
게다가 어디 한 두푼 주고 산 건가?
그러니 어지간한 것들은 남도 많이 주었지만 과거 요란하고 애매한 패션 감각덕에 아무나 입지도 못한다.
그러니 거기엔 당연히 레이스며 요상한 단추 같은 게 붙어 있기 마련...
난 그 소품들을 이용해 바느질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다락에 제멋대로 굴러 다니는 물건들을 여기저기 배치해서
누군가 오면 사연을 들려 주고
또 가구나 집자랑이 아닌 삶의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다.
두 주일 몸 아파 나돌아 다니지 못해 집에서 작은 소품 몇 개를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가마니 짜는 틀이 주차장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길래 주워다 깨끗이 씻어 선반을 만들고
거기에 그것들과 시장에서 산 나무 인형들을 철사로 이어 사진걸이를 만들어 부엌 앞에 두었다.
아침에 설겆이 대신 내가 한 일이다.
이러니 집이 깨끗해질 수가 없다.
아직도 주방엔 아침 식사 후의 설겆이가 쌓였는데
신나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으니 사는 게 늘 남이 보면 한심하다.
난? 즐겁고...
내 삶의 모토는 "하고 싶은 일 먼저 하고 해야 하는 일은 맨 나중에..."이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방식의 차이는 그게 가장 커 보인다.
남들은
"먼저 반드시 할 일을 하고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건데...."
그저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내 인생 내멋대로가 행복의 원천이다.
즐거운 일 먼저, 지겨운 일 나중...
그러면 엔돌핀 에너지로 지겨운 일도 신나게 하게 된다.

사진으로 보니 예쁘지 않은가!
우리 남편 내게 딱 어울리는 사람이니 저녁 귀가를 해서는
"예쁘네! 따뜻해 보이고."
할 것이다.
그저 하느님께서는 짝짓기를 하시면서 최소한 우리 부부만은 완전 성공 하신듯...
사실 누구나라고 하고 싶지만 꿈 많고 욕심 많은 이들에게 상대배필은 항상 모자라게 마련이니
내가 그렇게 정의하면 누군가는 불쾌지수 오를 가능성이 있어 유구무언!

엄지손톱만한 작은 네모를 손바느질로 만드는 건 손이 다른 사람보다 큰 내겐 엄청난 수행 방식이다.
짜증나서 확 던져 버리고 싶다가도
결과물을 기대하며 참고 견뎌내야할 인고의 시간이니까.
왠지 난 작은 물건이 사랑스럽다.
꽃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초화류가 더 마음이 간다.
'나이 들며 집 키우는 미친 년'이라는 말이 요즘 항간에 떠돈다.
난 그래도 사람은 형편이 허락된다면 큰집에서 살아야
늙어서 할 일도 있고 운동도 되고 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와도 걱정 없이 산다고 믿는다.
오직 집크기만 사치스럽다.
그 안에 무엇을 두는가 보다 우선 숨이 차지 않아 좋다.
오죽하면 아파트에서도 항상 대문을 열고 지내다가 그만 양상군자도 맞이 했다는...

우리 병원엔 하루 백 오십에서 백팔십 분정도의 환자가 내원한다.
요즘 같은 때 제법 많은 숫자다.
난 그게 늘 고맙고 감사하다.
그러나 내가 환자들을 직접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진료실 커버를 정성껏 만들었다.
삐뚤빼뚤 아플리케로 사랑의 하트도 붙이고 신승무 정형외과라는 영문 이니셜을 수 놓았다.
주사실에서 만날 환자들이
"이게 뭐지?"
하는 순간 아픔이 끝났으면 하고 만든 사람으로서 바래 본다.
내 방식의 사랑나눔이다.
나돌아 다니지 않아도 내 자리에서 하는 이웃사랑이 된다.
정성도 들이고....

'여자라면 모름지기 꽃과 바느질이지..'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다시 신혼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처녀적엔 어쩌다 남편 티셔츠도 카사리실로 짜 입혔던 솜씨다.
그러나 이젠 눈도 나쁘고 바늘귀 꿰는 게 거의 다섯번은 시도해야 한번 성공이다.
그땐 수 놓고 뜨개질하는 게 참 좋았었다.
잘 하는 게 아니라 좋아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여고교사때는 교생들이 실습와서 내가 가정교사라고 믿는 정도였다.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여고때 수놓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신혼때 조각이불을 만들던 기억도 난다.
근데 그것들은 다 어디에 버렸을까?
그것들이 사라지듯 처녀적 수줍었던 추억이 어디엔가로 사라져 흔적도 없는 것 같아 섭섭하다.
오늘 바느질로 부엌 앞 작은 선반을 만들면서 옛 추억 하나 건져 올렸다.

즐거운 일 하나 했으니 이제 해야할 일을 해야겠다.
설겆이 하고는 또 병원가서 치료받고 다음 즐거움을 생각해야지...
하고 싶은 일 먼저! 해야할 일은 나중! 홧팅!!
첫댓글 참 잘 했어요. 이쁘네여.... 급한일 먼저, 하고 싶은일 그 다음, 꼭 해야 할 일 그 다음순으로 해요 나는.
그것이 맞겠네요...ㅎㅎ 보노님! 건강하게 잘 계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