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구두
소리새/박종흔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
육사를 나와 장교로 복무 중인
초등 동창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요즘 결혼식은 예전과 달라서 주례도 없고
축시 낭송도 생략하는 게 많다.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진행하고 춤추며 노래 부른다.
친구가 축시 낭송을 해달라기에 친한 동창이라 선뜻 응했지만
솔직히 요즘 가슴의 열정도 식고 순수함이 사라져서인지
아니면 나도 나이가 들어 아버님 호칭이 낯설지 않아서 그런지
시 낭송을 해도 떨림이 없다.
첫 축시 낭송은 등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도권 초등동창 회장을 맡은 친구의 딸 결혼식이었다.
서울역 앞의 삼성생명 대강당에서 했는데
예식장 조명은 꺼지고 둥근 비디오 조명이 내 얼굴에 쏟아진다.
수많은 사람의 눈동자만 어둠에 번뜩이고
마이크 잡은 손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낭송 배경음악이 한참 흐른 후, 낭송을 시작했다.
목소리는 괜찮았지만, 마이크 잡은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토요일 오전,
예식장이 전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신혼부부에게 선물로 줄 시화를 들고 부지런히 걸었다.
그 순간 황당하고 무지막지한 사건이 시작되었다.
6년 전에 홈쇼핑에서 신사화를 샀는데
신발장에 보관만 하고 한 번도 신지 않은 구두가 있었다.
그래도 친구 아들의 결혼식의 축시 낭송이라 외모에 신경을 썼다.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와이셔츠도 새것으로 입었지만
구두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겉이 멀쩡해 보이는 그 구두를 신었다.
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새 구두라 그런지 볼이 꽉 조였다.
전철에서 내려 액자로 된 시화를 들고 걸어가는데
우측 발이 편해지는 느낌에
“아하! 구두끈이 풀려서 발이 편해졌구나!”
이참에 왼쪽 끈도 느슨하게 하려고 멈춰서 구두를 바라보니
이게 웬일?
우측 구두 옆구리가 길게 터져버렸다.
생소한 지역이라 토요일 오전에 구두를 살 곳도 없어서
구두수선소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예식 시간은 다가오고 참으로 황당하고 난감했다.
예식장 반대 방향으로 한참 걸어갔으니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예식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거리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사거리 코너에 구두수선소가 보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구두를 보여주며 수선을 부탁하니 구두를 만지던 주인아저씨의 말
“겉은 멀쩡하지만, 이 구두 무척 오래됐네요.
무엇이든 안 쓰고 놔두면 망가집니다.
이건 꿰맬 수도 없어요.
임시방편으로 순간접착제로 붙여주는데, 잠깐만 신고 버리세요.”
수선비를 물어보니 2,000원을 달랜다.
더 불러도 꼼짝없이 줘야 하는데 참 양심적인 분이시다.
조심조심 발걸음으로 예식장에 도착해서 시화를 전시대에 걸고
사회자와 순서를 맞추고 앞자리에 앉았다.
예식이 시작되고 내 순서가 왔다.
축시 낭송은 1분 20초 정도라 짧은 편이다.
그동안 축시 낭송을 많이 해서 이젠 여유가 생겼다.
축시를 암송해서 낭송하지만, 혹시 실수할 수 있으니
작은 종이에 시를 써서 손에 들고 낭송한다.
배경 음악이 흐르고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라이브 카페서 노래 부르는 폼이 나온다.
여러 축시가 있지만 “나에게 오신 당신”
나는 이 축시를 가장 좋아한다.
나의 외동딸 결혼 때도 내가 이 시를 낭송할 생각이다.
아마 많이 울며 낭송하겠지만---
아무튼 찢어진 구두를 응급처치하고 무사히 축시 낭송을 마쳤다.
친구들과 뷔페를 배불리 먹고 뒤풀이로 받은 돈으로 2차를 갔다.
우리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환갑을 바라보는데도
아직 순수한 것 같다.
자녀들 결혼 시키면서 뒤풀이는 항상 부모들이 즐겁게 하니---^^
식사를 하고 뒤풀이 장소로 향해 걸어가는데
아뿔싸!
또 그 느낌이 왔다.
이번엔 왼쪽 발이 편해졌다.
설마!
하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번엔 왼쪽 구두의 바깥이 터져버렸다.
같이 가던 친구들에게 구두를 보여줬더니 한바탕 난리가 났다.
마침 구두수선소가 있어서 친구들 먼저 보내고
왼쪽 구두를 같은 방법으로 고쳤다.
그 주인도 저번 아저씨처럼 똑같은 소리를 하며 2,000원 달랜다.
한참 후에 친구들과 다시 만나서 구두 얘기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중학교 교장으로 있는 친구도 거들었다. “나도 그랬어!
구두를 몇 년간 안 신다 신었는데, 한참 걷다가 발이 이상해서 보니
구두 밑창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거든.”
초등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즐겁다.
아버님 소리를 듣는 나이지만 초등친구들과 만나면
순수함이 초등시절로 돌아간다.
해는 지고 아쉬운 마음이지만 헤어져서 각자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헤어져서 전철역으로 가는데
헉!
이번엔 양쪽 구두가 동시에 편해졌다.
설마!
그러나 현실이었다.
이번엔 양쪽 구두의 안쪽이 동시에 터져버렸다.
헐!
수선할 곳도 없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다행히 밤이라서 내 구두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집까지는 전철을 타고 1시간을 가야 한다.
다음 역에서 자리가 비었지만, 구두가 터져서 앉을 수 없었다.
빈자리가 있지만 앉지도 못하고---
출입문에 붙어서 색시처럼 발을 모은 채 1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비 맞은 누구처럼 중얼거리며 실실 웃는다.
아!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시를 쓰는 취미가 있어
다음날 “찢어진 구두”로 시를 만들었다.
웃음은 "훌륭한 삶의 강장제" 라고 했습니다.
햇살이 고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영글게 하듯이
웃음은 우리 몸안에 좋은 씨를 심고
우리 몸 안에서 최고를 끌어냅니다.
남녀 누군가가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이다"라고 했었는데
오늘도 가까운 분들에게 사랑의
보약 한 첩씩 전하는 고운 휴일 되세요.
첫댓글 너무 아낀 살림 덕을 보았네요.
자주 발생 하는 일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일,
거북해 했을 당사자의 기분을 생각해 보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이다
오늘도 가까운 분들에게 사랑의 칭찬을 ~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