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양민주
올해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은 통과의례이다. 다음의 역할은 경제활동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마뜩잖아 대놓고 지청구를 해댔다. 딸아이는 기가 죽어지내다 며칠 전 어느 학교 기관에 계약직 직원 면접을 보고 왔다. 면접 조서에 가족사항과 흡연 여부 그리고 주량을 쓰는 난이 있었나 보았다.
딸아이는 가족사항을 적고 담배는 피우지 않으니 ‘못함’이라고 썼다. 그런데 주량은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몰라 친구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친구는 “너는 대학 일학년 수련회 때 소주를 여덟 병 마셔도 까딱없었으니 여덟 병으로 적어야 되지 않을까?”했단다. 딸아이는 곰곰 셈을 해봐도 가리사니를 잡을 수 없어 고민하여 두 병이라고 썼다고 했다.
면접시험에서 면접관이 제일 먼저 말씀하시길 “주량이 세구먼, 소주 한 병쯤으로 줄여볼 의향은 없는지?”하였다고 한다. 옥셈을 하여 소주 두 병이 센 주량인지 가늠을 못 했던 딸아이는 모기만 한 소리로 “예”했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순수하다 해야 할지, 철이 없다 해야 할지 잘 몰라 허공으로 헛웃음만 날렸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딸아이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분위기가 나면 가뭄에 콩 나듯이 조금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행히 면접에서 결과가 좋게 나왔다.
딸이 직장을 구한 기분에 나는 지금 아내와 술을 한잔하고 있다. 술 하면 사람들은 취한 모습을 숱하게 떠올린다. 주사(酒邪)로 하는 인생의 넋두리, 왁자한 시끄러움, 행패, 토사물의 추한 장면 등이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셔서 좋을 건 없다. 도가 넘지 않게 절제하여 술을 즐긴다면 술은 각박한 세상에 살가운 사람 냄새가 나는 삶으로 이끈다. 더불어 지난날을 추억하게도 한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들으면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아버지 제가 크면 좋아하는 술 많이 사드릴게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였다. 아버지는 주량이 세지 않은 애주가로 이 말만 들으면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성정(性情)에서 묻어나오는 흐뭇한 표정으로 이 말에 대한 기대와는 무관해 보였다.
객지 생활을 하다가 집에 갈 때는 전화를 걸어 “아버지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하고 물으면 아버지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그냥 술이나 한 병 사와” 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 말의 속뜻은 술이 좋아서라기보다 자식의 형편을 고려해 형식적으로 한 대답이었음을 내 자식이 커서야 알았다.
몇 해 전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가 겨울 방학을 이용해 중국 상해로 어학연수를 갔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라 아껴 쓰고 건강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일렀다. 딸애를 출국시킨 후 열흘쯤 뒤 중국 청도에 갈 일이 생겼다. 청도에 도착하니 을씨년스런 날씨에 미세 먼지를 동반한 고추바람 추위와 입에 맞지 않은 음식으로 고생스러웠다. 상해라는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는 딸아이도 일상이 험난하겠다는 추측을 하였다.
어학연수가 끝나갈 즈음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이제 조금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하고 묻길래 무심코 옛날의 아버지가 생각나 “그냥 술이나 한 병 사와”라고 했다. 딸아이는 “술 살 돈이 남을지 알 순 없지만, 알았어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연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의 짐 속에는 양주가 한 병 들어있었다. 아빠 선물이라며 공항 면세점에서 비싸게 산 술이라고 했다. 딸아이가 아비를 염두에 둔다는 마음자리에 기분이 좋았다. 사진을 찍어서 딸아이가 사 온 양주라며 여기저기 자랑을 했다. 이연(怡然)한 술이라 아까워 마시지 못하고 차일피일 기회를 보던 중에 설날이 다가왔다.
설날이 되면 감사한 사람들께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는데 비용이 부담되기도 했다. 명절엔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서 경남 고성인 처가로 가 하루 정도 쉬었다가 온다. 장인 장모는 불귀(不歸)의 몸이지만 처남은 심성이 고와 우리에게 잘해준다. 그 정성 때문에 선물의 비용도 줄일 겸 양주를 외삼촌께 선물로 갖다 드리자고 딸아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한마디로 안 된다고 한다. 왜 안 되느냐고 물으니 이유는 대지 않고 쌀쌀맞게 아빠가 마셔야 한다고만 했다.
외삼촌이 싫으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방법을 바꿔 “네가 외삼촌한테 선물로 드리고 그 자리에서 양주를 따서 아빠와 나누어 마시면, 선물도 하고 양주도 아빠가 마신 셈이니 좋지 않겠느냐”고 달램수를 놓아도 안 된다고 한다. 평소 딸아이는 외삼촌을 잘 따르고 외삼촌도 딸아이를 곰살궂게 챙겨서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 그래서 이 도타움을 빌미로 몇 번을 더 설득하자 뜻을 들어주었다.
처가에 도착하여 저녁상 앞에 처남과 동서 모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안부가 오고 갈 때 딸아이가 외삼촌께 드리는 선물이라며 양주를 꺼내 놓았다. 꺼내 놓고 보니 음복주가 남아 있어 이 술을 다 마시고 난 후에 마시자며 잠깐 밀쳐두었다.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술잔이 몇 순배 돌더니 두루 주럽이 들어 양주를 따지 못한 채 통잠을 자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집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그때 딸아이는 양주를 도로 달라고 하여 챙겨가자고 했다. 준 선물을 도로 받아가는 짓은 예의에 어긋나 그냥 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양주를 따지 못한 일은 예상 밖이었다. 세상은 예측대로 살아지는 수도 있지만, 예측대로 살아지지 않는 수도 허다했다. 나는 그 양주를 딸아이가 사주었지만 마시지 못하는 운명쯤으로 헤아렸다.
반면에 뒷좌석에 탄 딸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까워 보였다.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아예 말문을 닫아버렸다. 아내가 조용히 왜 그러느냐고 달래자 나직이 이야기를 한다. “중국에서 연수하면서 배가 고파도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사고 싶은 것도 사지 않고, 추위에 고생하며 아껴둔 돈으로 연수를 보내준 아빠 드리려고 양주를 샀는데 아빠는 드시지 못하고 외삼촌 집에 놓고 온 게 싫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다 큰 녀석이 훌쩍거리는 모습을 힐끔거리며 돌아보니 가슴이 찡해져 온다. 그 와중에 끝갈망을 찾으니 암담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되돌아가서 양주를 받아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주를 사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톺아보니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직장을 다니며 부족한 월급으로 생활하는 평소의 모습을 지켜보며 내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자 한 딸아이의 성의를 그렇게 외면했으니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 술은 네가 좋아하는 외삼촌이 마실 터이니 좋은 일이 아니겠냐? 외삼촌이 이런 사연이 있는 양주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분명히 아빠랑 마셨을 텐데, 이해해”라며 마음을 달래 주었지만, 앞으로 딸아이가 술을 사줄지 사유하니 앞날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한 번쯤의 실수는 봐주고 술을 사 주었으면 좋으련만……, 내 눈에 맺히는 눈물은 또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까지 딸과 한집에 살면서 대화라고는 깊이 해본 적이 없는 매정한 아버지였다. 위험하니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집에 들어오라는 말과 강밭은 성질로 내가 벌어주는 돈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만 했지 이런 감동을 가르친 적은 없다. 딸은 먹먹한 감동을 주면서 오래된 양주처럼 나를 취하게 했다.
그랬던 딸이 오늘은 취업 못 한다고 구박받던 일도 잊고 면접 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빠, 소주 두병이 주량이 센 편이야?”하면서 은연중에 그 누구도 한자리에서 먹기 힘든 소주 여덟 병 마신 이야기도 한다. 딸은 누구를 닮았을까? 아직도 딸에 대해 모르는 게 무진장하다. 오로지 아는 한 가지는 양주를 선물한 내 딸이라는 것뿐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 제가 크면 좋아하는 술 많이 사드릴게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하고 철없이 한 그 말을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무엇이 그리 급하셨던지 남들보다 먼저 땅보탬이 되셨다. 그 말을 듣고 낯꽃을 피우시던 그 모습이 불현듯 보고 싶다.
약력
양민주
2006년 『시와 수필』 수필 등단, 2015년 『문학청춘』 시 등단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 시집 『아버지의 늪』
원종린 수필문학 작품상 수상
양주 김해문학지.hwp
양민주 1.jpg
첫댓글 약력에 '2019 경남문협 우수작품집상' 추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