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런던에서 밀회를 나누던 연인
예기치 않게 찾아온 이별 후에 남겨진
사랑과 열정, 질투와 증오, 의심과 믿음의 연대기 ― 줄거리 소개
1946년 1월, 비 오는 밤. 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런던에서 소설가 모리스 벤드릭스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무원 헨리 마일스와 마주친다. 사실 헨리는 모리스가 전시 기간에 몰래 사랑을 나누었던 세라의 남편이다. 2년여 전 세라가 자신을 떠난 이후로 긴 시간 방황했던 모리스는 세라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 같다는 헨리의 말을 듣자 호기심과 질투에 사로잡힌다. 모리스는 결국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세라를 뒷조사하기에 이르고, 그녀의 갑작스러웠던 이별 통보 뒤에 감추어진 뜻밖의 진실과 마주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랑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증오의 기록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린이 처음으로 1인칭 시점을 도입하여 쓴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연애 경험이 반영된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알려지면서 더욱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물론 작가 자신의 사생활과 작품 간의 유사성도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은 독특한 흡인력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변함없이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소설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모리스가 연인이었던 세라와 헤어진 지 2년여 뒤 세라의 남편과 우연히 마주친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1939년의 첫 만남부터 1944년 런던이 공습받은 날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기까지, 사랑이 시작되어 끝을 향해 가던 순간들과 1946년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탁월한 그린은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긴장과 호기심을 자아내고, 아울러 질투심을 느낀 모리스가 탐정을 고용해 세라를 조사하는 장면들에서는 오해를 일으키는 단서들을 흘리며 숨겨진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 소설에서 모리스라는 인물은 그 어떤 작중인물보다 강렬한 감정을 지닌 목소리로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다. 소설 서두에서 모리스가 “이것은 사랑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증오의 기록”에 더 가깝다고 밝히듯이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은, 때로는 옹졸하고 변덕스러운 사랑의 민낯과 깊은 상실의 고통에 대해 작가는 모리스의 목소리를 빌려 숨김없이 들려준다. 나아가 “타락한 인간의 사랑”을 갈망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종교적 고뇌에 잠겨 갈등하게 되는 이들의 심리 상태를 핍진하게 그리면서 신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폐허가 된 전후의 시대 속에서
섬세한 관찰력과 문장으로 그리는 애도의 기록들
한편,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39년부터 1946년까지는 제2차 세계대전 및 아직 회복되지 않은 전후의 시기와도 맞물린다. 1인칭 시점의 회고록 형식에 가까운 소설은 소수의 등장인물과 런던이라는 도시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그리면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그 격렬하고도 황폐했던 시대의 풍경은 소설 곳곳에 담겨 있다.
소설가 모리스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 전체는 결국 끝나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연인을 기리는 애도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관계의 끝을 예감하듯이, 전쟁이라는 거대하고도 불가항력적인 사건 앞에서 유한성을 체감한 시대에 써낸 이 소설은,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모든 유한한 존재에게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고 다가갈 것이다.
그 밖의 이야기
*『사랑의 종말』은 그레이엄 그린의 자전적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그린과 캐서린 월스턴이라는 유부녀가 맺었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작가는 자신과 캐서린의 관계와 비교하면서 이 소설을 읽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소설을 캐서린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영국 초판의 맨 앞 장에 ‘C에게’라고 적었고, 나아가 미국판에는 ‘사랑을 담아 캐서린에게’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