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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혁이 25일 제47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중국의 마린을 꺾고 4강진출을 확정짓자 왼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고 있다. [파리(프랑스)=AFP연합] |
【파리=국제전화】 '비운의 탁구스타' 주세혁(23ㆍ상무ㆍ세계랭킹
61위)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사상 처음으로 남자단식 준우승을 차지했다.
주세혁은 25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옴니스포츠 베르시체육관에서 벌어진 제47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6위의 베르너 쉴라거(오스트리아)에 2대4(9-11 6-11 11-7
10-12 11-8 10-12)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주세혁은 한국남자탁구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은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김택수(KT&G)가 4강에 오른 것이 남자단식 최고 성적이었다.
국내탁구선수로는 희귀한 오른손 셰이크핸드 '수비전형'인 주세혁은 경기초반 긴장한 탓인지 내리 두세트를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3세트에서 수비위주의 패턴에서 벗어나 과감한 공격을 시도하며 한세트를 만회했지만 4세트에서 듀스까지가는 접전에서 지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데 실패했다.
주세혁은 5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안개속으로 몰아갔지만 6세트에서 9-7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관중들은 비록 지기는 했지만 세계최고수준의 커팅 기술을 앞세워
수비탁구의 진수를 보여준 주세혁에세 기립박수를 아끼지않았다.
8강전에서 세계 2위인 중국의 마린을 4대3으로 누르며 파란을 예고한 주세혁은 준결승에서 세계9위 크레앙가(그리스)까지 이기고 결승에 올라 대회 최대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대광고 2학년이던 지난
97년 대우증권에 입도선매돼 몸값 2억원시대를 열었던 주세혁은 이후 선배인 김택수-오상은(상무)의 그늘에 가렸고, 후배 유승민(삼성카드)에도 밀려 세계무대에 얼굴을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대회에서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단식 결승에 오르며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우승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여자복식의 석은미(현대백화점)-이은실(삼성카드)조는 세계최강 왕난-장이닝조(중국)에 0대4로
완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남자복식의 김택수-오상은조도 왕하오-공링후이조(중국)에 1대4로 무너져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중국은 혼합복식을 비롯해 남자복식과 여자단식, 여자복식 등
4종목을 석권하며 종합우승을 확정지었지만, 공링후이가 남자단식에서 결승진출에 실패하면서 전관왕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손재언 기자 chinason@>
주세혁 준우승 의미
男탁구 73년만의 숙원 해소...내년 아테네 올림픽 청신호 |
'풍운아' 주세혁은 이번 준우승으로 한국남자탁구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동안 여자탁구의 그늘에 가려 온 한국남자
탁구가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처음으로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월드컵 4강신화와 맞먹는 값진 성과라 할 만하다. 1930년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된 후 73년만의 쾌거인 셈.
한국은 그동안 중국과 함께 세계탁구의 양강으로 군림해왔지만 대부분 여자에 한정돼 온 것이 사실. 여자탁구는 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체전 금메달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세계정상으로 발돋움해 왔다. 특히 80년대말 현정화-양영자가 등장하면서 87년 세계선수권대회 복식 우승, 89년 복식우승, 91년 단체전 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93년에는 현정화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식 금메달을 따내는 절정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동안 남자탁구는 88년서울올림픽에서 남자단식 금-은메달을 따낸 적이 있었지만 세계선수권과는 인연이 없었다. 91년 지바대회에서
김택수가 4강에 오른 것이 최고. 하지만 주세혁의 등장으로 한국남자탁구는 중국과 유럽 콤플렉스에 벗어나 세계최강의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 남자탁구는 10년만에 세대교체에 성공하면서
내년에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에서 16년만에 금메달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손재언 기자 chinason@>
주세혁은 누구?
고교 최대어서 벤치멤버 추락 '풍운아' |
주세혁(23.상무.세계랭킹 61위)은 국내 탁구계에서 '비운의 스타'로
불린다.
광주 금호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라켓을 잡은 후 대광중-대광고를
거치며 99년 KT&G에 입단한 주세혁은 고교 2년때 대우증권이 2억1000만원의 '몸값'을 부르며 '입도선매'에 나섰을 정도로 주목받는 신인이었다.
그는 한국선수로는 희귀한 오른손 세이크핸드를 쓰는 '수비전형'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으로 지내야 했다. 선배인 김택수, 이철승 등은 물론 후배인 유승민의
그늘에도 철저히 가려있었던 것.
게다가 공격을 중시하는 세계탁구계의 흐름에 수비전문 선수가 들어설 자리는 너무 비좁았다. 주세혁은 98년 아시안게임, 99년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국내 선발전에서 탈락했고,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선 벤치멤버에 머물렀다.
절치부심하던 주세혁은 올해초 상무 입대이후 수비전문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기 위해 공격에 초점을 두는 승부수를 던졌다. 세계최고수준이라는 커팅 기술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고 드라이브, 스매싱
등 다양한 공격기술을 연마, 공격의 비중을 6대4까지 끌어올려 스타덤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
첫댓글 준우승 축하....!!! 대단한 발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