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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대 헤바(Hebbar) 교수와의 만남
2018년6월/| 이성범 KBS PD (한국언론진흥재단 장기해외연수자)
헤바 가족과 지광스님
신록이 푸르른 옷을 입어가고 있을 즈음 우리는 이른 새벽 뉴욕을 출발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를 향했다. 바로 1년 전 입적하신 성원 스님의 1주기 추모 법회가 있는 연화정사를 찾기 위함이다. 봄비가 흩날리는 5월 5일의 오후, 연화정사에는 엄숙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많은 불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했다.
참석자들의 눈빛에는 1년 전에 갑자기 찾아온 이별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연화정사를 개원한 이래 불철주야 불법 포교에 앞장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입적한 성원스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속의 바람과 기원이 간절한 듯 했다. 이날은 뉴욕 원각사 주지 지광 스님을 중심으로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엄정하게 진행하였다. 성원 스님은 연화정사의 불자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스님이었다. 1985년 현 서울 구룡사 회주 정우 큰스님을 은사로 하여 출가를 하였고, 2016년 4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 워싱턴 포교당 연화정사를 개원해 미주 포교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성원 스님은 불교 포교를 위해 백악관 베삭법회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미국 대통령이 베삭데이 봉축메시지를 발표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실천가로써 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불교 단체들과 연대하여 불교의 인식 저변을 넓혀나갔고 기독교의 땅, 미국에서 불교를 포교하는데 자신의 서원을 세웠다. 그리고 행동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 육신은 큰병을 품고 있었다. 사바세계에서의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스님은 지난 해 5월 7일, 뉴욕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입적하게 된다. 이 갑작스런 스님의 입적은 당시 연화정사의 불자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분들이 입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다. 그만큼 성원스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이날은 아메리칸대(American University)의 박진영 교수도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2016년 연화정사 개원식에서 축사를 하는 헤바교수
행사가 중반부로 접어들 무렵 성원 스님과 가깝게 지내고 있던 귀한 손님이 자리를 함께 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의 B. N. 헤바(Hebbar)교수이다. 이날 가족 모두 먼 걸음을 하였는데 부인인 쉐일라(Sheila)와 아들인 사르페쉬(Sarpesh)가 추모행사에 자리를 함께 했다. 추모사 순서에서 헤바 교수는 불자들 앞에 서서 남다른 소회를 이야기했다. “성원 스님이 입적하신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살아서 돌아오실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성원 스님은 진정한 종교가이자 학자이자 저의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헤바 교수는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성원 스님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헤바 교수님, 당신을 만난 것은 제게 있어 큰 행운입니다’라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원 스님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헤바 교수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넘쳤다. 헤바 교수와 성원 스님이 서로 진정한 교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 학문적 배경이 비슷하고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기에 가능했다.
성원 스님은 1989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뒤 1992년 서울대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2003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에서 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중국 불교교판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미국 코스탈 캐롤라이나대(Coastal Carolina University) 교수로 재직하며 불교학과 세계 종교학을 가르치며 한국불교를 알렸다. 마찬가지로 헤바 교수는 조지 워싱턴대에서 동양 종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Utrecht University)에서 동양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조지 워싱턴대(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서 동양 종교학(Eastern Religions)과 종교 역사학(History of Religions)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종교학이라는 공통분모와 한국과 인도라는 아시아 지역의 공감대가 두 사람을 자석처럼 이끌리게 했다. B.N. 헤바 교수는 IBAA(International Buddhist Association of America: 미국 국제 불교 연대)의 설립자이자 중역(Executive Vice-President)으로 활동하면서 미국에서 불교 저변 확대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 성원스님 역시 워싱턴 한국불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IBAA를 통해 헤바 교수와 함께 연대하고 외연을 넓혀 나갔다. 그러하기에 오늘 추모 법회에서 헤바 교수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매릴랜드 태국사찰에서, 김형근 본지 발행인, 왕모딕시, 태국신도대표준비위원장,
연화정사 신도 성진모, 변준범 박사, 조오지 워싱턴 대학 헤버교수
2016년 6월 보스톤 태국사찰 기념행사에 참석한 헤바교수
이번 추모법회의 마무리 행사인 시식(施食)을 곧이어 진행했다. 불자들은 차례로 한 사람씩 나서서 고인을 추모하며 추선공양을 올렸다. 헤바 교수 가족 역시 모두 시식에 참여했다.
고인의 영정 앞에 절을 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지광 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추모 법회가 모두 끝난 뒤 가진 점심 식사 중에 연화정사의 불자들의 아쉬움과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이제야 겨우 워싱턴 불교계가 화합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원 스님은 훌륭한 분 그 이상이었어요. 여기 주지스님으로 무조건 훌륭한 분이 오셔야 해요.” 현재 공석으로 있는 연화정사 주지 스님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추모 법회를 뒤로하고 식사를 마친 헤바 교수를 특별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B.N. 헤바(Hebbar) 교수는 1956년 인도의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의 주도인 벵갈루루에서 태어났다. “벵갈루루라는 도시는 인도의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라고 할 수 있어요. 카르나타카 주는 인도 첸나이의 서쪽 데칸 고원에 위치해 있는데 경제적으로 굉장히 윤택한 곳이죠.” 교수의 설명처럼 벵갈루루에는 실제로 HP, 인텔(Intel), IBM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을 포함해 인도 IT 기업체의 대부분이 위치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IT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 인도의 대표적인 경제 도시이다. 이곳에서는 IT 전문 인력을 활용해 인도 전체의 전자시장 수출률이 33% 달하고, 인도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기도 해서 전 인도 항공 산업 개발 및 생산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이들이 벵갈 혹은 방갈로르(Bangalore)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고유어인 칸나다어 식으로 되돌려 2014년에 ‘벵갈루루(Bengalruru)’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방갈로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 영어식 발음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원래의 명칭은 9세기에 ‘수호자의 도시’라는 뜻의 벵가발루루에서 유래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이름을 고유어로 되돌리는 노력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1995년에 봄베이를 고유어의 발음인 뭄바이로 되돌렸고 이어 마드라스를 첸나이, 캘커타를 콜카타, 푸나를 푸네, 그리고 오리사를 오디사로 바꾸었다.
버지니아 연화정사 성원스님 입적 1주년 추모 법회에 참석한 헤바교수
“저는 이른 시기부터 서양문물을 앞서서 받아들인 도시에서 성장했기에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죠. 제 고향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사실 영국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인들이 인도의 찜통더위를 피하기 위해 서늘한 데칸 고원 지대에 조성한 행정 중심지가 바로 벵갈루루였던 것이죠. 이때부터 도시가 정돈되며 발전했고 지금은 아마 제가 알기로 80%가 넘는 인도의 IT 기업들의 본사(Headquarter)가 입주해 있고, 인도인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중 하나일거예요.” 알고 보니 20세기 초에 인도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여 전기로 거리를 밝힌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미국의 KFC가 건너가 최초로 지점을 세운 곳도 바로 벵갈루루이다.
“저희 아버지는 왕실의 공군(The Royal Airforce)에서 레이더 전문 엔지니어로 일을 하셨어요. 당시 냉전 중이던 미국도 레이더 쪽의 인재들을 많이 필요로 했기에 한 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1974년에 가족 모두가 미국 워싱턴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민을 와서는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 워싱턴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 입학을 했습니다. 모교에서 학사를 마치고 동양 종교학(Eastern Religions)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에 네덜란드로 무대를 옮겨 위트레흐트 대학교(Utrecht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 20년이 넘게 미국에서 동양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제 모교인 조지 워싱턴 대학교와 메릴랜드 대학교 볼티모어 캠퍼스에서 동양 종교학(Eastern Religions), 동아시아 불교(Buddhism of East Asia), 남아시아 불교(Buddhism of South Asia), 힌두교·불교 비교연구(Comparative Study of Hinduism and Buddhism)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구 중심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미국의 학생들의 관심이 워낙 많아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시아의 종교(Religions of Asia) 수업은 현재 35명의 학생들이 수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수업은 아시아 연구 프로그램(Asia Studies Program)의 일환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보람 있는 수업입니다. 미국 학생들에게 동양의 불교철학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가르치면서 제가 학생들로부터 받는 영감이 있거든요. 저도 한 수 배우는 거죠 학생들로부터.”
연설하려는 헤바 교수
헤바 교수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 종교학과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안으로는 학생들에게 동양의 철학과 종교를 전하고 있고 밖으로는 IBAA((International Buddhist Association of America: 미국 국제 불교 연대)의 이사회 멤버(Member, Board of Directors)이자 중역(Executive Vice-President)으로 활동을 하며 동양의 여러 불교단체들과 연계하여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불교 행사 참여에도 적극적이어서 워싱턴 D.C.와 메릴랜드, 버지니아 지역의 주요 불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 연화정사의 불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성원 스님과의 인연이 맺어지게 된 것이다.
“ 성 원 스 님 은 카 리 스 마 가 있 었 어 요 ( He was charismatic). 자기 불도 수행의 테두리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계 밖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행동하며 외부로 불교의 외연을 넓히고자 부단히 애를 썼어요. 저도 그 점을 굉장히 높이 사고 있습니다. 우리 IBAA가 지향하는 방향과 성원 스님이 지향하는 방향이 맞닿아 있는 것이죠. 이 지도를 한번 보세요.” 헤바 교수는 구글에서 ‘Abraham_Dharma’ 라는 지도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이 세계지도에는 종교의 분포가 색깔로 나타나 있는데 분홍색 계열로 칠해진 부분이 ‘Abrahamic’(Semitic-derived: 유대주의에서 발상한)종교, 즉 유대교에서 발상한 종교(기독교, 가톨릭교, 이슬람교)가 분포한 나라이다. 그리고 노란색 계열로 이루어진 부분이 바로 ‘Dharmic’(Indian-derived: 인도에서 발상한)종교, 즉 인도의 불교에서 발상한 종교가 분포한 나라인 것이다. 분홍색이 세계지도의 80% 이상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노란색은 아시아의 나라들로 굉장히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도를 보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한 눈에 이해가 되었고, 성원 스님이 지향하던 바와 IBAA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실감을 할 수 있었다. 헤바 교수가 몸담고 있는 IBAA는 미국에서 불교를 포교하고 보호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단체이다. 불교의 각 종파들과 연대하여 기독교가 대다수인 미국 내에서 불교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불교 확대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대승불교의 경전을 독송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불교 역사, 문화를 장려하고 각 지역 그리고 국제적으로 정기적인 회합, 워크숍을 개최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신자들에게 불교계의 이슈를 전하고 있다.
“저희 IBAA가 지금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미국 백악관에서 불교 기념일에 축하를 받고 불교행사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현재 백악관에서는 연례행사로 미국의 대통령이 세계의 주요 종교의 기념일에 축사를 하고 작은 축하행사를 열고 있는데, 아직 불교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IBAA에서는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불교 기념일에 축하를 받을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성원스님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봉축 메시지를 받은 것도 그 일환입니다. 두 번째로는 불교 연구회를 조직해서 불교의 큰 세 분파인 대승 불교, 소승 불교, 그리고 밀교가 불교라는 공통의 가치와 기치 아래 함께 모여 서로의 사상과 철학을 나누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나무와 숲’이라는 개념에서 시작된 것인데 아시아의 각 나라들이 서로 다른 불교 계파와 종파라는 무수한 나무로 구성이 되어 있지만 결국에 그 나무들이 이루는 숲은 ‘불교라는 거대한 숲’이기에 불교신자라는 공통분모로 힘을 모으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헤바 교수는 자신이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러 교실로 들어가는 것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러 들어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연구실에서 불교와 동양 사상을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기에 그 과정이 험난하더라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