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의 발전 과정
통계학(statistics)의 어원은 라틴어의 status(국가 또는 상태)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통계학은 원래 국가 또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학문이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국가의 재정 및 방위를 위하여 납세와 징병을 부과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서 과세대장, 토지대장, 징병대장 등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이때부터 통계조사의 형태가 실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독일에서느 콘링(H. Conring : 1606∼1681)에 의하여 창시된 국상학 (staatenkunde)이 오늘날의 통계학의 성질을 갖는 학문적 체계였으며, 특히 이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아헨발(G. Achenwall : 1719∼1772)은 국상학을 계속 발전시키면서 통계학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하여 오늘날 그를 『통계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독일의 국상학과 거의 동시에 영국에서 성립된 통계학의 근원적인 학문체계는 정치산술학(political arithmetics)이다. 이 학파의 대표적 학자는 그랜트(J. Graunt: 1620∼1674)로써 그는 1662년 "사망표에 관한 자연적, 정치적 관찰"(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upon the bills of mortality)이라는 문을 발표하였고, 이를 통하여 대량관측에서 법칙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런데 국상학은 현상을 문장으로 기술하고자 했으나 정치산술학에서는 수량적인 자료로서 분석하고 설명하였다.
근대 통계학의 성립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 시작된 확률론의 발달에서 비롯된다. 베르누이(J. Bernoulli : 1654∼1705)에 의해 발견된 대수의 법칙(The law of large numbers), em 무아브르(A. De Moivre : 1667∼1754)에 의해 정리된 확률이론, 라플라스(P.S. Laplace : 1749∼1827)에 의해 출간된『확률의 이론적 분석(The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y : 1882)』 등의 연구들이 통계학의 중요한 매개체로서 확률이론을 정립시켰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케틀레(L.A.J. Quetelet : 1796∼1874)는 영국의 정치산술학과 독일의 국상학을 종합하여 근대적인 수리통계학을 대성시켰다. 즉, 19세기에 들어와서 통계이론은 케틀레의 의하여 근대적 과학으로서의 통계학으로 정립된 것이다. 그래서 케틀레를 『근대통계학의 시조』라고 부른다.
현대 통계학은 20세기 초 영국의 고셑(W.S. Gosset : 1876∼1937)이 표본본추출에 의해 획득한 자료의 해석방법을 통계학 학술지인 'Biometrica'에 1906년 발표하여 소표본에 의한 추측통계학으로 발전되었다. 고셑의 표본추출이론은 피셔(R.A. Fisher : 1890∼1962)에 의하여 모든 과학적인 조사에서 실험이론이 도입되었고, 또한 그는 귀무가설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소개하였으며 분산분석에 대한 이론적 발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컴퓨터의 급속한 발달은 현대 통계학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