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부(父) 자를 ‘보’로 읽는 경우
고공단보(古公亶父)라는 사람이 있다. 주나라의 시조이다. 성은 희(姬)이고 고공은 벼슬 이름이며 이름이 단보이다. 단보를 자(字)라고도 말한다. 주나라가 세워진 이후 태왕(太王)으로 추증되었다. 전설상의 군주인 황제(黃帝)의 35대손이며, 후직(后稷)의 12대손이다. 적인(狄人)에게 쫓겨서 희씨 일족과 주민 천 가구를 이끌고 기산(岐山)으로 옮겼는데, 은나라에 의해서 이곳의 제후로 봉해졌다. 그의 3남 계력(季歷)의 아들이 주 문왕이고, 문왕의 아들인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다.
그러면 고공단부의 ‘부(父)’ 자를 왜 ‘보’로 읽을까?
부(父) 자는 ‘아비 부, 자(字) 보, 남자의 경칭 보’로 읽는다. 보(父) 자가 자(字)로 쓰일 때는 항상 ‘보’로 쓰인다. 중보(仲父)는 이곡의 자이고, 문보(文父)는 허목의 자이다. 재보(再父)는 길재의 자이며 정보(貞父)는 최항의 자이다. 술보(述父)는 김선행의 자이며, 근보(勤父)는 김사우의 자이다.
또 남자의 경칭으로 쓰인 예는 공보(孔父)와 이보(尼父)를 들 수 있는데 이는 공자를 공경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또 초패왕 항우가 범증(范增)을 존경하여 아보(亞父)라 한 것이나, 어부(漁夫 漁父)를 아름답게 일러서 어보(漁父)라 하는 것도 이와 같다.
고공단보(古公亶父)의 단보도 이처럼 자(字)이거나 경칭으로 쓰인 것이다. 또 금강경의 구절에 게송(偈頌)을 지은 야보(冶父)도 같다.
우리가 잘 아는 허유(許由), 소부(巢父)도 허유와 소보라 읽는 것이 타당하다. ‘부’ 자가 이름자로 쓰일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보’라 읽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또 상보(尙父)란 말도 있다.
상보(尙父)란 일반적으로 군주가, 연로하거나 공이 큰 대신들에게 주었던 존칭이었다. 그 유래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주 무왕이 강태공 여상을 ‘사상보(師尚父)’라 칭했던 것이 그 시초이다. 이와 흡사한 표현을 보자면 제 환공과 진 시황제가 각기 관중과 여불위를 ‘중보(仲父)’라 호칭한 예가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칭호가 자주 쓰이지 않았으나 유독 나말여초에 접어들면서 태조 왕건이 상보의 칭호를 많이 썼다. 이는 당시의 특수한 시대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웅할거의 난세였던 후삼국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라의 구 왕족과 지방의 호족들을 비롯한 여러 세력들을 최대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왕건은 연로하거나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 상보 칭호를 주면서 다독이려 했던 것이다.
기록상에서 왕건에게 상보 칭호를 받은 이들은 대체로 그에 걸맞은 격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후백제의 왕이었으나 고려에 투항한 견훤,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고려에 투항한 경순왕 김부, 고창전투 당시에 고려를 지원하고 신라와의 연결을 도와준 호족 최선필 등이 바로 그들이다.
김선소(金善紹)란 사람도 왕건에게 상보 칭호를 받았다. 태조 말기인 939년에 이르러 사망한 자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에 그의 이름이 보이는데, 그 또한 상보라 호칭되고 있다.
김선소는 기록상에서 자적선사를 후원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재가제자 중 한 사람으로 언급되는데, 그에게 어떤 공로가 있었기에 상보 호칭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비문에 언급된 이름자를 제외하면, 그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