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금지법 이슈를 통해서 한국사회를 다시 본다
1.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지형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정부에 권고하고 2007년 참여정부가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지 6년째가 되는 해다. 17대, 18대 국회를 거쳐 왔지만 이번 19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중견 의원이 법안 발의를 했다가 결국 철회하는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큰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구도가 있다. 바로 (동성애)차별금지법이라는 ‘낙인’과 보수기독교계의 전면적인 반대운동이다. 이러한 강력한 구도가 만들어져 계속 유지되고 강고해질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이렇게 비이성적인 논쟁 구도와 쟁점이 형성되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동안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사회의 지형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을까?
그동안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지금의 박근혜 정부 모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유엔 등 국제사회의 권고를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 제1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를 줄기차게 받으면서 이명박 정부에서도 2010년 초 법부무에서 차별금지법 추진단을 구성해 1년여 동안 안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러나 2010년 말 보수기독교계가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하자 법무부는 임기 내 차별금지법 발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포기를 선언했다.
차별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한 법무부가 반대의견이 있다는 이유로 포기하거나 추진을 미루기만 했지, 한 번도 제대로 국민에게 차별금지법을 홍보하고, 비이성적인 반대의견을 설득하려고 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점점 더 노골화되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왜곡과 혐오 선동에 대해서 어떠한 정책적 의지가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의 주무부처가 되고자 하고 있으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등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부처로서 어떻게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왜 만들려고 하는지 진심으로 자문자답해야 한다.
인권위 또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참여정부 때 제정을 권고한 이래 인권위는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의견을 표명한 바가 없다. 최근에는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대해 담당 기관으로서 검토의견서를 내야 했는데, 철회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자 이를 이유로 아예 검토의견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인권위의 역할이 축소되고 보수화되었던 경향과 긴밀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나 차별금지법의 취지와 가장 가까운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전혀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이러한 소극적인 업무수행이 계속된다면 법의 실행에 있어서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2007년 차별금지법 공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사적영역에 과도한 개입과 기업운영의 자율성을 심대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한국경제인총연합회(아래 경총)는 반대의 입장을 밝혔고,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별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반대의 입장을 밝혀왔다. 경총은 이러한 입장을 보수기독교계처럼 적극적으로 여론화하지 않고 있지만, 논의가 본격화되면 압력을 행사할 것이고 관련부처에서는 강력한 부담으로 느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총 등이 주장하는 ‘사회적 비용’의 과다, 기업활동 자유 침해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고, 그러한 주장과 차별금지라는 가치가 갈등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기업이 왜 차별금지라는 사회적 역할에 동참하고 협조해야 하는지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다. 지난 4월 30일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어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었다. 역시 재계는 이 안에 반대했으나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적 현상과 노동력 부족에 대한 우려로 관철되었다.
이때 사용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합의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고 경제성장을 추동하기 위한다고 하지 않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라는 ‘수사’를 사용했다. 이것을 ‘수사’라고 평가한 이유는 고령층 노동자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등 고용상 평등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에 있어서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고, ‘고령’이라는 연령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는 사회적 필요에 의한 차등대우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행사되는 차별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
지, 각각에 대해 제대로 정당화의 이유가 소통되고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분명한 행위자로서 종교계를 빠트릴 수 없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보수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2007년 참여정부가 법안을 제출했을 때부터 차별금지법에서 차별사유 중 하나로 나열한 ‘성적 지향’을 근거로 ‘동성애차별금지법’이라고 명명하고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특히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일부의 교리를 근거로 차별금지법이 종교 활동을 제약하고 범죄시할 것이라면서 공포를 조장하고, 의회선교연합 등 정치권의 기독교 모임을 활용해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얼마 전 19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김한길, 최원식 의원의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철회하게 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차별금지법으로 말미암아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확산됨으로써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국가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적 지향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이들을 ‘종북 게이’라고 매도하는데 이르렀다.
이러한 프레임은 2011년 군형법 92조 6항 동성애 처벌조항의 위헌심사 과정에서, 서울시 등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보수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운동은 대중집회, 전단 유포, 일간지 전면광고 등을 통해서 여론화를 꾀하고 있는데, 이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하고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가로막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종교계의 이러한 주장을 위에서 언급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과 함께 살펴볼 때, 종교계가 차별금지법 때문에 ‘동성애가 허용되고 조장될 것’이라는 주장은 ‘차별금지’에 대해 심각하게 오해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차별금지법안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을 예방하고 차별을 시정하고, 차별피해자를 구제하는 법률임에도 동성애를 특별히 우대하거나 장려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은 성소수자가 사회구성원임을 부정하고,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기본적 권리를 인정받는 것조차 거부하겠다는 그야말로 반사회적인 주장이다.
기독교계는 왜 이러한 무리한 주장을 벌이고 ‘열정’에 찬 반대운동에 사활을 걸고 있을까? 보수기독교계의 정치화와 세속화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이 흐름이 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으로 모이고 있는가에 대한 한국적 맥락의 분석은 부족한 현실이다.
다만 지금의 ‘종북 게이’라는 프레임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사회 기독교의 초기상황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공산주의를 악마화하였고, 이는 미국 등 서구의 흐름과도 비슷했기 때문에 빠르게 수용되었다. 또한 민주화 이후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정치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반북친미 입장을 공고히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반동성애가 교회의 쟁점이 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신보수주의 쟁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보수 교회의 정치화라는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법안을 둘러싼 쟁점
현재 제출된 적이 있거나 제출되어 있는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가다듬어야 할 많은 사항이 있음에도 현재는 보수기독교계가 만든 프레임 안에서만 쟁점화가 되고 있다. 실례로 “목사가 설교 중에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면 30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학교에서 동성애가 나쁘다고 가르치면 학교장이 처벌을 받는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대동소이하지만 지금 철회된 안을 제외하고 김재연 의원안을 통해서 살펴보면, 벌금과 처벌에 대한 조항은 차별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자동으로 부과되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 차별로 인한 구제는 피해자가 인권위에 진정하거나 소송을 통해서 차별로 인정받아야 하고, 인정이 되면 인권위나 법원은 차별에 대한 시정을 권고하거나 차별행위의 중지, 원상회복, 재산상 피해를 받은 만큼 손해배상 등을 판결할 수 있다.
다만 차별행위가 고의적이고 반복적, 보복성일 경우 2배에서 5배 이하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 등이 피해자가 차별구제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할 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법안의 제정과 동시에 자동으로 교회와 미션스쿨의 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될 거이라고 선동하는 것이야말로 악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와 관련해 사회적인 쟁점은 교육이라는 공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션스쿨에서 타 종교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목사의 설교라고 해도 성희롱발언 등 실정법이나 헌법적 평등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또한 특정 종교적 세력을 등에 업고 재산상 특혜를 받거나 특정한 종교교리를 이유로 사회적 평등권 실현을 반대하는 지금의 현실이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쟁점은 차별금지법을 넘어서 학교와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하고 지속적인 토론이 필요함을 확인하게 해준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쟁점은 더 중요한 곳에 있다. 우선 법안의 명칭부터 검토해볼 만 하다. 2010년 결성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도 외국의 입법례를 검토하고, 차별금지법이 헌법상 평등권을 구체화한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인권기본법의 성격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법의 취지와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명칭이 무엇일지 논의한 바 있다.
또한 고용상 평등에 실효성을 가지려면 ‘근로자’와 ‘사용자’를 정의하고 있는 조항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더욱 심화하고 있는 비공식노동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차별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고용상 차별금지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임에도 사회적인 쟁점이 되지 못하고, 노동계의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지 못한 상황은 법제정 이후에도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상하게 한다.
또한 성희롱 외에는 처음으로 ‘괴롭힘’이 법제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괴롭힘 조항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차별금지법안을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어디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인권위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명확한 설정도 필요하다. 독립기구인 인권위가 정권의 성향에 따라 매우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모든 법률이 그러하듯이 제정이 목표가 아니라, 제정 이후에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목표한 바를 실행하기 위해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의미가 크게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