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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
우리 앞에 놓인 복과 저주.
신11:26-32절, 190.290.404장.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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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진정 사소한 일로부터 인생을 좌우하는 큰 일까지 매순간 자기 의지에 따른 선택은 계속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선택에 있어서 육신의 평안과 성공이라는 가시적 측면만을 고려할 뿐 보다 중요한 영적 측면을 놓쳐버리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눈에 보이는 가시적 측면보다는 중요한 영적 문제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이제 축복과 저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하고 그들에게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축복과 저주를 앞에 두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면 가나안 약속의 땅에서 오래 사는 복이 올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장막에서 쫓겨나서 죽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축복과 저주 중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 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1.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입니다. 1)감정과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성도의 일생을 삽니다. 감정이 없는 인생은 식물 인생일 것입니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인생에게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쁠 때 울고 슬플 때 웃는 자는 무서운 자입니다.
고우면서도 미워하고 좋아하면서도 돌아서는 자는 미련한 인간입니다. 미워하면서 너털웃음으로 받아들이고 원하면서도 거부하는 자는 독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감정이나 기분 때문에 신앙생활의 기복을 이루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 관계입니다. 신용 없는 계약은 벌써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때문에 감정이나 기분으로 신앙생활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감정 이전에 의지이며, 의지 이전에 이성이요, 이성 이전에 영성인 것입니다. 영성의 신실성만이 신앙을 굳게 해 줍니다.
2)육신과 이권에 좌우되지 않는 성도의 일생을 삽니다. 신앙생활에 인간의 이권이 작동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세상 적인 이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끝없는 욕심의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돌을 취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끝없는 욕구 충족 때문에 성도 생활에 손해가 온다면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하루는 일생의 축소입니다. 이 하루가 내게 욕심으로 인하여 복 대신 저주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순경과 역경에 좌우되지 않은 일생을 삽시다.
훌륭한 인격자란 위험한 고비를 당하면, 더욱 더 훌륭해지는 법입니다. 그것은 마치 향기가 부서지면 부서질수록 더욱 더 향기로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크리스천은 가시밭에 백합화와 같습니다. 백합화는 가시에 찔리면 찔릴수록 백합화 향기가 더욱 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순경과 역경은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순경에서 신앙을 버렸고(왕상11:1-13절), 마가는 역경에서 신앙을 버렸습니다.(행 15:38절). 그러나 구약의 “요셉”이나 초기 교회 중의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은 순경이나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자로 우리의 신앙의 귀감이 되시는 분들입니다.
2.인간은 축복과 저주 두 갈래 길 앞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수많은 길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각자는 그 길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자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길에 관하여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실로 이 갈림길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를 결정짓는 기로(岐路)이기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비록 사람들이 두 길이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이 두 길 중에서 한 쪽 가에 이미 참여한 상태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이 두 갈래 길을 축복과 저주라는 극명히 대조되는 길로 묘사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날마다 갈림길을 만나는데 갈림길은 축복 내지 저주를 선택해야 하는 두 갈래 길입니다. 마치 그 옛날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제시되었던 길처럼 말입니다.
창13:9절에서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롯은 근시안적으로 소알 땅을 바라보고 선택했다고 종국에 가서는 가정 파탄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신30:19-20절에 생명과 사망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사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달려 있음을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명령이 아니라 자유의 선택입니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따르게 되며 영생과 명망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 축복 받든지 불순종함으로 멸망 받든지 선택 여하에 따라 그 결과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3.두 길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의 두 갈래 길 중 인간은 반드시 어느 한쪽 길을 선택해야만 하며 또 이미 선택했습니다. 혹자는 우리 인생에 관하여 요행이 아니라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축복의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저주의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면 성경 중에서 잘못된 선택 자들을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아담의 선택은,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사망과 저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2)아합 왕의 선택은, 왕상16:30절 이하에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이,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세벨의 충동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죄를 범했습니다. (3)가룟 유다의 잘못 선택은, 정욕에 이끌린 선택, 물욕에 이끌린 선택으로 망합니다. 선택을 잘 한 자들입니다.
(1)기생 라합의 선택은, 히11:31절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2)모세의 선택은, 히11:24-25절에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선택을 잘합시다. 만사가 주님의 뜻에 맞도록 선택하여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며, 교회와 나라를 살리는 귀한 축복의 종, 능력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병석에 있는 사람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바른 선택의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해야 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4.순종, 불순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결국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본문은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27절),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28절)고 했습니다.
눅9:62절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역설하셨습니다. 농부는 밭을 갈 때 전방에 멀리 있는 목표를 하나 정해 놓고 소를 몰아갑니다. 우리는 오르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이미 선택하고 결단한 축복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5.축복의 길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신28:1절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 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출 20:6)에 "나를 사랑하고 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1)주일을 잘 지키는 자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십계명 중 축복의 계명은 4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면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구약은 토요일이 안식일로서 창조의 완성으로 편안히 쉬고 복 받는 날이지만 신약의 안식일은 주일로서 영적 구원을 완성하신 날로, 주를 위해 봉사하고 예배드리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성수주일을 지켜야 하는데 주일의 전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어야 합니다. 시간의 7분의 1을 바침으로 거룩하게 지키면 나머지 6일도 하나님이 맡으셔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일 하루만 거룩히 지키고 6일을 되는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2)십일조 생활을 하는 자는 축복을 받습니다.
말라기 3장에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십일조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사단에게 시험 당하실 때(마 4장) "사단아 물러가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만은 하나님께 서 축복해, 주시는가? 아니하시는가?
시험해 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반드시 십일조 드리는 자에게 크신 축복을 내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를 복되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자는 하나님이 하늘의 복을 주시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가정이 축복을 받고, 회사에 가면 회사가 복을 받습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3)주의 종을 존경하는 자는 축복입니다. 히13: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6.하나님이 명하시는 결심은 한 가지 사항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요3:19-21절에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을 오지 아니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불. 신앙에 대한 정죄와 심판은 이 세상에서 시작됩니다. 그 증거는 현실 세계 어디서든 명백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기뻐하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 죄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사함 받지 못하게 되고 귀한 진리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범죄의 결과인 악한 행위가 예수의 빛에 의하여 불의하고 누추한 것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그 빛을 떠나 암흑 가운데 도피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즉 심판 앞에 있는 인류의 상태인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 죄 한 이후에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피하기 위하여 숲속에 숨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서 행하는 인생의 모든 일들은 다 범죄인 것입니다. 이 범죄와 악이 쌓이고 또 쌓일수록 광명을 따라 흑암에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7.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축복이요 부인하시면 저주가 됩니다. 우리가 복을 받는 비결 중 하나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예를 보면 창 22:12절에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시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정 후에 저에게 축복을 하시었습니다. 창22: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1)큰 복을 준다고 하였습니다.(창22:17절), 그것은 믿음의 복입니다. (2)영적 후손의 축복입니다.(창22:17)."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신앙의 후손이 많아질 것에 관한 축복입니다. 교회의 축복입니다.
(3)승리의 축복입니다.(창22:17)."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4)부활의 축복입니다.(창22:17). 아브라함의 자손이 사망을 이긴다 함은 곧 부활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이삭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남과 같습니다. (5)메시야의 축복입니다.(창22:18절).
네 씨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화육 강세하여 만민의 구주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직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화육강세하심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아간은 여호수아 앞에 전리품 숨기다가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이 같은 예가 허다합니다만 다 열거할 수 없고 오직 우리만이라도 앞서 말한 자들과 같이 인정을 받는 자가 되어서 복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우리의 소원이 다 이루어져 복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신5:29절에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 이 세상의 잠시 축복 뿐 아니라 영원토록 복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강압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복과 저주는 여러분의 선택여하에 따라 갈라집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모든 성도들이 복 받는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