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셀토스를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했던 말입니다. 블랙홀. 심지어는 빛까지도 도망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중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말입니다. 셀토스는 이전의 어떤 모델보다도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셀토스를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포지셔닝 때문입니다. 셀토스는 차체 크기와 가격에서 아예 대놓고 준중형 SUV의 엔트리 시장을 겨냥합니다. 사실 준중형 시장은 세단은 물론이고 SUV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이 위에서는 QM6나 이쿼녹스처럼 중형치곤 작은 중형 SUV들이 조금 보태서 중형의 여유를 누리라고 유혹하고 있고, 아래쪽에서는 작지만 반짝거리는 소형 SUV들이 치고 올라오는 이른바 샌드위치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쉐보레 트랙스나 르노삼성 QM3, 현대차 코나처럼 작지만 품질이 높은 고급 소형 SUV들이 가격적으로 준중형 SUV의 엔트리급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들은 성격적으로 준중형 SUV의 엔트리 모델들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작아도 비싼 소형 SUV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이나 주관, 혹은 트렌드를 중시하는 이른바 고관여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넓은 실내와 저렴한 가격을 갖춘 실속형 소형 SUV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준중형 SUV의 엔트리급 모델과 성격적으로 직접 부딪치는 관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미 그런 시도가 있었습니다. 소형 SUV 시장을 뒤집어버린 쌍용차 티볼리의 롱바디 버전인 티볼리 에어입니다. 그리고 뿌리는 준중형이지만 소형 SUV 카테고리로 은근슬쩍 끼워 넣었던 기아차 니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티볼리 에어는 완성도에서, 니로는 높은 시작 가격에서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셀토스는 본격적으로 준중형 SUV 시장을 침공하는 첫 소형 SUV입니다. 셀토스는 소형 SUV로서는 차체가 큰 편이기 때문에 B+ SUV라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현대차 코나의 소형 SUV 플랫폼을 사용하므로 휠베이스는 준중형 SUV들보다 7~10cm 짧지만 차체 길이는 다른 소형 SUV들보다는 무려 20cm정도, 심지어는 니로보다도 길고 준중형인 투싼과 스포티지보다는 10cm 정도만 짧습니다. 그러나 박스형 차체 디자인은 차체를 실제보다 크게 보이게 하고 실내 공간도 최대한 뽑아낼 수 있으므로 준중형 SUV에 꿀리지 않습니다.
셀토스를 블랙홀로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상품성입니다. 플랫폼은 소형 SUV용으로는 고급형인 코나를 바탕으로 합니다. 따라서 4륜구동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니로 대비 우위이며 준중형 SUV 모델들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워트레인은 코나와 동일한 1.6 터보 GDI 177마력 버전과 스마트스트림 디젤입니다. 즉 파워트레인은 준중형 SUV에서 검증되고 적용 모델이 많아 성능과 원가에서 유리한 구성을 빌려다가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 ADAS 기능이 기본 적용되어 오히려 준중형 모델들보다도 기본 사양이 높은 하극상을 일으킵니다. 즉, 신뢰성도 높고 가성비도 높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는 투싼보다는 약 300만원의 가격 이득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유는 심리적 만족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셀토스는 실제보다도 더 커 보입니다. 즉, 소형차를 샀다는 상실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강인하고 화려한 앞 얼굴도 소형차의 다소곳함 혹은 스포티함보다는 웅장함에 가깝습니다. 옵션 리스트를 봐도 얼마 전까지는 중형 이상에서나 기대할 수 있었던 고속도로 주행 보조, 정지 후 재출발 기능을 지원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HUD, 소형차에는 없는 뒷좌석 송풍구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셀토스는 소형차같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심리적 장점입니다.
제3세계 개발도상국을 위하여 기획됐던 현대차 베뉴와 기아차 셀토스. 두 모델 모두 다소 과장된 외모로 실속형 모델이라는 점을 잘 가리는 영리함을 가진 모델입니다. 국내용 모델은 제3세계용보다 우수한 플랫폼과 파워트레인 등으로 성능이 보강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요즘 시장 상황에는 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주변의 시장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떠나가던 소비자들을 자동차 시장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구세주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