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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각인된 문화적 유전자―밈(meme)
2017년 5월10일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날입니다.
전임 대통령 박근혜가 미결수에 수감된 채 치러진 선거로 41.1%를 득표하여 문재인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를 촛불혁명으로 전대미문의 탄핵과 해임을 이끌어 낸 결과로 탄생한 정권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취임식은 간소했으나 취임연설은 비장하고 웅숭깊었습니다.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이라는 국정철학을 담은 글이며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국민과의 약속에서 제가 가장 뜻 깊게 생각했던 것은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것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 뚜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면 ‘이젠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은 나오지 않겠구나’라고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슨 풍수(風水)나 도참사상(圖讖思想)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해임,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한번도 제대로 된 퇴임을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면서 ‘북악(北岳)의 터가 참 험난하구나’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 동기회 홈페이지 칼럼난에 『북악을 보면서…』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풍수와 도참사상에 대한 신봉자는 아니면서도 ‘북악의 터가 군림하는 자리인지는 몰라도 소통과 화합하는 자리는 아닌 것같다’라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본래 그곳은 일본제국의 총독부 관사였습니다. 그러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거주할 때는 경무대였다가 윤보선 대통령때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개칭을 하였습니다.
옛날 부터 우리 문화에는 하나의 마을에서도 신성한 곳과 속된 곳을 구분하는 그런 민족이었습니다. 마을에 길흉사(吉凶事)가 있으면 마을의 원로들은 그 신성한 곳을 참배하고 제사도 지내고 했습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은 그 곳에서 해뜨기 전 정화수를 올려 놓고 천지신명께 빌곤 했지요.
저는 북악의 험난한 지기(地氣)를 누를려면, 그 곳에는 사찰이나 수도원 같은 종교적 의례가 행해지는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예를 보더라도 험준하고 바위절벽들이 있는 곳에는 수도원이나 사찰이 들어서 있는 걸 보게됩니다.
그런데 과문한지는 몰라도 우리는 결국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보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권력이지만 겸손한 권력을 원합니다. 그러나 권력과 주변의 실세들은 청와대만 들어가면 군림하는 자로 바뀌는 모양입니다. 권력은 인간의 뇌구조도 바꾸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참모들도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으며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데자뷰입니다.
지금의 비서관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승지(承旨)도 판서나 참판의 권위를 인정하고 서열을 존중했습니다. 지금의 장·차관들은 존재감도 없고 비서관들로 이루어진 청와대 정부가 전면에 나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2020년도 초입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한해 내내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이 진영논리는 식을 줄 모르고 서로 상대편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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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19 바이러스는 하고 많은 동물 중에도 개체수가 가장 많고 이동성이 뛰어난 인간을 숙주로 선택한 것을 보면 무슨 집단지성이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과잉연결된 인간세계에 대한 바이러스의 엄중한 경고이듯이 우리의 진영논리는 정치과잉이며 성도착 수준입니다.
2020년도 코로나 창궐과 함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신겐쇼부(眞劒勝負)였습니다. 그에 따라 지지하는 세력들은 서로 애국을 외치며 둘로 갈라졌습니다. 자칭 애국자들과 정의의 사도들이 사방에서 이렇게 떼지어 들끊는데 여전히 세상이 이 지경인 까닭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오죽하면 가황(歌皇) 나훈아가 KBS TV에 무료출연까지 하면서 “테스형(兄)!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이 왜 이렇게 살기 힘들어”라는 노래를 부르며 국민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정도입니까.
그가 테스형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서양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원래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말이지만 그에 의해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그 당시 아테네는 소피스트들이 많이 들끊어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음으로 균형을 잃지 않는 자세를 요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사람은 사회적 구속력에서도 또한 시대적 구속력에서도 자유로율 수 없는 존재이므로 주제파악을 잘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주제넘은 짓은 하지말라는 도덕철학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던지 그것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비록 자신의 삶은 비루할지언정 자신의 올바르고 능력있는 대표를 뽑아 자랑스러운 의회로 보낼 신성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괴물일 때 그 괴물들은 외계에서 날아온 겻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란 것 역시 분명합니다. 우리의 국회의원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가 희생과 고통 속에서 짧은 기간 동안 서구 민주주의의 이식에 성공했으며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함부로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정치의 타락 탓으로 돌립니다.
정말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우리들이 키우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어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의도의 국회의사당과 용산·원효로를 연결하는 원효대교를 견자교(犬子橋)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대통령의 인사행위에서 청와대와 행정부의 고위직에 추천되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아 합니다. 인사청문회를 보면 담당의원들은 마치 판관처럼 인사대상이 되는 사람(주로 고위 공무원입니다)을 죄인 심문하듯이 추궁하여 당사자의 치부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합니다. 그래서 낙마하는 사람도 많지만, 설사 그가 청문회를 통과하여 고위직에 임명된다 하더라도 그가 앞으로 맡게 될 조직에서 장(長)으로서의 영(令)이
설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청문회를 마치고 원효대교를 건너가는 인사들이 내뱉는 말이 ‘xxx들’입니다.
원효대교는 부지불식간에 견자교(犬子橋)가 되며, 의사당은 개시장(犬市場)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를 기념하여 명명한 원효대교입니다. 지하의 원효대사가 들었다면 ‘이 놈의 후손들이 나를 이렇게 능멸하는구나’라고 하며 개탄을 했을 것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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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매일 살인행위에 가까운 언어들이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시인 타고르의 말이 떠오릅니다. “정치적 자유도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공생할 수 없는, 만약 법만 있다면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들끼리 절반씩 나뉘어 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실제 저 자신도 보수·진보의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정제되지 못한 말을 들어보면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사회의 최상위 엘리트 출신이며 오피니언 리더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미국에서도 의회를 비판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도 의회에 회의를 느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실이나 통계에 의할 것 같으면 미국에 태어났음이 분명한 범죄계급은 의회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외람되지만 제 자신에게 다짐한 것은 균형잡힌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였습니다. 균형잡힌 지식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사실 도저(到底)한 노력과 겸손이 요구되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무자비한 자신감에 차 외치는 소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에전의 지식인들은 양심이 없어서 지식인이 아니었는가본데, 요즈음의 지식인들은 정말로 지식이 없어서 지식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연예인 병에 걸린 지식인들의 양심이야 차후 따로 떼어놓고 더 따져봐야겠으나, 모두가 논객이고 모두가 활동가가 돼버린 세상에서 치열한 공부와 신중한 대화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어, 우리를 지탱하고 추동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념의 탈을 쓴 증오와 무명(無明)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다고 지식인으로 대접받는 사회는 품격있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사이비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대중 앞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연예인과 다름아닙니다. 예전에 우리 시대의 양심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를 부르짖는 많은 학생들을 대변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면 사람들은 왼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이 말을 지금의 시대에 대입해 본다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오른 쪽으로 기울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쓸 작정입니다.
왜냐면 지금의 운동권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신성한 제단으로 생각하며, 그들 자신이 그 신성한 제단 앞에 바쳐진 희생양이라고 착각하며 그 제단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퇴색이 되지않도록 과수원이나 포도원같이 끊임없이 보살피고 가꾸어나가야 할 제도입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우리는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어떠한 사회적 폭력으로부터도 보호 받아야할,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우리 문명의 지혜가 만들어낸 최소한의 제도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권력의 천칭이 균형점을 유지하고 있는지 항상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는 국민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적어도 인간으로 남아 있을려면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지속적으로 작동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아 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은 교도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곳곳에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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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서유럽을 보십시오.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용감하게 민주주의라는 포도원을 가꾸어 왔습니다. 그 포도원의 수확을 즐기던 풍요롭던 민주주의도 퇴행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만고의 진리도 아니며 도깨비 방망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섬기는 운동권은 일종의 혁명가로 자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낱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혁명가가 정치인이 되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그것은 역사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해 전인가 이 나라의 한 청소년이 IS조직에 가담하겠다고 중동의 사막으로 떠나 소식이 끊겼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을 가라앉는 세월호 객실에 가둬둔 체 가장 먼저 탈출해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펴서 말리고 있는 늙은 선장의 모습은 한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의 상징이듯, 나는 인류사 최악의 테러 집단에게서 위안을 얻으려는 열여덟 살의 우울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정신질환으로 보입니다.
나는 그가 이념을 배우기 전에 먼저 이념의 허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파든 좌파든 지성의 통찰과 반성없이 확신에 차 있는 자는 악마의 하수인임을 역사는 도처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하여 숙주를 필요로 하듯이 인간의 광기도 좋아하는 숙주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입니다.
얼마전 이인영 민주당 원내총무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했습니다. 야당의원의 질문 속에 ‘대한민국 건국을 상해임시정부로 보느냐 아니면 해방 후 수립된 대한민국을 건국으로 보느냐’라는 질문에 이인영은 상해임시정부를 정통으로 보고 있으며 이승만보다 김구선생을 더 존경한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해방 75년, 한국동란 70년을 지나면서도 아직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도 어떤 합일점을 찾지도 못하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조차 결론을 못내리고 있습니다. 이래 놓고도 우리는 대한민국을 국가라 할 수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듭니다.
특히 운동권 출신으로 문재인 정권의 통일부 장관인 이인영의 역사관은 너무 경솔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디 이인영 장관 뿐이겠습니까. 문재인 정권의 고위직은 586운동권 출신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인데다 교육감마저 좌파 일색이니 앞으로 세뇌될 학생들이 걱정입니다.
모든 역사적 인물들은 거대하고 오묘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공적과 과오가 훗날 공정하게 평가되고 웅숭깊게 해석되어야 함에도 말입니다. 역사를 무겁게 보지 못하는 지도자에 감염된 국민들은 경솔한 시민들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고 근엄한 얼굴을 한 애국자인 양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 시대를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라는 말을 한 독일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역사의 엄중함에 대해 경고하는 말입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아픔이 있으며 시대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벽이 존재합니다. 소수의 엘리트집단은 그 장벽에 좌절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더 진보된 시대정신을 열어가기도 하죠. 역사에 그 역할 모델을 맡은 사람을 우리는 창조적 소수자라고 말합니다.
특히 우리 현대사를 논하는 건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는 오브제와 어느 정도의 물리적 거리를 두고 그려야 입체감이 살아나듯이 역사를 서술할 때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적 거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현대사 부분에서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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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좌·우이념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그 어두운 시대를 너무 자주 건드려 상처가 덧나곤 합니다.
상해임시정부는 김구와 이승만이 똑같이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했기에 국제공산주의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민국 헌법은 임정의 법통을 이어 받고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는 6·29이후 노태우 정권이 5공화국 헌법을 개정할 때 광복군 출신 고려대 김준엽 총장이 임정의 정통성을 넣도록 부탁한 것을 노태우 정권이 받아들인 사실로도 역사적 계승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저서 『장정(長征)』에서 동경유학생이었던 김준엽·장준하가 학도병으로 만주 관동군에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수천리를 걸어서 중경에 있던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을 찾아갔던 고난의 역사를 서술하여 광복군의 역사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백범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마치 백범의 열등과 불온의 소치가 아니고 정치인의 균형적인 사고에서 나온 상식이듯이, 우남 이승만의 반공사상이 결국 민주주의 열강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동란을 극복하게된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다 읽은 듯이 애기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이 흔하지 않은 『백범일지』는 여러모로 굉장한 가치를 지닌 책입니다. 특히 상해임시정부 시절에 대한 김구 선생의 회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재의 좌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과정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기미년 대한민국 원년인 1919년에는 국내외가 일치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으나 세계 사조는 이념갈등으로 혼란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임정 내부에서도 분파적 충돌이 격렬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국무위원들끼리도 서로 으르렁대기 일쑤였는데 가령 국무총리 이동휘는 공산혁명을, 대통령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어 분위기가 어수선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동휘가 은밀히 백범을 공원으로 불러내 아우님도 나와 함께 공산혁명에 참여하자고 꾑니다. 백범의 반응은 단호해서, 공산주의는 러시아 공산당과 독일 사회민주당 좌파가 중심이 돼 결성한 국제공산당조직 코민테른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을 수 없음을 지적한 뒤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이 우리 한민족의 독자성을 떠나서 어느 제3자의 지도·명령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성을 상실한 의존성 운동입니다. 선생은 우리 임시정부 헌장에 위배되는 말을 하심이 크게 옳지 못하니 저는 선생의 지도를 따를 수 없으며 선생의 자중을 권고합니다.”
불쾌한 낯빛으로 백범과 헤어진 이동휘는 후일 레닌에게 가서 구걸한 독립운동자금과 금괴를 중간에서 빼돌려 도주합니다. 『백범일지』를 뒤적이다 보면 이 대목 말고도 공산주의에 대한 백범의 경계와 경멸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따라서 마치 백범이 소위 진보좌파의 정신적 태양처럼 오해받고 있는 것은 우파보다 좌파가 오히려 더 민족적인 색채를 내세우는 비틀린 팔자 탓이 큽니다. 좌파는 국뽕을 아편처럼 맞아 도취된 듯합니다.
『백범일지』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같이 국난을 당한 무인(武人)의 책입니다.
백범은 17세 소년도 일제의 첩자로 판명되면 극형에 처했다고 담담히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런 백범이 조선왕조 내내 중도주의자들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죽었듯이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졌습니다. 백범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엄중한 애국자가 왜 살해 당해야 하는지 그 현실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나중에 나는 이런 상황을 우리 문화유전자에서 다시 확인해볼 생각입니다.
상해임시정부와 김구의 『백범일지』가 사실이듯이 해방 후 좌·우의 갈등 속에서 남한만의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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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쳐 대한민국을 수립한 것도 견고한 사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근대사는 앞으로 전문 역사가들이 공론의 과정을 거쳐 역사적 사실로 확정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역사는 사실도 중요하고 해석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에 E 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관계의 부단한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또한 저는 20세기 역사철학의 중요한 주제였던 사실과 해석의 관계는 2천 백년 전 한(漢)나라 무제 때의 사관(史官)인 사마천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사관은 기록자다. 유일한 기록자다. 그가 붓을 들지 않으면 이 세상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런데 쓰야할 것과 쓰지 않아도 될 것을 결정하는 것도 바로 사관의 할 일인 것이다.”
쓰야할 것과 쓰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한다는 것은 모든 사실에는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될 수 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불후의 명작 『사기(史記)』를 후대에 남겼습니다. 그 시대에 그런 엄중한 역사관을 가졌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음은 박경리 선생이 사마천이라는 인물에 경탄한 나머지 헌사한 시(詩)입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은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천형 때문에 앓아 글을 썻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에 의지하여/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프랙탈이라는 기하학 용어가 있습니다.
자기 유사성을 기하학적 구조로 갖고 있는 현상을 말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임의의 한 부분이 항상 전체의 형태와 상사(相似)하게 전개되는 도형, 자연계에서는 눈송이와 해안선 등에서 볼수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 결정에서 볼 수 있는 육각형 대칭구조는 얼음 결정 격자에 있는 물 분자의 배열로 인해 만들어 집니다. 물질을 이루는 분자들이 모일 때는 고유하고 독특한 배열을 갖습니다. 원자들 사이의 당기는 힘 때문에 생기는 배열입니다. 분자나 원자들이 모여 일정한 공간적인 배열을 이룬 것을 결정이라 부릅니다. 이 결정이 모여 눈송이를 이룹니다.
우리 한반도의 남해안이나 서해안은 바닷가의 높은 산이나 드론을 띄워 보아도 복잡한 구조에다 섬이 많은 리아스식 해안입니다. 이것을 비행기가 항공하는 성층권(成層圈)에서 보아도 똑 같이 복잡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물을 다른 크기의 규모로 들여다 보아도 동일한 기본요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규모에 무관하게 스스로 닮은 성질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러 자기유사성 또는 규모불변성이라 하며 영어로 프랙탈이라 합니다.
자기유사성은 카오스 이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불규칙성(혼돈) 속에 일정한 규칙성(질서)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1세대 수학자인 김용운 교수는 그의 저서(『프랙탈과 카오스의 세계』 『한국민족의 원형』 『역사의 역습』)등에서 보듯이 학문적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은 분으로 한국사회의 부패를 고사리 잎사귀의 자기유사성으로 풀이합니다. 고사리 잎사귀의 어느 부분을 보아도 전체의 구조와 같습니다. 나라가 병들 때는 낱낱의 잎사귀에 해당하는 사회 각계각층이 모두 부패해 있는 것과 같은 구조라는 겁니다.
“한국사회의 구조가 조선의 세도 정권같이 군부안의 하나회, 안기부의 현철 인맥, 대학교수들의 학맥, 재벌기업의 카르텔과 사유화등 거의 같은 모습인 것은 자기유사성 현상이다.”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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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통은 조선사회가 당쟁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질된 것은 조선은 학문적 계보가 바로 정치적 계보가 되는 클라이언틸리즘(패거리주의)사회의 한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주도한 학문은 민생과는 상관없는 공리공론의 성리학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조선시대를 통털어 가장 문제적 인물이며,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우암(尤庵) 송시열이 있습니다.
클라언틸리즘은 라틴어 클리엔테스에서 나온 말로, 시오노 나나미의 대하작품 『로마인 이야기』에도 자주 나오다시피 로마제국이 지중해 전역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공화국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 동지나 경제적 후원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관계의 일종입니다. 이것을 모방해 로마카톨릭에서도 신앙을 이끌어 후원해주는 사람을 대부(代父godfather)라 하게되었습니다. 미국의 마피아 영화 『대부(Godfather)』도 조직폭력배들의 생존을 위한 인간관계를 위해 카톨릭의 대부제도를 차용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사색당파도 이러한 클라이언틸리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선비들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사회에 와서도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극복하기 어려운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정계와 관료사회, 재계와 연예계, 체육계와 문화계에도 클라이언틸리즘의 세계는 존재합니다. 심지어 식민지 국가의 엘리트들과 종주국 사이에도 클라이언틸리즘은 존재하며 우리는 독립돠고 나서도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 그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기도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경제발전에 대단한 성취를 이룬 거대한 중국사회의 부패에도 이러한 클라이언틸리즘이 자리잡고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클라이언틸리즘의 명령과 복종에 길들여져 있는 관료들은 민주사회가 찾아 올 경우 겉으로는 여기에 순응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숨기고 있습니다. 부패와의 전쟁을 벌인다 해도 부패와의 전쟁은 곧 클라이언틸리즘 집단 끼리의 권력투쟁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이러한 곳에서는 정직한 삶이 불가능해집니다.
조선시대가 학문적 계보가 곧 정치적 계보로 이어졌다면, 지금의 진보정권에서는 운동권 계보가 정치적 계보가 되는 클라이언틸리즘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조선 500년 역사의 진영논리를 닮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조선 역사에 각인되어 있는 문화적 유전자라면 우리는 그것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그 유전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개인도 어른으로 성장하기 까지는 여러가지 불운한 일을 겪으며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도 합니다만, 반면에 그의 내면에는 깊은 자상(刺傷)을 입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어린 소녀가 어른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라던지, 어린 나이에 계부나 계모에 의해 학대당한 일, 사내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집단 폭행을 겪는 경우, 이런 것들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공동체, 한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은 약소 국가로서 많은 외침을 당하면서 한민족이라는 집단은 깊은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는 이런 트라우마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존게임을 민감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하여 다른 분야는 몰라도 몸으로 싸우는 권투경기나, 축구의 한·일전에서는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상처를 가진 나라가 어디 우리뿐이겠습니까. 해외여행을 자주할 형편은 아니지만 동유럽과 발칸반도의 여러나라도 깊은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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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갖고 있다는 것도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라들의 비극을 보면서 역사의 트라우마는 과거의 청산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극복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 각인된 트라우마는 그들의 문화 속에 집단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단종애사와 사육신, 박종화가 주제로 삼은 연산군과 금삼의 피, 무오·갑자·기묘·을사 같은 4대 사화의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 같은 당쟁을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반 서민의 생업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먹물들끼리의 권력게임이니까요.
그러나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조선 백성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내었으며, 그 당시 조선인구가 성종이후 천만명 내외에 근접했을 거로 보아 우리의 집단무의식에 트라우마로 자리잡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라는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은 원작으로 하여 『명량(鳴梁)』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각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원작이 주는 글의 힘에는 한참 못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힘·글의 힘을 아는 사람은 이순신의 비장함, 최명길의 숨막히는 결단은 영화로도 표현될 수 없음을 느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하나의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그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사회를 치명적으로 몰고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임진왜란(1592년) 3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정여립모반사건으로, 흔히 기축옥사(己丑獄死)라고 불리며 조선의 정치풍토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3년동안 1000여명의 동인선비가 학살당하거나 유배당함으로써 국가행정력이 마비될 정도 였습니다. 그 앞의 4대 사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선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파탄으로 몰고 갔습니다. 무장해제된 조선이 할 수 있는 것은 각자도생 밖에 없었습니다.
수사반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인 당수(黨首) 송강 정철이었습니다.
정여립모반사건은 사실 뚜렷한 물증도 없이 진영논리로 반대파를 숙청한 것으로 요사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데자뷰였습니다. 동인 후손들은 얼마나 와신상담을 했으면 도마질을 할 때도 ‘정철 정철 정철’하며 고기를 썬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과연 정철이 주범일까요. 수사를 빌미로 정적을 떼거지로 제거하기는 했지만 주범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선조 이연 이었습니다. 사건 마무리 후 “악독한 정철이 내 선한 선비들을 다 죽였다.”고 분노한 그 임금 선조였습니다. 권력을 위해서, 왕권을 위해서 논리와 이성과 사람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왕이 선조 이연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너무 방대해서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 없어 관심있는 분이라면 기축옥사의 사료를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한가지 언급할 것은 우의정 정언신이 정여립의 먼 친척이라 하여 황해도 갑산으로 유배돼 그곳에서 죽었는데, 사실 그는 유성룡 이전부터 이순신의 무장(武將)으로서의 재목임을 알아보고 일찍이 선조에게 천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언신과 이순신은 서로 편지를 왕래할 정도로 서로의 인품을 인정하는 사이였으며, 그가 정여립사건으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있을 때도 면회를 가기도 했습니다. 면회를 갔을 때 옥사들이 술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나라의 우의정이 투옥되어 있는데 어찌 이리 방자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가”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빌미가 되어 이순신이 정여립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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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라고 모든 역사적 사실을 꿰뚫고 통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역사가에 따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건에 전문적인 연구를 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역사 강의를 들어 본 중에는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대한 것은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강연이 가장 공감이 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의 격랑하는 동아시아의 외교에서 우리는 병자호란에 처해 있을 때 남한산성의 최명길의 고뇌에 찬 실용적인 외교에서 우리가 수용할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한다는 것은 우리시대의 최소한의 지성이라 생각합니다.
프랙탈이라는 기하학 용어를 설명하다보니 저의 사고가 확장되어 문화적 유전자라는 개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만,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을 글로써 표현해보지 않으면 참다운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과 글은 서로 상보작용을 합니다. 생각은 글이라는 육화과정을 통하여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고, 또한 육화된 글을 통하여 우리의 사고는 깊이와 외연을 넓혀갑니다. 영어권 세계에서도 육화에 해당하는 Incarnation이라는 단어가 그런 웅숭깊은 뜻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제가 문화적 유전자라고 이야기 했을 때에는, 그것은 당연히 인간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것과 대칭관계가 되는 인간 고유의 속성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제가 이때 인간이라 칭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種)에 대한 것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영장류(침팬지,고릴라,원숭이,오랑우탄 등)와도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으며, 또한 호모속(屬)(호모에렉투스,호모하빌리스,호모네안테르탈렌시스,호모사피엔스)과는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를 인간이게한 군집생활과 문화라는 별개의 정신활동은 우리를 다른 가지로 분기시켜 새로운 종(種)으로 진화하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멸종하고 없지만 한때 우리와 공존했던 네안테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조직을 만드는 군집의 규모와 정신활동인 문화의 차이로 말미암아 멸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석기와 목기와 불을 사용하고 우리보다 체격과 힘은 크지만 대규모 사냥을 하며 자원을 획득하는 경쟁에서 사피엔스는 그들을 압도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그 임계치를 15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조직을 만들고 지식을 축적하는 기량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지혁명을 약 7만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자원이 되는 대상이나 위험한 동물에만 이름을 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인 부족이나 토템 혹은 정령신(精靈神)이라는 것에도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유의 힘은 사랑과 희망이라는 관념적인 것에도 이름을 붙여 인간의 역사를 먼 미래까지도 추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적 유전자 두 가지를 물려받는 셈입니다. 생물학적 유전자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해온 것과 달리, 문화적 유전자는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생겨나 체계적이고 누적적으로 확장해온 것입니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생물학자들이 밝힌 과학적 사실이지만 문화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문화의 기반인 지식에 대해서는 오히려 ‘획득형질은 유전된다’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우리는 태어나자 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을 하기 시작하여 우리를 단순한 생물학적인 개체로부터 사회적 존재로 바꾸어 놓습니다. 오랜 역사시대를 통하여, 또 그것보다 더 장구한 역사 이전시대를 지나면서 모든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또 어린나이에서부터 사회의 틀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신앙은 개인적인 유산이 아니라 그가 성장한 집단에서 얻은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언어와 사회적 환경이 그 어린아이의 사고를 결정하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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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격리된 개인은 말이 없고 생각이 없습니다. 이와같이 문화적 유전자는 생물학적 유전자와는 별개로 진화하며 인간의 사고에 점점 더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결국 인간을 규정하는 하나의 얼개로서 존재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문화라는 단어를 약방의 감초처럼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두루 두루 붙여쓰기를 좋아하지만 정작 문화를 정의하는 데에는 그리 능숙하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우리는 신분을 양반과 상놈으로 분류하듯이 지금도 우리는 사람을 곧 잘 문화인과 야만인으로 분류하길 좋아합니다. 말하자면 한 쪽은 유식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다른 한 쪽은 무식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같이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문화는 인류학의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을 이루고 있는 개념이면서도, 인류학자들 간에도 문화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중략…일상용어로나 또는 전문학술용어로 ‘문화’라는 단어만큼 흔히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의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개념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위의 글은 어느 문화인류학 교과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인류학은 대체로 형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과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으로 나누는데 형질인류학이 생물학적인 것이라면 문화인류학은 그 대칭 관계에 있는 정신적이고 학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어대사전에는 문화를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을 꾀하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의하여 얻어진 물질적·정신적 소산의 총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만 너무 광범하고 관념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맥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에 비하면 고고학자 가우레트의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본능적인 지식에 반하여 후천적으로 획득하여 새대간에 전해 내려가는 모든 지식이며 문명은 문화적으로 성취힌 것의 절정단계를 말한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란 지역적·혈연적으로 집단화된 인간이 자연 혹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축적된 정신적·물질적 지식의 총화에서 유전적인 요소를 뺀 일체의 것.』
문화는 유전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정의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한때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하늘이라 하여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53년 왓슨·크릭에 의해 유전자(gene)의 DNA구조가 밝혀지면서 인간의 운명은 DNA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발견하고 돌을 깨트려 도구를 만들 때부터 군장사회(群長社會)의 문화가 개인을 통제해왔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사회에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교육철학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는 걸 보여줍니다. 더 성숙한 아라비아의 속담에 「사람은 자기 부모에게 영향을 받는 것보다 그 시대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라는 말은 사람은 시대적 구속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형질인류학자들이 지속적인 발굴을 통하여 밝혀냈듯이 호모속의 인간이 사피엔스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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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르탈인 그리고 데니소바인으로 분기되면서 사람의 뇌용량이 크지고, 직립으로 인한 여성의 산도가 좁아짐으로 말미암아 여성이 출산의 고통과 태아의 사망률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던 것입니다. 생존의 방법을 찾는 것이 자연선택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선택이 택한 것은 인간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태아의 각 형질이 덜 성숙할 때 출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새끼는 오랫동안 산모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양육기간 또한 길어졌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모성과 인간의 사회성을 강화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성장하는 데는 DNA라는 유전자 뿐만아니라 문화적 유전자 또한 그 못지않게 인간을 규정하는 걸정적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유전자(gene)라 하면 생물학적 유전자(biological gene)를 말합니다만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유전자는 무엇으로 표기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문화인류학에 관한 책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통찰과 철학의 지평까지도 넓혀주기 때문에, 두루 섭렵해본 바로는 뜻밖에도 문화적 유전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자군(群)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밈(meme)이었습니다.
본래 모방이라는 뜻의 헬라어 mimeme에서 나온 것으로 gene과 음절을 맞추기 위해 meme(밈)으로 축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놀드 토인비 박사도 문명의 발생을 이야기할 때 인간의 모방행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며 그것을 미메시스(mimesis)라고 칭했습니다. 그의 역사철학이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분야는 다르지만 학문적 성취가 도달하는 곳은 비슷한 모양입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는 밈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밈] 모방같은 비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요소.
밈은 생물학적 유전자와 달리 모방의 과정을 통하여 한 사람의 뇌에서 또 다른 사람의 뇌로 전달되면서 증식합니다. 언어, 과학이론, 패션의 유행, 새로운 기술이나 공정, 심오한 사상이나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밈(meme)인 것입니다.
유전자는 지구에 등장한 최초의 복제자였고 밈은 두 번째 복제자입니다. 같은 복제자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전달되는 과정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인 유전자와는 달리 밈은 변경된 형태로 전달됩니다. 인간이 가진 문화의 다양성을 보면 전달될 때 어느 정도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서 언어는 가장 효율적인 밈 확산 방법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많은 언어를 쓰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문화적 유전자 밈을 퍼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언어는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을 결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만 년을 통하여 세대와 세대간으로 이어지는 언어는 유전적 의미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진화하고 있으며 생물학적 진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빠릅니다.
현대의 통신혁명에 의한 언어의 전달범위와 그 양적확대는 가히 상상을 초월히는 것으로 인류를 하나의 사회통합이라 할 수 있는 유적(類的)개념으로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地球)를 지구촌으로 부르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단정신의 진화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초연결시대, 과잉연결사회가 만약 마비된다면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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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과잉연결사회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언어의 전달이라는 통신혁명은 멈추지 않을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가장 강력한 사상이나 종교를 전달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언어는 일시적 유행가요처럼 태어나자마자 사멸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언어는 사상의 무게를 싣고 영속적으로 전해 내려갑니다. 밈은 강력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영감에 의한 경구(警句)나 시(詩) 그리고 음악은 인류의 영원한 자산으로 남게 됩니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불타와 소크라테스의 생물학적 유전자는 수백 세대를 내려오면서 자취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하게 퇴색되었지만 그들의 사상의 밈은 아직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뇌 속에 일단 자기 번식능력을 지닌 밈을 이식해 놓으면, 그것은 곧 기생충 또는 숙주세포의 유전기구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와 같이 자기의 번식 수단으로 뇌세포를 이용하려 들 것이다. 이는그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사후셰계’라고 하는 밈은 어쩌면 하나의 명백한 물리적 구조로서 온 인류의 신경회로망에 수백 만회이상 반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닉 험프리)
제가 이렇게 문화적 유전자 [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강한 고리인 진영논리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클리이언틸리즘의 뿌리깊은 부패의 카르텔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겉으로 드러난 세계는 진실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하면 이 숨어 있는 문제의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역사학과 생물학을 넘나들며 뛰어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에 정치·경제적으로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경험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하듯이 GDP와 생활수준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살률(특히 노인자살률)도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출산률 또한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인구감소가 따라올 것이며 노동인구도 줄어드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입니다. 보통 자연계의 동물들은 하나의 종(種)이 자원이 풍부해지면 개체수(個體數)는 증가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자연현상을 역행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할까요.
이것은 한국이 자원을 확보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삶의 안전과 평화로 전환시키는 데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혹시 여성의 선견력(제가 보기에는 남성보다 우수합니다)이 앞으로 다가올 위험사회를 대비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국은 성취한 것도 많아 자랑할 거리도 많은 다이내믹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역동적인 힘도 집단의 공동선(共同善)을 지향할 때 한 단계 높은 사회가 되는 것이지 개인이 과도한 이익이나 기복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면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동안 그기에 병행하는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해 비참한 대형사고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안전망이 아니라 생명을 경시하고 그것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정신질환적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대학교수가 수백 억원대의 자산가인 아버지를 살해한 존속살인사건, 청소년 수련원 시·랜드 화재사건으로 23명이나 되는 유치원생 사망사건, 성수대교 붕괴로 등교학생들 사망사건, 삼풍백화점 붕괴로 수백 명의 참사사건, 그리거 최근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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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침몰로 인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300여명의 참사사건은 우리가 여전히 후진국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후속 대책 또한 진영논리로 코미디같은 촌극을 벌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혼한 가장이 보통 때는 관심도 가지지 않던 자식을 앞장 세워 유족대표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습은 인간의 비속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신문·방송 매체는 심층취재를 빌미로 극적 사실감을 높이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과잉보도를 하기 바쁩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사명감으로 여기는 저널리스트인지 연출가인지 국민들은 헷갈립니다.
그리하여 발빠르게 도출된 원인과 대책은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사상이라는 전도된 가치관」이라는 것이며 대책은 「의식개혁」이며, 그 방법은 「인성과 도덕교육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TV와 신문에 나오는 칼럼들이 죄다 그런 소리를 하니까요. 「효(孝) 실천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발족되었는가 하면, 「부실공사 추방 범 국민대회」같은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무슨 행사와 축제가 그리 많은지, 거리에는 플래카드가 수없이 펄럭이는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책이나 깃발들이 한낱 정치인들의 일과성의 이벤트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기 더하여 참여연대와 양성평등연대나 여성단체 그리고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의 활동은 그 위선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만들어진 정의기억연대는 대표로 있던 윤미향을 결국 여당 국회의원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거기에는 정의도 없고, 기억도 없고, 연대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사촌(四寸)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은 우리 농경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경고음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이웃이 가지고 있는 부(富)의 축적이 얼마나 부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는가를 가리키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참는 민족일까요.
삼성(三星)을 오늘의 세계 일류기업으로 이끈 사람은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삼성 신경영(新經營)을 선도한 이건희 회장이 자주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발 좀 뒷다리 잡지마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삼성그룹 사장단을 프랑크푸르트에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습니다.
삼성의 기업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세계 일류기업이 될 수 없음을 진즉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건희 회장을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경세가(經世家)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뒷다리』라고 하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런 현상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좀비영화」라고 부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좀비족」들이 사람을 해치는 개연성이 없는 괴기영화라고 보아 싫어합니다만 좋아하는 관객도 있는지 『부산행』이라는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모양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기업에서도 「좀비족」이 있어서 참신하고 창의성이 있는 사원의 뒷다리를 잡는 직원이나 간부들을 가정하여 경고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런 개념은 어느 조직이나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만 2020년도 한해 내내 점철한 정치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년 내내 추미애 법무장관과 정권 실세들이 검찰개혁이라는 개념도 불분명한 명분을 내세워 윤석열 검찰총장과 비리를 파헤치는 수사 검사들을 찍어내는 모습은 좀비족들의 뒷다리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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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지는 모습과 유유상종입니다. 윤석열 총장은 자신의 SNS에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어부노인이 먼바다에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면서 하는 독백을 올렸습니다.
“Be calm and strong(침착하고 강인하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웬만한 소신과 배짱이 없었다면 좀비를 퇴치하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좀비족」이라는 표현은 어느 일본인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좀비」란 본디 서아프리카 어느 족속이 신봉하는 뱀신(蛇神)인데, 다르게는 「산송장」이나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기업경영 개념 속에 도입한 미쓰비시 상사가 「기업조직 안의 좀비족은 자기자신이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나 부하·상사까지도 피해를 입게하여 마침내는 기업을 넘어뜨리게까지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좀비족」의 특징을 몇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⑴좀비는 창의성을 싫어한다.
⑵좀비는 소신을 버리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얄팍하고 무난한 처세술만 익히려 한다.
⑶좀비는 학연·혈연·지연 등 당파형성에 힘쓴다.
⑷좀비는 합리성보다는 상사의 지시나 관심에 따라 움직인다.
⑸좀비는 아공타벌(我功他罰), 즉 잘한 일은 자기 몫이고, 잘못한 일은 남의 몫이라고 한다.
우리가 요즈음 잘 사용하는 말 내로남불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⑹좀비는 과거지향적·경험지향적이어서 전향적 사고를 가진 동료나 후배를 용납하지 않는다.
⑺좀비는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다.
⑻좀비는 자기 박에 모른다.
⑼좀비는 자기를 수재나 최고 권위자로 일쑤 착각한다.
우리가 해묵은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이라도 지켜낼려면, 의식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문화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먼 의식은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승화되는 문화없이는 우리의 삶은 변화되지 않으며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
두루 알고 있다시피 무너진 것은 성수대교 하나지만, 한강다리 가운데 성한 것은 일제시대인 1917년 10월 준공된 제1한강교 하나뿐이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총독부 건물을 짖는 예산을 늘리고 공기(工期)를 연장하면서 8년에 걸쳐 지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 그것을 헐어낼 궁리-내 개인적인 견해는 치욕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로 남겨두어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건물이 시대적 기술을 총합한 기념비적 성격도 있다고 봅니다-를 한 정부의 고민은 그것이 하도 튼튼하여 헐어내는 비용이 적잖게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압제로부터 벗어 났음을 기리기 위한 독립기념관은 예산을 줄이고, 공기를 단축하여 1년여 만에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 건물이 불에 타 구리 지붕이 녹아내려버린 것은 그 얼마 뒤였습니다.
우리 건설업계는 부실공사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부패의 카르텔에 묶여 있는 사회시스템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기에는 성수대교나 독립기념관을 건설한 기업들만을 탓할 수 없는 일종의 관례화된 묵시적 동조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건데 우리는 일제로 부터 독립은 했지만 의식은 아직 독립은 되지 않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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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라는 겁니다. 고통과 수모를 받았다는 감정적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일본을 멸시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그것도 6~70%는 우리가 못나서 자발적으로 합병한 나라라는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일본을 넘어선 성숙한 국가로의 도약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문명국가로서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또 하나의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적 유전자인 [밈(meme)]이 있습니다. 고래로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서구 이성주의 혹은 합리주의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강력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샤머니즘입니다.
내게는 그에 관해 두 개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일성 동상 앞에서 울부짖는 북한 주민들이고 또 하나는 교회의 부흥성회에서 두손을 높이들고 통성기도하는 크리스찬들의 울음소리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두개의 심리적 진원지가 무엇이 다른지를 구분하지를 못합니다.
저도 카톨릭에도 잠간 몸 담아보기도 하고 개신교에도 다니고 있지만 신앙의 수준이 그기에 이르지 못해 그럴 경우 가끔 소외감을 느낍니다. 저는 단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 저의 존재와 그리고 가족들, 나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가금 북한 소식을 영상으로 보면,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현장지도 시찰을 나가면 많은 북한 주민들은 백두출신의 신성가족을 뵙는다는 영광으로 생각하는지, 박수를치고 몸을 떨며 울부짖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제가 보기엔 무슨 집단 오르가즘에 빠진 사람들 같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교회의 부흥성회나 통성기도 시간에 크리스찬들이 두손을 들고 무슨 주문을 외우듯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도 집단 오르가즘에 빠진 사람들의 기운을 느낍니다.
샤먼은 알 수 없는 주문(呪文)을 외우며 초자연적인 정령(精靈)과 접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보통 우리는 그들을 무속인(巫俗人)이라 부릅니다. 무당(巫堂)은 접신을 한 여자무속인을 말합니다.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속인들은 옛날 군장시대에는 집단의 우두머리였으며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병이 들면 액땜을 하는 굿을 하는 원시신앙이었습니다. 신라 초기의 관등제도에 기록된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은 군장으로서 제정일치시대의 무속인들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무당이라고 하여 다 접신을 하는 것은 아니며 모계로부터 물려받은 세습무(世襲巫)도 있습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서도 주요인물로 나오는 월선이도 세습무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흔한 현상이었습니다. 접신(接神)을 하면 신몸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 몇날 몇일을 밥도 먹지 못하고 몸져 누워 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聖經)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본래 예수와 그 추종자들을 탄압하던 관리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처형 후 다메섹(지금의 다마스커스)으로 가는 도중 예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빅히느냐” 누구시냐고 물으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이르며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알려줄 사람을 만나라고 합니다. 같이 가던 무리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떳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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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였습니다. 사울은 그후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예수의 복음을 로마에 전파하여 기독교가 전 유럽에 확산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신내림이 아닌 성령(聖靈)이 강림한 것으로 정의합니다. 예수도 그것을 제자들에게 예언한 바도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가지 내 증인이 되리라』
저는 성령의 강림과 신내림(降神)을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을 갖지 못한 사람이지만 일반적으로 고등종교(高等宗敎)에서는 성령이라고 하고 무속신앙에서는 신내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등종교인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의 보편적인 가치에 의해 무속(巫俗)적인 기복신앙은 어느정도 퇴색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우리 불교와 기독교에는 기복적인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 통성기도는 세계 어느 기독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것으로 샤먼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문학에서는 샤머니즘이 김동리의 『무녀도(巫女圖)』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내가 알기로는 그는 우리 민족의 집단무의식에 샤먼의 주술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샤먼을 우리 문화적 유전자인 밈(meme)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것을 그의 작품 『사반의 십자가』에서 기독교적 구원사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샤머니즘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그나마 긍정적으로 표출된 사례가 2002년도 서울월드컵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의 활동이었습니다. 그저 “신명났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샤먼의 유래는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북방 유목민족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렵과 유목(遊牧)이 자원획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강인한 유목민족의 총체적인 생활양식을 노마디즘(Nomadism)이라 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현대 디지털사회의 기동력인 휴대폰·노트북·인터넷이 옛날 유목민족의 기동성을 닮았다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한국이 스마트폰과 인터넷 강국인 것을 북방유목민족과 연관시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러시아 작곡가인 보르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라는 음악을 듣고 유목민족의 생명의 시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히 호모사피엔스를 피부색과 어족(語族)으로 분류하면 노마디즘이 선명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방 몽고족이 우리의 조상입니다. 몽고 반점은 그 혈통의 특색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족 분류는 몽고고원 서쪽의 알타이산맥에서 유래한 알타이 어족입니다. 그 알타이 어족이 중국북방을 거쳐 만주로 들어와 퉁구스족이 됩니다. 퉁구스족은 만주의 부여족, 말갈족, 숙신족, 여진족, 조선족 등으로 이루어진 언어계통상 퉁구스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알타이어족의 퉁구스족이 바이칼호를 지나 만주 아무르강을 거쳐 한반도에 부여족,고구려,마한,진한,변한등으로 내려온 신앙이 샤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원은 알타이 신화에서 찾아 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문화인류학 차원에서 시간이 된다면 만주의 여진족·말갈족·거란족과 같은 유라시아 유목민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며 바이칼호와 아무르강에 젖어 있는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서도 책을 읽어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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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우리 기독교에 깊이 침투해 있는 기복신앙인 샤먼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도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것이라는 점과 우리 교회가 파시즘화된 독재군주처럼 무소불위의 교주화(敎主化)된 목회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사회가 되기 어려운 미성숙한 사회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글을 마무리 해야겠군요. 문화적 유전자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만, 사실 이 글도 주제를 다룰 정도의 충분한 글이 되지 못합니다, 또 그런 전문성도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이 주제와 관련하여 다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14일 사이버 총무 김 정 율 올림
첫댓글 잘 읽었어요. 수고 많았습니다. 다음을 기대합니다.
김 정율 동기의 '신년 특강' 우리 민족의 문화사 총론 강의를 감명깊게 받았읍니다.다음 강의도 고대합니다.
직업 평론가 이상의 수준. 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 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핵심적 요소들을 선정하고, 선정한 개별요소들 및 그들간의 관계적 맥락에서 그 현상을 설명하는 체계적인 설명의 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