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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야경. 달도 없는 깜깜한 밤이었으나 오히려 독경소리는 더욱 듣기가 좋았다. |
또 은행나무 뒤로 펼쳐진 산비탈 과수원에선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사과가 나그네를 유혹한다. 나라에서 가장 예쁘며 웅장한 절집으로 꼽히는 부석사는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렇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달조차 뜨지 않은 깜깜한 밤. 은행나무도, 사과나무도 모두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있을 뿐이다.
일주문 지나 천왕문 오르는 길. 왼편엔 절에서 깃발을 게양하던 당간지주가 어렴풋이 보인다.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절집의 당간지주 중 가장 세련되게 다듬은 명작’이라고 평가 받는 작품이다.
여기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아홉 개의 거대한 석축은 극락에 이르는 구품정토(九品淨土)다. 석축에 쌓은 가파른 계단을 하나 오를 때마다 고통의 사바세계는 점차 멀어진다. 산사는 수직 공간의 경사에 수평으로 터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빛날 화(華) 자 형태로 오밀조밀하게 건물이 배치된 부석사는 여느 절집과는 다르다. 장딴지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하는 경사는 일주문 지나 천왕문, 범종각, 안양루에 이르도록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경사는 점점 가팔라진다. 부석사 계단이 가파른 줄은 알았으나 불빛 없는 한밤중에 랜턴도 없이 오르려니 더욱 까다롭다.
▲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부석사 무량수전. |
안양루(安養樓)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일제강점기 때 버트런드 러셀이 와서 보고는 ‘조선 국보 1호’라며 경탄해마지 않았던 석등 너머로 무량수전(無量壽殿)이 반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창건연대가 가장 오래된 무량수전은 전문가들로부터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을 자랑하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랫중간부분이 불룩한 배흘림기둥과 사뿐히 고개든 추녀의 어울림은 현대 건축가들도 탄복할 정도.
무량수전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 공간도 눈길을 끈다. 보통 불전(佛典)은 내부 정면에 불상을 놓지만 이곳의 주불(主佛)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은 왼쪽 벽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무량수전의 건물이 남향이므로 불상은 동향인 것이다. 이는 불국정토의 올바른 정진을 바라는 불교정신의 발로라 한다. 왼쪽 끝에 불상을 배치하면 정면에서 볼 때보다 먼 거리의 공간감각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불상 앞의 기둥들에 의해 장엄함까지 더해진다. 거기에 천장도 막혀 있지 않으니 웅장함도 더불어 표현되는 것이다. 또 길이와 굵기가 제각기 다른 부재들은 뛰어난 절제미를 자랑하고, 기둥·대들보·서까래의 조화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의 음률을 자아낼 정도로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양루에서 사찰 바깥을 바라보면 백두대간의 소백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들이 영남땅 아담한 분지들을 껴안은 풍경이 펼쳐진다. 김삿갓이 여기서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을 볼까나”하며 읊조렸다던 풍경이다. 안개 낀 아침 풍경이 좋으나 역시 지금은 아무 것도 뵈지 않는 한밤중. 그래도 웬일인지 그다지 서운치 않다.
무량수전에서 조사당(祖師堂)으로 가는 언덕길의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안양루에서의 그것에 빠지지 않는다. 부석사 내부 공간의 짜임새에 못지않게 외부 공간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 전망대로서의 경관은 정말 장하다. 의상과 선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의상은 이곳에 절터를 잡으려 무진 애를 썼다. 소백산의 비로사, 초암사, 성혈사, 그리고 직선거리로 20여 리 떨어진 봉화의 축서사 등 인근의 웬만한 절집은 대부분 의상이 부석사터를 찾기 위해 다니면서 첫 인연을 맺게 된 절집들이 아닌가.
어둠이 너무 짙어 조사당까지 오르지 못하고, 소박한 삼층석탑 옆에 앉아 밤 깊은 산사를 오랫동안 내려다본다. 밤하늘에 잔잔히 울려퍼지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그리고 한 스님이 천 배를 올리고 있는 그 밤에 산사의 외형적인 조망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아니 그동안 우리는 너무 바깥의 경치나 건물의 외형에만 신경을 썼는지도 모른다. 가만 내려다보니 이곳은 삼라만상이 하나로 어울려 돌아가는 화엄의 공간이었다.
이런 밤이라면 종교가 달라도 부처께 삼배를 올린다 해서 누가 무엇을 탓하겠는가. 길손의 발걸음은 어느새 여래상이 굽어보고 계시는 무량수전으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풀벌레 우는 가을밤이 제법 깊다.
경상북도 북부 중앙에 있는 영주시(榮州市)는 동쪽으로는 봉화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예천군, 서쪽은 충청북도 단양군, 북쪽은 강원도 영월군과 접하는 고을이다.
영주 북서쪽으로 선달산(先達山·1,236m)~국망봉(國望峰·1,421m)~소백산(小白山·1,440m)~연화봉(蓮花峰·1,394m)~죽령(竹嶺·689m)~도솔봉(兜率峰·1,314m) 등 백두대간 분수령이 기호지방과 경계를 이루며 뻗어 있다. 기호지방과의 교통은 주로 죽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천은 소백산에서 발원한 남원천(南院川)·금계천·죽계천(竹溪川)·단산천이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의 지류인 서천으로 모여 영주 시가지를 적시고 지난다. 또 부석을 적시고 흘러온 낙화암천을 받아들인 내성천(乃城川)이 서천과 나란히 남류하는데,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침식분지가 발달해 있다.
백두대간 분수령 동쪽 사면에 위치한 내륙 분지이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때문에 계절적으로 봄과 가을이 짧다. 1월 평균기온은 -2.9℃ 안팎이며, 8월의 평균기온은 24.5℃다. 연강수량은 약 1,515mm이며, 연최저기온은 -16.2℃이고, 최고기온은 35.5℃를 나타낸다.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진한 12국의 하나인 기저국(己?國)이 풍기읍에 있었다. 고구려 때 내이군(奈已郡)·급벌산군(及伐山郡)이, 신라 때 기목진(基木鎭)이 설치됐다. 757년(경덕왕 16) 내이군은 내령군(奈靈郡)으로, 급벌산군은 급산군(及山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때 내령군이 강주(剛州)로, 급산군이 흥주(興州)로, 그리고 기목진이 기주현(基州縣)으로 바뀌었으며, 강주와 흥주는 각각 지영주사(知榮州事)와 순흥부로 승격됐다.
조선 초기에 군현의 등급이 조정되면서 영주와 기주는 군으로 바뀌었고, 기천군은 1450년(세종 32) 풍기군(豊基郡)이 됐다. 1896년(고종 33) 13도제 실시로 경북의 군이 된 뒤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영주군·풍기군·순흥군(順興郡)이 통합됨으로써 영주군이 성립됐다. 1980년 영주읍이 시로 승격해 분리되고, 나머지는 영풍군(榮豊郡)으로 개칭됐다. 1995년 시·군 통폐합에 따라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됐다. 2006년 현재 1읍 9개면 9개동을 관할한다.
농경지는 논이 45%, 밭이 55%로 밭농사를 많이 짓는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의 곡류와 약초·잎담배·인삼 등의 특용작물이며, 사과재배가 성하다. 특히 풍기인삼과 풍기인조견직물이 유명한데, 이곳의 인삼 재배면적은 전국의 약 20% 정도에 이른다.
강원도와 충북 등 부근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기반으로 제재·목재·펄프 관련 산업이 발달했으며, 관동지방의 석탄 등 지하자원을 영남지방으로 수송하는 수송중심지가 되고 있다. 교통은 중앙선·영동선·경북선 등의 산업철도가 교차하고, 중앙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가 지나므로 편리하다.
|부석사|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이다.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창건 설화는 유명하다. 부석사라는 이름은 무량수전 서쪽 옆의 떠 있는 돌을 ‘뜬돌’이라 부른 데서 연유했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했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을 재건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고,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5점, 보물 4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대찰이다. 전화 639-6498, 홈페이지 www.pusoksa.org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석등(石燈·국보 제17호)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꼽히고 있다.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지었으나, 1358년(공민왕 7)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건물은 1376년(고려 우왕 2)에 다시 짓고 1916년에 해체·수리했다.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부석사 조사당|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부석사 조사당(祖師堂·국보 제19호)은 1377년(고려 우왕 3)에 처음 세웠고, 1490년(조선 성종 21)과 1493년에 다시 고쳤다. 앞면 3칸, 옆면 1칸 크기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를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이 아담하기 때문에 세부 양식이 무량수전보다 한결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 조사당 안쪽에 있는 벽화(국보 제46호)는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 색, 백색, 금색 등으로 채색했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cm, 폭 75cm 가량이다.
양쪽의 두 보살은 풍만하고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1377년(고려 우왕 3)임을 알게 됐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됐으며, 회화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는 벽면 전체를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고, 이곳에는 모사한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시고 있는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은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돼 가치가 매우 크다. 소조불상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 것이다. 불상의 높이는 2.78m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며,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는데, 평행한 옷주름을 촘촘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릎 아래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런 형태의 옷주름은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이 작품이 고려 초기 불상들과 같은 계열임을 알 수 있다.
손 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상을 모신 장소가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라는 사실과, 부석사에 있는 원융국사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만들어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이 아미타불이라고 여기고 있다. 지금의 손 모양은 조선시대에 불상의 파손된 부분을 고치면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소수서원|
순흥면 내죽리의 소수서원(紹修書院·사적 제55호)은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1544년 안축과 안보,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을 추가로 모셨다.
1550년(명종 5)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과 사서오경, 성리대전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이 됐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화 054-639-6693
|회헌 영정|
소수서원에 있는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의 초상화(국보 제111호)로 가로 29cm, 세로 37cm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go 여러 벼슬을 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다.
세상을 떠난 지 12년 후인 1318년(고려 충숙왕 5) 공자의 사당에 그의 초상화를 함께 모실 때 1본을 더 옮겨 그려 순흥향교에 모셨다가 조선 중기 백운동서원을 건립하면서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시선의 방향과 어깨선에서 선생의 강직한 인상이 보인다.
|주세붕 영정|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주세붕의 상반신을 그린 초상화(보물 제717호)로 가로 62.5cm, 세로 134cm다.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세웠다. 이 초상화는 사모관대의 정장 관복을 차려입고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간략한 선으로 묘사하고, 넉넉한 몸체에 목은 거의 표현하지 않아 권위적인 기품이 엿보인다.
정확한 제작연대를 추정하기 힘들지만 색이 바라고, 훼손된 상태, 복식, 필법 등으로 미루어 제작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6세기 초상화가 대부분 공신상인데 비해 학자의 기품이 드러난 학자상으로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선비촌|
소수서원 옆에 위치한 선비촌은 전통 가옥에서 숙박과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마을이다. 18,000평 부지에 기와집인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등 7동과 아담한 초가인 장휘덕 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김상진 가옥 등 5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산신각 등 모두 40여 채의 건물이 복원되어 조선시대 선비 마을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선비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전시와 이벤트, 전통문화 체험 등 각종 기획프로그램에서 수준 높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숙박료는 기와집 2인1실 25,000∼30,000원, 4인1실 50,000원. 초가집 2인1실 20,000원, 4인1실 40,000원(054-638-5831). 요금은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없다. 이 입장권으로 소수서원, 소수박물관, 선비촌을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관람시간 09:00~22:00. 전화 054-638-7114, 홈페이지 www.sunbitown.com
|소수박물관|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에 들어선 소수박물관은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 2만여 점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하는 공간으로 모두 4개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은 고인돌, 선돌, 바위그림 등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유적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 공간이다. 남한 유일의 고구려식 벽화고분으로 꼽히는 순흥읍 내리 벽화고분(사적 제313호)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유교의 형성에서 근본이념, 전개의 공간이고, 제3전시실은 명현, 충절로 이름 높은 위인들을 받들어 모시고 배움을 익히던 사학기관인 서원과 지방의 인재를 양성하던 향교에 대하여 서술한 공간이다. 제4전시실은 숙수사지와 소수서원, 주세붕의 업적과 소수서원 창건이야기, 사액의 경로, 소수서원에 배향된 인물 등 소수서원과 함께 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순흥향교|
순흥면 청구리에 있는 순흥향교(順興鄕校)는 고려 후기의 향교다. 원래 순흥부 북쪽 금성에 창건했으나 단종복위운동으로 고을과 함께 향교가 혁파됐다가 1683년(숙종 9)에 다시 세워졌다. 1718년 순흥부 동쪽 위야동에 이건했고, 1790년(정조 14)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세웠다.
건물은 전면 영귀루를 지나면 동재와 주사가 명륜당 앞에 놓여 있고, 그 뒤 별도의 일곽 전면에 내삼문을 두고 북쪽에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전 앞에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무, 서무가 마주보고 있다. 강학 공간인 명륜당과 제향 공간인 대성전이 앞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다.
|수도리 전통마을|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마을로서 무섬마을이라고도 한다. 이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지명. 수도리는 내성천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휘돌아 흐르는 안쪽에 펼쳐진 모래톱 위에 터를 잡고 있다. 풍수지리학 상으로는 매화가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의 길지라 한다.
17세기 중반에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고,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가 영조 때 들어왔다. 이 무렵부터 두 집안이 함께 세거해 오늘날까지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모두 48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다. 이중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해우당 고택, 만죽재 고택 등 9점이 도문화재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화 054-639-6062.
|희방사|
풍기읍 수철리 소백산 기슭에 있는 희방사(喜方寺)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두운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1953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바로 밑에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1568년(선조 1)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한국전쟁으로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됐다. 경내에 희방사 동종(도유형문화재 제226호)이 있다. 전화 054-638-2400.
|비로사|
풍기읍 삼가리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비로사(毘盧寺)는 통일신라시대에 진정이 창건한 화엄종 사찰이다. 비로사사적기에는 의상이 683년(신문왕 3)에 이 절을 개창하고 비로사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 고려 태조 왕건이 방문해 진공의 법문을 듣고 그를 매우 존중했다. 1126년(인종 4) 인종이 김부식으로 하여금 불아(佛牙)를 이 절에 봉안하도록 했고, 1468년(예종 1)에는 김수온이 왕실의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석불상 2구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뒤 몇 차례 중창이 있었으나 1908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고, 1919년 법당을 중수했다. 현재 9세기 통일신라 화엄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영풍비로사석아미타와 석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6호)을 비롯해 진공대사보법탑비(도유형문화재 제4호)와 석조당간지주(도유형문화재 제7호) 등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전화 054-638-5033.
|초암사|
순흥면 배점리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에 있는 초암사(草庵寺)는 의상이 부석사터를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다.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다시 절을 세웠는데, 우람한 거석 축대와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은 법당이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한 삼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126호)과 동부도(도유형문화재 제128호), 서부도(도유형문화재 제129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전화 054-633-2322.
|성혈사|
순흥면 덕현리 소백산 기슭에 있는 성혈사(聖穴寺)는 신라 때 의상이 창건했다. 절 이름은 절 아래 30m 지점에 있는 바위굴에서 성승(聖僧)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졌다. 현재 대웅전과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나한전(羅漢殿·보물 제832호)은 1553년(조선 명종 8)에 세우고, 1634년(인조 12)에 중창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 건물로 배흘림기둥과 꽃창호문이 매우 아름답다. 앞문의 창에 조각을 만들어 장식했는데, 특히 가운데 칸에서 물고기·게·동자상·연꽃·새 등의 뛰어난 조각과 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다.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지닌 석조비로자나불상 등이 전한다.
|흑석사|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흑석사(黑石寺)는 신라 때 의상이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사찰 인근에 검은 빛깔의 바위가 있어 흑석(黑石)이라 불리는 마을의 이름을 따와 흑석사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사세가 기울었고,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에는 폐사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1945년 초암이 중건했다.
유물로는 아미타불좌상과 복장유물,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1950년 법천사에서 옮겨온 아미타불좌상은 효령대군이 왕실에 부탁해 만든 것으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목조불상으로 손꼽힌다. 이 불상 안에서 금동사리함과 사리 등의 복장유물이 나왔다. 보물 제681호로 지정된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때인 9세기 유물로 불상과 광배·대좌가 분리된 채 놓여 있다. 전화 054-637-1900.
|죽계구곡|
순흥면 배점리에서 초암사에 이르는 계곡을 죽계구곡이라 한다. 퇴계 이황이 계곡의 절경에 심취하여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랫소리 같다 하여 경치가 빼어난 곳마다 이름을 짓고 죽계구곡이라 불렀다. 화려하고 웅장한 계곡은 아니지만, 안축·안향·주세붕·이퇴계 등 큰 인물들의 발자취가 굽이마다 새겨져 있다.
구곡의 옛 경치는 세월이 흐르면서 메워져 조금 실망스럽지만, 아담한 폭포와 소로 이뤄진 제4곡(용추비폭)부터 초암사 위쪽의 제1곡(금당반석)까지는 바위와 계류, 느티나무 고목들이 어우러져 제법 아름다운 경치가 이어진다. 죽계란 대나무가 많았다 해서 붙은 이름. 고려 때 이 고을 출신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 죽계별곡은 바로 이곳을 소재로 한 노래다.
|죽령옛길|
백두대간의 죽령(689m)은 영주와 단양을 잇는 큰 고개로 2,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서울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었다. 일제강점기까지 이용하던 옛길은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길의 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 장사꾼들로 붐비면서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주막과 마방이 죽 늘어서 있어 사시사철 번잡했다.
영주시에서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기 위해 희방사역에서 죽령 고갯마루까지의 옛길(2.5km)을 자연탐방로로 복원했다. 돌담만 남은 옛주막터, 느티정 주막거리, 고갯마루 주막거리 등이 있다. 왕복 2시간 소요.
|풍기 인삼|
풍기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인삼 생산지다. 삼국사기에는 소백산에서 산삼이 많이 자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산삼을 조정에 바치는 데서 폐단이 생기자 조선조 중종 때인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산삼 종자를 채취해 풍기 주변에서 재배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영주시 풍기읍 일원에서 해마다 10월 초가 되면 풍기인삼축제가 열린다. 풍기역 앞에 인삼시장이 있다. 풍기인삼협동조합 054-636-2714~6.
|영주사과 |
영주사과는 전국 제1의 사과 주산지로서 백두대간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산지과원에서 생산된다. 2,872ha 재배면적에 생산량 55,000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덕택에 맛과 향이 뛰어나고, 성숙기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다.
특히 쓰가루는 품질의 우수성이 입증되어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품종이다. 풍기농협 공판장 전화 054-636-3209, 영주농협 공판장 054-636-8594.
|풍기온천|
지하 800m에서 용출하는 소백산풍기온천은 수온 26∼27.8℃, 유황 2.1ppm, Ph 10.2, 불소 12.4ppm, 중탄산 158ppm으로 일본 온천 기준보다 유황 성분은 2배, 불소 성분은 3~6배 정도가 높은 우수한 보양온천이다. 만성관절염, 신경통, 금속중독, 동맥경화증, 당뇨병, 만성 기관지염,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온천장 주변에 상가, 숙박시설, 운동 오락시설, 휴양문화시설 등을 설치해 숙박휴양 거점지역으로 육성할 예정이다.
|소백산|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풍군 순흥면 경계에 있는 소백산(1,440m)은 옛부터 신성스럽게 여겨온 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명종 때 학자인 격암 남사고의 말을 밀어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는 이어 소백산은 웅대하지만 살기가 없고, 덕이 있으며, 풍광이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그래서인지 소백산 부근은 옛부터 산삼을 비롯한 약초가 많고, 지금도 가끔 산삼이 발견되기도 한다.
5월 말의 철쭉과 겨울의 설원, 그리고 거센 바람이 유명하다. 비로봉 정상 초원께 있는 500년생 주목 군락지는 소백산의 특이한 승경을 보여준다. 죽령휴게소~제2연화봉~천체관측소~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 코스는 3시간20분 소요, 희방사 입구~희방폭포~희방사~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 코스는 3시간10분 소요, 삼가동~비로사 입구~달밭재~비로봉 코스는 2시간20분 소요. 소백산관리사무소 전화 054-638-6796.
|옥녀봉 자연휴양림|
죽령 남쪽 영주시 봉현면에 위치한 옥녀봉 자연휴양림은 삼림욕을 즐기기에 좋은 휴양시설이다. 산막, 야영장, 취사장, 샤워장, 숲속교실 등 편의시설도 부족함이 없는 편이며, 휴양림 시설지구 뒤편에 조성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산책하기도 좋다. 휴양림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산막 이용료는 8평형이 45,000원, 13평형 65,000원, 복합산막은 전체 사용료 200,000원, 방 1실은 100,000원, 식당은 30,000원이다. 연립산막은 모두 11평형인데, 각 55,000원이다. 야영데크는 5,000원, 원두막형 초막은 7,000~10,000원이다. 입장료는 일반(개인/단체) 1,000원/700원, 청소년 500원/300원, 어린이 300원/200원. 주차료는 중소형 3,000원, 대형 5,000원. 전화 054-636-5928 www.oknyeobong.com.
◆ 길에서 만난 별미
|순흥 묵조밥|
영주에 들러 순흥전통묵집의 묵조밥을 맛보지 않았다면 영주를 제대로 둘러본 것이라 할 수 없다. 묵조밥은 묵과 조밥의 합성어. 묵은 흔히 도토리묵과 메밀묵이 있는데, 순흥전통묵집에서는 메밀묵을 재료로 삼는다.
가마솥에 장작을 때는 전통 방식으로 메밀묵을 쑤어 상을 차린다. 처음에는 묵만 올렸으나 그 맛이 점차 소문나면서 몰려든 손님들이 공기밥을 찾는 경우가 잦아지자 아예 조밥을 곁들인 묵조밥으로 상을 차린다.
깨소금, 잘게 썬 김치, 고추, 파, 무생채, 구운 김을 버무려 만든 양념을 넣고 멸치 등으로 우려낸 국물을 부은 묵사발이 나온다. 여기에 조밥을 넣고 말아 먹으면 푸근한 고향의 맛이 전해져 온다. 쫀득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메밀묵과 노란 좁쌀이 박힌 조밥이 어우러져 빚어낸 맛도 별미다. 여기에 깍두기, 김치, 나물류 등 3~4가지의 반찬이 딸려 나온다. 1인분에 4,000원이다. 순흥 읍내리에 있다. 전화 054-634-4614.
|풍기 인삼갈비탕|
영주 서쪽 소백산 기슭에 자리 잡은 풍기는 남한에서 내로라하는 인삼의 고을일 뿐만 아니라 육질 좋은 한우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풍기를 비롯한 영주엔 인삼과 한우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집이 수두룩하다. 그중 풍기인삼갈비(054-635-2382)는 토박이들이 주저 않고 추천하는 식당이다.
인삼갈비 맛은 특별한 비법으로 만든 양념장에 있다. 갈비를 재우는 양념은 인삼은 물론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다. 이렇게 만든 양념에 소갈비, 돼지갈비를 재워 구우면 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어지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워진다. 한우인삼왕갈비(500g 40,000원)는 인삼이 충분히 들어간 양념이 적당하게 배어 있어 은은한 인삼향이 입맛을 돋운다. 고깃살은 아주 부드럽다. 얇게 썰어 갈비 사이사이에 끼워둔 인삼을 살짝 구워 먹어도 괜찮다.
가볍게 식사를 하려면 인삼갈비탕(1인분 7,000원)을 시키면 된다. 인삼과 버섯이 푸짐한 인삼갈비탕은 육수가 걸쭉하게 우러나 진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다. 인삼주 한 잔이 덤으로 딸려 나온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인삼튀김(14조각 10,000원)이 준비되어 있다. 통째로 반죽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 인삼을 꿀에 찍어 먹는데, 인삼 특유의 쌉쌀한 맛이 튀기는 동안 고소해져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풍기 나들목에서 931번 지방도를 타고 순흥 방향으로 7km쯤 가면 도로 좌측에 있다. 전화 054-635-2382.
일정별 길라잡이
영주시 전체 면적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소백산이라는 덩치 큰 명산이 솟아있고,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고을이라 구석구석마다 명소가 많아 권역을 여러 곳으로 나눌 수 있다.
●북부권 영주의 북쪽으로 소백산과 전통 깊은 순흥을 끼고 있다. 소수서원을 비롯해 소수박물관, 선비촌 등의 볼거리가 있다. 또 금성대군이 유배를 왔던 위리안치지와 금성단, 향교 등이 반경 1km 안에 있다. 꽃창호문이 예쁜 성혈사와 초암사도 순흥에서 접근한다.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도 이 권역에 있다. 단종을 모시는 산신각이 있는 고치령도 이 권역에 넣을 수 있다.
●중부권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가 중심에 있다. 풍기 읍내에는 인삼시장, 인견시장, 풍기온천 등 먹고 쉴 거리가 충분하다. 죽령 옛길을 포함해 소백산 기슭의 희방사와 비로사도 이 권역에 속한다.
●남부권 영주 시내를 중심으로 남부를 포함한 권역이다. 동쪽의 이산면에는 흑석사와 마애삼존불상이 눈길을 끈다. 남쪽의 문수면에는 서천과 내성천이 만나 빚은 물돌이동인 수도리 전통마을이 있다.
일정짜기
# 일정짜기
●당일 중앙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웬만한 지역에서는 영주로 접근하는 데 3시간 이내가 걸리므로 아침 일찍 출발하면 당일로도 여러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풍기 나들목~풍기 인삼시장~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소수서원~소수박물관~선비촌~금성단~부석사~귀가.
●1박2일 당일의 일정에 더해 소백산 기슭에 있는 사찰들 답사도 가능하다. 가능하면 죽령 국도를 넘는 코스를 선택하는 게 동선을 잡는 데 수월하다. 추천 일정은 다음과 같다. 단양 나들목~5번 국도~죽령~희방사~풍기 인삼시장~죽령 옛길~풍기온천~숙박~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성혈사~소수서원~소수박물관~선비촌~금성단~부석사~수도리 전통마을~귀가.
●2박3일 전체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정이다. 소백산 산행도 곁들일 수 있다. 희방사 코스, 비로사 코스, 초암사 코스 등이 있는데, 아쉽게도 원점회귀산행으로는 코스가 마땅치 않다.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면 올라갔던 코스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교통
# 교통
●접근드라이브코스
수도권 영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영주 나들목 <서울에서 3시간 소요>
영남권 대구→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 나들목 <1시간10분 소요> / 부산→부산-대구 고속도로→대구→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 나들목 <2시간30분 소요>
호남권 광주→88올림픽고속도로→대구→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 나들목 <4시간 소요> / 전주→호남고속도로→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대구→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 나들목 <4시간 소요>
충청권 대전→경부고속도로→대구→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 나들목 <3시간 소요>
강원권 춘천→중앙고속도로→풍기·영주 나들목 <2시간 소요>
●고속·시외버스
서울→영주 동서울터미널에서 매일 38회(06:15~20:45) 운행. 3시간30분 소요, 요금 12,800원.
인천→영주 종합터미널에서 매일 13회(06:40~19:20) 운행. 4시간 소요, 요금 17,000원.
부산→영주 종합터미널에서 매일 9회(07:00~19:10) 운행. 5시간 소요, 요금 16,000원.
대구→영주 북부터미널에서 매일 20여 회(06:30~20:20) 운행. 직통 1시간30분, 직행 2시간30분 소요. 요금 8,200원.
대전→영주 동부터미널에서 매일 6회(07:10~17:40) 운행. 4시간 소요, 요금 18,500원.
*영주 시외버스터미널 054-631-5844
●시내버스
영주→부석사 매일 24회(06:10~19:20) 운행. 직통 40분, 풍기 경유 50분 소요. 요금 일반 1,000원, 좌석 3,600원.
영주→소수서원 매일 17회(06:20~19:20) 운행. 직통 30분, 풍기 경유 40분 소요. 요금 일반 1,000원, 좌석 2,000원.
영주→풍기 매일 수시(06:00~21:40) 운행. 30분 소요, 요금 일반 1,000원, 좌석 1,300원.
영주→수도리 매일 8회(06:15-18:40) 운행. 40분 소요. 요금 일반 1,000원, 좌석 1,300원.
*영주시내버스 054-633-0011~13
●철도
서울→영주 청량리역에서 매일 9회(06:50~23:30) 운행하는 중앙선 열차를 이용해 풍기·영주역에서 하차. 새마을호(09:00, 19:05) 요금 17,000원, 3시간10분 소요. 무궁화호 11,500원, 3시간40분 소요.
*영주역 054-633-7788
# 숙식(지역번호 054)
●북부권 부석사를 중심으로 숙식할 곳이 많다. 부석사 입구의 시절지구엔 부석사종점식당(633-3606), 자미가식당(632-3454), 무량수식당(634-6770) 등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을 차리는 식당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산채정식 6,000원.
부석면 소재지엔 코리아나호텔(054-633-4445), 명성여인숙(633-3262), 평화여인숙(633-3014), 장미여인숙(633-3259)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면 읍내리에 동인모텔(633-9605), 순흥여관(633-2124), 순흥전통묵밥(634-4614) 등의 숙식할 곳이 있다. 배점리의 금다래산장(634-5282)은 오리구이 전문이다. 민박도 친다.
고치령 올라가는 길목인 단산면 좌석리에 고칫재민박(638-4544), 좌석농장(638-4529), 연화동민박(638-4535) 등 몇 집이 민박을 친다.
●중부권 풍기 읍내를 중심으로 풍기인삼관광호텔(637-8800), 고려장(636-6202), 소백모텔(636-5681), 풍기여관(636-2110) 등의 숙박시설과 풍기인삼갈비(635-2382), 유명불고기식당(636-8585), 황토골인삼불고기(635-6088), 풍기소백산맥식당(633-8177) 등 갈비살, 한우불고기, 갈비탕 등을 차리는 식당이 많다.
희방사 입구의 수철리에도 희방모텔(638-8000), 모텔2010(638-2010)과 오리구이·탕을 차리는 용바위산장식당(638-7770) 등이 있다. 봉현면 두산리의 옥녀봉 자연휴양림(639-6543)도 인기 있는 휴양시설이다.
●남부권 영주 시내를 중심으로 소백파크관광호텔(634-7800), 영주호텔(632-4000), 신라궁전호텔(634-1600), 하얏트모텔(632-5181), 모텔테마(631-0960) 등 숙박시설이 가장 많다. 시내엔 소백산생고기(632-6784) 등 소갈비를 차리는 식당도 많다. 중앙분식(635-7367)의 쫄면도 영주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메뉴. 수도리 전통마을 주변은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다.
*영주시 홈페이지 www.yeongju.go.kr / *영주시 문화관광과 054-639-6391~2
*소수서원관광안내봉사실 054-639-6259 / *부석사 관광안내소 054-638-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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