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행14:19~22, 사43:18~19
토끼와 거북이 경주 이야기를 다들 아시지요? 느림보 거북이에 비화면 토끼는 제트기처럼 빠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빠른 토끼가 경주에서 졌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토끼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그들의 “속도”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유럽인들 중에서 머리가 가장 우수한 민족은 프랑스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이 프랑스 사람들의 머리가 좋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조사했답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프랑스 요리는 세계 최고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이 영국이나 독일에게 밀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학자들이 이걸 또 조사해보았는데 “국민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일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간판에 못질을 해도 먼저 생각을 많이 한 후에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못질하고 나면 다시는 못을 뽑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영국 사람들은 걸어가면서도 생각한답니다. 즉 매사에 신중히 행동한다는 겁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걷는다는 말이 영국 사람에게 꼭 맞는 속담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만 믿고 먼저 일부터 벌여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후회할 일이 생기지요.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그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도 항상 독일이나 영국에게 밀렸다는 겁니다.
우리 민족도 뒤돌아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80년, 100년 전 일제 강점기 때 있었던 일을 아직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귀신 얘기가 많습니다. 귀신 얘기는 지나간 과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 나라에 전파된 이후에는 귀신 이야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기독교는 미래를 이야기하지 과거를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예수께로 돌아오는 일이 많아지자 유대인들이 그것을 심히 시기했습니다. “저놈이 전하는 예수 때에 우리 유대교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저런 놈은 죽여 없애야 해!” 그리고는 집단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유대인 군중들이 얼마나 돌을 많이 던졌는지 바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城 밖으로 끌고 나가 던져버렸습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의 시신을 거두어드리려고 城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꿈틀거리면서 피투성이가 된 채 일어나는 거예요.
한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얼굴과 머리가 돌에 맞아 찢어지고 퉁퉁 붓고 출혈이 낭자합니다. 온몸은 혈관들이 터져 시커멓게 멍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까지 3개월 이상은 걸립니다. 더군다나 심리적인 타격 때문에 “나 이젠 복음 전하는 것 그만둘래” 이럴 수 있습니다. 20절~2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이튿날 일어나서 더베로 가서 퉁퉁 붓고 찢어진 상처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좌절과 포기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강골 중의 강골입니다.
문제를 내 마음속에서 털어내는 시간과 그 사람의 믿음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을 보면 문제를 마음속에서 털어내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물 문제와 풀 문제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같이 건조한 나라에서는 물과 풀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조카야.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않으냐. 네가 右하면 나는 左하고, 네가 左하면 나는 右할 테니 네가 먼저 선택하라” 이러면서 양보를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물과 풀 문제에 대해 마음에서 속히 털어낸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나오니까 롯은 “이게 웬 떡이냐”하고는 물과 풀이 넉넉한 소돔성 근처에 있는 온 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래지 않아 떼 부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요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 들에서 살다가 소돔성으로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소돔성이 하나님께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에 그의 가족은 알거지가 되어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골치 아팠던 문제를 속히 털어냈던 아브라함은 이후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아 창대케 되었습니다. 문제를 빨리 털어내는 사람이 더 큰 성장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사43:18~19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라는 말은 과거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발목이 잡혀있으면 사람이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겐 하나님도 “새 일”은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다윗왕과 밧세바 사이에서 불륜의 자식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치자 그 아이가 심한 병에 들었습니다. 다윗은 금식하며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지난 일을 빨리 털어냈음.
문밖에서 신하들이 수군수군거리는 소리를 다윗왕이 들었습니다. “경이 말하시오”, “아니 경이 말하시오.” 그래서 다윗왕이 물었습니다. “아이가 죽었느냐?” “예. 전하. 조금 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러면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반응이 나옵니까? “아이고 야속해라!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데려가시다니요.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이럴 겁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즉시 일어나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돌아와 신하들에게 “여봐라. 음식을 내오너라”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이 깜짝 놀라 “전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다윗왕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그리고는 아이 문제를 즉시 마음속에서 털어냈습니다.
그다음에 다윗왕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솔로몬이라는 지혜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솔로몬이 이스라엘 최초로 돌과 백향목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됩니다. 그전에는 텐트로 만든 성막에 하나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왕궁도 건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을 정도가 되었지만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빨리 털어내고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정신력과 믿음 때문에 그 무시무시하고 거대했던 로마제국을 복음화시킬 초석을 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을 빨리 털어내고 앞으로 나간 단 한 사람에 의해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유럽 대륙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문제를 내 마음속에서 털어내는 시간과 그 사람의 믿음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