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윤극영 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위 童詩의 작가 윤극영은 처음 부친의 권유로 경성법학 전문학교에 들어갔으나 법학에는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 우에노 음악학교 등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런데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무장한 일본인이 숱한 조선인을 참혹하게 살해한 관동대학살이 일어났고, 이때 윤극영도 일본 군인에게 붙잡혀 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지푸라기 위에 누워 있었고 마구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살아나 고국으로 돌아온 윤극영은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광경을 마주했다고 한다.
관동대학살 소식을 들은 부산 사람들이 구름처럼 항구에 몰려들어, 귀국하는 동포들을 위로한 것이다. "아이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들이 건네주는 떡 한 조각을 꾹꾹 씹으면서 윤극영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온 뒤인 1924년 10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윤극영이 다섯 살 때 시집간 큰 누나가 고생만 하다 젊은 나이에 숨진 것이었다.
이렇게 나라 잃고 타국에서 핍박당한 아픔에 혈육의 죽음까지 겹쳐 복받치는 설움을 윤극영은 안게 되었다.
그런데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서 말없이 뜬 조각달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큰누님은 저 쪽배를 닮은 반달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가겠구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순간 그의 머릿속에 어떤 시상과 곡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바로 동요 '반달'이었다.
우리나라 동요의 창시가 1924년 바로 이때로써, 꼭 100년전의 일이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는 반달'이란 바로 나라를 잃고 정처 없이 헤매야 하는 처지인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후 우리 동포들은 이 노래에 한(恨)과 설움, 그리고 결코 놓을 수 없는 미래의 희망을 꾹꾹 담아 불렀다.
희미하게나마 멀리서 등대처럼 빛을 내는 샛별을 찾아 반드시 광복을 이뤄내겠다는 염원이었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