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5 - 세느강 유람선 바토 무슈에서“퐁뇌프의 연인들”을 회상하다!
파리 시내에서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 을 보고 방돔 광장과 마들렌 교회 를 거쳐
콩코르드 광장 을 구경한 후에는 발걸음을 옮겨..... 세느 강변을 걷습니다.
대로변을 지나가는 파리 시티투어 버스 에 9개국 국기 가 표시되어 있는데
저건 그나라 말로 녹음된 안내 방송 을 들을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네요?
요즘 유럽 여러 관광지 마다 일본 은 물론이고 새로 중국 리시버 가 꼭 비치되어 있는데
그만큼 중국 관광객 이 많이 오는등 차이나의 국력 이 신장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이러한 중국 이 사십여년 전 부터 국제사회에 쓰기 시작한 새로운 선물 이
있으니...... 바로 중국 쓰촨성이 고향 인 자이언츠 판다 곰 입니다.
귀여운 생김새 와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으로 보호본능 를 자극하는
녀석은 중국의 산속 야생에 2천마리 정도가 살아간다고 합니다.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 의 중국 방문시에 한쌍을 선물 받은 것을
시초로... 몇년전에는 시진핑 주석이 또 판다 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한국도 1,994년에 중국과 수교 하면서 판다 한쌍 을 선물로 받았는데 IMF 외환위기
가 터지면서... "비용" 때문에 4년도 안되어 중국에 되돌려준 일 이 있다고 하네요?
그건 판다 선물이 공짜가 아니고 당시에는 연간 100만 달러의 임대료 에다가 하루에
먹는 40kg의 대나무 에 사육사 인건비 까지 부담할 능력 이 안되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그래도 판다 임대에 목을 매는 나라들이 많으니.... 2,011년 판다
한쌍을 임차한 영국 에든버러 동물원 은 연간 70만 파은드 적자 에
허덕이다가 판다를 들여온 이후에는 150만 파운드 흑자 를 기록했다나요?
시진핑 은 몇년전 서울 방문중에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 우호 를 상징하는
인물로 진시황때 불로초 를 구하러 제주도 에 온 "서복" 을 들먹였습니다.
또 임진왜란 시 명나라 등자룡 장군 이 이순신과 함께 노량해전 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이야기며.... 제독 "진린의 후손" 이 한국에 귀화해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린
이라면 정유재란때 이순신과 함께 싸운 제독인데 명나라가 망하면서 후손이 조선 으로?
동아일보 논설위원 송평인 씨는 진린이 전공에 욕심 을 냈다고 폄하 하는걸 보는데
한국인들은 명군이 민폐나 끼치고, 전투에는 소극적 이라고 알지만... 임진왜란
7년 동안에 참전한 연인원은 왜군이 30만 에 조선이 10만, 중국이 25만 정도 입니다.
1,593년 평양성 전투 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1만 5천에 대해 명군은 이여송의 4만 3천
에 조선군은 이일등 관군 8천 과 유정의 승병 2천 등 1만명 으로 탈환에 성공
하는데... 성을 공격한 연합군 5만 3천 중에 중국군대의 비율은 무려 81% 에 달합니다?
1,597년 8월 요충지 남원성 전투 는 왜군 5만 6천에 명군은 양원등 3천명이고 조선군은
이복남등 1천명 이라 패하니 왜군은 전주와 공주를 점령했고.... 9월 7일 충청도
직산전투 는 왜군은 구로다와 모리 4만명인데, 권율과 충청도의 조선군은 모두 도주
했으니 양호는 마귀를 시켜 수원에 3천 직산에 4천 을 파병해 왜군의 북진을 저지합니다.
12월 울산왜성 전투 는 왜군은 가토 기요마사 1만 6천인데, 명군 은 부산 등지에서 구원
올지 모를 왜병에 대해 2만 을 양산에 진을 친후, 양호와 마귀는 3만 8천을 그리고
조선군은 권율과 이시언등 1만 2천 이니, 명군의 대포 공격으로 승기를 잡았으나
열흘후에는 왜군 7만명이 육지와 강에서 지원군 으로 합류하니 역전되어 대패 를 당합니다.
1,598년 10월 경리 양호 는 왜군을 몰아내기 위해 조명 연합군을 편성해 4로 병진 을
하니, 사천성 전투 는 왜군은 사쓰마번의 시마즈 요시히로 1만명 에 대해 명군은
동일원 35,000 에 조선 군은 우병사 정기룡의 3천 정도이나 왜군에게 대참패를 당합니다.
양력 10월의 울산 왜성 2차 전투 는 왜군은 가토 기요마사 1만여명 인데 비해 명군은 도독
마귀 장군의 24,000 에 조선군은 김응서등 15,000 명 이었으나... 선거이 장군이 전사
하는등 불리한 가운데, 중로군 3만 8천이 시마즈씨 1만에 참패 를 당하고 순천 왜교성
공격도 실패했으며 부산을 공격한 명군이 다치바나 무네시게에게 패하자 경주로 후퇴 합니다!
10월 순천 왜성 전투 는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 1만 3천에, 명군은 유정 2만 8천 에 조선군은
권율 1만 이고 수군은 진린 1만 9천 에 이순신 7천 합쳐 6만 4천인데 왜성은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데다가 육지도 끊어서 부교 를 설치했으니 연합군은 2차에 걸친 공격이 실패했고
수군도 진린과 이순신이 공격했으나 수심이 얕아서 썰물에 배가 죄초되는등 실패로 끝납니다.
이후 28개 왜성 중에 27개 왜성의 일본군은 조선군의 방해를 받지않고 평화롭게 철군 하나
광양만의 수심이 얕아 왜교성 공격에 실패했던 이순신과 진린 이 순천만을 봉쇄한
노량해전은 명군은 진린 300척 1만 8천 에 조선군은 이순신 60척 7천 이었습니다.
여러 전투를 살펴보면 왜군과의 전투에서 주력은 명군 이고 조선군은 보조적인 역활 이라!
정유재란은 일본군 14만에 조선군 3만 8천, 명군 11만 7천 이니 명군이 주력임에도...
우린 중국 군대를 비하 하기에 바쁩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이지요? 이처럼 조선
출병으로 연인원 25만 에 이르는 대군을 파견하니 원거리라 엄청난 전비 를 지출한
명나라는 이후 "재정파탄" 에 이르자 폭압적인 조세 를 징수하니 농민 반란 이 일어납니다.
국내에서 농민 반란군과 전쟁 을 하느라... 만주 여진족 을 통제하는데 소홀히 하게 되고
이후 만주에서 여진군에게 패한후 후금의 남진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 산해관에 30만대군
을 배치하니... 농민 반란군이 북경을 함락 하자 황제 숭정제는 자살하고 명나라는 망합니다.
북경의 부친과 사랑하는 첩이 이자성 농민군에 농락당하자 분개한 산해관의 오삼계 는
30만 대군을 들어 청나라에 투항하니 만주족은 10만 에 불과한 병력임에도 오삼계를
앞세워 중국을 접수하는데, 오삼계는 북경이 농민군에 떨어졌으니 보급이 끊긴데다가
북쪽과 남쪽에서 협공 을 당하니 살기위해 후금에 항복 하고 농민군 토벌에 앞장 섭니다!
만력제 는 십수년간 조회에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정사를 내팽개친 인물인데 꿈 을 이유
로 기울어 쇠퇴하던 처지에서 제후국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 에 쫃겨 대군을 파병해
재정 파탄 으로 나라가 기우는데.... 임진왜란때 압록강 방비만 튼튼히 하고 조선에
파병하지 않았더라면 10만에 불과한 여진족 따위에게 나라를 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조선의 왕과 사대부 들은 이런 사정을 알기에 “재조지은”이라고 감격하며 명나라를 부모
이자 "은인의 나라" 로 받들었건만, 한국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전혀 모르는것 같습니다!
6.25때 공산화를 막아준 미군과 유엔군 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은혜 를 느끼는 국민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야 "미국이 소련과 조선을 갈라먹은게 전쟁의 원인" 으로 봅니다만?
알렉상드르 3세 다리와 앵발리드 다리를 지나 바토무슈 Bateaux- Mouches 선착장에 이르러
인터넷에서 유레일패스 를 구입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승선권 을 내고 배에 오릅니다.
바토무슈 유람선 은 8시에 출발해 루부르궁전 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알렉상드르 다리 에
이르니 방송이 나오는데... 불어 다음에 중국어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세상에나!!!
한국어 가 나오네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올라가는 산악열차
에서 한국어 안내방송 을 듣고는 얼마만인지 모르겠으니.....
그런데 영어와 일본어 방송 이 나오지 않으니 이건 또 어찌된 셈일러나? 선내를 둘러보니
유람선에는 주로 중국인 단체 와 한국인 단체 이고 개인 관광객 은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유람선 에는 여러 나라 언어별로 된 안내방송 녹음이 비치 되어 있고
그날 유람선에 탑승한 여행사 단체관광객의 국적 을 보아서 트는 모양입니다.
여기 바토무슈 선착장 말고 반대편인 에펠탑 아래 선착장 에서 관광객을 태우는
좀 다르게 생긴 유람선에는... 서양인 들이 대부분인게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서양인들이 탄 유람선 중에는 단순히 배만 타는게 아니고 붉은 식탁보 가 차려진
테이블에서 와인 을 겻들여 "디너" 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비쌀 것이라?
바람이 세기로 배 갑판에서 내려와 선실로 들어가니 하루종일 빡센 관광 일정 에
지쳤는지 의자 4~5개를 차지하고는 "드러누워 있는 한국인들" 이 많이 보입니다.
오래 전에 대전 엑스포 에 갔었는데 전시관이야 훌륭하지만 8월 염천 더위 뙤약볕 에
짧으면 30분 길게는 한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 입장 해야 하는지라....
두어군데 보고는 지치는데 그 넓은 곳에 나무라고는 단 한그루가 없으니 그늘이며 벤치가
전혀 없는지라 사람들이 건물 그늘 복도에 수백명씩 퍼질러 누워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데 아무래도 갑갑한지라 다시 밖으로
나가니.... 유람선 배 는 오른쪽에 오르세 미술관 을 지납니다.
조금 후에는 다시 왼쪽에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인 루부르
박물관 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불어-중국어-한국어 순으로 안내방송 이 나옵니다.
그런데 루부르 박물관을 지나자마자 유람선 선착장이 보이니 Vedettes du Pont-Neuf
라..... 그럼 영화 “퐁뇌프의 연인들” 로 유명한 그 퐁뇌프 다리?
네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줘
그게 만약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라고 대답할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수 있을거야
알렉스 드니 라방 이 미쉘 줄리엣 비노슈 에게 프로포즈 하는 말 인데....
하지만 실명위기에 처한 미쉘은 떠나가고 알렉스는 그녀를 잊지 못합니다!
알렉스는 미쉘의 가족이 붙인 그녀를 찾는다는 포스터를 불태웠다가 방화범 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지만..... 출옥후 다시 이 다리 퐁뇌프 에서 재회 하던가요?
"퐁뇌프 Pont-Neuf" 는 말의 의미가 "새로운 다리" 라는 뜻 이건만.....
이제는 세느강에 걸린 수십개 다리 중에 오히려 가장 "오래된 다리" 라고 하네요?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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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이 영화를 볼때
꿈과 낭만적인 이야기를 할때였는데
시간이 휙 지나가는 싯점입니다
1990년대 초에 상영된 영화니까.....
참으로 오래전 옛날이지요?
그때믄 말씀처럼 참으로 낭만적이었다는.....
다시 걷고싶네요
그다리의 추억과 함께
세느강에 "퐁뇌프 Pont-Neuf" 다리는
몇번을 가서 다시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 낭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녀오면 다들 추억으로 남지요?
파리만 3번갔었지만 센강에서 바토무슈 바토뷔스 바토파리지앵 브데드퐁뇌프유람선 탄게 생각납니다 유럽에서는 유람선타는게 재미있지요
파리하고도 센 강에......
유람선은 더욱 운치가 있지요?
개성있는 다리도 많은 데다가
강 좌우에 역사적인 건물들이 즐비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