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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참정권에 대한 오해와 진실
대한민국 영주권 취득하기는 별 따기
소수자를 포퓰리즘 도구 삼지 말아야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2022년 6월의 제8회 지방선거 때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는 국내 10만 명 넘는 중국 국적자는 우리나라 지방선거 투표권이 있지만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참정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아 상호주의 개념에 어긋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2022년 말에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도 역시 이를 언급하면서 “영주권자에게 조건 없이 투표권을 주는 현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때 경기도 지사 선거에서 김은혜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낙선한 것은 중국인들이 대거 투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이 나돈 것과 관련이 있는 언급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이민 정책 필요성을 크게 외치는 여당이 동시에 외국인 인권과 국내 체류 영주권자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데다가 그런 주장에는 사실 왜곡과 가짜 정보가 많아 팩트를 똑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 투표가 선거 결과 바꾼다”는 허구
국내 체류하는 영주권자(F-5 비자 보유자)에게 언제부터, 왜, 어떤 조건으로 투표권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그 실체를 다른 나라들의 현황과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면 현재 여당이 주장하는 바가 매우 단편적임을 알 수 있다. 먼저 한동훈의 ‘조건 없이 외국인에게 준 참정권’ 발언에 대한 반론이다. 조건 없는 참정권이 결코 아니다. 영주권을 받고 지속적으로 3년 이상 거주를 한 외국인에게만 주어진 권리이다. 취업방문, 유학, 단순노동, 해외동포, 거주 등과 같은 비자 등급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여론을 주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이나 여당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 보면 마치 모든 외국인이 한국에 오래 살기만 하면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중에서 중국 국적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현황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마치 이 모든 중국인이 투표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중요한 숫자는 국내 체류 중인 총 외국인 수가 아니라 F-5 (영주권) 보유자 숫자다.
법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국내 영주권자는 17만 5872명이다. 이중 10만 4790명 (59.6%)이 ‘외국 국적 동포’다. ‘외국 국적 동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이나 그 직계비속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중국은 물론 구소련 국가(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재일교포, 재미교포, 재남미교포 등이 다 들어있다. 혈통이 한민족인 사람들이지 단순하게 ‘중국인’이 아닌 것이다.
영주권자 중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한국 국민의 배우자나 자녀로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18.4%(3만 2285명)를 차지했다. 그 중에는 중국인도 있지만 베트남이나 필리핀, 일본 등과 같은 나라 출신자도 꽤 많다. 중국에서 국내로 오래 전 이주한 화교 5.4%(9562명)를 포함하면 한국과 관련된 영주권자만 무려 83.4%에 달한다. “중국인들이 우리 선거에 대거 투표해서 결과를 바꾼다”는 발언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주장임을 알 수 있는 숫자다.
인천시 중구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대한민국 귀화인들이 국적증서를 받고 있다. 2019.1.22 연합뉴스 자료사진
‘첩첩산중’ 영주권 취득 과정
대한민국 영주권을 취득하는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을 감안해서 분석해 보면 여당이 그리려는 아주 단순한 그림이 더욱더 복잡해진다. 가장 수가 많은 외국 국적 동포 영주권자(F-5-7)는 각종 신분증 서류뿐 아니라 한국 이민 영주 사회통합프로그램 과정 이수와 졸업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소득 합계가 한국은행이 고시하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2배 이상임을 입증하는 서류 등을 내야 한다.
이와 같은 매우 높은 문턱 그 자체가 엄격한 필터링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한국 영주권자 대다수는 국내에 오래 살아서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 한국 사회와 문화에 잘 적응하면서 성공적인 경제활동으로 돈도 꽤 잘 버는 사회 일원들이다. 유학이나 단순 노동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서 엄연히 ‘타지인’임을 스스로 느끼는 사람들과 매우 다른 차원의 계층이다.
그러면 애초 이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이유가 뭐였을까. 한국에서 외국인 참정권 도입 논의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재일 한국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를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2005년에 여야 공동 발의로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영주권 자격 취득 3년이 경과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이 주어졌고 2006년 5월 31일에 실시한 제4회 지방선거 때 외국인 참정권이 처음 적용됐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다. 물론 국가마다 정치적, 경제적, 지정학적 등 특징이 있어서 일반화 할 수 없으나 유럽과 미주, 남미 국가들은 외국인의 선거권 문제에 있어서 다소 관대한 편이다. 칠레와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출신 국적 상관 없이 국내 체류 일정 기간만 채우면 아무 조건 없이 총선 선거권까지 부여한다.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는 나라도 적지 않다. 한국을 비롯해서 호주, 벨기에, 영국, 이스라엘 등이다. 심지어 민주주의 체제라고 불리기 어려운 러시아마저도 이 분류에 속한다.
대부분의 나라는 상호주의 개념이 아닌 인권 입장에서 이 정책을 택했다. 중동 국가나 일부 아시아 국가는 외국인에게 이런 투표권을 안 주고 있지만 그런 국가를 예시로 들면서 우리도 그들처럼 외국인에게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대한민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회 소수자를 포퓰리즘 도구 삼지 말아야
영주권자의 연도별 실제 투표율을 보면 여당이 주장하는 만큼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역시 알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등록된 외국인 영주권자는 13만 5천여 명이었다. 이중 1만 7천여 명 (13.3%)만이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2010년에 실시했던 지방선거에서 영주권자의 35%가 투표를 한 다음부터 꾸준히 줄어드는 숫자다. 이유는 한국 국내 정치 관심 저조, 외국어로 제공하는 정보 부족, 권위주의 체제에서 온 사람의 경우 민주주의의 상징인 선거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결과만 두고 보면 영주권자들이 투표율에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권자의 겨우 0.4% 정도를 차지하는 숫자로 투표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10만 명 넘는 국내 체류 중국 국적의 해외동포들이 여론을 왜곡하거나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2022년 발언은 근거가 많이 부족한 발언임을 알 수 있다.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부여하는 정책은 토론이 가능한 부분임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섣부른 판단을 내려 전면 폐지하거나 차별적인 제한을 두자는 주장은 자제했으면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와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므로 사회 발전, 이민 정책, 인권 등과 같은 문제와 연결지어 심사숙고해서 내려야 하는 결정이라고 본다. 지금 당장 포퓰리즘에 휩싸여 소수세력을 비판 수단으로 삼아 여론을 들끓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이민과 관련한 이슈는 진영 프레임이 아닌 국익 프레임 안에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출처 : 중국인들 투표가 선거 결과 바꾼다?…여당의 왜곡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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