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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성공하는 경우는 많다. 그 이유는 사람들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단초적 기억들을 끄집어내 내용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의 성공 요인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서부터 제5공화국 출범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물론 실제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들에게도 의미있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사건 관련 정보들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TV 드라마나 영화 같은 픽션을 통해 대중에게 더 알려져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 방송됐던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은 5·18이나 12·12 전모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영화 ‘서울의 봄’과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들도 ‘제5공화국’ 화면이나 캡처 사진들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드라마나 영화로 극화된 역사적 사실들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허구를 가미해 만든다는 것이다. 작품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허구적 얘기들을 삽입해 과장 혹은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오버코딩(overcoding)’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몰입도가 높은 영화 매체는 오버코딩 효과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오버코딩은 내용의 개연성을 배가시겨, 수용자들이 제작자 의도대로 해석하는 ‘지배적 해독’(dominant or preferred reading)을 유도하게 된다. ‘서울의 봄’ 역시 감독 스스로 밝힌 것처럼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지만 허구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80년대 ‘태백산맥’이나 ‘남부군’에서부터 ‘남영동 1985’ ‘변호인’ ‘1987’ 같은 영화들이다. 주목할 것은, 내용 중 실제 사실보다 허구의 이야기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이의 상상력이 사실을 크게 왜곡시킨다면 그것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의도까지 개입되게 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예술적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면, 나치를 미화하기 위해 만든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나 옛 소련의 선전 영화들도 재평가돼야 할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처럼 정치적 성향이 짙은 영화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미 유튜브에는 ‘서울의 봄’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에 우호적인 매체들은 물론 우파 인터넷 매체들까지 나서 영화의 사실 왜곡과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영화가 왜 이 시점에 개봉됐는가를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나 논쟁이 도리어 이 영화의 정치적 효과를 배가시켜주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서울의 봄’은 12·12사태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치적 화두로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현대사에 무관심했던 20~30대 젊은 층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만든 요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 영화의 역사는 길다. 그만큼 정치가 좋은 영화 소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정치 영화가 반드시 정치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영화는 정치다. 정치 영화는 영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정치적 의도에서 만든 영화는 정치선전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가치있는 영화로 기억되지 않는다. ‘서울의 봄’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황근 선문大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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