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gloom , 6월의 신랑
이맘때 캘리포니아의 날씨를 그렇게 말한다.
늦은 봄과 초 여름 오전은 해가 나지 않고
오후에 해가 보이는 그런 날을
왜 하필 6월의 신랑에다 비유를 했을까?
올해는 오후까지 흐린 날이 계속 이어지고
이 계절에는 전혀 볼수 없는 비가
간간이 내리니 날씨가 좀 이상해졌다.
지구상의 곳곳에 일어나는 이상기후인가 싶어
미래가 걱정스럽다.
친구들과 운동하러 갔다가 앞팀의 너무 늦은
플레이로 계속 기다려야 했다.
그늘을 찾을 정도로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나무 밑으로 갔다.
그 나무는 뽕나무였다.
이파리 하나 떼어내 반으로 갈라서
코 끝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낯설지 않은 그 녹색 향에서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떠 올랐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였는지
우리 집은 누에를 키웠다.
봄 그리고 가을 일 년에 두 번씩
봄 누에를 춘잠 가을누에를 추잠이라 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뽕잎 따는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며 쌍둥이처럼 어린시절을 보낸
한 살 어린 사촌동생 미영이는 나중에 크면
누에 키우는 집으로 시집 안 간다고 했단다.
나는 그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것 같은데
사촌이랑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그 말을
자기가 했다고 한다 .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어릴때부터 식물들과
놀기를 좋아해 뽕잎따는 일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알에서 깨어난 꼬물꼬물 한 누에는 사각사각
뽕잎을 잘도 먹었다.
병든 뽕잎을 먹여서도 안 되고
농약을 친 뽕잎을 먹여서도 안 되고
물기가 묻은 뽕잎을 먹여서도 안 된다 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누에가 징그럽다고 그랬다.
왜 그랬는지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도 들면서
그 애가 미웠다.
무럭무럭 자라는 누에는 아기 손가락만큼 자라고
몸체가 말갛게 되면 층층이 칸을 만들어
누에를 옮겨 주었다.
뽕잎을 그만 먹고 누에들은 그곳에서
집을 지었다.
제 몸에서 만든 실로 제 몸을 가두는 하얀 집을
짓는 누에를 보면 참 신기했다.
단단히 집이 지어지면 그것을 엄마와 함께
선별했다.
깨끗하고 단단하고 큰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고를 때 엄마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했다.
그 경계를 어렸던 내가 결정하기가
애매모호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읍내에 가져간 날 (수매?)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가
몇 등 맞았냐고 물어봤다.
특등이라고 하면 좋은 것인 줄 알았고
일등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우리가 도와줘서 품질이 좋았다고
말해줬지만 엄마의 정성이었을 것이다.
그런 날은
고기도 먹을 수 있었고
번데기도 먹을 수 있었다.
용돈도 받았다.
봄, 가을누에고치를 내다 팔았을 즈음이면
학교 등록금을 낼 때였었다.
우리는 늘 제 때 늦지 않게 돈을 낼 수 있어서
가난한 티가 나지 않았다.
누에의 실이 비단을 만들어 내고
누에가 번데기를 남긴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누에 안 키우는 집으로 시집을 간다고 했던
나의 사촌의 그 꿈은 이루어졌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번데기를 못 먹는다.
재작년 4월에는 테메큘라에 있는 꽃동네에 가서
수녀님들이 뽕나무 잎으로 만든 나물을
처음 먹어 봤다.
그때 여린 뽕나무 잎을 많이 따는 일을 하고 왔는데
누군가는 우리처럼 수녀님이 만들어 주신
뽕나무 잎 나물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뽕나무는 여러모로 쓸모 있는 나무다 .
잠시 뽕나무 아래에서
뽕나무 이파리의 향기를 맡으며
지난 시절을 떠 올려 봤다.
참 보고 싶다.
나의 부모님.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의 고향
나의 어린 시절로.
너무나 그리워 눈물이 핑 돌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6월의 오전은 흐렸다가
오후는 햇빛이 눈부시게 찬란해야 하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흐린 날씨다.
6월의 신랑이 이런 얼굴인가 보다.
나이스 샷을 기대하며
나는 뽕나무 곁을 떠났다
첫댓글 6월의 신랑이 어떠하길래
글케 비유하였을까요?
혹시 옛 6월은 식량이 부족했던
보릿고개 이니었나요?
그리하여 그 시절과 관련있을
만큼 신랑이 안좋다는 뜻? ㅎㅎ
그리고 뽕나무가 그늘을 줄만큼
키 큰나무인줄 처음 알았네요..
아주 빠른 댓글 감사 드려요 .
사진 첨부 했습니다 .
잠시 외출했다가 다시 와서
올린 글을 손질해야 겠네요.
고맙습니다 서글이님
그시절 집집마다
누에를 키웠죠
유일하게 돈을 만질수 있어서
저역시 1960년도 어린시절
집에서 누에를 키웠어니까
새 뽕잎을 주면
사각사각 뽕잎먹는 누에소리
한잠
두잠
세잠
네잠이면 누에가 고치를
짓기시작 하죠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볏짚으로 만든 틀을 올려놓으면
집짔기 시작
휴일날 아침 동심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히어로즈님 반갑습니다 .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
누에가 잠을 잘때도 있었다는게
히어로즈님 댓글 쓰신것을 읽고
생각이 났습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
제가 유년기를 마냥 행복하게 보냈었던 제 고향 공주 산골은 집성촌이었습니다.
집안 할머님 댁에서 누에를 많이 치셨기 때문에 울아녜스님 글을 읽다보니 어슴프레 추억이 생각납니다.
집 앞에 뽕나무가 많았었지요.
번데기를 잘 먹었던 생각도 떠오릅니다.
정겹던 옛 추억에 잠기게 해주신 울아녜스님 글 추천하고 갑니다. ^^♡
추천까지 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
공주도 아마 제 고향과 분위기가
비숫할것이라 생각 합니다 .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공주) 도시라고
저는 수피님의 고향을 기억한답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제 외가마을에도 집집마다 누에를 쳤었습니다. 외가 바로 앞 밭에 키 작은 뽕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었고요. 방학마다 일주일씩 다녀왔는데 반겨주시던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그립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저도 기억 합니다 .
(새벽종이 울렸네 ~ 새아침이 밝았네~ )
그 노래가 동네 스피커를 통해 아침이면 들려 왔었지요 .
그 덕분에 시골마을이 좀더 잘 살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
제 외숙모도 고향에 살고 계십니다 .
작년에 뵈었는데 많이 연로 하셨습니다 .
제 나이도 이렇게 되었으니....
좋은 나날 되세요
주일 저녁 시간 오랜만에 언니 글을 읽게 되네요
일본 집 근처에 무수히 많은 뽕나무
그리고
출근 하기 전 아침 시간
오디를 따먹으면 일본 할머니들은 그것을 먹느냐고 물어보시던 기억이 솔솔..
뽕나무-오디 우리나라에서는 뽕나무는 그리 크지가 않았었다는 기억인데
이번 코카서스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쟌)을 돌면서 뽕나무가 이렇게도 크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지나간 봇짐을 풀어놓은 언니의 향기에 취하면서 ...
늘 언제나 항상 건강조심
이번에 다녀 온 여행 이야기도 들어야 되는데 ..
나는 오디를 잘 먹지는 않았던것 같아 .
지금과 달리 어린시절에는 내가 엄청 까다로왔거든 .
만나서 봇짐을 풀어야 하는데
그럴날을 기다리기로 합시다 .
삘기님 !
보고 싶어요 ,
뽕나무라면 저도 할 말이 많은데..
아네스님이 옛일을 소환해 주십니다.
우리집 주변으로는 오래되고 커다란 뽕나무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오디도 많이 따먹고 여름철에는 오르내리며 매미도 참 많이 잡았는데..
아마도 고목 뽕나무라서 상황버섯도 꽤있었을텐데 ..몰라서 버섯채취는 못했구만요..ㅎ
필드에서의 여름 여인 ..건강한 일상입니다.
가을이오면 님도 뽕나무 이야기 한번 해 주세요.
저는 매미 잡으러 나무를 오르지는 않았거든요 ㅎㅎ
아까워라 .
상황버섯을 가을이오면님이 드셨으면
지금 어떠실까 ~~ 생각해 봅니다 .
필드의 여름여인은 늘 아쉬움이지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누에의 먹이가 뽕잎이라는 건,
잘 알고 있고
비단 옷하면, 동서고금을 통하여
고급 옷감이지요.
그런데도, 뽕나무를 가까이 할
기회가 많지 않더군요.
품위를 보이는 데는 고급스러움이 좋지요.
요즘 사람들은 실용을 좋아합니다.
실용적이지 못함은 모든 이에게 애용 될 수는 없습니다.^^
뽕잎에 서린 어머님과의 기억,
잘 읽었습니다.
아마도 요즘 누에를 키우는 집은 없는것 같네요.
농촌에 일손도 딸리고 청정지역이 없을테니까요.
또 좋은 재질의 옷이 많이 나오고 비단옷은 실용이지는
못한것이 사실이지요 .
이젠 추억속에 누에로 남아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
이 글로 아네스 여사의 어린 시절이 그려집니다.
잘 읽었어요.
촌티나는 제 어린시절이 그려지시지요 ?
아직도 그 촌티를 못 벗었답니다 .
산책에서 만나는 꽃 이야기들을
자주 써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
누에 그거, 키우는 지방이 따로 있나봐요?
저쪽 경남 바닷가 쪽에서는 들은 적도...
중부 어딘가 쯤에 ?
빨갛다가 검붉게 잘 익어 바닥에 떨어져 밟히던 오디 가.
캘리포니아 늦봄 특유의 흐린 날씨들
May gray, June gloom,
No sky July, Fogust 라고들 부른대요
아랫지방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
저는 중부지방 이 고향이었는데
제 동네에서 더러는 누에를 쳤습니다 .
그리 크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푼돈이라도
만들려고 그랬을테죠 .
이곳은 오늘도 오전에는 흐린 날씨였습니다 .
누에치기 기억 이 훤합니다.
우리집 은 상할머니 때부터 누에를 키웠고
그당시 할머니 께서도 누에를 쳤지요.
저도 누에 엄청 했읍니다.
야산을 개간하여 뽕밭을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그시절 생각 납니다.
항상 건강 하시길요.
사진속에 오디가 익었네요.
저는 오디를 즐겨 먹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
어느해는 뽕잎에 하얀게 생기는 병이 돌아서
엄마가 안타까워 했던적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셨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
참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혼자 했지요.
좋은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
늦게 글을 읽었네요.
6월 ,뽕나무, 그리고 추억
잔잔하고 서정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한스님이 요즘 안 보이셔서 많이 바쁘신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스님도 좋은 날들 보내세요 .
뽕나무 그늘아래서 아득히 먼 어린시절과
이제는 꿈에서나 뵐 수있는 어머님 이야기가
넘넘 가슴에 와 닿았어요.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가끔은 까막히 잊고 있던 일들이
머리속에 떠 오를때가 있지요 .
나무랑님이 쓰신 엄마 이야기 읽었습니다 .
한참을 머무르다 답글도 못 썼지요 .
나무랑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누에의 일생을 다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
저 위에 어느분의 댓글을 읽고
아~ 누에가 잠을 자기도 했지 ~
기억이 났답니다 .
이제 나이를 먹으니 어린시절의 놀이를
다시 하고 싶은지 뜰에 무엇을 자꾸 심네요 .
고맙습니다 . 구봉님 ~
봉다리 커피를 보면 구봉님 생각이 난다는것 ㅎㅎㅎ
가슴에 울림이 여운으로 남는 글 잘 읽었습니다
유년 시절 외가에서 누에를 키웠는데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이 생각났습니다
보고싶고 뵙고 싶은 그분들...
다시 가보고싶은...
누에소리 뽕나무 그리고 오디
누에고치 명주실 그리고 번데기
좋은 추억을 소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돌비님
저뿐만 아니고 많은 분들이
뽕나무 그리고 누에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
돌비님께서도요 .
함께 공감 될수 있었다니
저는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