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무기와 미래 전쟁 - 무인 지상차량 ‘테미스’
에스토니아 로봇 차량업체가 제작
최대 15시간 반경 50㎞ 이상 기동
기관총·대전차 미사일 등 장착 가능
우크라 활약에 러 현상금까지 걸어
고착된 전장 변화 ‘게임체인저’ 주목
밀렘로보틱스가 개발한 테미스는 단순 보급품 운송부터 정찰, 감시, 화력 지원 및 전투까지 가능한 다목적 UGV다. 출처=밀렘로보틱스 홈페이지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 무인 지상장비에 현상금을 걸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온전한 상태의 우크라이나군 무인 지상장비를 포획해 가져오면 200만 루블(약 288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것. 러시아가 현상금까지 건 화제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에서 15대를 운용 중인 테미스 무인 지상차량(THeMIS UGV·Tracked Hybrid Modular Infantry System Unmanned Ground Vehicle)이다.
가장 진보된 성능의 테미스
2013년 설립된 에스토니아의 로봇 차량 제조업체인 밀렘로보틱스가 제작한 테미스(THeMIS)는 단순 보급품 운송부터 폭발물 탐지, FGM-148 재블린(Javelin) 같은 대전차 공격무기의 원격 운용까지 가능한 다목적 군용 UGV다.
2014년 후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테미스는 2015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DSEI 2015(Defense Security Equipment International 2015) 방위산업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2019년에는 보다 성능이 개량된 초기 양산형이 등장했다. 실전 평가 역시 같은 해 프랑스 주도의 바르케인(Barkhane) 대테러작전에 참가한 에스토니아군에 의해 아프리카 말리 전투지역에서 진행됐다.
길이 2.47m, 폭 2.04m, 높이 1.17m에 중량 1630㎏의 테미스는 배터리와 디젤발전기로 전원을 공급받는 전기모터로 주행한다. 어떠한 임무에도 대응 가능한 개방형 설계와 다중임무 수행 능력이 특징이다. 원격제어는 AES256 방식으로 암호화된 2.4Ghz MIMO Mesh 4W로 이뤄진다. 올 1월 기준 15개의 기존 파생형과 신기술을 접목한 10개의 신형이 추가 개발 중이다.
기본형 테미스는 평균 750㎏, 최대 1200㎏의 보급품을 완전 자율주행 능력을 바탕으로 1.5㎞ 거리의 목적지까지 평균 20㎞/h의 속도로 운송할 수 있다. 만약 원격제어 권한을 가진 병사가 근처에서 통제할 경우 행동반경은 더욱 확장된다. 내장 배터리로 최대 1.5시간, 발전기를 사용할 경우 최대 15시간 동안 반경 50㎞ 이상을 기동할 수 있다.
전투용 테미스(Combat THeMIS)는 5.56㎜ 구경 경기관총, 12.7㎜ 중기관총, 30㎜ 기관포 및 40㎜ 다연발 유탄발사기, 81㎜ 박격포, 배회폭탄(Loitering munition), 대전차 미사일 등을 운용할 수 있다.
정보수집용 테미스(ISR THeMIS)는 탑재된 센서 모듈에 따라 대공 감시부터 전파신호 및 외부 정보 수집을 통한 전술정찰까지 다양한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폭발물 제거용 테미스(EOD THeMIS)는 엑스레이(X-ray) 투시장비와 고압 에어건, 로봇팔 등을 사용해 폭발물을 안전하고 완전하게 해체할 수 있다. 파생형으로 중량을 12톤으로 확장하고 전투 능력을 더욱 강화한 타입-X(Type-X)가 개발되고 있다. 또한 테미스를 화재 진압, 재난 구호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민간판매용 멀티스코프(Multiscope)가 있다.
2019년 아프리카 말리 전투지역에서 에스토니아군에 의해 시험평가가 진행 중인 테미스 UGV의 모습. 출처=밀렘로보틱스 홈페이지
현상금까지 건 러시아
테미스에 현상금을 건 곳은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러시아 방위산업 싱크탱크인 전략 및 기술분석센터(CAST)로 알려졌다. 루슬란 푸호프 CAST 소장은 지난 15일 러시아 국영통신사인 RIA 노보스티를 통해 테미스에 건 현상금을 200만 루블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누구든 온전한 상태의 테미스 UGV를 CAST로 가져온다면 약속된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것. 참고로 CAST가 2022년 테미스에 처음 건 현상금은 100만 루블(약 1440만 원)이었다.
테미스를 제작한 밀렘로보틱스 관계자들은 “만약 러시아가 테미스를 포획한다고 해도 기술 도난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홍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또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테미스와 같은 전투용 UGV의 발전 가능성 때문이며, 우크라이나군은 UGV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운용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쟁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치열한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과 같이 전선이 고착된 상태다. 여기에 전차를 중심으로 하는 주요 기갑 무기체계의 생존이 극히 취약해지면서 핵심 전력의 전멸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대규모 공세 역시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 테미스 UGV가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가 경계하는 전투용 테미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활약 중인 테미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 역시 전투용 UGV가 가진 치명성과 무한한 발전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원격제어 무기체계를 탑재한 테미스 UGV는 보병부대와 함께 기동하며 보병전투차(IFV) 수준의 화력으로 보병전투를 지원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원격제어 무기체계를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테미스 UGV의 장점 중 하나다.
테미스 UGV는 가장 먼저 통합된 ADDER DM을 시작으로 유비전에서 개발한 Hero-120 전투체계까지 운용 가능하다. 특히 Hero-120 전투체계의 경우 탄두 중량 3.5㎏에 최대 60분간 비행 가능한 배회폭탄 6발을 장착해 보병·특수부대에 대한 대전차 공격 및 전술타격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테미스 UGV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크기가 작아 탐지도 쉽지 않고, 인명피해 부담도 없어 보다 공세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견고하게 구축된 러시아군 소대급 방어진지를 돌파하려면 포병의 충분한 화력 지원은 물론 1개 전차소대와 보병전투차 등으로 무장한 2개 기계화소대가 동원돼야 한다. 문제는 배회폭탄과 드론 공격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군 역시 전차와 보병전투차의 손실이 극심하다는 것. 하지만 전투용 테미스 UGV를 투입할 경우 전차와 보병전투차의 손실을 걱정할 필요 없이 강력한 화력을 러시아군 방어진지에 투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현재 밀렘로보틱스가 개발 중인 군집 드론 운용 능력까지 확보된다면 테미스 UGV의 치명성은 배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의 전황을 전투용 테미스 UGV를 대량 투입해 극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전배치 현황
현재 테미스 UGV는 2020년 9월 29일 에스토니아와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독일, 미국, 스페인, 영국,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프랑스, 호주 등 16개국에서 운용 중이며 그중 8개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다. 아랍에미리트(UAE)의 경우 지난 1월 말 아부다비 국립전시센터(ADNEC)에서 개최된 무인시스템 전시회 및 콘퍼런스(UMEX 2024)에서 테미스 UGV 40대와 궤도형 로봇전투차량(RCV) 20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중요한 사실은 테미스 UGV의 진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밀렘로보틱스 관계자들 역시 “우리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더 많은 기능을 갖춘 수백 대의 테미스 UGV를 고객에게 인도할 준비가 돼 있으며 다양한 신기술 역시 끊임없이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테미스 UGV와 같은 무인전투체계(UWS)가 현대전쟁의 판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가능성을 확인하는 거대한 시험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