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이질적 장르끼리의 정밀한 조합으로 창조적 퓨전 일궈
음악적 사고의 유연성과 사운드 측면의 다양한 시도는 음악사의 새 장 열어
멤버 각자 뛰어난 연주자들임에도 '솔로'가 아닌 '밴드'로서 팀을 더 부각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 중 하나로 평가된다. 기계적으로 세련되고 정교한 포크 록에 백인적 R&B 정서, 블루스의 끈끈함을 가미하고 힐빌리와 컨트리 앤 웨스턴을 보다 록적인 강직함으로 해석함과 동시에 이 모든 것에 도전적이고 야수적인 헤비메틀을 도금했다.
결코 쉽게 다가가기 힘든 본격 매니아 취향의 음악, 더욱이 거기에 이처럼 다면적 연출을 했음에도 레드 제플린이 작품성이나 연주, 지향성 등등 모든 면에서 지존급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악기 연주에서 볼 수 있는 음악적 사고의 유연성이다.
지미 헨드릭스나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등 레드 제플린이 활동하던 동 시대의 기타 영웅들은 일렉트릭기타의 탁월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쿠스틱에 대한 열의는 약했다. 반면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의 전곡에서 일렉트릭기타와 어쿠스틱기타에 대한 비중을 거의 동등하게 둘 만큼 어쿠스틱기타에 대한 남다른 천착을 보였다. 포크에서 만이 아니라 하드록에서도 어쿠스틱기타의 존재가 큰 빛을 발하는 첫 징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결국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포크와 컨트리, 블루스는 물론 그 이상의 여러 장르를 포용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 왔다.
또한 당시 딥퍼플을 비롯한 다수의 밴드-하드록, 아트록 등등-들이 오르간을 선호했던 반면 레드 제플린은 신서사이저라는 보다 급진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원시적 감성과 본능성으로 충만한 레드 제플린임에도 또 한편으론 디지털이라는 첨단과학화를 향해 누구보다 빨리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이 기능을 맡은 사람은 베이시스트인 존 폴 존스(그의 전직은 오르간주자). 록밴드 악기 편성 중 가장 낮은 음을 관장하는 게 베이스 파트다. 그러다보니 베이시스트는, 일반인이 듣기 힘든 소리의 영역까지 감지하며 컨트롤한다. 레드 제플린의 키보드 사운드가 컬러풀한 색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유난히 안정적인 소리를 일정하게 뽑아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둘째는 소리 측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성과다.
레드 제플린 사운드메이킹의 핵심은 지미 페이지의 기타다. 그의 손에서 상당 부분 기초설계가 되면 멤버들 각자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골격을 쌓아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의 손에서 액센트가 주어지며 메이킹이 완성된다. ‘Stairway To Heaven’, ‘The Song Remains The Same’, ‘House Of The Holy’, ‘Ramble On’, ‘Immigrant Song’ 등등 레드 제플린의 여러 명곡들이 모두 지미 페이지의 손에서 나왔다. 그는 한음 보다는 복음을 선호한다. 그 흔한 솔로 애들립에서조차 음을 2~3개 이상 겹치게 하는 일종의 코드 플레이와 유사한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하나의 음이 지닌 장점과 또 다른 음의 장점이 만나 보다 높은 매력을 연출할 수 있는 사운드 추구, 다시 말해 하모나이징이야말로 지미 페이지 기타의 중요한 특성이며 그것은 기타 역사상 베스트 안에 꼽힐 만큼 탁월한 것이다. 브람스의 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아름답고 정교한 하모닉 수법만큼 지미 페이지의 그것 역시 록이라는 20세기의 대중음악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미학적 성과다.
이미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 이전에 영국이 자랑하는 일류 세션맨이기도 하다. 세션 시절부터 갈고 닦은 음 끼리의 조화의 추구를 레드 제플린에서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Black Dog’, ‘Rock And Roll’, ‘Misty Mountain Hop’ 등은 리듬기타도 돋보이지만 그와 함께 지미 페이지의 명석한 하모나이징 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하모니에 대한 감각이 천재적이다 보니 여러 멤버들이 서로 다른 개성으로 뭉칠 때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소리의 대립각을 다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미 페이지의 기타 톤은 다소 어둡고 무거운 편이다. 여기에 존 보냄의 드럼마저 울트라 헤비급이다. 그런데 이 무거운 두 남자 사이에서 존 폴 존스의 화사함이 색감 조절에 기여한다. 그의 베이스는 잭 브루스와 같은 ‘원펀치 투다이’성 핵폭탄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내성적이고 섬세하며 때론 예쁘고 달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적이며 치밀하다. 관현악 편곡자로도 이름을 날리던 존 폴 존스다.
존 보냄의 리듬은 당시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그의 드럼은 멤버들과 결코 같은 타이밍으로 가지 않고 반박에서 1/4박, 또는 거의 한박 이상을 늦게 또는 좀 더 앞서서 가는 경향이 있다. 일반인들이 레드 제플린을 들을 때 리듬이 다소 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존 보냄의 이러한 의도성은 레드 제플린이 보다 리듬감 출중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심지어 셔플에서조차 그는 술에 취한 듯 취권적인 리듬 연출을 진행하지만 실제론 당시 수준으로 본다면 대단히 정밀하고 세련된 셔플임을 알 수 있다. ‘Fool In The Rain’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그의 드럼으로 인해 레드 제플린의 소리 점유 범위는 공간적 제한을 두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세 사람만으로도 완벽한 팀인데, 여기에 하나 더 있다. 로버트 플랜트다.
레드 제플린의 곡들은 은밀하고 성(性)적인 것들을 소재로 한 것이 적지 않은데, 그러다보니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운드 임에도 끈적끈적하고 육감적인 데가 있다. 그러한 감성 연출은 지미 페이지의 기타에서도 한껏 발휘되지만 로버트 플랜트의 비음 섞인 고음역 창법도 단단히 한몫 한다. 거기에 샤우트를 섞어 강하게 쏘아댔다. 어떻게 본다면 헤비메틀 보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샤우트 창법이 유행하기 이전에 그것을 확실하게 들려준 원조인 셈이다.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발매된 레드 제플린의 여러 종류의 라이브앨범들을 들어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시적인 표현력도 뛰어나다. 프레이즈 감성이 좋고 팝적인 필도 탁월하다. 물론 본격 팝을 하기엔 톤이 다소 무거운 편이지만.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는 블루스에 근간을 두고 있다. 레드 제플린의 악보만 보고 노래를 불러 본다면 결코 로버트 플랜트와 같은 감정과 맛이 살아나질 않는다. 똑같은 음정이라도 그가 구사하는 음은 아주 조금 뒤틀린 감이 있다. 이것은 마치 블루스기타의 ‘쿼터 벤딩’이 표현하는 미묘하고 섬세한 그리고 대단히 감각적인 필의 차원과도 같은 것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거기에 R&B적 감성이 짙게 배어 있는 창법을 구사한다. 정통 블루스의 맛과 R&B적 필의 교묘한 동거, 그리고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헤비메틀적인 비음 샤우트의 도발성, 이것이 바로 로버트 플랜트만의 매력이자 개성이다. 현대적 발성의 개념으로 본다면 논리적이지도 체계화되지도 않은 듯한 소리 구사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는 것도 그만의 강렬한 개성에 기반을 둔 가공되지 않는 원초적 감성과 수법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는 찰떡궁합이다. 플랜트의 보컬과 페이지의 기타는 피치의 조화가 절묘하다. 소리의 파동이 서로 상보적 작용을 통해 친밀도를 더하는 형국이다.
이외에 사운드메이킹 또는 사운드 연출력의 탁월함도 주목할 만하다. 블루스, 하드록, 메틀, 포크, 컨트리, 재즈, 레게, 부기우기, 오리엔탈 등등 숱한 장르들을 섞었음에도 전혀 부조화가 일지 않았던 것도 레드 제플린이 지닌 놀라운 사운드 연출력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100여명이나 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을 한 몸으로 결집시키는 지휘자의 연출력에 비견할만하다.
각자 모두 소리를 다루는 재능이 비상할 뿐 아니라 전혀 이질적 소리와의 교류마저도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실현시킨 그들, 그리고 하나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 셋보다는 넷이 더 균형적이고 이상적인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 레드 제플린이 ‘솔로’가 아닌 ‘밴드’로서 더욱 빛나는 이유이며 이것은 또한 화려한 개인기 위주의 ‘배틀’ 정신으로 고무된 막강한 인스트루멘틀밴드의 팀워크와는 또 다른 류의 아름답고 크리에이티브한 시도로 빛나는 팀워크다.
조성진 기자 /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