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가수 크리스티나 브랑코의 《Vida Triste》
좁고 허름했던 연습실을 떠나 꽤 넓고 쾌적한 스튜디오로 이사를 했다. 녹음 부스로 쓰던 밴드 앙상블실 맞은 편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가장 높은 곳이 1.5미터 정도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직삼각형 모양의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공기와 묵은 시멘트 냄새가 훅하고 덮쳤다. 꼬박 반나절을 쓸고 닦았다.
작은 책상 하나와 어쿠스틱 기타, 라디오를 들고는 토굴 같은 같은 그곳에서 칩거 생활을 했다. ’Aranya 아란야 나의 안식처‘라고 이름 지은 그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곡을 쓰고 책을 읽고 가끔은 벽을 보며 명상을 하기도 했다.
새벽이 되면 라디오에선 잘 모르는 음악들이 흘러 나왔다. 재즈와 더불어 주로 스페인의 플라멩코, 브라질의 삼바, 아르헨티나의 탱고, 쿠바의 트로바 등 당시 ‘월드뮤직’이라 불리던 음악이다. 민속악기들로 연주되는 음악들엔 고유의 색감들이 있었고 각 나라마다의 흙 냄새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전에는 못 느꼈던 다채롭고 신비한 선율들은 나의 안식처 곳곳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얕은 몸살 기운에 초저녁부터 누워 있었다. 약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자 잠이 들었고 얼마 후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엄청난 파동의 선율이 아란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슬픔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는 알지 못하는 언어를 읊고 12현 기타(Guitarra Portuguesa)는 고음 현을 치며 울어대고 있었다. 나지막이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나일론 기타와 두터운 터치의 콘트라베이스는 그 울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음악은 그렇게 고요하게 폭발하고 있었고 곡이 끝나자 왠지모를 깊은 허무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15년 전 봄이었다.
그날 나의 안식처를 가득 채웠던 음악은 파두(Fado) 가수 크리스티나 브랑코(Cristina Branco)의 ‘Vida Triste’이었다. 그는 파두의 전설 아말리스 로드리게스로 대표되는 전통적 어법을 계승하면서도 맑고 세련된 발성과 현대적인 편곡을 통해 좀 더 재즈스러운 음악을 들려준다.
운명 혹은 숙명을 뜻하는 리틴어인 ‘Fatum’에서 유래된 이름인 포르투갈의 민요 파두는 애절한 선율로 아름다운 시어를 노래한다. 바다로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 가난한 삶을 사는 서민들의 애환, 인간의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희망을 갈구하는 모순된 감정인 ‘사우다지(Saudade)’는 파두 고유의 정서이다.
시인 J.Slauerhoff의 시를 토대로 작곡된 “슬픈 인생 Vida Triste" 역시 절절한 그리움과 아픔을 담아내면서도 행복에 대한 기억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처절한 감정을 노래하는 멜리스마(melisma) 선율과 내면의 모순된 감정을 극대화하는 포르투기즈 기타의 오블리가토 연주는 파두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다.
양진우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