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8. 삼학도 튤립
2019. 4. 금계
4월 16일, 자전거 타고 갓바위로 해서 삼학도로 나들이. 갓바위 가는 도중 목포 팔경 가운에 하나인 ‘아산춘우(아산에 봄비 내릴 때)’의 아산을 찍었다.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렵다. 아산 위로 흘러가는 흰 구름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 목포도 벚꽃이 많이 지고 새잎이 돋기 시작했다.
갓바위 해양유물전시관 앞바다에 전시된 돛단배. 옛날에 돛만 달고 어떻게 다녔을지 애 터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엔진을 단 배보다 돛단배가 훨씬 승선감이 좋다는 것은 분명하다. 느린 것이 좋은 것이여.
바위 틈새로 연두색 신록이 돋아난 갓바위산(입암산). 유달산 바위들은 뾰족뾰족한데 입암산 바위들은 엉덩짝처럼 둥글둥글하다.
40년 전에 나는 항도여중 학생들과 저 산으로 봄 소풍을 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피할 곳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탈탈 굶고 학교로 되돌아갔다.
갓바위 쪽에서 바라본 유달산.
자전거를 갓바위에서 삼학도로 몬다. 대삼학도 산책로 곁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조팝나무 꽃. 우리 선조들께서는 오죽이나 시장하셨으면 꽃 이름까지 이팝나무(쌀밥나무), 조팝나무(조밥나무)라고 붙이셨을까.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와 함께 조팝나무에서 뽑은 약 성분으로 만들었다 한다.
조팝나무 꽃 가까이에 황매화. 이름은 황매화지만 매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인터넷에서 이 꽃 이름을 찾는데 20분이나 걸렸다.
대삼학도 산책로에서 바라본 유달산.
유달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 삼학도 보트 물길과 어울린 유달산도 운치가 있어 제법 볼 만하다.
대삼학도와 중삼학도를 가르는 보트 수로.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튤립 꽃이 울긋불긋 허벌나게 피어났다.
보트 계류장에 들어박힌 보트들. 보트들의 노랗고 빨간 색깔과 뒤에 핀 노랗고 빨간 튤립 꽃들의 조화가 제법 어울리는 것 같다.
언제부터 손자 손녀 똘남이, 똘란이 오면 함께 보트 한 번 타본다면서 아직도 기회를 못 잡았다. 다음에 그 아이들 오면 꼭 타봐야겄다.
본격적인 삼학도 공원. 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유달산 장사를 흠모하여 찾아 왔던 세 아가씨가 결국은 장사가 쏜 화살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세 마리 학으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세 섬이 되었다는 슬픈 삼학도 전설을 나타내는 학 세 마리.
시에서는 이번에 큰맘 먹고 삼학도 공원에다가 많은 공을 들여 튤립정원을 만든 것 같다. 임자도 튤립정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한적한 봄 공원을 활짝 밝혀 시민들과 관광객들한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한다.
빨갛고 노란 튤립 위에서 페트병을 오려 만든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공원 전체가 마치 마술에 걸린 듯하다.
공중화장실 언저리에도 소담스럽게 피어난 튤립 꽃의 향기가 아련하다.
“와, 이삐다!”
“저기 빨간 바탕에 흰 줄무늬 있는 꽃들이 더 이삐다야, 그렇지?”
구경꾼들이 감탄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찰칵찰칵 꽃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세워둔 자전거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튤립 촬영에 열중한다.
시계는 찰깍찰깍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똑같은 속도로 돌아가지만 그 시간의 흐름이 누구한테나 똑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시간이 후딱후딱 지나가기도 하고 느릿느릿 흘러가기도 한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디게 야금야금 아껴 쓰는 비결은 단 한 가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사는 것뿐이다. 바삐 살수록, 속력을 올릴수록 시간은 빨리 흘러가기 마련이다. 시간을 엿가락 늘이듯 길게 늘여 쓰는 방법은 차분함과 느림뿐이다. 물론 어쩔 수 없어서 그런다고는 하겠지만,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삶이 여유로워지고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물론 자전거보다는 그냥 걸어 다니는 방법이 훨씬 낫고, 그럴 수만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명상이라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
왼쪽으로 살짝 보이는 건물이 김대중 기념관.
형형색색의 튤립 꽃들이 백 촉짜리 전구알처럼 공원을 훤히 밝힌 벤치에 앉아 셀카를 찍는 청춘남녀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예전의 핸드폰보다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다는 5G(퐈이브 쥐라고 읽어야 돼?)가 쏟아져 나오는 이 정신없이 바쁜 판국에 느림과 천천함의 미학을 찬양하는 어느 늙은이의 행보는 얼마나 낡고 시대정신에 뒤쳐진 허술한 태도인가.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학년 초면 교실마다 환경정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시청에서 교실보다 훨씬 넓은 삼학도 공원을 너무나 휘황찬란하게 꾸며 놨다. 구태여 점수를 매기자면 백 점 만점에 백오십 점을 주고 싶다.
낮술에 취한 듯 내 얼굴이 벌게지는 느낌이다.
길가에 도열한 군악대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을 환영하려고 쿵쾅쿵쾅 삐리삐리 삘릴리 요란하게 풍악을 울리는 느낌이다.
평양 거리로 몰려나온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서 온 문재인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노라 은은한 함성을 울리며 태극기와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뒤섞어 흔드는 느낌이다.
노소동락이더라고, 늙은이만 꽃구경 나온 게 아니라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도 꽃구경 나왔다. 아이 뒤에서 아이를 찍는 어머니의 마음은 둥둥 구름을 탄 듯 황홀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잠깐 공원을 나와 도로와의 경계석에 주저앉아 무화과즙을 빨아먹고 있는데 관광버스 한 대가 사르르 들어와 승객들을 풀어놓는다. 요즘 관광버스 승객은 노인네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도로에서 올려다본 꽃 잔치 공원. 비탈에 심어놓은 꽃 잔디가 화사하고 상큼하다.
거 참, 오늘 꽃구경 한 번 잘 했다. 그야말로 깜짝 놀람 교향곡이다.
6.25 전쟁 직후에는 먹거리가 부족해서 미국 구휼식량에 의존했다. 그로부터 70년 후, 나는 튤립 꽃 천지가 된 삼학도 공원의 기적을 조우한다.
꽃구경을 마치고 삼학도 산책로를 뱅뱅 돌다가 자전거를 멈추고 유달산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를 찍는다. 해발 225미터의 중턱에다 지어놓은 케이블카 휴게소가 너무나 흉물스럽게 느껴져서 다리의 장식물로 가렸는데 조금 비어져 나왔다.
삼학도에서 바라본 목포항과 유달산. 오늘은 별로 바람이 없고 파도가 잔잔하다.
목포항은 파도를 막는 방어막이 겹겹이 둘러쳐진 천연의 요새다. 가까이에서는 고하도 용머리가 막고, 그 밖에서는 안좌, 장산, 하의도 등이 막고, 또 그 밖에서는 비금, 도초도가 막고, 더 멀리서는 흑산도, 가거도가 막고.......
삼학도 쪽 목포 내항. 육중한 닻을 올리고 다음 출항을 예비하는 어선들.
나는 4월의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가만 앉아서 남도 곳곳의 그림들을 다 둘러보는 봄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제 84교우회 벗들과 엊그제 화순적벽을 다녀왔는데 다음 번엔 목포로 정하자네요. 목포하면 선생님이시고 또 들꽃연구회 초입을 열어주셨던 김경흠 전교육장님이 생각납니다. 그 기분으로 돌아댕기면 몰래 풋풋하겠습니다.^^!
목포 놀러오신다면 대환영입니다. 꼭 오실 때는 전화 주세요. 카페 올리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요... 게재를 허락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여러 분의 면면도 제가 언제 어떻게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걸음이 제 눈이고 귀고 입이 되었습니다. 목포는 설레이 몰래 다녀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