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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는, 남아세아(南亞世亞) 땅(島)에서 왔다 [제3편]
소국(小國) 일본(日本), 왜(倭)를 병합(倂合)하다 [3편]
2023년 01월 10일
○ “제1편과 2편”에서 대략(大略) “왜(倭)”와 “일본(日本)”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나머지 사서(史書)들에 대한 설명(說明)을 이어갑니다. 즉(卽),
(17) 元史 日本 : 《日本國在➨東海之東,古稱倭奴國,或云惡其舊名,故改名日本,以其國近日所出也. : 일본국(日本國)은, 동해(東海)의 동(東)쪽에 있다. 옛적에 왜노국(倭奴國)이라고 호칭하였다. 혹 전하기를 옛 이름이 좋지 않아, 일본(日本)이라 고는데, 그 나라 가까이에 해가 나온다. 二十三年,帝曰:日本嘗相侵,今交趾犯邊,宜置日本,專事交趾 : 23년, 제(帝)가 이르기를 : 일본은 이전에도 상침(相侵)하였는데, 교지(交趾)의 변경을 범하였는데, 마땅히 조치하여야 함에도, 오로지 교지(交趾)에만 몰두하였다.》
➨ 위의 글에서 ≪➨ 동해(東海)의 동(東)쪽≫이란 어디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명사(明史) 323편의 ‘미락거(美洛居)’ 편을 보면 : “미락거(美樂居)” 【말루쿠(Maluku) : 필리핀[Philippines] 민다나오[(Mindanao] 섬의 남(南)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적도(赤道)가 그 땅을 관통(貫通)한다.】 편을 보면 〈美 洛 居, 居 東 海 中 : 미락거(美樂居)는, 동해(東海) 가운데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을 원(元)이나 명(明)에서, “동해(東海)”라고 했다면 : 도대체 “원(元)나라와 명(明)나라”는 어디에 있었다는 말일까? “말루쿠(Maluku) 제도(諸島)”가 있는 곳은, “남아세아(南亞細亞)”라고 부르는 것이 정상(正常)일 것이다. 『적도(赤道)가 통과(通過)하는 이곳을 “동해(東海) 바다 가운데(中)”라고 하였다.』
역사서(歷史書)마다 특징(特徵)이 있지만, 『동해(東海)바다 가운데』라는 말은 대부분(大部分) 사서(史書)에서 공통(共通)으로 기록(記錄)되어 있는데, 문제(問題)는 ≪남아세아(南亞世亞)” 바다(海)를 ‘동해(東海)’라고 했다≫는 것이다.
(18) 太平御覽 / 782 四夷部 三 : ➊ 《倭 :後漢書曰: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倭王居邪馬台國,樂浪郡徼去其國萬二千里,其地大較在會稽、東冶,與朱崖、儋耳相近,故其俗多同。: 唐書曰:倭國土風頗類新羅。: 왜(倭) : 후한서(後漢書)에서 이르기를 : 왜(倭)는 한(韓)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 있는데, 산(山)과 섬에 의지해 산다. 백여(百餘) 나라가 있다. 왜왕(倭王)은 사마대국에서 사는데, 낙랑군(樂浪郡)의 변두리로부터 그 나라까지 1만 2천리로, 그 땅은 대략 회계(會稽), 동야(東冶)인데,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고, 그 풍속도 많은 부분이 같다. 당서(唐書)에서 이르기를 : 왜국(倭國)의 그 땅의 풍속이나 습관(習慣)은 상당히 신라(新羅)와 비슷하다.》하였다.
➋ 日本國 :《唐書》曰: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일본국(日本國)은, 당서(唐書)에서 이르기를 : 일본국(日本國)은, 왜국(倭國)의 별종(別種)이다. 그 나라는 해의 가장자리에 있다. 고로 일본(日本)이라 이름하였다. 或云:倭國自惡其名不雅,改為日本;或云:日本舊小國,并倭國之地。: 혹 전하기로 : 왜국(倭國)은 그 이름이 좋지 않아, 일본이라 고쳤다. 혹 전하기로 : 일본(日本)은 작은 나라인데, 왜국(倭國)의 땅을 병합하였다. 又云:其國界東西南北皆數千里,西界、南界咸至大海,東界、北界有大山為限,山外即毛人之國。: 또 전하기로 : 그 나라의 지경(地境)은 동서남북(東西南北) 모두 수천(數千)리로, 서계(西界)와 남계(南界)는 큰 바다에 이르고, 동계(東界)와 북계(北界)는 큰 산(山)이 있어 한계(限界)하는데, 산(山) 밖은 곧 모인국(毛人國)이다.》라고 하였다.
➌ 南海經曰:南倭、北倭屬倭國,在帶方東大海中,以女為王。: 산해경(山海經) 남해경(南海經) : 남왜(南倭), 북왜(北倭)는 왜국(倭國)에 속했는데, 대방(帶方)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 여자가 왕(王)이다.》
(19) 太平寰宇記 倭國 : 《倭國自後漢通焉古倭奴國也.在新羅東南大海中世世依山島為居凡百餘國.後漢書云光武中元二年倭奴國. : 왜국(倭國)은 후한(後漢) 때 통했다.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신라(新羅)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대대로 산(山)과 섬(島)에 의지해 살았는데, 모두 백여 나라이다. 후한서에서 이르기를, 광무(光武) 중원(中元) 2년, 왜노국(倭奴國)이다. 去遼東萬二千里在百濟新羅東南其國界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 : 요동(遼東)에서 1만 2천리(千里) 떨어져 있으며,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에 있다. 그 나라 지경은 동서(東西) 5개월을 가고, 남북(南北)은 3개월을 간다. 四境各至於海大較在㑹稽閩川之東亦與朱崖儋耳相近. 大較在㑹稽閩川之東亦與朱崖儋耳相近 : 사방(四方)의 지경은 각각 바다인데, 대략 회계(會稽)와 민천(閩川)의 동(東)쪽으로, 또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20) 東西洋考 (四庫全書本)/卷06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明 張爕 撰]
外紀考 / 日本 : 日本古倭奴也漢光武時遣使入朝自稱大夫安帝時始稱倭奴國.唐咸亨後稍習夏音惡倭名更號日本. 物産 : 犀·象[宋史曰多犀象] : 일본(日本) : 일본은 옛 왜노(倭奴)다. 한(漢) 광무(光武) 때에 사신을 보내와 입조(入朝)하였는데 스스로 대부(大夫)라고 하였다. 안제(安帝) 때 처음으로 부르기를 왜노국(倭奴國)이라 하였다. 당(唐) 함형(咸亨) 초에, 점점 익히다 보니 하(夏)의 음이 좋지 않아 이름을 일본이라고 고쳤다. 물산(物産) : 코뿔소(무소 :犀)와 코끼리(象)다. [송사(宋史)에서 이르기를, 코뿔소(무소:犀)와 코끼리(象)가 많다고 하였다]
(21) 明史 日本 : 《日本,古倭奴國.唐鹹亨初,改日本,以近東海日出而名也. 地環海,惟東北限大山. : 일본(日本),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함형(鹹亨)초에, 일본으로 고쳤는데, 동(東)쪽 가까운 곳에서 해가 나오기 때문에 이름으로 한 것이다. 땅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데, 오로지 동북(東北)쪽【또는 동(東)쪽과 북(北)쪽】에 큰 산(大山)이 한계(限界)한다.》고 하였다.
(22) 大明一統志 日本國 : 《➊ 日本國沿革古倭奴國其地東西南北各數千里西南至海東北隔以大山,中略. : 일본국(日本國)의 연혁(沿革)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그 땅은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 수천(數千)리로, 서(西)쪽과 남(南)쪽은 바다에 이르고, 동(東), 북(北)쪽은 큰 산(大山)에 격(隔)해 있다. 唐咸亨初惡倭名更號日本自以其國近日所出故名 : 당(唐) 함형(鹹亨)초에, 왜(倭)란 이름이 좋지 않아 바꿔 일본이라고 하였는데 그 나라 가까운 곳에서 해가 나오기 때문에 고로 이름이 된 것이다. ➋ 或云日本乃小國為倭所併故冐其號. 土産 : 水牛 : 혹 전하기로 일본은 작은 나라(小國)이었는데, 왜(倭)를 병합(倂合)하였는바 고로 그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토산(土産) : 물소(水牛)【특이(特異) 토산(土産)만을 발췌(拔萃)한 것이다】》
➤➤➤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는, 명사(明史)와 같은데, 다만 ‘왜(倭)’는, 두 종류(種類)가 있어 즉(卽) ➊ 왜노국(倭奴國)과 ➋ 일본(日本)이 있었는데,
‘일본(日本)’은 작은 나라(小國)였으나, ‘왜노국(倭奴國)’을 병합(倂合)해 버리고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으로 불렀다는 것이고, 그 땅의 특이(特異) 토산(土産)은 “물소(水牛)”가 있었다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볼 것은 : “왜(倭)는 두 종류(種類)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卽) 하나는 ‘왜(倭)=왜노(倭奴)’이며, 두 번째는 ‘일본(日本)’이다.
사서(史書)에서 말하는 ‘화어(華語)=하어(夏語)’를 익히다 보니 ‘왜(倭) 또는 왜노(倭奴)’라는 음(音)이 좋지 않아 일본(日本)이라고 고쳤다고 한 것은 바로 『일본(日本)이 왜(倭)를 병합(倂合)한 것을 숨기기 위한 후대(後代) 사가(史家)들의 연막(煙幕)』 이라고 본다.
➨➨ 옛 사가(史家), 학자(學者), 관리(官吏)들이 역사서(歷史書)를 만들면서, 『“별종(別種) 일본(日本)”이 있어 “왜(倭)를 병합(倂合)했다”는 문구(文句)를 기록(記錄)해 놓을 필요(必要)가 없었다.』는 것이다.
➨➨ 이것은 ‘남아세아(南亞世亞)’에서의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곧 『≪열도(列島)는,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의 고향(故鄕)이다≫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동원(動員)된 수사(修辭)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23) 책오잡척(策鰲雜摭) [清 葉慶頤(1889年)] 卷一 國名原委 : ➊ 倭 :《後漢書》曰:「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 왜(倭) : 후한서에서 이르기를 : 왜(倭)는 한(韓) 동남(東南) 대해(大海) 가운데에 있는데, 산(山)과 섬(島)에 의지해 사는데, 모두 백여 나라이다.➋ 日本 : 唐書曰:日本國者,倭奴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일본(日本) : 당서(唐書)에서 이르기를, 일본국(日本國)은, 왜노(倭奴)의 별종(別種)이다. 그 나라의 부근에서 해가 있어, 고로 일본(日本)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였으니,
➤ “왜(倭)”와 “일본(日本)”이 별도(別途)로 있었다는 뜻이다. 즉(卽) 「‘일본(日本)’은 ‘왜(倭)’와 별종(別種)으로 서로 다른 나라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➌ 蜻蜓國 : 即秋津洲之意也。謹按:皇清通考·四裔門曰:日本乃小國,爲倭所併,故冒其號。國在東海中,東北限大山。其地東高西下,勢若蜻蜓,故曰蜻蜓國。: 청정국(蜻蜓國) : 곧 추진주(秋津洲)의 뜻이다. 삼가 살펴보면 : 황청통고(皇淸通考) 사예문(四裔門)에서 이르기를 : 일본은 작은 나라(小國)로, 왜(倭)를 합병(合倂)한 바, 고로 부르게 된 것이다. 나라는 동해(東海) 가운데 있는데, 동(東)쪽과 북(北)쪽에 큰 산이 한계(限界)한다. 그 땅은 동(東)쪽은 높고, 서(西)쪽은 낮고, 기세(氣勢)가 청정(蜻蜓)과 같아, 이르기를 청정국(蜻蜓國)이라 했다.
➍ 天下郡國利病書 : 韓中倭 : 《顧林亭‘天下郡國利病書’云:倭奴鄰三韓而國,故名韓中倭。後自惡其名,更號日本,在東海中,依三島而居,地方數千里。: 한중왜(韓中倭) : 고임정(顧林亭)의 “천하군국이병서(天下郡國利病書)”에서 이르기를 : 왜노(倭奴)는 삼한국(三韓國)과 이웃하고 있는데, 고로 이름이 한중왜(韓中倭)다. 뒤에 그 이름이 좋지 않아, 일본(日本)으로 고쳤다. 동해(東海) 가운데의 세 섬(島)에 사는데, 지방(地方)이 수천(數千)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참 웃기는 이야기다. 삼한국(三韓國)과 이웃하고 있어 한중왜(韓中倭)라고 했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세 한국(韓國) 가운데에 있어 한중왜(韓中倭)라고 했다는 말일까?
삼한국(三韓國)은 어디에 있었는가? 또 이웃하고 있는 왜노(倭奴)는 어디에 있었는가?
➎ 樂浪海 : 《前漢書曰:樂浪海中有倭人百餘國以歲時來獻見。按樂浪海即朝鮮海也。漢時有樂浪郡,故名。: 낙랑해(樂浪海) : 전한서(前漢書)에서 이르기를 : 낙랑(樂浪) 해중(海中)에 왜인(倭人) 백여 나라가 있어 세시(歲時)마다 와 헌상하며 뵈었다. 안(按) : 낙랑해(樂浪海)는 곧 조선해(朝鮮海)다. 한(漢) 나라 때에 낙랑군(樂浪郡) 있어, 그 이름이다.》라고 하였는데,
낙랑해(樂浪海)은 곧 조선해(朝鮮海)라고 하였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어떤 바다 이름이 조선해(朝鮮海)인가?
➏ 高僧傳 : 《蛇海、魚海、鳥海 : 高僧傳曰:釋鑑真往日本,漂入蛇海,又入魚海,復入鳥海。既出,達於日本。: 사해(蛇海), 어해(魚海), 오해(烏海) : 고승(高僧)전에서 이르기를 : 석감진(釋鑑眞)이 일본을 가다가 표류하여 사해(蛇海)에 들어갔다. 또 어해(魚海)에 들어갔다. 다시 오해(烏海)에 들어갔다가 이윽고 나와 일본에 다다랐다.》고 하였다.
당시(當時) 일본(日本)에 가려고 한다면 『“사해(蛇海)、어해(魚海)、오해(鳥海)”라는 세 개의 바다를 건너야갈 수 있었다』는 라는 이야긴데, 딱 어울리는 말이다. 맞다. 세 개의 바다를 건너야 비로소 일본(日本) 땅에 닿는다.
(24) 日本國考略 / 金陵王文光增補重刊 [作者:薛俊 明] : 日本國者,古倭奴國也. 稍習夏音,惡其名不善,乃更號曰, 日本,蓋取近日始升之意也。: 일본국(日本國)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하음(夏音)을 점점 익히니, 그 이름이 선하지 않고 좋지 않아, 이름을 바꿔 이르기를 일본이라고 하였는데, 해가 처음 떠오르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疆域略 : 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西南皆距海,東北隅隔以大山,廣袤四面各數千里。東北山外,歷毛人國到文身國,約七千餘里,南到侏儒國,約四千餘里,西循一支乍,北望耽羅,渡百濟到樂浪及帶方等郡,約一萬二千里。 : 강역략(疆域略) :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 산(山)과 섬(島)에 의지하며 사는데,
서(西)쪽과 남(南)쪽은 바다에 닿고, 동(東)쪽과 북(北)쪽 모퉁이는 큰 산(山)에 격(隔)하는데, 광무(廣袤 : 東西南北) 사면(四面) 각각 수천(數千) 리이다. 동(東)쪽과 북(北)쪽 산(山) 밖에 모인국(毛人國)을 지나 문신국(文身國)에 다다르며, 약 7천 여리인데, 주유국(侏儒國) 남쪽에 닿는데, 약 4천 여리다. 서(西)쪽으로 돌면 한 가지가 있는데, 북(北)쪽에 탐라(耽羅)가 바라보이고, 백제(百濟)를 넘어 낙랑(樂浪)과 대방군(帶方郡) 등인데, 약 1만 2천리다. 土產略 : 水牛·犀·象 : 토산략(土産略) : 물소(水牛), 코뿔소(무소 :犀), 코끼리(象)가 있다.》고 하였다.
일본국고략(日本國考略)은, 명(明) 나라의 설준(薛俊)이 저술(著述)한 것으로,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를 기록해 놓은 고서(古書)이다. 이에 따르면 :
일본(日本)의 지형지세(地形地勢)등을 자세히 묘사(描寫)하고 있는데, 지형지세(地形地勢)와 토산물(土産物) 편 등을 보면 : 동서남북(廣袤) 각각 수천(數千)리의 땅을 갖고 있다하였고, 특히 “물소(水牛), 코뿔소(무소 :犀), 코끼리(象)”가 있다고 하여, 오늘날의 열도(列島)가 아니었음을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밝혀주고 있다.
(25) 欽定錢録 (四庫全書本) 卷14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 ➊ 右倭國錢喜通寳錢詳見洪志 : 按舊唐書倭國者古倭奴國也.去京師萬四千里. : 흠정전록(欽定錢録) : 구당서(舊唐書)에서 왜국(倭國)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경사(京師)에서 1만(萬) 4천리(千里)를 간다. 按新唐書言倭惡其名更號日本, 咸亨元年遣使來賀自雲近日所出以為名 : 신당서(新唐書)에서는 왜(倭)가 이름이 좋지 않아 일본으로 바꿨다고 말하였다. 함형(咸亨) 원년(元年)에 사신을 보내와 전하기를 해가 나오는 것이라서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➋ 或雲日本乃小國為倭所並冐其號 : 혹은 전하기를 일본(日本)은 소국(小國)으로 왜를 합병하여 기 이름(日本)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26) 欽定古今圖書集成 / 方輿彙編/邊裔典/第039卷 : 《圖書編 日本國序 : 日本在溟渤之東,其地形類琵琶,東西數千里,南北數百里。九州居西,為首。 : 일본(日本)은 명발(溟渤)【명해(溟海)와 발해(渤海)】의 동(東)쪽에 있는데, 그 지형(地形)이 비파(琵琶)와 비슷한데, 동서(東西)가 수천(數千) 리요, 남북(南北)은 수백(數百) 리이다. 구주(九州) 서(西)쪽에 산다.》라고 하였다.
(27)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 台灣問題[大清一統志「臺灣府建置沿革」關於臺灣的敘述] ; 《在乾隆九年(1744年)版本的「臺灣府建置沿革」中有一段文字敘述:건륭(乾隆)9년【AD 1,744 年】의 판본(板本)의 “대만부 건치연혁(臺灣府 建置沿革)” 중의 일단(一段)의 문자(文字)가 서술(敍述)되어 있다.
《台灣自古荒服之地,不通中國,名曰東番。明天啟中,為紅毛荷蘭夷人所據,屬於(從)日本。: 대만(台灣)은 자고이래(自古以來)로 황복(荒服)의 땅이었다. 중국(中國)과 통하지 않았는데, 동번(東蕃)이라 하였다. 명(明) 천계(天啓) 중에, 홍모(紅毛)【붉은 머리털】화란(和蘭) 오랑캐가 의지하고 있었는데, 일본(日本)에 속했다. (일본을 따랐다).》고 되어 있었는데, 【대만(台灣)과 대만(臺灣)은 같은 땅일까?】
【天啟為1621至1627年,該時期曾發生濱田彌兵衛事件,時日方稱台民族為高砂國且並未對荷人治台提出異議,在清朝已統治臺灣多年、日本則處於鎖國狀態下,因而兩者對台灣島歷史之瞭解均十分稀疏,至今後人對於先人作此誤述的原因仍不詳,道光二十二年(1842年)版則刪去「屬於日本」四字。: 도광(道光) 22년【1842年】에 판본(板本)측의 “속어일본(屬於日本)”이라는 4 자(字)를 삭제(削除)했다.】고 하였다
즉(卽),《道光二十二年(1842年)版則刪去「屬於日本」四字。: 도광(道光) 22년【AD 1,842年】에 판본(板本)측의 “속어일본(屬於日本)”이라는4 자(字)를 삭제(削除)했다.》한 것이다.
➨ 위에서 말하는 내용(內容)은 :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의 “臺灣府建置沿革”에는, 《台灣自古荒服之地,不通中國,名曰東番。明天啟中,為紅毛荷蘭夷人所據,屬於(從)日本。: 대만(台灣)은 자고이래(自古以來)로 황복(荒服)의 땅이었다. 중국(中國)과 통하지 않았는데, 동번(東蕃)이라 하였다. 명(明) 천계(天啓) 중에, 홍모(紅毛)【붉은 머리털】화란(和蘭) 오랑캐가 의지하고 있었는데, 일본(日本)에 속했다. (일본을 따랐다).》고 기록(記錄)되어 있다는 것인데,
청(淸)나라에서는 이를 보고 열을 받아 『도광(道光) 22년【AD 1,842年】에 판본(板本)측의 “속어일본(屬於日本)”이라는 ‘4자(字)’를 삭제(削除)했다.』한 것이다.
➤ 여기서 ‘문제(問題) 제기(提起)’는 『대만(台灣)과 대만(臺灣)』은, 같은 땅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중요(重要)한 문제(問題)가 대두된다. 결론(結論)을 미리 말하지만 결코 같은 땅이 될 수 없다.
※ 출처 : 중국어 위키백과【“道光二十二年(1842年), 版則刪去「屬於日本」四字”, 즉(卽) “屬於日本”이라는 4자를 삭제해버렸다는 뜻이다.】
《日本在東海中 : 建置沿革 : 古倭奴國,後改名,日本以近東海日出而名也.地環海惟東北限大山.中略. : 일본(日本)은 동해(東海) 가운데 있다. 건치연혁(建置沿革) :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뒤에 이름을 고쳤는데, 일본이란 동해 가까이에서 해가 나오므로 그 이름으로 한 것이다. 땅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데, 동북(東北)【동(東)쪽과 북(北)쪽】쪽에 큰 산으로 한계(限界)한다.》고 하였다.
동북(東北)쪽 또는 동(東)쪽이나 북(北)쪽은 큰 산(山)에 한계(限界)한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지세(地勢)를 가진 땅을 ‘남아세아(南亞世亞)’ 지도(地圖)에서 찾아보면 될 일이다. 따라서 “일본(日本) 또는 왜노국(倭奴國)”은 미뤄 짐작(斟酌)되는데, ‘제4편’에서 이를 직접(直接) 기록(記錄)을 통(通)해 알아보기로 하자.
➨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서 말하는 이때는, 『“왜(倭)=일본(日本)”이 “기독교(基督敎)를 앞세운 서세(西勢)들에 의해 남아세아(南亞世亞)로부터 계속(繼續) 밀려나 북동진(北東進)하여 필리핀(呂宋)과 대만(臺灣)까지 진출하여 거점지(據點地)로 삼았다”』는 뜻이 된다.
○ “왜(倭)와 일본(日本)”은 우리들로써는 참 표현(表現)하기 거북한 얘기지만 “징그러운 존재(存在)”다. 일본(日本)측에서도 똑같은 식(式)으로 이야기한다.
이웃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한 나라로써의 면모(面貌)를 보일 수도 있는 양국(兩國) 관계(關係)이지만, 과거(過去)의 양국(兩國)관계(關係)를 생각하면 적국(敵國)이란 표현(表現)이 더 잘 어울리는 양 국가(國家)다.
이들 “왜(倭)”의 주류(主流)는 “남아세아(南亞世亞) 원주민(原住民)”들이다. 우리와는 다른 이민족(異民族)이란 뜻이다. 이건 필자(筆者)가 임의적(任意的)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역사(歷史)기록(記錄)’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倭)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은 버려라!≫ 라고 독자(讀者)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4편으로 계속(繼續)]
2023년 01월 10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왜(倭)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왜(倭)가 아닌 '남아세아의 토박이 출신'들이다. 이들은 조선왕조의 공역을 담당하는 노예들이었다.
"괄지지 또는 사기 오제본기 주석" 편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백제의 서남 대해 가운데 15개의 큰 섬이 있어 이곳에 백제는 성읍(城邑)을 두고 다스렸다'고 한 대목 또한 "왜(倭)와 백제(百濟)의 밀접한 관계를 말하주고 있다.
오늘날의 열도 천황과 다섯 명문 귀족들은 모두가 백제의 후손들이라고 보며, 이들은 당시의 일본이 되어, 소국이었으나 왜(倭)보다 발전된 문명으로 "倭"를 병합하고, 정식명칭으로 "日本"이라고 국호를 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16-17세기를 넘어, 서세들의 향료를 찾아 남아세아로 전진하며 천주교(기독교)를 앞세워 주민들을 현혹시킨 다음 군대를 동원 정복하는 바람에 일본은 계속 동진과 북동진하여 필리핀과 대만을 거처 오키나와를 거쳐 오늘날의 열도에 정착했다는 것이 이들의 이동로다.] 이것이 "왜(倭)에 대한 여러 사서들의 주 된 내용이라고 필자는 보고있습니다.
"倭와 日本"에 대한 것들의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은 4편과 5편으로 계속 해설을 해보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倭와 日本의 시원지가 어디였는가? 라고 보며, 일부 사서속에서는 "倭"에 대해서, [북왜, 남왜, 동왜]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 이를 추적해보고자 했으나 워낙 자료가 없어 진전이 없습니다.
계속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만...원전 자료를 계속 찾아보고 있습니다.
"倭와 日本"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건 후천적인 즉 후대의 교육과정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잘못된 역사교육은 후세인들의 정신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고 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교육은 백번을 이야기해도 과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문무선생님 훌륭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 공부가 행복한 이유가 선생님 덕분에 항상 행복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요동 요서..... 철령등
현 중국 지도에 훼이크 당하여 아까운 시간을 한참 보내었네요ㅎㅎ
중앙아시아와 인도대륙, 서남아시아가 초기 삼국이 자리한곳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중앙아시아 역사가 우리 삼국사기의 역사와 데자뷰 역사 더군요
그래야 탐라(쓰리랑카)의 위치가 명확히 비정 되더군요
삼국시대 일본의 위치는 태국 캄보디아 라고 비정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문무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동 경로가 확실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왜(倭)의 이동 경로.
A-1) 대륙 남부의 광동성 동부 ' 복건성 ' 절강성
A-2) 대만 ' 필리핀
A-3) 보르네오 ' 갈류파 ' 말루쿠
※ 가라(가야)의 이동 경로
B-1) 양자강 이남의 안휘성 남부 ' 강소성(장쑤성) 남부 ' 절강성
B-2) 대만섬
B-3) 서일본 지역의 가라(가야) 식민지 - 큐슈 ' 시코쿠 ' 주코쿠 ' 킨키(가야 4현 지역)
※ 일본(日本)의 이동 경로
C-1) 보르네오 ' 갈류파 ' 말루쿠
C-2) 필리핀 ' 대만을 점령
C-3) 류큐(루추)를 점령
C-4) 서일본 지역의 가라(가야) 식민지를 점령
C-5) 동일본 지역을 점령 및 아이누족 학살 자행
C-6) 당시 근세 조선의 강화도이었던 한반도를 불법 측량 (※ 조선반도사를 만들기위한 측량화 시도)
C-7) 일본 제국의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화
안녕하세요. "대진"님, "현조"님!
조금이나마 님들께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혹자가 저에게 말하기를 :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왜(倭)가 남아세아에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워낙 오랜 세월을 의무교육이라는 명분하에 국가에서 주도하는 "세뇌교육, 암기교육"을 무작정 따라하다보니, "일본은 열도, 조선은 반도"라는 1차 방정식이 뇌세포에 각인되어, 다른 사고를 할 수 없게끔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천년 역사이래 수많은 학자, 관리들은 왜 이런 기록을 후세들에게 남겨 놓았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왜노=일본'은, 열도 땅에, 근세기에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특히 1800년대의 오늘날의 열도에서 벌어진 수많은 국지전은 바로 이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왜의 인종을 보면 우리와 다른 '남아세아계'가 확실합니다.
일단은 사서속에서 말하는 내용을 가감없이, 지리적으로, 환경적으로, 기후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원과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추운날씨에 몸 건강하시길 빕니다